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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ony_24555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10
    조회수 : 351
    IP : 118.219.***.56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3/01/08 05:10:24
    http://todayhumor.com/?pony_24555 모바일
    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22)

    수연이의 사과를 랭보는 쿨하게 받아주었다.

     

    "알면 됐어."

     

    이러고서 말았던 것이다.

     수연이는 나와 혜진이가 포니를 주운 사람들끼리 정모를 해서 만났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술을 먹은 뒤에 모텔에서 같이 잤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둘이 잤다고?!"

     

    수연이는 화들짝 놀랐고 원장은 '오호..' 이러면서 안경을 고쳐썼다. 날 보는 눈빛에서 뭔가 재밌을 것 같으니 좀 더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단호하게 말했다.

     

    "잠만 잤어요. 정말."

     

    혜진이는 수연이에게 말했다.

     

    "그래, 잠만 잤어."

     

    그러자 수연이는 그 말이 아니꼽은듯, 비꼬듯이 말했다.

     

    "그래, 잠만 잤겠지..."

     

    하면서 곁눈으로 혜진이를 훝어보았다. 그러자 혜진이는 따지듯이 말했다.

     

    "니는 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데? 니 계속 내한테 왜 그라노?"

     

    "아니.. 그냥.. 너 정도 큰 가슴이면 우리 오빠가 참 좋아하겠다싶어서."

     

    순간, 혜진이가 폭발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부끄러워했다. 자신의 가슴을 괜히 한 번 힐금 보더니 은근슬쩍 팔장을 끼면서 가렸다. 그러면서 얼굴도 빨개져가며 아무 말도 못하길래, 내가 말했다.

     

    "김수연! 너 계속 이럴래? 그만 좀 싸워. 혜진이한테 얘기 다 들었어. 혜진이는 사과 했다며. 그런데 왜 용서 안해주냐?"

     

    그러자 수연이는 자리에서 벌덕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오빠가 뭘 알아?! 왜 쟤 편만 들고 내 편은 안들어주는데? 쟤가 예뻐서 그래? 키 크고 가슴이 커서 그래? 저 불여시 같은 년이 그렇게 좋아? 엉?"

     

    혜진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꼬? 불여시라켔나 지금."

     

    이대로가면 싸울 것 같았기 때문에 나도 일어나서 그 둘을 말렸다.

     

    "둘 다 그만해. 좀! 언제까지 싸울거야? 아이씨 몰라, 맘대로 해!"

     

    순간, 울컥해서 그대로 병원을 나가버렸다. 혜진이가 쫓아와서 "어디가요! 비 오는데!" 소리쳤지만 난 냅다 달렸다. 비는 거세게 내리치고 있었다. 오히려 비가 오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지금 상황에서라면, 비를 맞는 것이 내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거리에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간혹 보인다면 모두 우산을 쓰고 있었다. 나만 우산을 쓰지 않은 채, 무엇이라도 훔친 것마냥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순간, 이 모든 상황이 짜증이 났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비를 계속 맞다보니 비 오는 것이 짜증이 났다. 구제불능인 수연이도 짜증이 났다. 수연이에게 눈엣 가시인 혜진이도 짜증이 났다. 우리 집의 가난한 상황도 짜증이 났다. 돈도 없어서 레리티의 진료비를 내는 것조차 속으로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만원짜리가 10장 이상 들어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짜증이 날 것이었다. 가장 짜증나는 것은 레리티였다. 이 모든 상황이 레리티 때문이었다. 레리티만 없었어도.. 레리티만 내게 안나타났어도!

    도착한 곳은 인력 사무소였다. 난 인력사무소 건물에 들어가서 숨을 걸렀다. 머리까지 쿵쾅거릴 정도로 벅차오른 숨은 쉽게 진정이 되질 않았다. 혹시나 몰라서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주머니가 젖어서 액정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지만 내 손에 묻어 있는 물보다는 적은 양이었다. 메시지가 두 개 와있었다. 하나는 혜진이었다.

     

    '오빠.. 아까 미안했어요. 화 풀어요. 제가 언니니까 참았어야 했는데... 답장 부탁드려요.'

     

    다음은 수연이였다.

     

    '미친.. 왜 비 오는데 우산도 안 갖고 쳐 나가냐? 네가 무슨 원빈이냐? 비 맞고 뛰게. 레리티 내가 집으로 데려간다. 오늘 중으로 나을것 같데.'

     

    다행이다. 레리티가 오늘 중으로 낫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서 순간, 흠짓 놀랐다. 어째서 내가 레리티를 걱정하고 있는거지? 순간, 화가 났다. 이 모든 상황이 레리티 때문이었다. 레리티만 없었더라도.. 이런 상황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혜진이도 수연이를 때렸던 일진으로만 알고 있을 것이었고, 혜진이와 포니들과 함께 술을 먹지만 않았어도 카드에 돈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잔고도 없었기 때문에 편의점가서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도 없었다. 비는 쫄딱 맞았고 돈도 없었다. 나는 지금 지하철 노숙자보다도 더 처참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난 이마에 흐르는 빗물을 닦고 머리를 쓱쓱 털어낸 뒤, 3층 계단을 올라, 인력 사무소로 들어갔다.

     

    좀 이른 시간이라 인력사무소에는 중계인 밖에 없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내가 들어온 것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휴.. 꼴이 저게 뭐람."

     

    이렇게 말하며 철제 캐비넷을 열더니 두툼하게 잘 게어진 수건을 나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이러고서 몸 구석구석을 닦았지만 워낙 비를 많이 맞았기 때문에 온몸이 빗물 투성이었다. 그래서 마치 물을 짜지 않은 걸레를 뒤집어 쓰고 있는 것 같이 찝찝했다.

     

    "옷 좀 말려요. 어차피 여기엔 여자는 안 오니까."

     

    그러면서 구석에 박혀있던 열풍기를 가져와 틀더니 이곳에 널으라고 말했다. 그의 세심한 배려에 난 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묵묵히 그의 말을 따랐다. 웃옷을 벋고 온풍기에 말렸다. 그리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젖은 옷 위에 손을 얹혔다. 옷 너머로 전해져 오는 열기가 차가운 손바닥을 덥혔다. 비에 맞아서 그런지 무척 추웠다. 중계인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말했다.

     

    "왜 비를 맞고 다녀요. 감기 걸리게."

     

    "오늘은.. 비를 좀 맞고 싶었어요."

     

    그러자 중계인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젊은 사람이.. 무슨 병 있어요?"

     

    사뭇 진지하게 물어보길래 나는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러자 그는 허허, 웃더니 담배를 마저 피우고 보던 신문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뇨...."

     

    "방금 볶음밥 시켰는데, 볶음밥 괜찮아요?"

     

    순간, 저 사람이 살아 있는 성인으로 보였다.

     

    "네! 좋죠!"

     

    그는 곧장 전화를 걸어 볶음밥 하나를 추가로 더 주문했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볶음밥 시켜줬으니까, 사무소에 자주 와요. 꼭 택배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는 어떠한 악의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볶음밥을 시켜주었지만 굳이 이유를 붙여야해서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라고 귀뜸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연이어 말했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 비를 맞고 다녔으면 무슨 사정이 생긴 것 같은데... 뭐 때문에 그렇게 맞았어요? 여자한테 차이기라도 했어요?"

     

    그래서 난 잠시 생각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차인 건 아니고... 제가 잘 아는 여자애가 아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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