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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ony_20325
    작성자 : 레리티
    추천 : 12
    조회수 : 1093
    IP : 180.64.***.243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2/12/16 16:33:40
    http://todayhumor.com/?pony_20325 모바일
    팬픽) 굿바이 마이 레리티 (1)

    이제는 깨진 창문을 보고 있어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벌써 세 번째였고, 그들이 이런 짓을 벌이면서 하는 말은 늘 비슷했다. 나는 유리파편들을 신문지에 주워 모으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동생은 아직도 충격이 가시질 않는지 묵묵히 깨진 유리컵을 주워모으고 있었다. 쪼그려서 줍는 모습이 초라해보였다. 무슨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부셔진 가게를 정리하며 아픈 기억의 잔재들을 깨끗하게 치우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그 때, 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확인을 해보니 어머니였다. 그냥 받아도 상관 없었지만 왠지 동생에게 동의를 구해야만 할 것 같았다.

     

    "엄마야."

     

    동생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상황을 말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그래서 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듯, 평소와 똑같은 것처럼 연기를 해야했다.

     

    "여보세요?"

     

    "아이고, 시윤아! 방금 또 전화가 왔어. 오늘 우리 가게로 찾아온데! 아휴.."

     

    신경질적이면서도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는 마치 나에게 이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걱정 마세요. 가게 문 잠가놓고 수연이랑 어디 좀 숨어 있을게요."

     

    "그래, 둘이 꼭 붙어다니고...! 밥은 꼭 챙겨먹고..!!"

     

    "걱정 마세요.."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지금 가게는 온통 난장판이었다. 어머니의 전화는 30분 전에 왔어야 했다. '그들'은 이미 다녀갔고 '그들'이 이 가게에 남긴 것은 파괴와 협박의 잔재들 뿐이었다. 통화를 마치고 계속 하던대로 유리 파편을 주워모았다. 그러다가 칼날처럼 생긴, 큰 것을 무심코 만졌다가 그만 손이 베이고 말았다. 손가락에서 시원한 느낌이 났다. 얕은 상처였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많은 피가 물 묻은 스펀지를 누르듯 스며나오고 있었다. 나는 신문지를 찢었다. 그리고 그것을 상처에 데고 반창고를 찾으려고 일어났다. 그랬더니 수연이가 이 모습을 보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결국 베었어? 내가 뭐랬어! 장갑 끼고 하랬잖아!"

     

    수연이는 확실히 짜증이 나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고 내 상처를 보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보여주기 싫었다.

     

    "어디 봐바! 심해? 조심하랬잖아 바보야!"

     

    도대체 나를 걱정하는 것인지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인지 모를 말투였다.

     

    "그냥 베인건데.. 괜찮아."

     

    "안 괜찮잖아? 피 흐르잖아!"

     

    그러면서 계속 메달리는 동생이 덜컥 짜증이 났다. 나에게 달라붙는 그녀를 뿌리치려고 민 것이 조금 과했는지 뒷걸음질쳐야 될 정도로 강하게 밀어버리고 말았다.

     

    "괜찮다고!"

     

    순간, 윽박지르듯 내뱉으니 수연이는 적잖히 깜짝 놀란듯 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 소리지를 만한 일은 아니었는데, 어째서 이런 말이 나왔는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연이는 잠시 멍하니 쳐다만보고 있다가 화가 난듯 고무장갑을 끼고서 다시 유리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이러면 수연이에게 미안함 감정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지쳤다. 이 가게를 치우는 것도,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지쳐서 그냥 전부 다 내팽겨치고 싶었다. 나는 반찬고로 상처를 감싼 다음, 외투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동생이 "어디가?!" 라고 소리치는 것이 나지막하게 들렸다.

     

    피씨방에 도착해서 하는 것은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유머 게시판에 접속해서 이 글 저글을 클릭했다. 엄청 웃긴 것은 소리 내어 웃었고 아무 것도 아닌 글에는 비추를 주면서 놀고 있으니, 그저 즐겁기만 했다. 이 인터넷 커뮤니티만 들어가면 마음이 편했다. 빚에 시달리는 것도, 동생의 짜증도,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도 이 커뮤니티에만 들어오면 마치 나와는 별개인 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담배를 물고 게시판을 새로고침 하였다. 그러자 포니글이 올라왔다. 포니는 미국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귀엽게 생긴 망아지였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것을 좋아하는 성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아용 애니메이션일 뿐인데..

    그래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 글에 덧글로 '포확찢' 이라고 썼다. '포확찢'은 '포니 확 찢어버린다'의 줄임말이었다.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피씨방을 나오니 밖은 제법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담배를 피려고 담배곽을 열어보니 담배가 딸랑 한 개 남아있었다. 지갑을 확인하니 천원짜리 한장이 있었고 점퍼에는 딸랑 200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걸로는 국산 담배조차로 못 산다. 그래서 더욱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마지막 담배라고 생각하며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면서 길을 걸었지만 골목길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문득, 전봇대를 지나다가 거기에 떨어져 있는 담배곽을 발견했다. 군대에 있을 때에는 간혹, 저렇게 버려진 담배곽에 담배 몇개피가 들어있곤 했다. 그 시절 생각이 떠올라서 무심코 그 담배곽을 주웠다. 하지만 역시나 담배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전봇대에 툭, 던졌다. 그것은 반듯하게 모양이 나있는 상자속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끵.."

     

    상자 속에서 살아있는 상명체의 소리가 들렸다. 뭔가해서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때 냈던 소리는 꺄악'과 '헉' 의 중간 단계였을 것이다. 상자 안에는 믿기기 어려웠지만 포니가 들어 있었다. 유머 게시판에 포니 글만 올리는 녀석의 그림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름까지도 외웠다. 기억이 맞다면 저 포니의 이름은 '레어루티'였을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상자를 다시 확인했다. 분명 착각한 것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것은 분명 포니였다. 조랑말을 분장시킨 건 아닐까하고 그것을 만지기 위해 손을 뻣자, 녀석은 "끵.."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다. 두려움에 질려 눈은 꼭 감고 있었고 미약하게나마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녀석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녀석의 뿔을 만져보았다. 손이 뿔에 닿자 흠칫하고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나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 진짜 뿔이었다. 뿔의 밑둥을 만져서 살짝 몇 번 흔들어보았지만 누가 붙여 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뿔에서 미약한 오로라같은 것이 나왔다. 깜짝 놀란 것은 뿔을 만졌던 손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마치 바늘로 찌르듯 날카롭게 아팠다.

     

    "설마.. 마법 쓴거야?"

     

    대박이다. 이 녀석을 당장 가져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상자를 포장하기 위해 뚜껑을 집었다. 그러자 놀란 녀석은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쪼그만 녀석에게는 무리였다. 상자 벽에 앞발을 올려놓고 바둥바둥거렸지만 키가 닿지 않아서 미처 빠져나오질 못했다. 그러고 있으니 녀석이 깔고 뭉게서 안보였던 엽서가 한 장 보였다. 난 그 엽서를 꺼내서 길바닥에 올려놓고 상자를 잘 포장했다. 그러자 녀석은 안에서 "끵..." 소리를 내며 상자 벽을 툭툭 쳤다. 아마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녀석이 내는 울음소리가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이 녀석을 포니 좋아하는 팬에게 팔면 꽤 큰 돈을 만질 수 있으리라. 그렇게만 되면 우리 집의 빚도 어느 정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신이 나서 엽서를 읽어보았다. 엽서의 내용은 무척 간단했다.

     

    '순진하고 여린 아이에요. 부디 잘 보살펴주세요. 깨끗하고 고풍스러운 것을 좋아해요.'

     

    난 그 엽서를 자켓 주머니에 집어 넣고 상자를 들었다. 상자는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이것을 빨리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만 가져가면 동생에게 일을 내팽겨쳐놓고 나갔던 꾸지람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힘든 일을 겪었는데도 위로의 말조차 해주지 못한 오빠를...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왔어."

     

    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가게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가 3통이 걸려있었다. 엄마가 한 번, 동생이 두 번이었다. 뭐 금방 돌아오겠지 생각하며 내 방에 들어와서 문을 닫고 상자를 열었다. 그랬더니 녀석은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상자를 뛰쳐나와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출구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문고리를 발견하고서는 앞발로 툭툭 찼다. 마치 사람이 '문 열어주세요! 누가 좀 구해줘요!' 이러는 것 같았다.

     

    내가 녀석에게 다가가자 녀석은 날 노려보며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뿔에서 오로라같은 게 빛나기 시작했다. 또 마법을 쓰려는거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자잘한 물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처음 날아온 것은 내가 무심코 벗어놨던 자캣이었다. 그것은 내 얼굴로 날아와서 착 달라붙었다. 떼어보려고 했지만 누군가 손으로 꽉 누르고 있는 것처럼 힘이 강해서 차마 떼어내질 못했다. 그러고 있는 사이 복부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날아와서 가격했다.

     

    '컥..'

     

    명치에 맞은 것이 분명했다. 숨이 턱 막혀서 쉬어지지 않았다. 머리가 차가워질 정도로 아픈 충격 때문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날 때린 녀석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얼굴에 붙은 옷을 떼어주었다. 녀석은 공포에 질린듯 하면서도 내가 걱정되는 눈치였다. 나에게 다가오더니 죽었나 살았나 확인하듯 앞발로 쿡쿡 찔렀다. 내가 고개를 획, 들자 녀석은 놀랐는지 마법으로 띄워놨던 물품들을 전부 다 떨어뜨렸다. 콰광,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빌어먹을, 콰광하고 소리를 냈던 것은 내 모니터와 컴퓨터 본체였다.

    이 사건이 있은 직후, 녀석과 나는 냉전을 펼치고 있었다. 녀석은 침대 구석에서 쪼그려 앉더니 날 경계하듯 쭉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녀석을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컴퓨터 본체를 열어보았더니 그래픽카드의 쿨러가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심각한 건 아니었다. 단지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을 뿐이었다. 19인치 LCD 모니터는 액정에 거미줄 모양의 금이 가서 대기 모드인데도 금이 간 사이로 분홍색, 파랑색, 예쁜 색깔이 나왔다. 지금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을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포니새끼 한 마리가 마법으로 내 컴퓨터를 부셔버렸어요! '라고 당장이라도 유머 사이트에 올리고 싶었지만.. 젠장, 컴퓨터가 켜지질 않는다.

    책상을 쾅, 치고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녀석은 순간 겁을 먹더니 곧, 아까와 같은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물품일 이것 저것 띄우기 시작했다.

     

    "야!"

     

    하고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녀석은 놀라서 들고 있던 물품들을 아까처럼 덜컹 떨어트렸다. 이렇게 되니 내 방은 어느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녀석은 날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훌쩍훌쩍 거리며 "끠잉.." 소리를 내었다. 흐르는 눈물을 앞발로도 닦았다. 마치 사람 같았다. 사람이라면 이런 말도 했겠지. '저한테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에요..' 훗, 귀여운 녀석. 하지만 저렇게 울고 있으니 나까지도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래서 티슈를 가져다가 녀석에게 주었다. 녀석은 휴지와 날 번갈아 쳐다보더니 냅다 휴지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리고 코를 흥, 풀었다. 휴지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더 갖다주었다. 그걸로 코를 몇 번 더 킁킁 푼 뒤에 코 푼 휴지를 마법으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이 녀석은 대단했다. 대소변 이상의 것을 가릴 줄 아니까.

     

    녀석은 진정했고 우리는 여전히 냉전 상태였다. 녀석은 침대 구석에, 나는 의자에 앉아서 묵묵히, 그리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있으니 배가 고팠다. 뭐라도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근원지는 내가 아닌 저 포니였다. 녀석은 내 눈치를 보며 잠시 부끄러운듯 억지 웃음을 짓다가, 정신이 들었는지 '흥' 이럴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잠시 지그시 보고 있으니 녀석의 얼굴이 부끄러운듯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배고프냐?"

     

    내가 물어보자, 녀석은 날 쳐다보았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순 없겠지만 왠지 녀석은 내 말에 반응을 한 것 같았다. 녀석은 수줍은듯 고개를 숙이고 침대시트를 몇 번 앞발로 긁다가 날 쳐다보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신기했다.

     

    "배고프다고..?"

     

    다시 물어보자, 녀석은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 알아 들어?"

     

    이번엔 화가난 듯 험한 인상을 쓰며 크르릉거렸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말도 못 알아듣는 바보로 알았던거야?' 이러는 것 같았다.

     

    "오, 알았어. 알았어. 미안. 내가 널 과소평가 했군. 밥 먹자. 기다려봐. 밥 갖다줄게."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왔는데 그러고 보니 말은 뭐 먹지? 개사료 같은 걸 먹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방으로 들고 들어간 것은 라면이었다. 점시에 녀석과 내것을 사이 좋게 반씩 담았다. 녀석이랑 같이 먹으려고 세개씩이나 끓였다. 녀석은 호기심여린 눈빛으로 라면을 쳐다보았다.

     

    "라면 처음 봐?"

     

    라면에 눈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 사는데에서는 라면 없냐?"

     

    역시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내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저 이 희안하게 생긴 음식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먹는 것인지. 혹은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못참겠다는 표정으로 라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손수 먹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젖가락으로 라면을 들어서 입에 넣는다. 참 쉬운 방법이었다. 녀석도 따라했다. 대신 젖가락을 집는 것은 마법이었다. 마법으로 하는 젖가락질이 꽤나 능숙했다. 그러더니 라면을 입에 넣었다가 생각보다 뜨거웠는지 뱉어버리고 말았다.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티슈를 마법으로 꺼내서 도도하게 입을 닦았다. 마치 어디 동네 사모님 같은 모습이었다.

     

    녀석은 호호 불며 라면을 먹었다.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먹었다. 그래서 난 녀석을 계속 기다려줘야 했다. 난 이미 다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눈치챘는지 녀석도 무리하면서 빨리 먹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 특유의 고풍서로운 분위기를 져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우아하고 도도하게 먹었지만 단지, 그 속도가 더 빨라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허겁지겁 먹고서는 자기도 좀 지친 모양이었다. 만족스러운듯 티슈로 입술을 닦았다. 그리고 어디에서 찾았는지 무령왕릉 갔을 때, 기념으로 구입했던 부채를 펴서 자신에게 부쳤다. 더웠는지 녀석은 땀이 송글송글 맫혀있었다. 나는 담배를 피고 싶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소화가 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게임도 하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일찍 씻고 자고 싶었다. 그래서 녀석에게 물어보았다.

     

    "야, 씻을래?"

     

    그러자 녀석은 마치 이 말을 기다렸다는듯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무척 기분 좋아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졋다. 컴퓨터를 부순 것은 분명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귀여우니까 참아줄게.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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