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천의 한 빌라에 살고 있습니다. 토끼같은 아내와 여우같은 딸과 함께 기쁘고 행복한 나날을 누리고 있습니다.
빌라에는 총 8세대가 사는데, 주차장은 4대가 댈 수 있는 자리이고 좀 더 걸어나가면 공영 주차장이 있지만 자리는 잘 없는
전형적인 주차장 전쟁터입니다. 그래도 세대에 사는 분들이 다 좋은 분들이라, 그닥 다툼없이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차장에 자꾸 못보던 차가 있더군요. 세대원들의 차는 아니었습니다. 누구 차길래 전화번호도 안붙여놓고 있냐며
분통을 터트리는 분들 몇번 봤었거든요.
알고보니 저희 빌라 맞은편 빌라에 사는 영감님 한분의 차더군요. 차나 작아서 잘 돌아나갈 수 있으면 또 몰라, 차도 큼지막한
게 차선을 물고 주차를 하니까 뒤쪽에 대놓았던 차들은 못나가서 난리죠. 게다가 전화번호도 없어요. 사람 미치는 겁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희도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뭔가 조치를 취하자며 세대원들끼리 얘기가 오가던 중에,
어느 날 제가 차를 뒤쪽에 주차하고 내리려는데 제 앞에다가 그 차가 버젓이 주차를 하더군요.
제가 얼른 내려서 그 차 옆으로 가서 운전석 창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저 : 영감님, 저 죄송한데요. 여긴 저희 빌라 주차장이고, 차를 대시는거야 뭐 이해한다 쳐도 주차를 이렇게 하시면 뒤에 있던 차들은 못나가잖습니까.
영감님 : 아 거 주차장 갖다 야박하게 구네. 젊은 양반이 인심이 왜그래?
저 : 아니 영감님, 인심이고 뭐고 자기 빌라 주차장도 아니고, 저희도 주차장이 좁아서 골아픈데 여기다 대시는데다가 주차도 이상하게 하시잖아요.
영감님 : 허어, 왜이리 자꾸 말대꾸만 따박따박 하는기여? 노인공경 안배웠는가?
슬슬 스팀이 오르잖아요. 빡치기도 하고. 저도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니까, 주변에 지나가던 분들이랑 저희 빌라 분들 몇분도 내려오셔서
갤러리처럼 구경하시더라고요.
뭐 저도 좋게 좋게 얘기하고 넘어갈라고 했죠. 어차피 빌라 마주보고 사는데 싸워서 좋을 게 뭐 있어요.
그러다가 이 영감님이 제 역린을 건드린거죠.
영감님 : 아니 이사람아, 젊은놈이 왜이리 말대꾸를 해대는가? 늬 부모한테도 그러냐?
부모님 얘기는 제 역린입니다. 제가 욕먹는 건 참아도 저희 부모님 욕먹는 건 못참아요. 그 순간에 이제 눈앞에 뵈는 게 없어진거죠.
제가 원래 부산 사람이고, 부산에서 30년 가까이 살다가 인천에 올라온 사람이라, 아직 흥분하면 부산 사투리가 강하게 나오거든요.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화가 나니까, 부산 사투리가 거침없이 튀어나오더군요.
야이 xx새x가 나이를 xxx으로 쳐뭇나 xx럼이 그럼 xx럼아 내가 x빨랐다고 니한테 괜히 이xx 하나
그럼 여기가 우리 빌라 땅이지 니 땅이가 xxx새x가 확 xx 대가리를 쪼xxxxx
머? 이 xxx아 쳐다보면 머 머머 어쩔낀데 다이다이 뜨던지 xxx가
나이가 벼슬이가? 우리 아버지도 운전 오래했어도 니처럼 xxx은 안했어!
뭐 꼬라보노 xx이 눈xx 다 뽑아 발로 문대삐기 전에 눈깔아라 xxx아
xxx이 차만 좋으면 다가? 어? 졸부새x가 확 xx 차 다 뽀사삐기 전에 빨리 차 빼라!!!
라고 했더니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차를 빼더군요. 제가 퍼부어놓고도 아차 싶긴 했는데 어쩌겠습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그 뒤로 저희 주차장에는 차 절대 안대더군요.
사실 욕은 안좋다고 생각해요. 평화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 정말 말로 해선 들어먹지 않는 인간 같잖은 놈들도 있긴 있거든요. 그런 놈들에겐 욕도 해결책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요즘도 오다가다 마주치긴 하는데, 저랑은 눈을 안마주치더군요.
뭐, 덕분에 주차장은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Ssang-yok maketh m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