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모텔에서 생긴 일 -3부-</div> <div> </div> <div> </div> <div>준비는 끝났다.</div> <div>상점들이 서서히 문이 닫기 시작하는 시내를 정신 없이 돌아다녀, 겨우 장만할 수 있었다.</div> <div> </div> <div>난 정말 천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div> <div>이런 기쁨보다도 더 나를 휘감고 있는 건 이대로 달아나고 싶다는 욕망이다.</div> <div> </div> <div>저 모텔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가.</div> <div>약해지는 의지를 붙잡았던건,</div> <div>해부학 첫 시간, 교수님이 해 주셨던 이야기였다.</div> <div> </div> <div>'의사는 인간이 아니다. 의사는 강철이다.'</div> <div> </div> <div>그래, 나에게는 강철과 같은 의지가 있다.</div> <div>이대로 달아난다면 난 평생 파렴치한이라는 낙인이</div> <div>찍힌 채 살아야 할 것이다.</div> <div> </div> <div>고작 이런 일로 핑크빛 미래를 어둡게 할 수는 없다.</div> <div>난 당당하게 파라다이스 안으로 들어섰다.</div> <div> </div> <div>프런트 안에 있는 빨간 머리가 나를 보았다.</div> <div>난 내 한 쪽 어깨에 들려져 있는 좀 크다 싶은 쌕에 대해 녀석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뭇 궁금했다.</div> <div> </div> <div>이 쌕 안에는 여자용 쌕이 들어가 있고,</div> <div>그 안에는 다른 도구들이 들어가 있다.</div> <div> </div> <div>키를 건네준 녀석은 도로 프런트에 있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div> <div>내 예상은 들어맞았다.</div> <div> </div> <div>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하느냐 하면, 모텔 같은 데서는 손님이 무거운</div> <div>짐을 가지고 있으면 들어 주려고 할 수가 있다.</div> <div> </div> <div>하지만, 빨간 머리는 이 정도 크기의 짐에는 움직이지 않았다.</div> <div>룸으로 돌아온 나는 바삐 욕실로 들어갔다.</div> <div> </div> <div>사람이란 참 간사한 생물이다. 욕실에 들어가기 전까지,</div> <div>난 시체가 없었으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상상을 했다.</div> <div> </div> <div>하지만, 시체는 그 모습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쓰러져 있었</div> <div>다. 그래, 현실은 받아들여야지. 난 작업에 착수했다.</div> <div> </div> <div>욕실 안에서 작업에 필요 없는 모든 것들을 룸으로 옮겼다. 뭐, 비누</div> <div>나 휴지, 샴푸, 타월, 어느 욕실에나 있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div> <div> </div> <div>그리고, 옷을 모두 벗은 채, 여자애가 하고 있던 브래지어로 시체의</div> <div>양 발목을 단단히 묶었다.</div> <div> </div> <div>그리고, 시체를 물구나무 세운 뒤,</div> <div>발목에 묶여있는 매듭을 욕실 벽의 옷걸이에 걸었다.</div> <div>옷걸이의 높이가 낮아서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지만,</div> <div>그런 대로 만족할 만했다.</div> <div> </div> <div>서서히 경직되기 시작한 무거운</div> <div>시체를 거꾸로 세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div> <div>어차피, 좀 기다려야 하니까, 여유 있게 앉아서 담배나 태우자.</div> <div> </div> <div>담배 두 대를 태운 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div> <div> </div> <div>우선, 온수를 틀었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div> <div> </div> <div>우선, 온도의 문제.</div> <div>어쨌든 시체가 경직이 되면 작업이 힘들어질 것이다.</div> <div> </div> <div>두 번째는, 소리의 문제. 방음시설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div> <div>돌다리도 두들겨 가며 건너야 할 때니까.</div> <div> </div> <div>세 번째는, 뒤처리의 문제다. 욕실에 수증기가 가득 차 있으면 습도</div> <div>가 높아 피나 오물이 튀어도 쉽게 응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밑</div> <div>준비는 모두 끝났다</div> <div> </div> <div><br />나는 톱을 들었다.</div> <div> </div> <div>이런 젠장... 이제 와서 손이 떨리다니...</div> <div>해부학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지금은 해부학 시간이다.</div> <div> </div> <div>하지만, 떨림은 좀처럼 멈추려 하지 않았다.</div> <div>그래, 엄마와 정화를 생각하자.</div> <div> </div> <div>엄마의 화난 얼굴과 정화의 실망한 얼굴을...</div> <div> </div> <div> </div> <div>나는 시체의 몸에서 목을 분리하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도대체 지금이 몇 시지?</div> <div> </div> <div>새벽 세 시. 피비린내와 배설물의 냄새를 맡으며,</div> <div>이 곳에서 다섯 시간이나 있었구나.</div> <div> </div> <div>내 온몸은 피와 오물로 가득했다.</div> <div>어서 빨리 끝내고 목욕이나 했으면 좋겠다. 우선은 좀 쉬자.</div> <div> </div> <div>내가 지금까지 도대체 뭘 했지? 시체의 머리는 미장원에 있는 가발</div> <div>마네킹처럼 세면대 위에 잘 모셔 놓았고,</div> <div> </div> <div>그 뒤에 어깨와 대퇴부에 있는 경동맥에서 피를 대충 뽑아냈다.</div> <div> </div> <div>부피를 최대한 줄여야 하니까...</div> <div>그리고, 지금 욕실 바닥엔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고깃덩이와 뼈들이 늘어져 있다.</div> <div> </div> <div>자꾸 바닥이 미끌거려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자칫하면 여자애가</div> <div>그랬듯, 내가 뇌진탕으로 죽었을 지도 모른다.</div> <div> </div> <div>자, 다시 시작하자. 난 피로 물들어 있는 커터를 들었다. 그리고, 얌</div> <div>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머리를 집었고, 두피를 벗기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하긴,</div> <div>10kg이 넘는 쓰레기 봉지를 수백 바퀴는 돌렸으니...</div> <div> </div> <div>뼈는 의외로 차지하는 부피가 적다.</div> <div>문제는 피와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는 내장들.</div> <div> </div> <div>구멍을 뚫은 쓰레기 봉지에 그것들을 넣고</div> <div>쥐불놀이를 하듯이 돌린 탓에 욕실의 천장이고, 바닥이고 할 것 없이 온통 피가 튀었다.</div> <div> </div> <div>원심력의 원리를 이용한 인간탈수기가 된 것이다.</div> <div>진짜 탈수기가 있었 으면 얼마나 좋았을까.</div> <div>하기야, 탈수기가 있었다고 해도 이런 것들을 넣고 돌릴 순 없는 일이지.</div> <div> </div> <div>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두 개의 쌕에 들어가기에는</div> <div>부피가 커 보인다.</div> <div> </div> <div>피나 오물들은 배수구나 화장실 변기에 쏟아 버리면 그만이지만,</div> <div>내장 은 그럴 수도 없다.</div> <div> </div> <div>결국, 그 방법까지 써야 한단 말인가. 피하고 싶지만, 선택의 여지가</div> <div>없다. 천국으로 비상하기 위해서는...</div> <div> </div> <div>내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쌕. 사람의 위는 상당히 많은 양을 담을</div> <div>수가 있다. 난 두 눈을 감고, 한 손으로 코를 막았다.</div> <div> </div> <div>그리고, 쓰레기봉지에 손을 넣었다. 물컹한 것을 한 웅큼 집어냈다.</div> <div>느낌으로는 간(肝) 같은데... 얼마큼 내 위에 담을 수 있을까.</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새벽 다섯시. 욕실 청소를 끝냈다.</div> <div> </div> <div>선반과 세면대, 욕조,</div> <div>구석구석 단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닦고 또 닦았다.</div> <div> </div> <div>이 곳에서 인체 분해가 일어난 것은 나와 시체만이 알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청소를 멈추었다.</div> <div> </div> <div>그리고, 피바다에서 헤엄이라도 치고 나온 듯한 내 몸을 씻었다.</div> <div>피비 린내와 구역질나구역질나는 냄새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div> <div>몇 번이고 비누칠 을 했다.</div> <div> </div> <div>그리고, 양치질도... 상쾌하게 샤워를 끝낸 나는 룸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품같이 한없이 편해 보이는 침대가 나를 유혹했지만,</div> <div>아직 할 일 이 많았다.<b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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