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P2P ‘유령전쟁’ 최후의 승자는? [경향신문] 2005-11-13 16:37
하나의 ‘유령’이 전세계 인터넷을 배회하고 있다. 갈등의 폭풍을 몰고 다니는 ‘P2P’. 이 P2P라는 유령을 잡으려고 음반·영화·드라마 등 콘텐츠 생산자와 그 연합단체들이 신성동맹을 맺었다. 세계는 지금 ‘P2P 전쟁중’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P2P서비스 운영업체와 P2P서비스로 저작권 침해를 당한 사람들 간의 전쟁이다. P2P를 이용해 정보를 공유했던 네티즌은 사태추이를 지켜보며 다음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전장은 법정이지만 결국 승패는 네트워크상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다.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이 치열한 전쟁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까.
#P2P, 사라지지 않는다.
는 ‘Peer to Peer’, 즉 개인과 개인을 연결한다는 뜻이다. P2P 이전의 인터넷이 중앙서버에 다수의 단말기가 연결되는 서버-클라이언트 구조였다면 P2P시대의 인터넷에서 모두가 서버이자 클라이언트가 된다. 네트워크를 통해 개개인이 직접 정보를 교환할 수가 있다. 인터넷은 P2P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네트워크로 발돋움했다.
P2P라는 단어엔 ‘불법’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P2P는 훨씬 광범위하고 유용한 기술이다. P2P가 없다면 지금과 같은 인터넷상의 대규모 정보교환은 불가능하다. 트래픽으로 인한 서버 병목현상으로 원활한 업무처리가 불가능하고 서버 증설 비용으로 천문학적 금액이 들 수밖에 없다. 또 P2P는 미래 핵심기술이다. IBM과 선마이크로 시스템스 등은 P2P 기술을 차기 운영체제에 적용하려고 준비중이다. 유비쿼터스의 근간도 P2P다. 모든 기기들이 상황에 맞게 서로 인식하고 작동한다는 유비쿼터스의 본질은 ‘M2M(Machine to Machine)’이고 이는 P2P 인프라가 갖춰져야 가능하다. P2P는 이미 ‘인터넷상의 공기’ 같이 되어 버렸다.
#P2P, 지난한 소송의 역사
P2P서비스는 소송의 역사다. 1999년 미국 P2P기반 파일공유 네트워크인 냅스터가 등장하자 그해 12월 미 음반산업협회(RIAA)는 냅스터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다. 2000년 7월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은 냅스터에 서비스 중단 명령을 내렸다. 냅스터는 항소했고 2001년 2월 항소심에서 법원은 다시 불법판결을 내렸다. 결국 냅스터는 서비스를 중단했다. 냅스터가 법정다툼에서 패배한 중요 이유는 중앙 서버가 있어 개개인의 접속과 검색을 도와주는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냅스터에서 교훈을 얻은 P2P업체들은 개개인이 IP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공유해 서버 없이 연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1984년 대법원이 내린 ‘소니 베타맥스’ 판결이 믿는 구석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사용자들의 TV방송 녹화로 저작권 침해사례가 발생한다고 해도 녹화기기를 판매한 소니 베타맥스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그록스터, 카자 등의 2세대 P2P업체도 법정공방을 피할 수 없었다. RIAA는 2001년 10월 그록스터 등을 고소했다. 하지만 중앙서버가 없기 때문에 냅스터 소송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들은 2003년 4월 LA법원으로부터 “이용자의 파일 교환행위에 그록스터는 책임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2004년 8월 항소심에서도 이 판결은 뒤집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저작권 침해 행위를 조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제3자의 범법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만장일치 판결을 내렸다. ‘소니 베타맥스’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 영향으로 e동키와 윈MX가 지난 9월 사이트를 폐쇄했고 그록스터도 결국 지난 7일 서비스를 중단했다.
다른 나라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모든 회원국이 2년 안에 파일 불법공유·다운로드를 처벌하는 법안을 마련토록 하는 지침을 통과시켰고 이에 발맞춰 이탈리아는 최고 3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는 법안을 제정했다. 프랑스법원은 올 2월 무단복제한 음악 1만여곡을 P2P방식으로 인터넷에 올린 교사에게 1만유로가 넘는 벌금을 부과했다. 호주에서도 P2P업체가 패소했다. 지난 9월 호주연방법원은 P2P서비스 업체 카자가 파일 불법교환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고 지난 9일엔 홍콩법원이 P2P 프로그램 비트토런트를 이용해 데어데블 등 영화파일을 인터넷에 배포한 남자에게 징역 3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캐나다 법원은 2004년 3월 “P2P방식의 음악파일 교환은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P2P, 합법화될까.
서비스를 중단한 P2P업체들 상당수는 합법화를 모색하고 있다. 필터링을 통해 불법음원과 영상을 거른다는 것. 아이메시는 이미 필터를 사용해 지적재산권 침해 우려가 있는 파일 교환을 금지시키며 유료 P2P 서비스를 진행중이다. 매시박스 역시 조만간 허가되지 않은 음악을 공유할 수 없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고 그록스터는 소송을 피하기 위해 매시박스와 피인수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그럼에도 무료 P2P 서비스는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오픈소스로 된 P2P 서비스는 막을 방법이 없다. 그누텔라처럼 소스가 공개되어 있고 특정 소유자가 없는 P2P 프로그램은 소송의 대상조차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카피레프트 운동을 펼치는 전세계의 많은 프로그래머들은 소송이 진행될수록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P2P는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거나, 새로운 기술로 이 난국을 타개하거나 제도권 밖에서 게릴라활동을 펼칠 것이다. 판결이 어떻게 내려지든 승자는 네티즌이 될 것이다. 법보다 네티즌의 기술 진보가 항상 빨랐기 때문이다.
〈김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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