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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sisa_585327
    작성자 : Dem0cracy
    추천 : 1
    조회수 : 304
    IP : 59.11.***.164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15/04/11 00:19:39
    http://todayhumor.com/?sisa_585327 모바일
    날치알.

    그는 벌써 한 달이 넘게 피켓을 들고 본부관 앞에 서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있는 이미 익숙해진 듯 거리에 있는 가로수마냥 무심코 그를 지나쳐갔다.

     

    지나가는 학생이 인사하면 그는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줄 뿐이다.

     

    그는 목에 걸린 피켓을 들고 흔들어보기도 하고 그 내용을 크게 읽어보기도 한다.

     

     

     

    2년 전에 그의 수업을 들었다. 아마 현대수필의 이해였던가.

     

    학점은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중간고사는 배탈이 나서 보지 못했고 기말고사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땐 패기 있는 1학년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한편의 수필을 써오면 성적에 +를 붙여주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난 늦게나마 비루한 성적에 플러스라도 붙여주기 위해서 열심히 수필을 썼었고 꽤 흡족한 작품(?) 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약간의 자신감과 함께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그 다음주에 맞춤법이 너무 많이 틀려 도저히 읽을 수 없으니 맞춤법에 신경 써 다시 써와라라는 답을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c+라는 성적을 받았다. 수업자체는 상당히 훌륭했으므로 나중에 재수강을 할 생각이었다.

     

    그 뒤로 처음 그를 본 건 올해 계절 학기를 들었을 때였다. 그는 본부관 앞 건물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2년 만에 만났지만 나에게 강의를 한 교수님이기에 인사했고 그도 나에게 인사해주었으나 그는 나를 알아보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그 당시 나는 그냥 그가 약속이 있어 거기서 앉아있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후 그가 처음 1인 시위를 시작한 것은 개강을 한지 얼마 안돼서다. 비로소 난 그가 왜 계절 학기에 본부관 앞 건물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는지, 왜 그가 그런 표정으로 나에게 답례를 해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쉽게 말해서 실직자가 된 것이다.

     

    대규모 국어교육과 강사 부당해고, 4개월짜리 부당한 계약서, 시수를 초과한 강의 등등 그가 들고 있는 피켓은 상당히 종류가 많았다.

     

    처음엔 신기함도 있었지만 뭔가 2년 전에 나를 가르친 교수가 실직자가 되어 본부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니 뭔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길을 돌아가 그를 지나쳐 가면서 인사를 해보았다. 그는 밝게 인사하며 자신의 사진을 한 장 찍어줄 수 없겠냐고 물어봤다. 난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사진을 찍어주고 나는 강의실로 가는 척을 했다.

     

    몰래 그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그를 지켜보기로 했다. 이미 내 수업은 시작했다.

     

    더러 인사하는 학생들도 있고 그냥 지나쳐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지나쳐가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본부관 입구를 지나다니는 직원들은 단 한명도 그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는 상당히 그곳에 오래 서있었다. 그날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난 오래 서있는 그가 힘들진 않을까 하여 마트에 가서 알로에 쥬스를 하나 샀다. 알로에 쥬스를 사서 그에게 가는데 그사이에 그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가 사라지고, 알로에 쥬스는 내가 먹었다.

     

    알로에 쥬스를 마시는 동안 생각했다. 법을 전공한 나로서 보기에 저것은 무언가 잘못된 일이다. 그는 단순 갑자기 오늘 1인 시위를 시작하진 않았을 것이다. 계절학기 부터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그에겐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는 노동법 교수도 있고, 민법 교수도 있고, 행정법 교수도 있다. 많은 교수들이 있는데 그의 편이 되어준 교수는 없었을까. 이론과 현실은 다른 것이었던가. 내가 이제껏 보았던 건 단지 흰 종이와 검은 잉크의 세상이었나.

     

    마음 같아서는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는 나지 않았다.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작게 느껴졌다.

     

    내가 매일 먹는 수천, 수만 개의 쌀알보다도 더욱 작게 느껴졌다. 아마 굳이 비교하자면 날치 알 정도랄까, 평소엔 투명한 붉은빛을 유지하다 조금만 열을 가하면 금세 혼탁해지는 그런 특성도 나와 같다고 생각됐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가 한순간에 실직자가 됐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4개월짜리 계약서에 매년 수차례씩 서명을 할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난 아직도 그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만 할 뿐이다. 그는 웃는 얼굴로 화답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단지 마음에만 들지 않을 뿐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날치알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마음속에 떠나질 않는다.

     

     

    요즘 날씨가 정말 좋다. 학교는 벚꽃으로 만개했고 여기저기 아이들은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가 바쁘다. 그는 이미 거리의 가로수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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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11 00:36:49  211.229.***.180  막시버무스  54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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