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402" height="402" style="border:;" alt="1.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1/1451748682kDLhDPiROEKABgNu8Yve7uRatib.jpg"></div> <div><br>1. 엘리아 카잔 (1909년 9월7일~2003년9월 28일)</div> <div> </div> <div>터키 태생의 그리스인으로 4살때 미국으로 이민온 엘리아 카잔은 브로드웨이에서 연극 연출을 시작으로</div> <div>헐리웃에 입성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덴의 동쪽, 신사협정,초원의 바다 같은 걸출한 걸작들을 연출한 감독이었습니다</div> <div>1950년 공화당 상원의원인 조지프 메카시가 미국 전역에 공산주의들이 넘치며 자신이 그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궤변으로</div> <div>시작된 광풍은 미국 전역을 광기로 몰아갔고 헐리웃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div> <div>엘리아 카잔은 당시 많은 사회비판적인 연극,영화를 연출했던 사람이었고 공산주의자로 몰린채 반미조사위원회에 출두해야 했습니다.</div> <div>그리고 여기서 그가 한 선택은 자신이 공산주의 활동을 한바 있으며 헐리웃에 있는 다른 공산주의자를 알고 있다고 거짓 증언을</div> <div>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고한 헐리웃의 동료 여덟명을 팔아 넘긴 공으로 자신은 살아 남은채 헐리웃에서 다시 감독생활을</div> <div>할 수 있었고 그 후에도 워터프론트 같은 걸작을 찍으며 위대한 감독으로 칭송 받게 되었죠.</div> <div> </div> <div>1999년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는 수많은 논란 끝에 평생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됩니다. 그가 무대 위에 올랐을때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던</div> <div>많은 영화인들...워렌 비티나 케시 베이츠, 커트 러셀, 메릴 스트립은 그의 수상에 기립박수를 보냈지만 또 다른 영화인들 짐 캐리,에드 해리스</div> <div>닉 놀테, 홀리 헌터, 조디 포스터, 조지 클루니 같은 영화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냉소적인 시선을 보낼 뿐이었습니다.</div> <div>그리고 그 시각 시상식장 밖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공로상을 수상하는 것을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었죠.</div> <div>그는 동료를 무고하고 팔아 넘기며 살아 남고 또 감독으로 훌륭한 커리어를 이어 나갔지만 역사와 사람들의 기억까지 지우지는 못했습니다.</div> <div>그가 무고한 다른 사람들 처럼 누명을 쓰고 쫓겨났던 찰리 채플린이 1972년 공로상을 수상할때 모든 사람의 기립박수와 눈물로 환영을</div> <div>받았던거와는 참으로 비교되는 모습이었죠.</div> <div>카잔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워터프론트로 아카데미상을 석권 했을때 나를 밀고자로 조롱하던 놈들을 엿먹인 거라며 통쾌한 복수를 했다고</div> <div>자화자찬 했지만 카잔의 영화가 기억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동안 그가 행한 변절과 배신은 메카시즘 이라는 역사와 함께 두고두고 기억되게</div> <div>될 겁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width="620" height="680" style="border:;" alt="2.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1/1451750137o4fVJLmyZU.jpg"></div> <div><br>2. 존 포드 (1894년 2월1일~1973년 8월31일)</div> <div> </div> <div>카잔과 동시대를 살았던 감독이자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중 한명인 존 포드 입니다.</div> <div>카잔도 감독으로서는 위대한 인물이지만 존 포드는 머리 몇개 만큼은 위에 있는 가장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감독중 한명이죠.</div> <div>또한 그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유일무이하게 4번이나 수상한 감독이자 철저한 보수주의자이며 또한 가장 미국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이기도 했습니다.</div> <div>존포드 하면 서부 영화, 서부 영화 하면 존포드란 수식이 등차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서부극이야 말로 가장 미국적인 쟝르니까요</div> <div>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4번이나 수상한 아카데미 감독상 중에는 서부영화는 없습니다.</div> <div> </div> <div>서론은 여기까지 하고</div> <div>카잔과 동시대를 살았던 만큼 그 역시 맥카시즘의 광풍을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div> <div>당시 미국 영화감독협회의 회장은 조셉 맨키비츠 라는 인물이 맡고 있었는데 그 또한 공산주의자란 누명을 쓰고 있었습니다.</div> <div>그리고 그를 공산주의자라 몰아세운 이는 감독협회장 직을 탐내고 있던 십계의 감독 세실 B 드밀 이었습니다.</div> <div>당시 감독협회 회의가 열리고(년도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세실 B 드밀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앞세워 맨키비츨르 공산주의자로</div> <div>매도하며 맹공을 펼쳤고 장장 4시간 동안의 연설을 통해 모든 미국의 영화 감독들이 스스로가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고</div> <div>국가에 충성 맹세를 해야 한다고 몰아 부쳤습니다.</div> <div>메카시즘에 반대하는 목소리만 내도 당장 공산주의자로 몰려 인생이 끝장날수도 있던 시절(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해방부터~80년대)</div> <div>누구도 이 광기어린 연설에 마음속으로 불만을 가질 지언정 입으로 말을 꺼낼수 는 없었습니다.</div> <div>그리고 맨키비츠 패거리의 장광설이 끝나고 존 포드가 연단에 올라 연설을 합니다. 그는 평소에도 인터뷰 조차 잘 하지 않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div> <div>헐리웃에 어떻게 왔냐고 물으면 버스 타고 왔다고 답하고 영화에 대해 물으면 영화나 보라고 답하는 사람이었죠.</div> <div>하지만 그가 연단에 올라가 한 연설은 전혀 뜻밖의 내용이었습니다.</div> <div> </div> <div>"나는 존포드요. 웨스턴을 만듭니다. 미국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방에서 세실 B 드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div> <div>그리고 그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잠시 연설을 멈추고 드밀을 바라보고)그러나 나는 당신이 싫소. 당신이</div> <div>지지하는 것도 싫소. 오늘밤 당신이 여기서 말한 것도 싫소"</div> <div> </div> <div>자신이 누군인지 밝히고,가장 미국적인 웨스턴을 만든다고 당당히 밝힌뒤에 메카시즘의 광기에 휩쓸린 미국인들을 언급하고</div> <div>그 광기에 편승해서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던 드밀을 비난하고 나아가서 당시 누구도 감히 입밖에 꺼내기 조차 두려워 했던 메카시즘에 대한</div> <div>비판까지 직설적인 화법으로 꺼리낌 없이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존 포드의 이 발언 이후 당시 감독협회의 분위기는 급반전 되었습니다.</div> <div> </div> <div>존포드는 일생을 서부극에 바치며 그것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 했던 보수주의자 였습니다.</div> <div>가장 미국적인 감독 하면 언제나 첫번째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의 영화에 페르소나 였던 존웨인 역시 극렬한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존 포드는 보수주의자의 탈을 쓰고 남에게 누명을 씌우는 비열한 행태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 진짜 보수주의자 였습니다.</div> <div> </div> <div>사망한지 어느덧 40년이 지났지만 사후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div> <div>영화 역사상 그 수많은 명장들 천재들 사이에서도 존 포드는 언제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감독들의 감독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영화 감독이전에</div> <div>진실된 인간으로서 항상 기억되고 있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