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꼭 적어놓고 싶어서.... 쓰는 어머니 이야기.</p> <p> </p> <p> </p> <p>우리 어머니는 나를 낳기 전 70년대 아가씨 시절에,</p> <p>택시 탈 때 첫 손님이 안경쓴 여자면 재수없다고 욕을 내뱉던 시절에,</p> <p>안경을 쓰고, 운전을 했다.</p> <p> </p> <p>여자가 운전은 커녕, 택시도 재수없다며 마음대로 못 타던 시절에 어머니는 운전면허를 땄다. 그것도 2종도 아니고 1종 수동기어로 땄다.</p> <p>(외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이셨을지....궁금.. 아마도 여자여도 그런 걸 배운다는 것에 대해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으셨던 분이셨던 듯.)</p> <p> </p> <p>어머니는 수출업 회사의 에이스이셨다.</p> <p> </p> <p>회사 사장이 해외에 건너가 무역 계약을 따낼 때, 꼭 엄마를 데려갔다. 회사 사장님이 엄마를 신임하셨는지 500명이 넘는 회사 직원들 중에서 딱 엄마 한 명만 대동해 갔다.</p> <p> </p> <p>우리 어머니는 그 시절에도 해외를 가셨다. </p> <p> </p> <p>지금도 어머니는 종로로 어학원을 다니며,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는 동안에도 계속 영어회화를 꾸준히 하시더니, 지금은 중국어어학원을 다니고 계신다. 코딩까지 배우시니, 어머니는 정말 젊은 나보다 더 바쁘게 사신다.</p> <p> </p> <p> </p> <p>유능한 회사원인 엄마는 그렇다고 집안살림을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p> <p>아버지는 한번에 서너명의 여자를 몇 번 데이트 해 보면서, 돈 씀씀이와 말투, 행동가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갑자기 옷에 커피를 쏟았다며 급하게 손빨래를 부탁해서, </p> <p>가장 똑순이같이 빨래한 어머니와 본격적으로 만나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p> <p> </p> <p>어머니는 회사에서도 유능했지만, 집안일 솜씨도 깔끔했다.</p> <p> </p> <p> </p> <p>내가 결혼준비를 하던 20대 끝자락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났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p> <p> </p> <p> </p> <p>아버지께 이러한 에피소드를 듣기 전까지</p> <p>내가 엄마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p> <p> </p> <p>어머니가 결혼 전에 서울 중심 시청역 부근에서 회사를 다니고 계셨고, </p> <p>내가 5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께서 나에게 면도칼로 연필을 사각사각 깎아 마루에서 글을 가르쳐 주시던 것,</p> <p>4살 때 피아노를 들여놓은 뒤엔 피아노선생님 (그땐 이모라고 불러서, 정말로 내 이모인 줄 알았다.)이 집으로 와서 악보를 배우고,</p> <p>피아노를 칠 때에,</p> <p>검정색 잠자리 안경을 쓰는 우리 엄마처럼 나도 엄마랑 똑같은 안경을 쓰고, 엄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p> <p> </p> <p>그런데 어머니께서 그정도로 회사의 에이스이셨고, 수출계약을 따러 사장님이 나갈 때마다 어머니를 대동하고 나갔다는 것까지는</p> <p>아버지께 그때 듣고 알았다.</p> <p> </p> <p>여자여도 배울 수 있고 할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배우시고, 잘 해내셨다.</p> <p>지금 생각해보면 70년대에 그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p> <p> </p> <p>똑부러지게 검정 잠자리 안경을 끼고, 서울 시청역 중심 시내를 활보하며, 운전까지 하며, 그시절에도 해외에 가신 어머니는,</p> <p>약간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의해, 집안일을 잘 하고 결혼후 사회생활 금지라는 조건으로 나와 동생들을 낳았다.</p> <p> </p> <p>처녀시절의 엄마처럼 되고 싶었던 나는,</p> <p>어느날 어머니에게, "엄마는 결혼 안 했으면 어떨 것 같아?" 라고 물어봤다.</p> <p> </p> <p>"그럼 너랑 ㅇㅇ이,ㅁㅁ이도 못 보고 재미 없었을 것 같아."</p> <p> </p> <p>라는 어머니의 대답을 듣고 약간 예상외라고 생각했다.</p> <p> </p> <p>나는 어머니가 유능한 회사원으로 똑부러지게 지내다가, 결혼해서 그 모든 걸 다 접고 아버지를 만나 매일 스트레스 받으며 지내서,</p> <p>엄마가 나 아니었으면 더 행복했을 텐데, 내가 안 태어났더라면 엄마는 더 잘살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삼십대 초반 때에 생각했기 때문이다.</p> <p> </p> <p>예상 외로 엄마의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너희를 만나서 키우고 살면서 행복하고 지금도 재미있다고 말했다.</p> <p>어머니는 현재를 사시는 분이셨다.</p> <p> </p> <p>(그때 대답을 들을 땐 어머니의 말이 이해가 안 되었던 게, 나도 당시엔 삼십대 초반으로, 커리어가 더 먼저였던 시기였기에, 당연히 후회되고 아쉽고 서러울 거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현재를 사시는 분이셨다는 것을 지금 깨달았다.)</p> <p> </p> <p>어머니는 지금도 배우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배우시고, 익히시는 분이시다. 내가 이십대 후반 때 어머니는 특수운전면허, 중장비 면허도 따셨다. 지금은 성북동 근처에서 골프를 치신다. 관내에서는 주민참여예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공무원들과 소통하고 계신다. </p> <p> </p> <p>어릴 때, 운전면허증을 보여주던 엄마와, 잠자리 안경을 쓰고 나에게 언어를 가르치던 엄마의 모습,</p> <p>엄마의 책상이 따로 있었던 것, </p> <p>그 위에 꽂혀진 한자 섞인 수필집들, 엄마 책들을 보면서 지냈다.</p> <p>엄마는 날 옆에 두고 바느질을 해서 아버지의 양복 바지를 수선하고, 뜨거운 물을 끓여 빨래를 삶았지만,</p> <p>어머니의 책상 위에 보이는 어머니의 소지품들이 엄마의 처녀 적 시절들을 보여주는 듯 했다.</p> <p>먼지만 쌓여가는 그 책들과 엄마 책상 옆에 어느날 나란히 붙어 있게 된 내 피아노는,</p> <p>어머니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나에게로 넘어가는 듯 했다.</p> <p> </p> <p>피아노 커버를 주기적으로 바꾸고, 피아노 위에는 내 상장들이 쌓여가면서,</p> <p>이제는 딸들의 대학 졸업사진과 졸업장, 어머니의 임명장과 아버지와 함께 찍은 부부동반 여행 사진들이 하나둘씩 쌓여가고 있다.</p>
당신은 나의 찬란한 봄이다. 
You make me smile.
당신은 나를 웃게 합니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