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방학이라 집에 다녀왔어.</p><p><br></p><p>서울역을 가로지르는데 우리 처음 만난날이 생각났어. </p><p>그때도 여름이었고, 방학이었고, 너는 고향에 다녀오는 길이었지.</p><p>마중나가겠단 핑계로 처음으로 둘만 따로 만나는 약속을 잡은 날</p><p>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부터 서둘렀지만 결국 늦어버렸어. </p><p>떨려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나.</p><p>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애썼던 것 말고는.</p><p><br></p><p>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조금 더 가까워졌고, 사랑하는 사이가 됐어. </p><p><br></p><p>도시락 싸서 놀이 동산 간 날</p><p>강원도며 부산이며 여행 다녔던 기억</p><p>슬리퍼 끌고 심야 영화를 보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를 먹으면서</p><p>'우리 이러다 돼지 되겠다' 하고 웃었던 밤.</p><p>주고 받았던 선물들. 니가 처음으로 해줬던, 나를 펑펑 울게한 이벤트.</p><p>수줍은 애정 표현. 설레는 스킨십까지.</p><p><br></p><p>나는 많이 행복했던 것 같아. </p><p>니가 나를 좋아한다는게 하나의 망설임 없이 믿어져서 </p><p>나는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어. </p><p>날이 갈 수록 우리는 편해졌고, 자주 싸웠고, 다시 화해했지. </p><p><br></p><p>그 때 군대라는 놈이 왔어. </p><p><br></p><p>난 자신이 없었어. </p><p>너 이전 사람과 멀리 떨어진 것을 계기로 헤어졌으니까. </p><p>내가 너에게 믿음을 못줬던 건지</p><p>니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던 건지</p><p>우리는 조금씩 변해갔어.</p><p><br></p><p>그래서였을까.</p><p>그동안 숱한 싸움에도 난 불안하지 않았는데</p><p>날짜가 다가올 수록 점점 불안해지는거야. </p><p>그래서 널 다그쳤어. 널 믿을 수 있게 불안하지 않게 해달라고. </p><p>그리고 헤어졌지 너무 쉽게.</p><p><br></p><p>나는 그날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술을 마셨고</p><p>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멍 투성이에 입술까지 터져 있었어. </p><p>되돌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p><p>다른 사람이 된 듯 날 보는 널, 마주할 자신이 없었어. </p><p><br></p><p>그렇게 너는 군대엘 갔어. </p><p><p>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 편지란걸 쓸 수 있나봐. </p><p>나는 하루에 하나씩 20통의 편지를 너에게 보냈지만.</p><p>넌 한통도 답하지 않았어. </p><p>조용히 마지막 남은 마음도 정리했어. </p></p><p><br></p><p>두달도 채 되지 않아 너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단 소식이 들렸어. </p><p>나도 내맘대로 살기 시작했어.</p><p>소개팅도 하고, 클럽도 가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니고....</p><p>자유롭게 방황했어. 누구한테도 정착하지 않고. </p><p>홀가분하고, 쓸쓸하게.</p><p><br></p><p>그렇게 일년이 지나 다시 여름이다.</p><p>나는 덩치에 안맞게 순진한 얼굴을 한,</p><p>내가 너무 좋아서 마음이 벅찬다는 사람과</p><p>시작해보려해. </p><p><br></p><p>고마워.</p><p>스물 한살 여름부터, 스물 두살 여름까지</p><p>가장 젊고 예쁠때</p><p>곱씹어 되새길만한 추억 남겨줘서. </p><p>우리가 그렇게 예뻤구나 하는 추억. </p><p><br></p><p>고마워.</p><p>그래도 내 생일 잊지않고</p><p>늦게나마 축하해줘서. </p><p><br></p><p>난 아직도 군인을 보면 다시 한 번 봐.</p><p>이런 나와는 다른,</p><p>전화 한 통 없는 너를 매정하다 욕할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 글인데.</p><p>고맙다는 말만 나오네.</p><p><br></p><p>잘지내.</p><p><br></p><p>언젠가 다시 만나면</p><p>그 때에도 서로에게 예쁜 모습이길, 좋은 추억이길</p><p>바랄게. </p><p> </p><p><br></p><p><br></p><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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