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dfdf2님의 글(<a target="_blank" href="http://todayhumor.com/?readers_21940">http://todayhumor.com/?readers_21940</a>)을 보고 떠오른 이야기를 이제야 글로 옮겨봅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이것 봐."</div> <div><br></div> <div>세희가 왼쪽 가슴에 달린 훈장을 보여주며 말했다.</div> <div>그녀는 그 훈장이 정말 자랑스러운 듯, 새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활짝 웃었다.</div> <div>난 저 훈장이 어떤 건지 안다. 모두가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물건이다.</div> <div><br></div> <div>"이것 보라구!"</div> <div><br></div> <div>내가 뚱한 표정으로 훈장에서 시선을 흐트러트리자, 세희는 예쁜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내 어깨를 휙 잡아챘다.</div> <div>그리고는 다시 한 번 예쁘게 웃었다.</div> <div><br></div> <div>"45번지에 사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대. 이건 거기에 대한 메모로 받은 거야."</div> <div><br></div> <div>나는 그 할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의 장례식에도 참석했었다.</div> <div>그 할머니는 폐지를 모아서 겨우 입에다 풀칠을 했었다.</div> <div>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느 겨울 날,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던 고급 외제 승용차가 그 할머니의 자식들이 타고 온 것이라는 사실만이 할머니를 둘러싼 것 중 가장 특별한 일이었다.</div> <div>그 할머니는 마을 입구에 있는 슈퍼마켓 앞 평상에 앉아, 작은 야쿠르트 한 병과 단팥빵으로 끼니를 떼웠다.</div> <div>성한 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 할머니는, 손으로 빵을 찢어 입에 넣은 뒤, 야쿠르트에 적셔 넘기곤 했다.</div> <div>가끔 퇴근할 때마다 할머니와 마주치면, 묵묵히 목례라도 해주는 내가 고마운지 야쿠르트 한 병을 쥐어주곤 했다.</div> <div><br></div> <div>"이건 내가 처음 받은 훈장이야, 어때? 어울리는 것 같아?"</div> <div><br></div> <div>세희는 귀밑머리를 훑어 넘기며 짐짓 예쁜 척을 했다. 금색으로 도금된 플라스틱 쪼가리는, 세희의 아름다움 한가운데에서 거무죽죽하게 시들어 있었다.</div> <div><br></div> <div>그 훈장은 '남을 배려하는 사람'에게 주는 훈장이다.</div> <div>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훈장을 받는 법에 대해서 알지만, 그 훈장을 누가 주는지는 모른다.</div> <div>그건 우리 마을에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거기에 대해서 슬퍼하고 공감하면 주는 훈장이다.</div> <div><br></div> <div>아,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슬픔을 메모지에 담아 마을회관 앞의 게시판에 붙이면 주는 훈장이다.</div> <div><br></div> <div>언제부터 그 훈장이 마을 안에 퍼지게 되었는지 역시 아무도 모른다.</div> <div>다만, 나는 누가 맨 처음 그 훈장을 받았는지 알고 있다.</div> <div><br></div> <div>지금은 마을에서 제일가는 훈장 부자인 김씨 아저씨는 원래 성격이 좋고 입담도 센 편이라 인기가 많았다.</div> <div>그는 쉰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장 부지런히 마을 일에 앞장섰다.</div> <div><br></div> <div>수민이네 개인 뽀삐가, 태어난 지 열 다섯해를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을 때였다.</div> <div>김씨 아저씨는 아직은 어린 수민이에게 짤막한 편지를 써서 건넸다.</div> <div>친구나 형제와 마찬가지던 개를 잃은 아이에게 나름대로의 배려를 한 것이다.</div> <div><br></div> <div>며칠 뒤, 김씨 아저씨는 세희가 매달고 있는 것과 꼭 닮은 훈장을 달고 나타났다.</div> <div>모두가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게 뭐하는 물건이냐고.</div> <div>그는 아침에 일어나니 대문 바깥에 그 훈장이 매달려 있었다고 했다.</div> <div>처음에는 모두가 그 물건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div> <div><br></div> <div>이번에는 타지에 나가서 살던 최씨 할아버지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div> <div>몇몇 어른들은 최씨 아저씨를 모시고 아들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div> <div>거기에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은 저마다 조그마한 쪽지를 적어 최씨 할아버지의 우체통에 넣어두었다.</div> <div>아들을 잃은 사람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위로를 건네기는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div> <div>아들을 떠나보내고 돌아온 최씨 할아버지는, 우체통에 가득 든 쪽지를 읽으며 대성통곡했다.</div> <div>며칠 뒤, 쪽지를 쓰고 돌아온 몇몇 사람들의 대문에 금색 플라스틱 쪼가리가 붙어 있었다.</div> <div>김씨 아저씨는 두 개를 가지고 있었다.</div> <div><br></div> <div>윤씨 할머니의 손녀가 대학에서 떨어졌다.</div> <div>이번엔 마을 회관 앞에 숫제 커다란 게시판이 붙었다. 친절하게도, 거기에는 접착식 메모지와 볼펜도 갖춰져 있었다.</div> <div>김씨 아저씨의 훈장은 세 개가 되었다.</div> <div><br></div> <div>김씨 아저씨의 불룩한 아랫배까지 느러진 훈장은, 어림잡아 육십 개는 될 것이다.</div> <div>네번 째로 많이 가진 사람은 세희의 동생인 윤희였고, 다섯 번째로 많이 가진 사람과는 고작 두 개가 차이날 뿐이었다.</div> <div><br></div> <div>훈장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앞다투어 마을회관 앞 게시판을 찾았다.</div> <div>웃기는 건, 쪽지를 쓴 모든 사람에게 훈장이 배달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div> <div>사람들은 누가 어떤 내용으로 훈장을 받는지 매우 궁금해 했다. 그러나, 훈장이 배달된 다음 날엔 게시판을 가득 메우고 있던 접착식 메모지는 온데 간데 없이 치워져 있었다.</div> <div><br></div> <div>"또 딴 생각하지? 이것 좀 보라니까!"</div> <div><br></div> <div>이번에는 부드러운 소재의 플레어 스커트를 나부끼며, 제자리에서 팽- 돌았다.</div> <div>흩날리는 머릿결과 옅은 분홍의 치마는 매우 아름다웠다.</div> <div>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가슴께는 칙칙한 금색이었다.</div> <div><br></div> <div>나에게 야쿠르트를 건네주던 할머니의 장례식 날.</div> <div>그곳을 찾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 일곱 명뿐이었다.</div> <div>우리 모두가 훈장 따위를 달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도 '너는 왜 훈장이 없느냐?'고 묻지 않았다.</div> <div><br></div> <div>"자기는 그 할머니 돌아가신 다음에 어디 갔다온 거야? 안 보이던데."</div> <div>"야근. 너는?"</div> <div>"난 집에서 쪽지에 적을 내용을 연습했어. 열 번째 쪽지인데도 훈장을 못 받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더라구. 뭐, 이번에는 받았으니 아무 상관 없지만."</div> <div><br></div> <div>그녀는 자신이 쓸 말을 동생인 윤희가 훔쳐볼까 겁이 나 방문까지 잠궜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윤희가 훈장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못내 즐거워했다.</div> <div><br></div> <div>"그 계집애가, '언니는 감정이 메말랐어.'라고 얼마나 놀려댔나 몰라. 이것 보라지? 나도 이제는 훈장이 있다구."</div> <div>"그게 그렇게 좋아?"</div> <div>"좋지.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거잖아. 나만 없으면 바보가 된 것 같다고."</div> <div><br></div> <div>세희는 가슴팍에 달린 훈장을 만지작거렸다. 어렸을 적에 동네 공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놀던 시절 이후로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div> <div><br></div> <div>"다음에는 어떤 쪽지를 쓸까? 자기가 좀 생각해줄래? 자기 글 잘 쓰잖아."</div> <div><br></div> <div>세희의 얼굴은 매우 예쁜 축에 속했다. 풍성한 속눈썹을 나풀거리며 내 얼굴을 들여다 보는 세희의 얼굴을 본 순간,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먹었던 탕국이 되밀려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div> <div><br></div> <div>"난 글 못 써. 만약에 궁금하면 김씨 아저씨한테 물어봐. 훈장을 많이 가지고 있잖아? 뭔가 비법을 알고 있는 거겠지."</div> <div>"난 그 아저씨랑 안 친하잖아~ 진짜 못됐네. 좀 알려주지."</div> <div><br></div> <div>나는 자켓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건 두 달 전에 프레스 절단기에 팔이 잘린 내 친구놈이 피우던 것과 똑같은 것이다.</div> <div>내가 담패 피우는 것에 질색을 하는 세희는 코를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세희의 핸드백 안에서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흘러나왔다.</div> <div><br></div> <div>"응, 응. 언니 지금 밖인데? 아, 그래? 음, 그래 알았어. 이제 들어갈게."</div> <div><br></div> <div>코맹맹이 소리로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세희가 나를 돌아봤다.</div> <div><br></div> <div>"나 이제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이번엔 정률이네 언니가 인공수정에 실패했다네. 쪽지 다 쓰면 연락할게."</div> <div><br></div> <div>총총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세희의 스커트가, 칙칙한 금색으로 보였다.</div> <div>난 아직도 많이 남은 담배를 세희가 사라진 방향에다 집어던졌다.</div> <div><br></div>
서브컬쳐 창작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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