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당신은 무인도에서 5년 동안 살았다.</b></div> <div><b>평범한 하루에 대해서 설명해보라.</b></div> <div><br></div> <div><br></div> <div>수평선을 들쑤시며 솟아오르는 햇살이 얼기설기 엮어놓은 나뭇가지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div> <div>그중 일부가 침대역할을 하는 말라 비틀어진 풀줄기 더미에 도달할 때가 내가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때다.</div> <div><br></div> <div>벽과 마찬가지로 엉성하게 짜인 나무 문을, 아니 나무 뚜껑을 들어서 옆에 내려 놓으면(여닫이 문을 만들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열 댓 걸음 정도 거리 쯤 이어진 나무 터널 끝을 통해 백사장과 바다가 보인다.</div> <div><br></div> <div>그렇지만 맨 처음 해야 하는 일은 백사장으로 달려가 지나가는 배를 찾는 게 아니다.</div> <div>어제 저녁에 해가 지기 전 주워 놓은 고둥이나 조개들이 바구니에서 기어나와 가출을 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만 한다.</div> <div><br></div> <div>한 두 마리가 혀를 빼물고 죽어있긴 해도 도망친 놈은 없었다.</div> <div><br></div> <div>이제 이 놈들을 먹으려면 불을 지펴야 한다.</div> <div><br></div> <div>처음 여기에 도착했을 때는 인터넷이나 TV에서 본 것처럼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얻겠다고 무진 애를 썼다.</div> <div>결국 성공을 하긴 했지만, 배가 고파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 체력을 소모하며 불을 피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div> <div>그 다음부터 한 동안은 그냥 나무 열매나 따먹으러 다녔다.</div> <div>우연찮게 발견한 야자를 깨부수겠다고 돌덩이를 내려치다가 불씨가 튀는 걸 보고, 이걸 이용해 불을 피울 수 있겠다 싶었다.</div> <div>그리고 그렇게 손에 넣은 부싯돌은 아직까지도 불을 피우는 데에 요긴하게 쓰인다.</div> <div><br></div> <div>마른 잎사귀나 줄기, 아니면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는다.</div> <div>나뭇가지는 뾰족한 돌로 살살 긁어 지푸라기 같이 가늘게 만든다. 그래야 불이 잘 붙으니까.</div> <div>그것들을 한 주먹 정도 뭉쳐서 구덩이에 넣고 부싯돌을 부딪혀본다.</div> <div><br></div> <div>그러면 이내 불이 붙으며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div> <div>물론 부싯돌을 부딪혀 불씨를 튀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div> <div>그렇지만 초반에 나무를 문질러서 불을 피워보겠다고 죽을 고생을 한 것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고생이다.</div> <div><br></div> <div>불이 피워지면 그 주위에 조개와 고둥을 놓는다.</div> <div>철판 같은 것이 있으면 불 위에 올려놓고 가열했겠지만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 섬에 그 따위 것이 있을 리가 없다.</div> <div>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익혀 먹는 데에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div> <div>조개는 그렇다 쳐도 고둥은 땅을 조금 파내서 주둥이가 하늘을 바라보도록 놓아야 한다.</div> <div>그래야지만 따끈한 국물을 조금이라도 맛 볼 수 있다.</div> <div>아무런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은 씁쓸한 소금물이지만 고둥의 살맛이 나는 뜨거운 국물은 여기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다.</div> <div><br></div> <div>조개와 고둥 서너개로 아침을 해결한 뒤에야 바닷가에 나가본다.</div> <div>머리통 만한 돌들로 만들어 둔 SOS 신호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div> <div>이 글자를 마지막으로 건드렸던 때는... 적어도 최근은 아니다.</div> <div>멍청하게 돌 무더기와 바닷가를 바라다보고 있으면 살갗을 잡아뜯는 것 같은 햇살이 내리 쬔다. </div> <div><br></div> <div>어지간한 식사는 어패류나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열대 과일들로 해결할 수 있다.</div> <div>그렇지만 단백질... 단백질이라기 보다는 결이 있는 고기를 뜯기 위해서는 사냥을 해야만 한다.</div> <div><br></div> <div>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사냥이라는 행위는 아직도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다.</div> <div>어패류나 과일로 식사를 해결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기 전에는 알량한 현대인의 지식을 바탕으로 단백질을 확보하기 위해 되도 않는 짓거리들을 했다.</div> <div>겨우 정강이 정도되는 깊이의 땅을 파고 거기에 짐승이 빠지기를 기대했던 게 가장 처음에 했던 멍청한 짓이었다.</div> <div>그 다음은 조금 발전해서 나무로 바구니 같은 형태를 만들어 덫을 놓고 그 안에 새나 작은 동물이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div> <div>그렇지만 그런 방법을 써서 뭔가를 잡은 적은 없었다.</div> <div><br></div> <div>맨 처음 고기다운 고기를 먹었던 건 숲에서 사슴 비슷한 동물을 발견한 때였다.</div> <div>그 짐승은 어디를 다친 것인지 주저앉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내가 두어 발자국 거리까지 다가가자 그제서야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div> <div>그렇지만 녀석은 다시 땅바닥에 쓰러졌고,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한 매끈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div> <div>한 가지 재밌는 점은 내가 그 녀석의 눈동자를 봤을 때, 만화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생명의 신비함에 감탄하며 녀석의 목숨을 뺏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div> <div>나는 그저 고기를 먹고 싶은 조난자였고, 녀석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고기였을 뿐이다.</div> <div>결국 칼이 없어 돌덩이로 녀석의 머리통을 내리칠 때쯤이나 되서야 약간의 죄책감같은 것을 느꼈다.</div> <div>그렇지만 다시 은신처로 돌아와 불에 구운 뒷다리를 뜯어먹을 때 쯤에는 그런 감각은 사라지고 없었다.</div> <div><br></div> <div>보관에 실패해 나머지 부위들을 전부 버리고 난 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또 한 번 고기를 먹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소극적인 사냥을 벗어나기 위해 만든 것이 활이다.</div> <div>물론 이걸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div> <div>가장 어려운 것은 크게 휘어지고 쉽게 부러지지 않는 나무를 찾는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나무나 식물들이 가득한 숲 속에서 이런 나무를 찾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div> <div>어떤 나무는 만지기만 해도 닿은 부위가 미칠 듯이 가려웠고 어떤 놈은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른 면에서 흘러나온 진액이 너무 끈적거렸다.</div> <div>적당한 나무를 찾은 뒤에는 활줄이 말썽이었다. 끊어지지 않는 활줄을 만드는 것은 적당한 나무를 찾는 것보다 어려웠다.</div> <div>그리고 그 다음은 화살, 활쏘는 방법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있었다.</div> <div>활을 만들 때와 은신처를 만들었을 때가 이 섬에 도착한 후 가장 해가 짧았던 순간들이었다.</div> <div>아침에 일어나서 대강 허기를 해결한 후에는 모든 시간을 그것들을 만드는 데에 쏟아 부었다.</div> <div><br></div> <div>그 결과 이제는 제법 그럴싸한 성능을 가진 활과 화살을 가질 수 있게 됐다.</div> <div>아직 진짜 활 처럼 화살에 깃을 달지는 못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면 충분히 화살을 날려 보낼 수 있다.</div> <div>지난 번에는 제법 큰 새를 잡아서 가슴살을 구워 먹었다.</div> <div><br></div> <div>물을 마시고 사냥감을 물색할 겸 숲 깊은 곳에 있는 냇가로 향했다.</div> <div>아직 수원지까지 가본 적은 없다. 숲이 생각보다 넓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기껏해야 손등이 겨우 잠길만한 깊이의 얕은 개울이지만 물은 시원하고 깨끗하다.</div> <div>물을 마실 때마다 느끼는 건 물을 받아 저장해 놓을 물건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div> <div><br></div> <div>지난 번에 물을 마시러 왔을 때 커다란 쥐처럼 생긴 짐승을 본 적이 있다. 화살을 줄에 거는 동안 도망쳐버리긴 했지만 뒤뚱대는 엉덩이를 보면 제법 먹을 만한 살이 붙어있을 것 같았다. 털도 제법 가지런하게 자라 있으니 가죽을 벗겨 이불이나 옷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오늘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아마 언젠가는 잡을 날이 있을 것이다.</div> <div><br></div> <div>물을 마시고 난 후에 숲 속을 좀 돌아다녔다. 이것저것 작은 짐승들을 보긴 했지만, 조잡한 활로 쏘아 맞추기엔 다들 너무 작거나 빨랐다.</div> <div>결국 고기를 얻으려던 것은 포기하고 다시 은신처로 돌아가기로 했다.</div> <div><br></div> <div>활과 화살을 은신처에 두고 신호용 돌 무더기가 있는 곳에 다시 오니 해가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지금이 정확하게 점심을 먹을 시간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배가 고팠다.</div> <div><br></div> <div>내가 이 섬에서 못 하는 것, 아니 사지육신이 멀쩡한 사람으로서 하지 못하는 일이 딱 하나 있다.</div> <div>바로 수영이다. 수영을 배워본 적도 없거니와 물 속에서 눈을 뜰 수조차 없다. 당연히 물고기는 그림의 떡이다.</div> <div>그렇지만 아주 운이 좋게도, 이 섬에는 나같은 맥주병도 물고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다.</div> <div>신호용 돌 무더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백사장을 따라 걸으면 듬성듬성 바위가 드러난 곳이 나온다.</div> <div>이 바위들 사이의 움푹 파인 곳에는 제법 물고기들이 노닌다. 밀물 때는 바닷물에 푹 잠겼다가, 썰물이 되면 바닷물과 분리된 웅덩이가 남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차마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갇혀있을 때가 있다.</div> <div>그리 자주 오는 기회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하루에 한 번은 와봐야 한다. 그래야 뭐라도 건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div> <div>생긴 것이 험악한 놈들은 제쳐두고 물고기답게 생긴 놈들만 골라서 백사장 쪽으로 던졌다. 어차피 바구니같은 게 없어서 살아있는 걸 담아 갈 수는 없다. 백사장 위에서 숨통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품에 안고 돌아가야 한다.</div> <div>생선을 내려놔도 가슴팍에서 비린내가 올라온다. 이참에 나뭇잎이라도 엮어다가 바구니를 만들어볼까 싶다.</div> <div><br></div> <div>생선을 가지고 은신처로 돌아온 뒤에는 역시 불을 피운다. 가끔은 운 좋게 타다 남은 불씨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div> <div>그렇게 생선을 구워 또 한 끼를 해결한다. 넉넉한 양은 아니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렸더라면 한 마리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한다. 생선으로 배가 안 차면 그냥 흔하디 흔한 과일(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먹고 탈이 난 적은 없다.)을 따다가 부족함을 채우면 된다.</div> <div><br></div> <div>점심을 먹어도 해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div> <div>이 섬은 오전보다 오후가 길기 때문에 뭔가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거나 은신처를 수리하는 건 그때 한다.</div> <div>오늘은 삭아서 끊어진 은신처의 나무줄기 하나를 다른 것으로 교체했다.</div> <div>어차피 우기에 동굴로 옮겨갔다 온 뒤에는 새로 만들어야 하지만, 지내는 동안은 가급적 그때그때 손을 보는 게 좋다.</div> <div>그렇지 않으면 지난 번처럼 한밤 중에 내려앉을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밤에 까칠까칠한 나뭇잎으로 엮은 지붕에 깔리는 것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div> <div><br></div> <div>은신처를 조금 수리하고도 시간이 남는다.</div> <div>처음에는 부지런히 부산을 떨어야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남는다.</div> <div>먹을 거야 먹고 싶을 때 가서 주워 오거나 따오면 된다. 생선이나 고기는 몰라도 과일은 항상 지천에 널려있다.</div> <div>조금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우기를 대비해 동굴에 식량을 저장해야 할 때 뿐이다.</div> <div>활도 화살도 아직은 멀쩡하다. 며칠 전부터 돌도끼를 하나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다음 날로 미뤄버렸다.</div> <div>당장 돌도끼를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언제 구조될지도 모르고, 딱히 지금까지 돌도끼가 없어서 불편했던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div> <div>그냥 은신처 앞 공터에 깔아둔 부드러운 덤불 위에 몸을 던지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린다.</div> <div>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선명한 노랑에서 차츰 붉은 색으로 바뀌어 간다.</div> <div><br></div> <div>그걸 바라보면서 하는 생각은 매번 똑같다.</div> <div>과연 돌아갈 수는 있을까, 돌아간다면 제대로 살아갈 수는 있을까,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div> <div>차라리 바쁘기라도 하면 잡생각 할 일이 없을 텐데, 이놈의 섬은 의외로 너무 살기 좋은 나머지 이렇게 남는 시간을 제공한다.</div> <div><br></div> <div>하늘이 보랏빛으로 변해간다.</div> <div>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간다는 뜻이다.</div> <div>정말 지겨울 정도로, 뭔가 먹어야 하는 시간은 꼬박꼬박 돌아온다.</div> <div>아침에는 조개, 점심에는 생선을 먹었으니 저녁은 그냥 과일로 떼우기로 한다.</div> <div>어제 따다가 은신처 안에 던져놓은 걸로 또 한 끼를 해결한다. 버르장머리 없다고 누가 뭐라할 사람도 없으니 소파 역할을 하는 덤불에 누워서 천천히 먹는다. 불 피우는 수고를 덜어서 정말 편하다.</div> <div><br></div> <div>하늘이 완전히 깜깜해지기 전에 불을 피워 놓아야 한다.</div> <div>맹수한테 습격받은 적은 없지만 단 한 번도 불을 피우지 않고 잔 적은 없다.</div> <div>은신처의 엉성한 벽 사이로 새어드는 붉은 빛이 자장가 역할을 한다. 거의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이 곳의 생활에 적응했지만, 모닥불의 불빛을 보고 안도할 때마다 새삼 나 자신이 문명사회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div> <div>그리고 그 순간이 하루 중에 가장 간절하게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느끼는 때다.</div> <div><br></div> <div>모닥불에 나무토막 몇 개를 던져넣고 은신처로 들어와 문(뚜껑)을 닫는다.</div> <div>모닥불의 빛이 새어들어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마른 풀줄기 더미에 몸을 뉘인다.</div> <div>특별한 일이 없어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매우 피곤한 일이다.</div> <div>언제나 그랬듯, 수마는 삽시간에 달려든다.</div> <div><br></div> <div>희미한 모닥불 빛에 고향마을 번화가의 모습을 겹치며, 잠이 든다.</div>
<img src="http://i.imgur.com/5RMBTQU.jpg" title="Hosted by imgur.com" alt="5RMBTQU.jpg"><br><br>하... 아이마스도 안 본 놈들이 아이돌을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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