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게에도 올리고 유자게에도 올리고...
이하 존칭 생략
본인은 도배로 먹고 사는 남징어임.
부모님 두 분하고 같이 일함.
불러주면 어디든 감.
어제는 플라스틱 공장에 딸린 2층 짜리 사택을 도배하러 갔음.
견적보러 갈 때 짐이 많은 걸 확인하고 모든 걸 포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마음은 편했음.
사실 일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음.
오전 중에 여유있게 2층을 마무리하고 1층으로 내려와서 작업을 하고 있었음.
이 공장은 환갑이 조금 넘으신 것 같은 노부부께서 함께 운영하고 계셨음.
(나중에 안 거지만 가족들이 함께 공장을 운영하신다고 함.)
1.
사모님도 성격이 매우 좋으셔서 밥도 시켜주시고 야쿠르트도 주시고 메로나도 주심.
한 세 시쯤, 메로나를 먹으면서 쉬고 있는데 귀여운 폭격기가 찾아왔음.
노부부께서 봐주시는 손주인데 딱 얘랑 닮았음.
요 꼬맹이가 뜯어낸 벽지와 새 벽지가 공존하는 혼돈의 카오스로 들어왔음.
안에 짐도 많고 지저분하니까 신발 벗고 올라오지는 않고 뒷짐을 진 채 안을 둘러봄.
근데 눈이 ㅋㅋㅋㅋㅋ
티 안 나게 나를 관찰하느라 오른쪽으로 몰려 있었음.
한 번 쓱 둘러본 꼬맹이가 이렇게 물음.
"여긴 왜 이래여?"
원래 나는 애기들 별로 안 좋아함.
그래서 결혼할 생각도 없고 애 낳을 생각도 없음(자의로.)
근데 요 꼬맹이가 말을 너무 또박또박 하는 거임.
그래서 '도배해서 집을 깨끗하게 만드는 거야~'라고 대답해 줌.
근데 요 꼬맹이 입가에 뭔가 잔뜩 묻어 있었음.
볼따구에 묻은 갈색 얼룩은 점심 때 먹은 짜장면인 거 같았는데, 그거 말고도 입가에 양 옆으로 녹아내린 메로나가 흘러서 굳어 있었음 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꼬맹이 입을 가리키면서 '어우, 야. 너 입에 뭐 묻었다. 어떻게 해?' 그랬더니 갑자기 뒤로 돌아서 뛰쳐 나감.
탓탓탓하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감.
애기들이야 뭐 갑자기 딴데로 갈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냥 그런갑다 하고 메로나를 마저 먹음.
탓탓탓하는 소리가 다시 가까워짐.
다시 나타난 꼬맹이가 자랑스럽게 얼굴을 내밀면서
"이제 됐어요?" 라고 말함.
근데 메로나 자국이 한 쪽만 지워짐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한쪽 남았는데?"라고 하니까 또 뛰쳐나감 ㅋㅋㅋㅋㅋㅋㅋ
나도 꼬맹이를 따라서 건물 밖으로 나감.
문 앞에 서서 바람을 잠깐 쐬고 있는데 꼬맹이가 다시 뛰어 옴.
이번엔 나머지 메로나 자국도 지워졌음 ㅋㅋㅋㅋㅋㅋ
이제는 어떠냐고 물어보면서 씨익 웃길래 이제 다 지워졌다고 해줬음.
(근데 짜장면 자국은 고대로인 게 함정.)
난 이 시점부터 실실 올라오는 아빠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음.
2.
나는 그제서야 꼬맹이한테 몇살이냐고 물어봄.
꼬맹이가 손가락 네 개를 보여주면서
"네 쟐" 이러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손가락이 잘 컨트롤이 안 되니까 펼치지를 못하고 네 손가락이 가지런히 모아져 있음 ㅋㅋㅋㅋ
"근데 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 해~?" 이렇게 물어보고 있는데 거기서 키우는 개냥이가 옴.
얘하고는 도착하자마자 안면을 터놔서 아침에 머리도 만지게 해줬음.
그늘에서 쉬고 계시던 우리 부모님이 '나비야~'하고 부르니까 꼬맹이가 '얘는 나비가 아니고 야옹이야.' 이럼ㅋㅋㅋㅋㅋ
고양이가 와서 내 손등에 머리를 부비니까 요 꼬맹이가 갑자기 꼬리를 확 잡으려고 함.
내가 깜짝 놀라서 '안돼! 그러면 얘가 너 물어, 할켜!' 그랬더니 손을 멈칫함.
내가 손가락으로 등이랑 목덜미를 간지럽히듯 쓰다듬는 걸 보더니 이렇게 물어봄.
"등은 괜찮아요?"
등은 괜찮다니까 내가 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만 살살 만짐.
근데 역시 손가락 컨트롤이 잘 안 되니까 나처럼 부드럽게 만지지는 못함 ㅋㅋㅋㅋㅋ
귀도 괜찮냐길래 살살 만지면 괜찮다고 얘기함.
고양이도 도망치거나 대들지 않고 꼬맹이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음.
그렇게 몇 분 동안 둘이 같이 고양이를 쓰다듬어 줌.
손길에 만족한 개냥이가 스르륵 사라지니까 꼬맹이가 나한테 이렇게 말함.
"쟤는 야옹인데 저기 가면 강아지도 있어요. 강아지 보러 가면 안 되요?"
근데 나는 메로나도 다 먹고 이제 일을 하러 가야 했음.
"안돼~ 아저씨 이제 가서 일 해야돼~"라고 했더니 손가락 하나를 펴 내밀면서
"한 번만~"
이러면서 웃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살면서 ㅋㅋㅋㅋㅋㅋㅋ 와 진짜 이런 게 심쿵이구나 ㅋㅋㅋㅋㅋㅋ
평소에 귀여운 동물 좋아해서 페북이나 트위터에서 고양이 사진 찾아보는 게 낙이었던 나는
인간의 유아도 이렇게 귀여울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됨.
내가 "그래도 안 돼... 강아지 보러 가면 일 언제 해?"라고 말했더니 부모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면서
한 번만 같이 가달라는데 가주라고 하심.
그래서 나는 강아지를 보러 감.
이미 광대는 승천하기 일보 직전이었음.
3.
강아지를 보러 갔음.
사실 얘도 아까 보러 왔었음.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종인데 사람만 보면 좋아서 막 들고 뜀.
앞에 가서 쓰다듬어 주려고 하니까 좋아서 난리 부르스를 추면서 내 손을 잘근잘근 깨뭄.
"우와! 야 얘 문다, 물어! 어떻게 하지?"라고 했더니
"그건 무는 게 아니고 좋아서 그러는 거야."라고 대답함 ㅋㅋㅋㅋㅋㅋㅋ
주체 못하는 강아지를 어찌저찌 쓰다듬고 있는데 꼬맹이가 옆에서 부연 설명을 함.
"얘 이름은 진돌이고, 야옹이가 아니고 강아지야."
두 손가락으로 제법 큰 타원을 그리면서
"저기 가면 진돌이 엄마랑 아빠도 있는데~ 발도 이만큼 크고~"
손을 자기 머리 꼭대기에 대고 키재는 시늉을 하면서
"엄마 아빠라서 키도 이만큼 커~"
나는 꼬맹이가 얘기하는 것마다 맞장구를 쳐줬음.
강아지가 내 손에 어느 정도 침을 바르고 나서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한다고 말했음.
나한테 강아지를 소개해 준 게 만족스러웠는지, 이제는 가서 일을 해도 좋다고 허락해 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맹이는 노부부가 계신 2층으로 올라가고, 나는 다시 1층으로 들어가서 작업을 마무리하기 시작했음.
4.
근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입가에서 웃음이 가시질 않음.
천정 바르면서 미친놈처럼 혼자 실실 웃으면서 "한 번만~ 한 번만~" 이러고 있으니까
방 안에서 작업하시던 어머니께서 내 상태를 살짝 확인하시더니 아버지께 이러심.
"저놈 저거 장가가야겠는데..."
어쨌든 그 뒤로 한 두어 시간 동안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음.
집에 오면서도 계속 실실 거려서 어머니께서 매우 심각한 눈으로 보기까지 하셨음.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가끔씩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매우 어려움 ㅋㅋㅋㅋㅋ
어... 어떻게 마무리 하지...
하여튼 너무너무 귀여운 꼬맹이를 만나서 정말 행복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