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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20112
    작성자 : 다뎀벼
    추천 : 14
    조회수 : 714
    IP : 219.95.***.119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06/03/05 18:38:31
    http://todayhumor.com/?lovestory_20112 모바일
    [다뎀벼] R손 선생님.....
    부산 중앙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그 학교 운동장 밑으로 도시고속도로가 뚫려있지요.
    제가 학교를 다닐때, 열심히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며 공사를 했었는데,,

    중학교를 다닐때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
    그럭저럭 똑똑하다는 소리도 듣고 말이지요.
    그리고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첫 시험을 쳤는데,
    영어와 수학 문제에서 조금 충격을 먹었었습니다. 그리고 점수..
    오~ 놀라워라.. 전교등수가 150등이더군요.
    저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갔습니다. 얼마나 아찔하던지..

    그때의 영어선생님 중에 R손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계셨습니다.
    정년이 지났다는 怪소문까지 가지신 분이셨는데,
    하여튼 겉으로 보아도 엄청나게 나이가 많이 드신 분 이었습니다.

    그분이 내신 시험문제가 머였느냐구요?
    많이 황당했습니다. 사실..
    그당시, 배웠던 영어교과서의 일부분을 통째로 옮겨적으시고,
    중간 중간에 괄호를 해놓았더군요. 그게 문제였어요.

    그리고, 통상 괄호안의 문제로 나오는 전치사나, 숙어 같은것이 아니고,
    고유명사.. 특히 사람이름이나 건물이름 뭐 이런것들이 문제로
    나왔더군요. 문제지를 받아들고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그나마 썼던 단어들도
    스펠이 틀렸거나, 중간에 점(.)이 빠져 틀렸다는 채점결과를 받아들고
    친구들과 얼굴 마주보며 어이없어 했던 기억이 덤으로 납니다.

    왜 R손이냐고요?
    우리도 잘 모릅니다.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더군요.
    영어선생님이 3분이 계셨는데, 그분 시간표에는
    R손 <-- 이렇게 항상 적혀있었으니까요.

    숱없는 머리에 언뜻보면 데니스호퍼를 닮으셨는데,
    칠판에 글을 쓰시면 약하게 조금씩 떨면서 글자를 쓰시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연세가 있으시고, 목소리도 작으셨기 때문에, 친구들은 그 선생님 앞에서
    대놓고 떠들면서, 그나마 얌전한 친구들은 엎어져서 자곤했죠.

    언젠가 워낙 소란스러운 것이 이상하시던지, 지나가던 교감선생님이 문을
    벌컥열고 들어오셨는데, 우리보다도 더 크게 눈을 뜨시면서,
    깜짝 놀라하시던 R손 선생님의 얼굴이 문득 떠오르는군요.

    참으로 우리는 나쁘고 영악한 고등학생 들이었습니다.
    몽둥이를 휘두르며 강압적인 선생님 밑에서는 벌레처럼 찌그러져 있다가,
    나이 드시고 약한 선생님 밑에서는 온갖 장난과 버릇없는 행동을
    일삼았으니 말이죠. 약한 사람에게 강하고, 강한사람에겐 한없이 약한
    전형적인 비겁자의 모습은 아직도 가슴속에 미안함으로 남아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입학했습니다.
    고등학교때의 추억은 깡그리 잊고, 미팅과 술마시기에 열중했던 대학시절,
    대학교에서의 영어시험 문제를 받아들고서, 다시 한번 놀랬었습니다.
    R손의 문제가 또다시 나오더군요. 그렇더군요.
    대학교의 영어시험 문제는 주로 그런 식이었습니다.

    괄호 끼워넣기 문제에, 고유명사들과 동사들을 집어넣는 문제 말이죠.
    우리는 우리가 우습게 생각했던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
    전직 대학 교수였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그리고 비로소 알았죠.

    대학 졸업 무렵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분이 배출해낸 수많은 대학교수들과 고급 엔지니어들이 그분의 장례를
    지켰다는 말을, 시끄러운 맥주집에서 친구놈에게 들었습니다.

    인생은 이런겁니다. 조그마한 나무를 보면서 그 나무의 일부분을 보면서,
    우리가 마치 그 나무의 생사여탈을 쥔 주인 마냥 으시대며 까불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무에게 멀어져 보면, 그 나무를 둘러싼 숲과 그 숲에
    묻어사는 무수한 동물과, 거기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자신을 보게됩니다.

    그 거대한 나무였던, 아니 숲이었던 R손 선생님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짖고 까불고 했던 우리는 몇마리 원숭이들이었습니다.
    그 분의 앞에서는 말이죠. 부끄럽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아직은 젊은, 아니 어린 우리 학생들이 있다면,
    오늘 늦기전에 지금의 선생님을 유심히 보십시오.
    자세히 지켜 보십시오.
    얼마나 큰 나무며 숲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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