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두.두.두.두.두.두.... 

"제길! 퇴각하라!" 

임명식 장군이 명령하는 소리가 대형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붉은 물결은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붉은 물결은 모든 것을 덮어갔다. 63빌딩 밑으로 붉은 물결이 흘러들었다. 녀석들은 잔혹하게도 밑에서 부터 쓰러트려 갔다. 지진이 일어나도 끄떡없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건물 63빌딩이 쓰러지고 있었다. 

기이이이이잉. 

63빌딩은 육중한 무게를 억지로 지탱해내며 거대한 마찰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63빌딩의 모습은 피사의 사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녀석들은 역시 한쪽만을 노리면서 무너뜨리고 있었다. 피사의 사탑 모양을 한 63빌딩이 10초 정도 버티다가 결국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궁. 쿠구구궁. 쿵쿵. 쾅. 

엄청난 소음이 전해졌고 2km 정도 떨어져 있는 우리의 부대까지 그 진동이 전해지고 있었다. 땅이 흔들렸고 하늘은 엄청난 먼지를 들어마시고 있었다. 

"젠장! 1년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잖아! 저녀석들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내 옆에서 같이 망원경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던 김상병이 성질을 냈다. 붉은 물결은 63빌딩을 무너뜨리고 나서 다시 우리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더 이상 서울에서는 버틸수가 없었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야 한다. 다시 임장군의 명령이 거대 스피커로 모든 병력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제 1진에 위치한 장갑차 전원 철수한다! 2진에 위치한 탱크 역시 철수한다! 헬기 여섯 대는 지금 즉시 상륙한다. 나머지 보병들도 퇴각한다!" 

난 얼른 운전대를 잡고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이미 3개월째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겪어봤다. 백밀러를 힐끗 바라보니 탱크들도 후퇴하고 있었다. 이젠 방법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며칠을 더 살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것이 할수 있는 전부 일지도 몰랐다. 




3개월 후... 

이제 제주도 만이 전부였다. 운좋게 헬기를 잡아 탄것이 나에겐 행운이었다. 그나마 며칠을 더 살 수 있는.. 
이제 우린 물러설 곳도 없다. 백록담을 둘러싸고 포진해 있는 우리의 진형으로는 이제 길어야 3일정도 짧으면 몇 분 안으로 끝이 날 수 있는 것이다. 녀석들은 갈수록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가 대구에 있을 때 이미 서양에선 녀석들의 무리가 워싱턴을 장악해버렸다는 소리를 접수했다. 이제 대한 민국은 사라졌다. 그 대신 놈들은 < 붉은 제국 > 이라는 국호를 내세웠다. 
우리가 부산까지 퇴각했을 때 우리의 병력은 이미 5천명을 채우기 힘든 상태였다. 녀석들은 거기서 최초로 화생방을 써먹었다. 덕분에 우린 지금 백록담에서 1천 명의 병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저.. 이병장님.." 

김일병이 불렀다. 난 집중하고 있던 시선을 다소 풀어놓으며 김일병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왜 그런가?" 

"저. 사랑하는 사람 있었습니까?" 

느닷없이 김일병이 사랑타령을 한다. 선뜻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이미 이 세상의 그녀가 아니었을 것이다. 보고싶다. 하지만 이젠 볼 수 없는 먼곳에서 기다릴것이다. 아니, 곧 다시 볼 수 있는 곳에서.... 

"전 있었습니다... 근데 이제 곧 만날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기쁩니다." 

녀석은 글썽이는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시커먼 분장 칠을 한 김일병이 웃는 모습은 내겐 너무나 안쓰럽게 보였다. 그래.. 곧 만날수 있겠지... 

"저... 이병장님..." 

"말해." 

"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난 아무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많이 떨고 있었다. 애처롭게... 

"그래. 그렇게 불러라. 이제 형 동생처럼 말하자." 

"고, 고마워요. 형.." 

결국 김일병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검은 칠이 지워지면서 손등을 시커멓게 물들였다. 그때였다. 

"전원! 전투 준비!" 

이젠 대형 스피커도 없이 오로지 육성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백록담을 둘러싼 1천명의 무리에게 전해졌다. 난 망원경으로 재빨리 전방을 살폈다. 붉은 물결... 그것들은 무서운 기세로 몰려들고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 살려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는 듯이. 

"경, 경수형!" 

아직 형이란 말이 익숙하지 않은 김일병이 더듬거리며 날 불렀다. 그는 심하게 팔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날 불렀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계급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가 고맙게 느껴졌다. 내 이름을 알고 있었구나... 언제나 병장님으로만 기억될줄 알았는데... 그래도 난 누군가에게 경수형으로 기억되는구나... 

붉은 물결은 계속해서 밀려왔다. 1진이 무너졌다. 휩쓸듯이 그들을 뚫고 올라왔다. 젠장. 자꾸 눈물이 흐른다. 불과 1년전만 해도. 1년전만 해도... 

슈웅 쾅. 투탕. 타타타타타타타타. 두두두두두두두. 타탕. 탕.탕. 

소용 없는 짓. 왜 이 짓을 하는거지? 내 뺨을 타고 검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을 것이었다. 500....30....100....10....5m!! 

탕탕탕탕탕! 

억울하다. 억울해.... 이까짓 개미 새끼들한테... 

녀석들은 이제 내 발밑까지 왔다. 

"으헉! 혀, 형. 혀엉!" 

나보다 몇발자국 앞서 있던 김일병이 외치는 입 속으로 녀석들은 꾸역 꾸역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카악! 퇴악!" 

쉴새 없이 뱉어 내었지만 녀석들은 끊이지 않았다. 녀석들은 이제 김일병의 눈으로 파고 들었고 귀까지 파고 들었다. 김일병이 천천히 팔을 들어올렸다. 쓰러지기 직전. 그가 눈물을 흘리면서 쓰러지는 찰나, 난 그의 손을 잡았다. 굳은듯이 서 있었다. 이제 놈들은 내 목까지 기어올라왔다. 턱. 입... 코, 귀. 눈... 파고 들어가는구나.. 난 꿎꿎하게 서서 김일병의 손을 잡은체로 녀석들을 받아들였다. 머리통을 갉아 먹는 듯한 통증이 밀려들고 이제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이미 발가락은 살점이 남아 있지 않고 뼈를 훤히 들어내고 있었다. 군화가 찢어져 없어진지 오래였다. 죽어간다... 이젠 모든 것이 끝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거라곤.... 







4년 전. 1998년. 

3류 과학자 정박사는 지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세상 그 누구도 그를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박사학위를 받고도 쓸데 없는 연구에만 몰중하는 머리만 좋은 박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며칠 전 여왕개미 하나를 실험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3일이 지난 그는 지금 매우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삑- 
단추를 누르는 소리 실험대 위에서는 파직 하는 소리를 내며 빛이 파장을 일으켰다. 

"이크!" 

예상외로 강한 파장에 그가 놀라 뒤로 주춤 거렸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는 다시 실험대를 살폈다. 

"어? 없다? 어디갔지?" 

한창 아이큐를 높여주는 기술을 발명하던 그가 재미삼아 개미에게 시도 해 본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정박사의 눈에는 그 실험용 여왕개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벽 구석으로 떨어져 버린 여왕개미가 어렵게 어렵게 벽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윗층에선 정박사의 꼬마 아들과 옆집 아들 녀석이 놀고 있었다. 

"있지,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개미가 아이큐 80만 되면 지구의 주인은 개미가 될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