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멍청하고 마음이 꼬였고 못된 일베야</P> <P>니들이 5.18을 걸고 넘어질 때마다 재탕삼탕 아주 우려내주겠습니다.</P> <P> </P> <P> </P> <P>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5030</P> <P><BR></P> <P>그는 또한 “광주 학생 운동이 북파공작원에 의해 일어나거나 노동자들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광주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덧붙이고, 본인이 그 당시 현장에서 구호를 들어보니 김대중 지지 구호는 거의 없었다며 그 당시 가장 많이 불리우고 큰 박수를 받았던 구호가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것이었다면서 “광주 운동은 반공민주화 운동이었다”고 말했다.</P> <P> </P> <P> </P> <P> </P> <P>- 조갑제옹도 좌빨이라고 하지 그래 낄낄낄</P> <P>조갑제옹의 이야기도 이해못할 말들이 있지만 근본적인 것으로는 광주를 깔 수 없다.</P> <P>그리고 팩트거리지마 조갑제옹은 직접 갔다왔으니까 ㅋㅋㅋㅋㅋㅋ</P> <P> </P> <P> </P> <P> </P> <P> </P> <P> </P> <P>광주시민 전체가 들고 일어난 것은 공수부대원들의 과격한 진압에 대한 거의 동물적인 분노 때문이었다. 『어찌 인간이 이럴 수가』하는 분노가 정의감으로 승화된 것이다.<BR>신군부에 의한 金大中씨의 연행도 한 촉발요인이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金大中 석방』을 요구하는 구호는 다른 구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리가 낮았다(최근 검찰조사에서도 金大中씨가 광주사태를 조종했다는 說은 부정되었다).<BR><BR>『全斗煥 타도!』란 구호 뒤에는 『金日成은 오판 말라!』는 구호가 따랐다. 시민들이 간첩으로 의심가는 시위자를 붙들어 계엄당국에 넘겨 주기도 했다. 광주사태의 기본이념은 反共·민주화였다.<BR>이른바 「시민군」은 軍紀를 비교적 엄정히 잡아 시민들에 대한 피해는 최소화되었다.<BR>20사단의 광주 재진입작전은 희생자를 최소화한, 효율적인 것이었다.<BR><BR>기자는 5월27일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탈환된 직후, 구경나온 시민들 중에서 경상도 말을 하는 청년을 한 사람 알게 되었다. 그는 전남도청 2기동대 소속 전투경찰관(상경)인 南모씨였다. 경북대학교 정외과 2학년에 다니다가 입대했다고 했다. 그는 5월21일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시위대가 몰려오자 사복으로 갈아입고 달아났다. 다행이 고마운 아저씨 집에 숨어들어 7일간 지냈다는 것이었다. 南상경을 따라 그 집을 찾아갔다. 부동산업을 한다는 50代 초반의 광주 아저씨는 아내와 함께 기자를 맞아들이더니 푸짐한 점심대접을 해주면서 『제발 지역감정 치원에서 이 사태를 보지 말라』고 부탁했다.<BR><BR>南상경도 『공수부대원들이 몽땅 경상도 군인들이란 얘기도 틀렸고, 광주시민이 경상도가 밉다고 일어났다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고 역설하면서 과잉진압의 목격담을 들려주었다. 기자는 광주사태를 취재하고 부산에 돌아와 광주시민들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하고 돌아다녔다.<BR><BR>-조갑제<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