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괴한이 휘두르는 삽자루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백구. 그런 모진 고초를 당했으면 사람을 경계할 만도 하지만 여기저기 터지고 찢겨진 피가 엉겨붙은 모습을 하고도 지나는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해맑은 모습으로 꼬리를 살랑여댄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고비에 겪은 공포와 충격, 상실과 열등에 발목 잡혀 한 발을 나아가지 못한다. 과거의 상처를 부여잡고 멈춰진 시간과 공간의 화석으로 굳어진다. 그렇게 인생의 풍랑을 이겨내지 못하고 난파하는 이들이 많기에 우리 사는 세상은 조난 신호로 가득한 것이고 고통의 신음이 천지를 뒤흔든다.

우리가 조금만 담대할 수 있다면... 스스로가 겪는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너그러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내가 겪은 그 고통은 나 자신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털어 내야할 먼지 같이 사소한 것임을 안다면... 하여 과거에 발목잡히지 않고 지금 여기에 충실할 수 있다면... 저 백구처럼 피떡이 된 모습을 하고도 살랑살랑 꼬리 흔들어 댈 수 있다면... 신의 저주와도 같은 극악의 고통 앞에서도 해맑게 인생을 긍정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