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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주 4.3 사건 때 한국 경찰은 조천면 중학교가 빨갱이 소굴이라고 하면서 교사와 학생을 총살하고 학교를 불태웠음.
빨치산 삐라를 신고 안 했다고 파견된 초등교사를 때려 죽이고 선생들이 총살당함.
심지어 제주도에서 2년 동안이나 어업, 농업, 학업을 죄다 정지시키고 학교도 파괴했음.
식민지 시절이었던 1920년대 일제 경찰들이 저지른 고문 기사가 동아일보에 실렸는데 기자는 아무런 처벌도 안 받음.
그런데 1948년 제주도 삼양리에서 13살 소년이 경찰의 고문을 당해 죽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자 1948년 제주도의 경향신문, 조선일보 지국장이 총살당함.
해방 이후에 대학교재가 나왔다고 지방의 대학생들이 총살당한 사례가 빈번했음.
일제 경찰들도 어린이는 죽이지 않았지만, 제주 4.3 사건 때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인 조몽구의 3세와 8세된 아이들은 모두 처형당함.
1공화국은 마을 주민들한테 연대 책임을 묻는 보갑제를 실시해서 빨치산이 마을 주민 1명을 죽였다면 토벌대는 마을 주민 70~100명을 학살함.
심지어 농촌에서 토벌대한테 바치는 쌀과 고기와 물자를 제대로 안 주면 농촌 주민들을 군인들이 마구 학살함.
1949년 12월 24일 경상북도 문경의 산북변 석봉리 석달부락에서 군인 70여 명이 마을 가옥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온 주민들 66명을 기관총으로 쏴죽임.
그런데 이 사건을 국방부에서는 공비 소행이라고 거짓 발표를 함.
20년 동안 시행된 일제의 치안 유지법도 구속시킨 자가 수만 명인데 제1공화국은 1949년 한해에만 3만 5천 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시켜 일제의 치안 유지법보다 더 악독함을 보여줌.
또한 국가보안법으로 잡힌 사람 대부분은 문맹인 아이, 여성, 농민, 일반인들이어서 아무렇게나 마구 잡아다 가두고 고문했음.
일제 식민지 경찰은 재판이라도 했는데, 1공화국에서는 재판도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총살시킴.
심지어 경찰 한 곳만 심문하는게 아니라 무려 10개가 넘는 방첩대, 청년단, 향토방위대, 간첩심문 기구가 들어서서 국민들을 괴롭힘.
일제 식민지 시절보다 더 많고 지독한 잡다한 세금들을 내느라 국민들은 등골이 휘어졌음.
한 예로 농촌에 살던 농민들은 18개의 후원회비를 다 내느라 죽을 지경이었는데
그 잡다한 목록들은 대략 이러함.
부인회비, 경찰후원회비, 청년단비, 소방서 후원회비, 돌담축성비, 심지어 이승만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모금비를 내야했음.
이러느라 제주도에서는 도민들이 감자 1개로 겨우 연명했음.....
군인들 먹는 밥은 죄다 주민들이 갖다 바쳐야 했고, 이것도 제대로 대접을 안 해주면 맨날 주민들을 군인들이 학살했음...
일제 식민지 경찰들도 매일은 고문하지 않았는데, 제1공화국 군과 경찰들은 하루에 한 번씩 전기고문, 성고문, 비행기 태우기 고문, 참수, 손가락 자르기, 신체 도려내기 같은 고문을 저지름...
출처 | https://cafe.naver.com/historyarchive/8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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