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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story_39197
    작성자 : 란스씨
    추천 : 16
    조회수 : 1872
    IP : 119.205.***.174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2/01/06 00:14:51
    http://todayhumor.com/?lovestory_39197 모바일
    1월 6일, 오늘은 김광석, 그의 기일입니다.
    1964년 1월 22일 ~ 1996. 1. 06(공식 사인은 자살). 대구에서 출생.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주 장르는 포크.
    국내에서 가객,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이름이 어울렸던 몇 안 되는 뮤지션.
    대표곡으로는 〈이등병의 편지〉,사랑했지만〉〈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이 있다.

    1 발자취 ¶
    1.1 학창시절부터 데뷔 전까지 ¶
    중학교 때부터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 등의 다양한 악기를 배우며 악보 보는 법을 익히며, 79년 대광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합창단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82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되고, 1학년때 대학 연합동아리 '연합메아리'에 가입하여 본격적으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1.2 활동 초기 ~ 노찾사 ¶

    84년 그는 김민기의 「개똥이」음반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때 함께 한 이들과 의기투합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한다. 85년 1월 군에 입대했으나 큰 형님이 이전에 군에서 사망했던 것 때문에 6개월을 복무한 뒤 7월 제대하게 된다.

    87년 10월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노찾사의 첫 정기 공연에 참여했다. 호소력이 담긴 '녹두꽃'이란 노래로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그는 단숨에 노찾사의 간판가수로 떠오르며 각종 집회에 단골로 초대되었다.

    87년 여름,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모여 별 생각없이 녹음한 것을, 산울림의 김창완의 권유로 음반을 내자고 하여 88년 7인조 그룹 동물원의 1집을 내 놓는다.

    김광석은 "이걸 사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일거다." 이 말이 반은 진담이고 반은 농담으로 말할 정도로 별 생각없이 낸 음반이었는데 ‘거 리에서'와 ‘변해가네'가 빅히트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거리에서'와 ‘변해 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 같은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노래는 상업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밝은 이미지를 구축,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던 주류 대중음악의 작은 대안이 되었다. 이후 동물원의 일원으로 많은 공연에 참여했다.

    1.3 솔로 활동 ¶

    자신의 음악을 찾고 싶었던 그는 동물원과 결별 89년, '기다려줘', '너에게'를 담은 솔로 1집을 내놓으며 계몽문화센터에서 첫 개인 콘서트를 시작했다. 음악 활동을 하던 중에 1년의 열애 끝에 90년에는 결혼에 성공한다.

    1991 년에 발표한 2집은 그를 더욱 대중적인 위치로 올려놓았는데 한동준이 제공한 <사랑했지만>과 <사랑이라는 이유로>, <슬픈 노래> 등이 사랑을 받았다. 92년 '나의 노래'가 담긴 3집을 발매.

    92년엔 불교방송 <밤의 창가에서> 프로의 DJ가 되어 활동영역을 넓혀 나갔다. 이때 외설 문제로 당시 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던 연세대학교 마광수 교수가 방송 수위를 넘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징계를 먹었다. 진행자 김광석은 동조를 했다는 이유로 마교수와 함께 청소년 프로그램에 한 해 동안 방송 출연 정지 조치를 받았다. 이 사건이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김광석은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93 년 7월, 노래 생활 10년을 결산하는 한 달 간의 장기 공연을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열었다. 그 후 '다시부르기' 1집을 발표했다. '거리에서'와 '광야에서' 등이 수록된 대중 음악계를 강타한 '리메이크' 선풍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그는 <나의 노래>가 실린 3집과 94년에 발표된 <일어나>가 실린 4집의 연이은 성공으로 소시민을 대표하는 가수로 확고한 위치를 잡는다.

    95 년에는 김민기, 김의철, 이정선, 백창우, 김목경, 양병집 등 1970년대 포크 1세대로부터 이어져 오는 흐름을 하나의 앨범으로 계보를 정리한 '다시부르기 2집'을 발표하면서 히트를 터트렸다. 또 전국 8개 도시를 순회하는 ‘ Green Tree Story’ 투어 콘서트를 열었다. ‘다시 부르기 2'는 그가 90년대 한국 모던 포크의 진정한 계승자로서의 자리 매김을 있게 해 준 명반이었다.

    매해마다 음반 발표와 소극장 라이브 공연을 병행하며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감에 전력을 쏟은 김광석은 95년 8월, 마침내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1000회 기념 공연이라는 금자탑을 이뤘다. 기념으로 2개월 간 전국 투어를 돌았다. 워낙 많은 공연을 했던지라 '또 공연을 하느냐'는 의미로 '또 해'라는 별명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11월에는 미국 팬실베니아 대학, 뉴욕 맨하탄 머킨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했다.

    그의 공연은 20대 여성층은 물론 30대 남성 직장인까지 몰려들어 항상 만원을 이뤘던 흥행보증 수표였다. 이는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소극장 공연 문화가 정착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법정스님으로부터 '원음'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둥근소리라는 뜻으로 오늘날 김광석 팬사이트 네임이기도 하다.

    1.4 성격 ¶

    외모를 보면 알겠지만, 성격도 무척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특히 후배들을 많이 아껴서 돈이 궁한 후배가 있으면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무대에 서기가 힘든 후배들을 위해 노래를 할 수 있는 무대를 주선해 주기도 했다. 닭튀김 같은 먹을 거리를 사서, 후배들이 있는 대기실에서 곧잘 나누어 주기도 했다고. 그래서 김광석이 오는 날에는 대기실에서는 닭튀김 냄새가 퍼진 날이 많았다고 한다. 갓 가수가 된 후배들을 위해 술자리도 자주 가졌다고 한다.

    성격 까칠하고 주위 가수들과 자주 트러블을 일으킨다는 이은미도 방송에서 종종 김광석 이야기가 나오면 그리움과 슬픔에 눈물을 참았으며, 가수 윤종신도 신인 시절에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친절히 말을 걸었던 김광석을 회고하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윤도현은 무명 시절이 길었는데 힘들었던 무명 시절, 김광석은 윤도현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많은 정신적,물질적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에 윤도현은 김광석이 죽은 이후, 매해 그의 추모콘서트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답을 하고 있다. 폐쇄적인 성격의 이소라도 김광석에 대한 기억 때문에 방송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라이브 공연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 즉, 그가 죽은 후에도 김광석에 대해 나쁜 말을 한 선,후배 가수는 아무도 없다.이것만으로도 그의 인간성이 증명되는 셈.

    인 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와 마주해서 좋은 인간성에 감동을 받았다는 팬의 이야기도 여럿 눈에 띈다. 한 팬은 김광석의 콘서트를 보러 갔다가, 캔커피를 하나 사서 김광석에게 주었다고 한다. 김광석은 "보답할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네요." 라는 대답을 하면서 즉석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주었다고. 또 한 팬은 춘천으로 입대를 하는 길이었는데, 김광석을 춘천가는 길에 만났다고 한다. 김광석은 "입대하세요?" 라고 물어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 주었다고.그런데 이건 잘못하면 고문이 되는데...


    1.5 죽음 ¶

    통 산 6장의 개인 앨범을 내고 김광석은 1996년 1월 6일 사망했다. 그 전날 아내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잠들었던 김광석은 새벽 4시 30분께 마포구 서교동의 원음빌딩 4층 자택 거실 계단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의 죽음에 관련해서 '정신적 불안 때문이다', '돈 때문이다', '여자 때문이다', '타살이다' 등의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더욱이 그 해 1월에 듀스의 멤버였던 김성재, 발라드 가수 서지원에 이어 김광석의 죽음과 '서태지의 아이들'의 돌연 은퇴 선언 등이 줄을 잇자., 조직폭력과의 연관설까지 불거져 나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의 자살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점 없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다 만 김광석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김광석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꿈에 나와 "억울하다, 내가 왜 자살을 하냐"라는 꿈을 공통적으로 꾸었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로 자살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많은 상황. 당시 잘나갔던 가수였던 김광석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다거나 하는, 굳이 자살할 이유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단,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이 시기 김광석이 정신적인 고뇌가 깊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참조) 때문에 타살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당시 독재가 끝나고 문민 정부 시절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낮으며, 경찰 조사에서도 별다른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그의 대표곡중 하나인 '나의 노래' 가사를 곱씹어보면 그의 죽음이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또다른 대표곡인 '일어나'를 들으면 그 노래의 가사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떠난 그의 마지막이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김광석은 생전 불교도였던 터라, 화장을 했는데 주로 고명한 스님들에게 나오는 사리가 9과나 나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1.6 그 분을 떠나보내고 ¶

    1월 8일,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 앞에서 유가족들과 김민기, 백창우, 안치환, 노찾사, 동물원 등 50여 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가운데 노제가 치러졌다.

    그의 음악선배 백창우는 김광석의 미발표 곡 '부치지 않은 편지 1, 2'를 담은 추모 음반 ' 가객'을 사망 1주기 기념으로 발표를 했다.

    소시민적 감성과 유려한 노랫말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곡은 여전히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있다. 그가 죽은 지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추모음반이나 추모콘서트의 인기는 왠만한 뮤지션의 그것을 뛰어넘는다.

    그의 사후에 저작권 문제로 법적 분쟁이 이어졌다. 1996년 김광석이 사망하자 부인과 아버지 사이에 소송이 있었으나 법원이 중재에 나서 지적재산권을 나누어 행사하는 것으로 합의하 였고, 이때 아버지는 자신이 사망하면 권리를 손녀(김광석의 딸)에게 상속하기로 명시하였다. 2005년 김광석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이번에는 어머니와 형과 신나라뮤직이 합의가 무효임을 주장하며 부인과 딸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2008년 대법원에서 패소하였고, 판결내용에 따라 저작권이 김광석의 딸에게 있음을 확인하는 조정합의로 최종 종결되었다.

    2009년 독일의 언더그라운드 힙합그룹인 Die Orsons가 김광석을 추모하는 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이 노래는 유튜브에 공개되었는데, 가사는 본격 대한민국 현실까기로 시작죽은 김광석을 찬양하면서 김광석을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어느 한 나라에

    이력서가 자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한 나라에
    상사 말을 충견같이 따라야 하는 한 나라에
    그건 그렇고 거기선 개를 먹기도 한다는군

    아무튼 꽤 젊은 가수가 하나 있었다.
    TV나 라디오에 나와 노래하길 싫어하지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길 좋아하더라
    지금 우리들처럼 말야, 안녕?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그 남자는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를
    천번째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왜냐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든

    1996년에 그 남자는 커트 코베인이 되었다

    유튜브에 그 남자의 이름을 쳐봐! 함께 흐느끼자
    그놈의 이름의 철자를 알려주마

    K-I-M K-W-A-N-G S-E-O
    K-I-M K-W-A-N-G S-E-O
    K-I-M K-W-A-N-G S-E-O-K

    KIM KWANG SEOK
    (킴 크방 제옥)

    너는 한국의 밥 딜런
    한국의 커트 코베인
    너의 목소리는 울려퍼진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같이

    K-I-M K-W-A-N-G S-E-O-K

    천번째 공연 후에
    Kim는 방문을 걸어 잠궜다
    Kim는 32살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의 행복과 슬픔, 신성한 것들에 대해 노래했지만
    우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사가)한국말이였으니까
    96년도엔 유튜브도 없었으니까

    Kim는 지금의 우리처럼 목소리 작은 사람들을 위해 노래했어

    우린 지금 일어나 이제서야 외친다
    이름 쓰는 법이 뭐라고?

    K-I-M K-W-A-N-G S-E-O
    K-I-M K-W-A-N-G S-E-O
    K-I-M K-W-A-N-G S-E-O-K

    KIM KWANG SEOK

    이 런 내용의 가사였는데, 이 노래 덕분에 상당한 독일인들이 김광석이라는 가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도 유럽에서 가장 많이 김광석의 영상을 클릭한 나라는 독일이다. 2010년에는 일본에도 김광석의 영상이 인터넷으로 소개되었는데, 한국인이라는 국적을 넘어서서 넷상에서 좋은 호응을 얻었다. 지금도 종종 유튜브에서 김광석 영상을 찾아보면 "한국의 커트 코베인"이라든지 "한국의 밥 딜런" 같은 외국인들이 남긴 리플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김광석은 우리나라에서도 매해 가장 많은 추모 콘서트가 열리는 가수 중 한 명이며,그가 출근하듯이 공연했던 대학로 쪽에 김광석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성시경, 박효신, 타이거 JK, 김범수, 리쌍, 장기하등 수많은 가수들이 아직까지 존경하는 가수이기도 하다. 가창력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면에서도 기억될 만한 사람인데다가 그의 자살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기는 하나, 어쨌든 공식적으로 음악적 고뇌 때문에 목숨을 버린 몇 안되는 가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 수들뿐이 아니라 국내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뽑힌 적도 있다. 가요를 전혀 듣지 않고, 클래식 음악만 듣고 살았다던 소설가 윤대녕도 김광석의 노래를 듣자마자 빠져들어 그의 팬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작가 정이현도 김광석을 추모하는 글귀를 쓴 적이 있고, 김경욱은 출판한 책에서 김광석에 관한 기억을 회고하기도 했다. 시인들도 종종 김광석을 추모하는 시를 쓰고는 했으며, 유명한 여성 소설가인 신경숙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로 김광석이란 가수를 알게 되었다가,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자살 소식을 듣자마자 그만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 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김광석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문학가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1.7 가창력 ¶

    타계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감정 전달, 가사 전달 부분에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대접받는다. 요즘 우리나라 가수들은 지나치게 기교와 무대에 신경쓰다 보니 가사 전달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사롸라라랑해~'라는 식으로 기괴하게 발음을 한다든지, 지나친 바이브레이션에 발음이 뭉개져서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오토튠 같은 것도 남발되면서 이 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김광석은 음반 녹음은 물론 라이브를 할 때에도 놀랄 만큼 또박또박 발음을 한다. 김광석의 라이브를 듣고 가사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건 듣는 사람의 청각이 이상하다고 여겨질 정도. 김광석은 무척 편하게 노래하는 것 같은데도 그가 하는 것처럼 또박또박 부르는 가수가 얼마 없는 것을 보면, 그가 상당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김광석의 바이브레이션은 바이브레이션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기교를 위해서 목소리를 떠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울음을 참듯이 목소리가 떨리기 때문이 다. 그렇기 때문에 김광석의 목소리가 가장 한국인의 한(恨)에 가까운 목소리라는 의견도 있다. 김광석의 그 창법은 따라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서, 완벽한 모창은 불가능하다는 게 정론. '서른 즈음에'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같은 노래들을 김광석보다 잘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를 뒤져봐도 없으리란 말은 그저 농담으로 넘기기는 힘들 것이다.

    김광석의 가창력의 느낌이 궁금하다면 이 영상을 보자.


    김광석은 1987년 노찾사 정기 공연에서 '녹두꽃'이란 곡으로 무대 데뷔했다. 이때의 영상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김광석 데뷔 무대 영상 목소리가 조금 앳되기는 해도 창법 부분에서는 이미 기반이 잡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무척이나 고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받지만, 놀랍게도 술담배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죽기 전날까지 거의 변하지 않는 가창력과 울림을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경악스럽기도 하다.

    김 광석이 가창력이 좋은 가수라는 점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나 가창력이 좋은 가수를 들라고 하면 김광석이 꼽히는 경우는 드문데, 스타일의 문제이다. 김광석은 프로로 데뷔하기 이전에 오늘날의 연습생 시스템, 혹은 과거의 미8군 무대와 같이 혹독하게 트레이닝받은 적이 없었고, 주로 해왔던 음악 역시 포크 기타 반주에 따라오는 곡들이어서 커버하는 범위가 넓지 못하다. 아주 정확한 발음과 호소력이 좋은 음색, 그리고 뛰어난 표현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음정, 리듬감, 기교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러나 기계적인 가창력에서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점으로 김광석의 위대함을 퇴색되지는 않는다.

    가수가 표현의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본다면 그가 노래를 부르며 감정을 표현하는 점에 있어서는 가히 표현력의 교과서라고 할만 하다.

    2 김광석이 떠난 뒤, 김광석 다시 보기 ¶
    2.1 노래 ¶
    만화 광수생각에서 표현된, '소주 안주로 가장 좋은 노래'라는 평은 김광석의 팬들에게도 큰 동감을 샀다. 그만큼 그의 음색과 그의 전반적인 음악색은 삶에 지친 사람들의 감정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80년대 후반 민중가수로 김광석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김광석의 음반에 혹평을 하기도 했다. 민주화를 이뤄내고 이에 대한 열기가 뜨겁기 그지없던 시절 김광석이가 처음 내놓은 음반은 (발라드, 댄스 가수 등이 내놓은 음악과는 색채가 전혀 다르긴 했으나) 사랑 노래였고, 이 때문에 '변절자냐', '대중성만 추구한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90년대에 들어 그는 민주화 운동 시기의 음악을 리메이크해 음반에 수록했으나 이 때는 이미 80년대 후반의 열기가 진정 국면에 들어가 있었고 오히려 초기의 음악을 듣고 김광석을 찾았던 팬들에게서 호평을 듣지 못했다.
    이렇게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포크 음악의 침체로 인한 부담이 겹쳐 김광석이 자살했다는 설 또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3, 4집 시기에 들어 김광석은 과거 음악의 재수록을 넘어선 자작 명곡들을 본격적으로 쏟아내면서 그의 음악 세계를 확고히 해 나간다. 이 점에서 '심리적 부담으로 인한 자살'설이 반박된다. 당시 김광석의 곡들은 주제의 분화 또한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었기에 김광석이 (하필) 이 시기에 비운의 가수로 세상을 떠나간 것 또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김광석의 모든 노래는 기타 하나로 연주할 수 있는 포크송이라, 세월이나 세대를 타지 않는다. 말그대로 10대부터 80대 노인까지 동감하고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김광석 노래의 힘은 그의 이름을 계속 기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2011년 6월 즈음부터 SK 텔레콤에서 아이유와 듀엣으로 서른 즈음에를 부르는 내용의 CF가 제작, 방영되고 있다. 링크 당연히 CG로 재현된 것.

    김광석을 좋아하는 팬들중에서는 이 광고를 듣보잡이 노래를 망친다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데,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잡음처럼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해서 호불호가 갈린다.

    가장 결정적으로 이 광고가 비판받는 이유는 자기네 기술력인 4G를 자랑하려고 전설로 남은 가수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김광석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죽었는지를 생각하면 왜 비판받는지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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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수정과 동영상의 첨부 밖에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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