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맹장수술을 받으셨다.
전날 밤 응급실 갔다가 진통제 받고
그래도 아파서 아침에 가 검사하니 맹장염(충수염).
오후 3시 수술.
남편이 퇴근하는 대로 애들 싣고 친정으로 출발했다.
내려가는 중에 아빠에게 전화해 보니
집에 걸어가는 중이시란다.
병원에서 집까지 9키로.. 인도도 따로 없는 왕복 2차선 산길과 논길을
걸어가야 한다.
보통 성인 걸음으로도 2시간 반이 걸리는 길.
마음은 울컥하는데 거의 다 도착이라 하시니
들어가셔서 식사하시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 30분 후 또 전화를 걸어보니
여전히 집에 가는 중이시고 거의 다 왔다고.
그러고 아빠가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 느이 엄마가 입원했나 보다. 내가 그걸 모르고 집으로 와 버렸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 아니야, 아빠. 아빠가 지금까지 엄마 옆에 계셨어. 수술도 잘 끝나셨대.
- 아니여.. 입원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와버렸다..
아빠는 알츠하이머다.
엄마는 아침부터 계속 옆에 계시면서 굶은 아빠가 걱정되셔서
수술도 끝났으니 병원 앞 택시 타고 집에 가라 하셨던 건데
아빠는 집에 가야한다는 것만 빼고 다 잊으셨던 것 같다.
친정 집에 도착하니 9시 반.
식사하셨냐 물으니 하셨다 하는데 싱크대도 말라있고 밥통에 밥은 아침에 한 밥이 주걱 한번 못 대보고 그대로 굳어있다.
우리가 차에서 먹으려고 샀던 김밥이 마침 넉넉했어서
우선 그걸로 식사 차려드리니
그 와중에도 안 시장하시다고, 너희는 뭐 먹냐며 젓가락을 들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미 배 부르게 다 먹고 왔다고 어서 드시라 여러 번 재촉하니 그제서야 드신다.
엄마가 요청하셨던 입원 물품 몇 가지 챙겨서 급히 병원에 가는데
아빠는 너무 피곤해 보이셔서 집에서 쉬시라 했다.
병실에 나만 들어가 조용히 물품만 넣는데
엄마가 집에 가서 할 몇 가지 미션을 주셨다.
병실에는 혼자 계셔도 된다며.
일단 미션을 수행하고 다시 병원에 와야지 싶어서
친정 집으로 왔는데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에 아버지가 옷을 차려 입으신다.
병원 가야 한다고, 수술 끝나고 느이 엄마 얼굴도 못 보고 왔다고.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또 걸어서 가시겠다고 집을 나서시는데
사위가 말려도 안 들으셔서 내가 미션 수행 중에 고무장갑도 못 빼고 쫓아 나갔다.
- 아부지 이 시간에 어디 가. 내일 나랑 가면 되잖아.
- 느이 엄마였으면 나를 혼자 뒀겠냐. 사람 도리가 그러면 안된다.
- 오늘 밤은 내가 갈 거라니까? 아부지는 내일 낮에 나랑 바꾸면 되잖아.
- 얼굴도 못 보고 왔어.. 너는 왜 나를 인간도 아닌 사람을 만들려고 그러냐.
아빠 눈시울이 벌개졌다.
방법을 달리해야 했다.
- 아부지 아부지 병실에 간병인도 여자고 환자도 여잔데 아빠 가면 다른 사람들 불편해서 못 자! 안돼!
처음으로 강경하게 걸어가던 발이 멈췄다. 아빠는 평생 누구 불편하게는 못 하고 산 사람이다.
- 지금 잠깐 들어가. 내가 엄마 심부름 좀 하고 병원 갈 때 아부지 모시고 갈게. 그 때 얼굴 봐.
미션 끝내고 병실에 들어가니 새벽 1시 반.
아빠는 조용히 들어가서 엄마 손을 잡았다.
엄마는 잠드셨다가 화들짝 깨셔서는 빨리 집 가서 주무시라고 속삭임으로 아빠를 혼내셨다(?).
그렇게 30초도 안돼서 아빠의 엄마 면회는 끝이 났다.
그래도 집으로 가시는 아버지 발걸음이 가벼우셨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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