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어릴적 어느날.</p><p><br></p><p>우리집 마당엔 열라 큰 감나무 하나가 있었다. 가을만 되면 사흘 안감은 머리에서 비듬 쏟아지듯 낙옆을 쏟아내던 몬스터. 그래도 맛있는 홍시를 맺어서 미우나 고우나 그냥 같이 살고 있는 나무였다.<br></p><p><br></p><p>군바리들 눈쓸듯이 그 나뭇잎 치우는 건 내 몫이었다.</p><p><br></p><p>어느날 아부지가 동생에게 나뭇잎을 쓸게 하고 잠시 외출하셨다. 내 방에선 마당이 보이는데, 동생이 20분동안 고사리같은 손으로 열심히 마당을 치우는 것을 내가 똑똑히 보았다.</p><p><br></p><p>몇 시간 후, 방에서 가랑이를 긁고 있는데 철썩 우당탕 으어어허허 하는 소리가 들려서 밖으로 나가 봤더니, 아부지가 을룡타와 같은 기세로 볼따구를 부여잡고 넘어져있는 동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p><p><br></p><p>"너 이 새끼 아빠가 마당 쓸어놓으라고 했어 안 했어!"</p><p><br></p><p>"쓰... 쓸었는데..."</p><p><br></p><p>"근데 왜 마당에 나뭇잎이 한가득이야! 어?!"</p><p><br></p><p>황급히 밖을 보니 정말 나뭇잎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확신할 수 있었다. 동생은 마당을 쓸었다는 걸.</p><p><br></p><p>엄마가 뛰쳐나오며 소리쳤다.</p><p><br></p><p>"아 여보! 당신이 애한테 시키고 어? 다섯시간이 넘게 지났는데 당연히 낙옆이 또 지지! 왜 애를 때리고 그래요?"</p><p><br></p><p>영문도 모르고 얻어맞은 동생, 무작정 후드려팬 아버지, 혼란상태에 빠져있던 나는 엄마의 일갈에 비로소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p><p><br></p><p>하지만 아부지는 부끄러우셨는지 사과 안 했다.</p><p><br></p><p><br></p><p><br></p><p><br></p><p><br></p><p><br></p><p>초딩 육학년 때였나, 과학시간에 엷은 유황으로 뭘 했는데, 그 샘플을 조금 가져온 적이 있다.</p><p><br></p><p>난 소독차 냄새는 싫어했지만 왜인지 유황냄새는 좋아했나 보다.</p><p><br></p><p>방에서 유황 가져온 봉지를 까놓고 놀고 있는데 갑자기 마루에서 아버지의 괴성이 들려왔다.</p><p><br></p><p><b>"까쓰다!! 까쓰!!"</b></p><p><br></p><p>우리집은 안전사고라고는 전혀 있던 적이 없는 평화로운 가정. 아버지의 외침에 어린 나와 동생은 혼비백산 했고, 온 가족이 총출동해 가스가 어디서 누출되었는지 찾기 시작했다.</p><p><br></p><p>10분 후 나는 존나 맞았다.</p><p><br></p><p><br></p><p><br></p><p><br></p><p><br></p><p><br></p><p>슬슬 컴퓨터와 많이 친해지던 고딩시절. 아부지는 아직 당신이 나보다 컴퓨터를 잘 한다고 생각하셨나보다.</p><p><br></p><p>비싼 컴퓨터를 마루에 놓고 공유하던 우리집. 나는 언제나 야동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일 수 밖에 없었다.</p><p><br></p><p>어느 날, 아버지께서 외치셨다.</p><p><br></p><p>"아들! 바탕화면 정리좀 해! 컴퓨터가 느리잖아!"</p><p><br></p><p>네 라고 대답하려던 찰나, 내가 기억하던 우리집 컴퓨터 바탕화면엔 아부지의 업무 서류와 즐겨찾기만 가득이었다.</p><p><br></p><p>"아부지, 그거 다 아부지 거예요. 제 건 별로 없어요."</p><p><br></p><p>"이 시끼가 어디서... 좋아 너 내가 지금 지켜볼 테니까, 내 앞에서 바탕화면 정리해봐!"</p><p><br></p><p>나는 별 부담 없이 아부지 앞에 앉아 정리를 시작했다. 곧 아부지의 눈은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고, 정리를 끝마칠 무렵 아부지는 도망갔다.</p><p><br></p><p><br></p><p><br></p><p><br></p><p><br></p><p>재작년 9월 25일,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나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p><p><br></p><p>아부지께서 급사하셨다.</p><p><br></p><p>병을 가지고 계시긴 했지만 50대 중반의 한국 남성이라면 그 정도는 당연한 것들이었다.</p><p><br></p><p>나 참, 급하게 사시더니 가는 것도 급하신가.</p><p><br></p><p><br></p><p><br></p><p><br></p><p><br></p><p>오늘따라 유난히 보고싶네요, 아부지.<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