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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667639
    작성자 : 데미우르고스
    추천 : 32
    조회수 : 6521
    IP : 115.139.***.16
    댓글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4/28 18:18:06
    원글작성시간 : 2013/04/28 14:01:21
    http://todayhumor.com/?humorbest_667639 모바일
    [단편]말할 수 없는 비밀(약혐, 모바일수정)
     

    <말할 수 없는 비밀>

     

     

     

     

     

     

     

    좋은 아침이다. 어제 종일 요란하게 찌뿌듯하던 몸이 꽤나 가벼워졌다. 침대에서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거울 앞에 섰다. 흰머리들이 듬성듬성 고개를 드밀고 있다. 굵게 패인 주름.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 버린 창백한 피부는 나를 더욱 병약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침대 맡엔 어젯밤에 마시다 만 레드 와인 한 병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옆을 덩그러니 지키고 있는 잘빠진 와인 잔 두 개. 남은 잔을 가볍게 들이킨다. 레드 와인 특유의 향취가 날카롭게 코끝을 찌른다. 근데 이상하다. 새하얗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져 있다. 아무리 애써 봐도 어제의 기억들이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이건 마치,

     

    ‘어제’라는 게 없었던 것 같은 기분. 영원히 ‘오늘’만이 반복되는 삶. 그런 삶 속에 빠져든 것 같다. 어제의 날씨도, 어제의 만남도, 어제의 걱정거리도 모두 까맣게 사그라지어버린. 물론 나쁘진 않다. 사실 나쁠 리가 없다. 고작 2년 전의 나를 돌이켜 본다면.

     

    하늘에선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시나브로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외투를 헤집고 들어서는 가을이었다.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검진 결과를 확인하러 온 내게, 마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췌장암. 생존율이 채 5%에도 못 미친다는 절망의 암. 그것도 말기였다. 췌장은 십이지장과 지라 사이에 깊숙이 숨어있어, 손톱만 한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조차 몇 시간이 걸릴 정도로 치료가 어려운 부위였다. 의사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엑스레이 상만으로도 온 몸으로 전이 된 암 덩이들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요 몇 달 체중이 줄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게 설마 췌장암일 줄이야.

     

    힘 없는 걸음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후 내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기 시작했다. 가끔씩 허공에 대고 절규 했다. 신이 있다면 정녕 간절히 묻고 싶었다. 왜, 왜 하필 납니까. 누구보다도 이 삶에 충실했던 나를. 가족들을 위해 밤낮없이 헌신만 해왔던 나를. 왜 하필 내게 이런 좆같은 시련을 주십니까. 마음 속 한 편에 깊숙이 담아두었던 악다구니를 씹어 뱉어냈다. 일부로라도 그가 들으라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는 부재중이었다.

     

    한 동안 술에 절어 있었다. 정상적인 시간을 보낸 날들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 몸, 폐암에 걸리던 간암에 걸리던 상관없었다. 나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다시 병원으로 끌려가기 까지, 매일 두 병 이상의 소주를 마시고 두 갑 이상의 담배를 피웠다. 가뜩이나 성치 않은 몸이 남아날리 없었다. 병원에서 의사는 호스피스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그는 내게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해 장광서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말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자리를 결국 박차고 나왔다.

     

    아내가 수십 번이고 내 호스피스가 될 것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사코 나는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던 중이었다. 비쩍 말라비틀어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게 있어 그것만큼이나 최악의 일은 없었다. 마지막까지 미쁜 모습으로만 남아 있고 싶다는 것은 순전히 내 욕심일까.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포기할 수 없다. 여기가 싫다면 다른 곳이라도 어디든지 떠나자. 여행은 당신을 바꿔놓을 거야. 반드시 당신을 바꿔놓을 수 있을 거야. 눈물이 흘렀다. 아내의 눈빛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를 트란실바니아로 정했다. 생소한 이름의 도시였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하필 루마니아의 이 작은 도시로 가고 싶다는 거야. 그녀는 옅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트란실바니아는 드라큘라의 도시래요. 혹시 알아요, 당신이 어쩌다 드라큘라한테 물리기라도 할지. 그럼 이렇게 허무하게 죽진 않을 거 아니에요.” 아내의 말마따나 그 동안 나의 몸은 더욱 더 쇠약해져가고 있어서, 이제 그녀의 도움 없인 한 걸음조차 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몸은 날이 갈수록 말라가고 있었고, 두 다리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온 몸의 근육 세포들이 점점 시들어 가고 있었다. 죽음은 정말로 나의 목전까지 찾아왔다. 매일 밤, 이 밤이 마지막이 될지 몰라 미리 써둔 유서를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던 시절이다.

     

    두 번씩이나 비행기를 갈아타 어렵게 도착한 트란실바니아엔 예상 외로 볼거리들이 많지 않았다. 몇 있지 않은 작은 유적지들을 돌아다니다 근방의 작은 모텔에 짐을 푼 우리는, 가볍게 저녁을 해결한 뒤 모텔 뒤편의 자그마한 오솔길을 따라 산책을 하기로 했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지만 그런대로 거닐만했다. 길을 따라 간헐적으로 들어 선 등불들이 아스라이 우리의 길을 밝혀주었다. 빛에 비춘 그녀의 얼굴이 그날따라 유독 창백해보였다. 아무래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아니, 조금만 더 걷다 들어가요.”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당신 많이 힘들어 보여."

    "괜찮아요, 조금만 더요."

     

    무슨 요량으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도저히 막무가내였다. 우리는 조금씩 으슥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즐비하던 불빛은 점차 희미해지고, 오솔길은 점점 거친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깊은 산 속까지 들어 온 것 같았다. 나는 재촉하듯 물었다.

     

    “너무 멀리 온 것 같아.”

    “맞아요. 서울은 여기서 너무 멀죠.”

    “이제 들어가자. 힘에 부쳐서 더 이상 걷기가 힘들어”

    “나도 마찬가지에요.”

    “들어가는 건 어떨까.”

    “조금만 더 걸어요. 조금만 더.”

     

    그녀의 눈빛에선 흡사 비장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혹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내 몸을 부축하고 있던 그녀의 손을 가볍게 뿌리쳤다. 그러자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별안간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대단히 두려운 것을 본 얼굴이었다.

     

    그리고.

     

    *

     

     

     

    “아버지는 굉장히 헌신적이던 분이셨어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던 분이셨죠. 그런 분에게 암이란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당신은 한동안 좌절감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죠. 죽어가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은 없는 것 같아요.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다고 절규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 마다 제 가슴은 날카롭게 돋아 난 칼로 무참하게 난도질을 당하는 기분이었어요. 이럴 바엔 차라리 그렇게 되기를 기도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저는 아버지가 거의 회복됐음을 알아요. 이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당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하실 수가 있게 되셨죠.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일이란 제게는 크나 큰 축복이에요. 그 비밀만 잊어버릴 수 있다면요.”

     

     

    *

     

     

    둘째 날. 눈을 떠보니 오늘처럼 좋은 아침이었다. 트란실바니아의 겨울은 한국의 여느 겨울 날씨와는 다르게 비교적 온난했다. 두터운 코트를 꺼내는 대신 가벼운 스웨터를 집어 들었다. 아내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 살포시 입을 가져다 맞췄다. 이마가 좀 싸늘했지만, 워낙 몸이 차가운 편인 그녀인지라 나는 남아 있는 이불을 단단히 덮어준 뒤 호텔방을 나섰다.

     

    로비로 걸음을 옮기니 벨맨들이 분주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엔나의 벨맨들은 하나같이 인상이 모두 구수하다. 그 중 한 청년이 나를 보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나 역시 그에게 미소로 화답을 한다. 순간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이 여행은 확실히 나를 바꿔놓았다.

     

    카페의 로스터에서 원두를 볶는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다. 나는 헤이즐넛을 주문했다. 이윽고 황토 빛 헤이즐넛 커피가 내 앞에 대령됐다. 부드러운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한시라도 빨리 헤이즐넛으로 입 안을 촉촉이 적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우선 향부터 제대로 음미해야만 할 것 같았다. 깊게 들이 쉰 숨을 타고 몸 안 깊숙이 헤이즐넛의 진한 향이 잠식되어 간다. 지금 이대로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정말 이 자리에서 죽는 다해도…….

     

    *

     

    "그러나 이대로 아버지를 내버려뒀으면 해요. 이것이 그를 완벽하게 원래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그런다 해도 달라지는 건 뭐죠? 나도 그가 완치 된다면 좋겠어요. 하지만 과연 그가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그가 행복 할 거라 확신해요? 이 약만큼 확신할 수 있나요? 당신은 당신의 성공만을 확신하지, 그의 행복을 확신하고 있지는 않아요. 나는 그래서 당신을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아버님의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당신 회사의 노리개가 아니에요.”

    “맞아요. 당신의 아버지는 노리개가 아니에요. 오히려 저희의 희망이죠.”

    “아니, 당신의 희망이겠죠.”

    “뭐, 어떻게 생각하시던 상관없습니다만,”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군요.”

    “어차피 당신도 우리 뜻에 따르게 될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

     

     

    혹시.

     

    속담 좋아하십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나라 속담 중 이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맞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치매환자들은 똥 색깔이 참 예쁘게 나옵니다. 왜냐구요?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아무것도 모르니 아무런 걱정도 없는 겁니다. 만사가 다 오케인거죠.

     

    저는 약쟁이 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약을 만드는 사람이죠. 서울의 어중간한 대학 약대를 나와 운이 좋게 국내 최고의 제약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가 제 생애를 통틀어 가장 아는 것이 ‘많았던’ 순간인 것 같습니다. 저는 회사가 저를 모든면에 전인적인 사원의 모습으로 보아주기를 바랐었습니다, 처음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따윈 전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회사에서도 나에게 거는 기대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들만큼만 하면 족했습니다. 쳐지지만 않으면 됐죠. 오히려 나서고, 더 ‘알려고’ 튀는 자들은 가차 없이 인사발령의 칼날을 피해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점점 그저 그런 사원에, 그저 그런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신약 연구란 중책이 떨어졌을 땐, 정말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약 개발과는 전혀 상관없는 행정 업무만 몇 년을 보다가 뜬금없이 개발 부서로 발령이 났을 땐, 속된 말로 ‘좆’ 됐구나, 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었죠. 저는 이제 약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병신’ 같은 놈으로 새롭게 태어나 있었으니까요.

     

    이 약에 대한 회사의 기대치는 당신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 역시 이 약을 개발하면서 오래전 이미 사라진 줄만 알았던 열정이 마음속에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김진구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피험자가 될 것입니다. 약의 안전성만큼은 확실히 보장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제가 못미더우시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영씨도 구구절절이 늘어놓았던 제 잡설이 전부 다 이해가 가게 될 겁니다. 아버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니, 다시 말하죠. 아직까진 저희의 희망입니다. 세계 어디에도 아버님과 같은 사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처럼 지극히 ‘헌신적인’ 보호자도 없었고요.

     

     

    *

     

     

    도마 위를 일사불란하게 도닥이는 칼질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방을 나서 부엌 쪽으로 다가서니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하고 있다. 오늘은 어떤 음식일까. 매일 아침, 그녀는 나를 위해 특별한 밥상을 차려준다. 가장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데 이따금 얼굴이 멋쩍을 정도로 그 정성이 과분하다. 앞치마를 질끈 동여맨 그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뒤에 슬며시 다가선다. 화들짝 놀랄 모습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어 온다.

     

    “여보!!”

     

    그녀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듬성듬성 썰려진 쇠고기에선 아직도 핏물이 흐른다. 음, 입 안에서 절로 군침이 돈다. 아내가 기다란 무언가를 꺼내든다. 그리고…….

     

     

    *

     

     

    혹시 “포피리아” 라는 병을 아십니까? 아마도 처음 듣는 이름의 병 일겁니다. 우리 몸에는 약 25조개의 적혈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적혈구는 헤모글로빈이라는 혈색소 때문에 항상 진한 붉은 빛을 띠고 있는데, 이 헤모글로빈은 헴(Heme)이라는 색소부분과 글로빈(Globin)이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헴(Heme)이라는 놈은 여덟단계에 걸친 헤모글로빈의 체내 합성 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만약 그 과정 중에 단 하나의 효소라도 부족하게 된다면 우리는 “포피리아” 라는 생소한 이름의 병에 걸리게 되죠.“

    “이해하기 어렵네요.”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 ‘포피리아‘의 심각성이 될 테니까.”

    영문을 모를 정적이 흘렀다. 남자가 입을 열며 공허함은 깨졌다.

    “혈색소가 체내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다 보니, 포피리아 환자들의 피부는 유난히 하얀빛을 띄게 됩니다. 마치 알비노 환자들처럼 말이죠.”

    “그래서요?”

    “아버님의 피부가 유독 하얘 보이시더군요.”

    “1년 간 너무나도 잘 먹고 잘 지냈으니까요.”

    “포피리아 환자들은 가끔 근육이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요점이 뭐죠?”

    여자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남자가 작심을 한 표정으로 말한다.

    “포피리아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피를 통해 그들이 부족한 효소를 얻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나영씨.”

     

     

    *

     

     

    “트란실바니아에서 돌아 온 어머님의 목덜미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나영 씨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나요?”

    “………….”

    “아 버님의 경우에는 그 어디에서도 증례를 찾아 볼 수가 없는 희귀한 케이스입니다. 저희 회사의 연구가 실제로만 입증 된다면 아버님의 케이스는 세계 최초가 될 것입니다. 기존의 포피리아 환자들에겐 볼 수가 없었던 미증유의 증상들이에요. 대상과 대상의 면역체계, 혈액형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아버님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모든 혈액들은 놀라우리만큼 정교한 대사 과정을 통해서 밀도 높은 에너지원으로 교체가 됩니다. 다시 말해, 아버님은 이제 흡혈을 하지 않곤 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뭐라고요?”

     

    여자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표정이 번졌다.

     

    “피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는 말입니다. 타오르듯 한 갈증. 그 끈적끈적한 촉감과, 코끝을 자극하는 농밀한 냄새. 찢겨진 피부 사이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피가 지금도 아버님의 구미를 당기게 하고 있을 겁니다. 정말로 미치도록! 아버님은 그렇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당신의 아버지는 포피리아 환자가 아니었어요. 당신의 아버지는…….”

     

    남자의 눈에서 이채가 발했다.

     

    “흡혈귀입니다.”

     

    *

     

     

    엄마가 죽었다. 사인은 과다출혈. 아버지는 당시의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무엇을 묻든지 아무것도 모른다, 고 답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마치, 머릿속에서 그날 밤 일에 대해 까맣게 지워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산짐승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트란실바니아에는 유독 야생 동물이 많은 것 같다며― 물론, 확인할 길은 없지만― 자신이 잠깐 정신을 잃었던 사이에 그런 변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건 현장 주변엔, 목덜미가 잔인하게 뜯겨져나간 코요테 두 마리가 흉물스럽게 내동댕이쳐 있었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가 대단히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날 밤, 아버지를 씻겨 드리다 그의 앞니 뒤편에 눌어붙어 있던 어머니의 살점을 발견하기 전까진.

     

    때때로 준거가 확실치 못한 믿음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몰아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내가 보아왔던 아버지의 모습. 우리가 보아왔던 아버지의 모습. 사실 시간이 갈수록 창백해지는 피부와, 세월을 역행하는 듯한 놀라운 회복력이, 나로 하여금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말의 가능성을 고려치 않게 한 것은 아니다. 이성적이며 상식적인 통념 안에서 좀 더 일찍 직시해야 했을 사실을 철저히 괴리시킨 채, 아닐 거라는 믿음으로 그의 진짜 모습을 부정하려 애쓰고 있었다.

     

    트란실바니아에서 돌아 온 아버지는 이후 몇 개월 간 실어증으로 고생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혹여 아버지의 무의식속에 잠재하고 있던 죄책감이 그의 입을 막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가 받은 정신적인 충격보다 더욱 더 걱정이 앞섰던 것은, 날이 갈수록 도드라져 가는 그의 송곳니였다. 혹시나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쇼크를 받진 않을까 걱정 되어, 언젠간 날을 잡고 거울이라는 거울은 모조리 다 치워 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즈음이었다. 아버지가 흡혈귀가 되었음을 짐작했던 건. 이러다 나중엔 모든 기억들을 다 잃어버리고, 결국 나까지 물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밤마다 마늘 목걸이를 하지 않고선 잠에 들 수 없었다. 내 방 벽엔 십자가들이 즐비하게 걸려있었다. 베개 밑엔 심지어 뾰족하게 갈아놓은 나무못을 숨겨 두었다. 현실이 그릇된 믿음을 뛰어넘는 순간이다.

     

    그리고 몇 개월 후. 그는 나를 아내로 믿고 있다. 그의 몸은 계속해서 괴괴하고 변하고 있었지만, 그의 기억은 오로지 한 시점에 멈춰 있다. 트란실바니아로 떠나던 그 날 아침. 그는 아침마다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지그시 생각에 잠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진 알 수 없다. 나는 단지 뒷주머니에 찔러 놓은 나무못을 다시 한 번 야무지게 추스를 뿐.

     

    한참동안 골몰히 생각에 잠겨있을 때 쯤, 나는 그의 방으로 레드와인 한 병을 들고 간다. 비릿한 냄새가 폐부를 찌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진짜 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침마다 다정하게 건네주는 그 와인 한 병이 나의 안락한 하루를 보장한다. 피는 계속 필요하고, 죽일 사람들은 점점 더 떨어져 간다. 그러나 요 며칠 전, 나는 의도치 않게 좋은 먹잇감을 하나 만났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제약회사의 직원이었는데, 나는 어쩌면 그가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을 갖고 잠시나마 자그마한 희망도 가져 보았지만, 결국엔 그게 독이 되고 말았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포피리아네, 뭐네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들먹이며 아버지가 좋은 피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심지어 내가 이토록 '헌신적인' 보호자라는 사실까지도.

     

    머리와 몸통을 잘 갈아놓은 칼로 듬성듬성 썰어냈다. 피 냄새가 온 집안을 물들인다. 그는 분명 맛있는 음식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에게 피 냄새만큼 좋은 향기가 또 어디 있을까. 어쩔 땐 너무 자주 인육을 썰다보니, 정말 그냥 고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대충 조리해서 먹어도 되는. 남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일들이 어느새 내겐 무미건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멀리서 아버지의 걸음 소리가 들린다. 또 피 냄새를 맡고 달려 나오는 거겠지. 아마도 나를 놀랜답시고 뒤에서 와락 껴안을 것이 분명하다. 아직까지도 고개를 돌릴 때 마다 날카롭게 빛나는 송곳니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내 차갑게 말라버린 그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싼다. 속이 니글거린다. 한계가 온 것 같다. 더 이상 이 비밀을 지킬 수 없다. 결국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당신이 이 긴 꿈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 당신이 이 잔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간. 그리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진짜 부인을 만나야 할 시간.

     

     

    *

     

     

    “여보!!”

     

    그녀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듬성듬성 썰려진 쇠고기에선 아직도 핏물이 흐른다. 음, 입 안에서 절로 군침이 돈다. 아내가 기다란 무언가를 꺼내든다. 그리고…….

     


     

     



    데미우르고스의 꼬릿말입니다
    하힛후헤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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