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mbed height="3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00" src="http://bgm.heartbrea.kr/?3222205" wmode="transparent"><br><br><br>친구 봉팔이가 집을 나선지 10분. 비가 내렸다.<br><br>그러기에 마누라가 “오늘 비온데.” 하는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지.<br>마눌님 말씀 황금 같은 줄 모르고, “그까짓 비 내려 봐야 얼마나 내릴라고.” 말대꾸를 했니. <br><br>이 자식아. 어깨가 다 젖는다. 봉팔아.<br><br>공중도덕이라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봉팔이는<br>아파트 단지를 나서며 부터 입에 담배를 물었다.<br><br>길을 지나는 처자마다 봉팔이의 몰상식함에 눈을 흘겼으나, 소용이 없었다.<br><br>입술에 그깟그깟 말버릇을 립밤처럼 바르고 다니는 놈답게,<br>지나는 사람들에게 코웃음을 치며 “그깟 담배 냄새 좀 맡았다고 유난 떨기는.” 하고<br>공중도덕을 개차반으로 만들어 놓았다.<br><br>남에 대한 예우라곤 쥐뿔도 없기에 농담 따먹기 할 친구로썬<br>일품이나, 상사 혹은 직장동료로선 폐품인 놈이다.<br><br>지나치는 사람들이 봉팔이를 되돌아보는 이유가 오롯이 담배연기 하나 만은 아니었다.<br><br>시커먼 점퍼에 시커먼 바지, 씨이커먼 운동화.<br><br>키가 190cm도 넘는 놈이 옷을 그 모양으로 입고 다니니,<br>훤한 대낮이라 하나, 오늘같이 비 내리는 어두침침한 날에는 소도둑놈이나<br>노상강도처럼 경계하고 싶은 인상이 들어서기 때문이었다.<br><br>무섭다는 이 완곡한 표현을 좀 더 직선적으로 풀어서 말하자면,<br>그렇다. 인상이 더럽기 때문이다. 더럽게 더럽기 때문이다.<br><br>이 강도 같은 놈의 발길이 멈춘 곳은 역시나,<br>시내의 은행. 이 놈시끼 역시 은행을 털어버릴 작정인가?<br><br>강도새끼 다운 외모와는 달리 봉팔이는 ATM 기기 앞에서<br>1500원짜리 소시지 같은 두툼한 손가락으로 비좁고 여리여리한<br>강화유리 ATM기 화면을 터치했다.<br><br>그리곤 ATM에 비치 된 돈 봉투에 후후 담배 입김을 토해내더니,<br>봉투 속으로 일만 원 권 돈뭉치를 밀어 넣었다.<br><br>봉팔이가 은행을 나섰을 때는 비 줄기가 더 굵어만 가고 있었다.<br>은행 문 앞에서 어정거리던 봉팔이는 팔을 엮어 식어가는 몸을 달랬다.<br><br>그러길 1, 2 분여 봉팔이는 이내 “쯧, 에이!” 하고 이유모를 신경질을<br>내며 빗속으로 몸을 던졌다. 가슴에 품은 돈뭉치를 여민 손이 계속해서<br>빗물을 맞았다. 돈뭉치와는 또 다른 종이장이 품에 담겨 고이고이<br>봉팔이의 가슴에서 잠이 들어있었다.<br><br>“봉현씨 왜 일 이세요?”<br>“헤헤, 소은씨 오랜만이에요.”<br><br>진짜 그렇게 소도둑 노무새끼마냥 웃지 마라. 우리 마누라 놀랜다, 이!<br><br>“허! 어머, 봉현씨 왜 다 젖었어요?”<br>“밖에 비가 와서요. 하하.”<br><br>아니, 우리 마누라 말뜻은 왜 비가 오면 우산을 사야겠다, 생각을 할 줄 모르냐고 이 봉팔아. <br><br>흔히들 무덤까지 가져 갈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라 함은 봉팔 친구.<br>죽기 전엔 일설 입 밖에 담지 않겠다는 약조가 아니 덥니까. 이 들 떨어진 죽마고우새끼야.<br><br>“이 돈이 다 뭐에요?”<br><br>소은이가 돈 봉투를 방바닥에 올려두며 물었다.<br>돈뭉치는 얼추 봐도 백만 원, 딱 봐도 백만 원이었다.<br><br>“제가 일전에 카드빚이 좀 생긴 일이 있어서요.”<br>“있었는데요?”<br>“그때, 저희 집사람한테 비밀로 하고 싶어서. 이놈한테 돈을 잠깐 빌렸었어요. 염치도 없죠. 녀석 떠난 지도 한참인데. 돌려드리는 게 늦었네요.”<br><br>소은이가 돈 봉투를 물끄럼 내려 보며 생각에 잠겼다.<br>어디에서 백만 원이 비었었던가, 계산기를 두드리는 듯싶었다.<br><br>그나저나 봉팔이 넌 언제 무덤에 들어가 봤다고,<br>무덤가지 가져 갈 비밀을 이리도 쉽게 떠들고 있니? 봉팔아.<br><br>“몰랐네요. 정말로.”<br><br>소은이는 돈 봉투를 봉팔이 앞으로 슬쩍 밀었다.<br><br>종이봉투가 슬슬 끌리는 소리가 빗소리와<br>적막만이 가득한 거실 공기에 미미한 상처를 내고 있었다.<br><br>“갚지 않으셔도 되요. 그냥 그이가 빌려준 채로, 괜찮아요.”<br>“아니요. 오늘 녀석한테 줘야 할 건, 전부 다 가지고 왔습니다. 받아 주셔야 해요. 아니면 저 못 돌아갑니다.”<br><br>소은이는 베란다를 내다보았다.<br><br>활짝 열린 창으로 거센 비가 몰아쳤지만, 개의치 않은 듯 눈만 꿈뻑거릴 뿐이었다.<br><br>소은이는 금방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br>잘 다려 진 정장을 맵시 나게 차려 입고, 현관에는 우비를 걸어 두었다.<br><br>봉팔이는 말없는 아내 때문에 멋쩍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br>거실에는 아직 내 사진이 걸린 액자가 그대로였다.<br><br>봉팔이는 먼지 한 점 앉아있지 않는 액자를 따라<br>내가 총각시절부터 쓰던 TV, 선반, 책꽂이 따위를 차례로 훑었다.<br><br>“하하, 조금만 기다리면 녀석이 퇴근하고 돌아올 것만 같네요.”<br>“왜요?”<br>“집이 그대로에요. 하나도 바뀌질 않았네요.”<br><br>소은이는 힘없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br><br>적막이 무게를 더하며 거실바닥으로 스멀스멀 흘러내렸다.<br>그 공기에 숨이 막혀왔을까. 봉팔이는 “후~.” 하고 한숨을 길게 뽑아내며 말을 이어갔다.<br><br>“얼마 전에 집사람 다녀갔다고 들었어요.”<br><br>봉팔이에겐 집사람이겠으나, 소은이에겐 30년간을 알고 지낸 친동생이었다.<br><br>외모는 대충 비스무리하다는 소리를 듣는 법은 있어도,<br>사람 됨됨이가 닮았다는 소리는 들어 본 일이 없다.<br><br>얼마나 독한 말만 골라서 하는 여자인지.<br><br>“집사람. 집에 돌아와선, 한참을 울더라구요. 뭐라며 울었는지 짐작 하십니까?”<br>“얼굴은 괜찮았나요?”<br><br>소은이가 그날 처제의 뺨을 때렸었다.<br><br>어찌나 살벌하게 서로를 쏘아보는지, 아파트가 땅으로 꺼져 내려버리는 건 아닌가,<br>걱정이 들 정도였다. 나는 처제를 나무라지 않는다. 누구보다 소은이를 위해주는 것<br>또한 처제였다. “이제 죽은 사람 같은 건 잊어버리라니까!” 그 앙칼졌던 고함소리.<br><br>기억한다. 나는 처제를 응원마저 하고 있었다.<br><br>처제가 소은이 결혼반지를 빼앗아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리지만 안았어도,<br>어쩌면 처제가 그 냉랭한 승부를 승리로 이끌었을지 몰랐다.<br><br>기적처럼 베란다 난간에 튕겨 나온 결혼반지를 보고,<br>이성을 잃은 소은이는 처제의 뺨을 때렸다.<br><br>아마도 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동생에게 손 지검을 한 일은.<br><br>“그 놈이. 그 놈이 소은씨 데리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br>어떻게 하느냐고. 저한테 묻더라구요. 집사람이. 소은씨,<br>소은씨 정말 그 놈이 비가 되어서 돌아오면, 그래서 만나신다면 어쩌실 생각이세요?”<br>“봉현씨도 그 이야기 아시나 봐요?”<br>“알다마다요.”<br>“그럼, 이해가 빠르시겠네요. 그이는 산에 가서 묻혔잖아요.”<br>“그럼 왜 이렇게 기다리고 계세요. 강물에 수장한 것도 아닌데, 비가 되어 돌아오겠습니까? 저렇게 비도 들이치는데, 베란다 문을 다 열어두고.”<br><br>봉팔이가 베란다로 들이치는 비바람에 맞서며 창문을 닫으려 들자, 아내가 말렸다.<br><br>“그냥 두세요. 부탁드릴게요.”<br>“소은씨. 잘 생각해보세요.”<br><br>봉팔이는 결국 창을 닫지 못하고, 소은이에게 돌아섰다.<br><br>“잘 생각해보세요. 그이는 평소보다 조금 늦는 거 에요. 그이 무덤가로도 분명 수 십 수 백 번은 비가 왔을 거 에요. 남편은 그 빗물을 타고 산골자기로, 시냇물로, 강물로 언젠가 바다를 지나 비가 되어서 저에게 올 거 에요.”<br><br>처제가 함께였다면, “돌아오긴 개뿔이!” 하고 맞서줬을 텐데.<br>봉팔이는 망연자실 소은이를 내려다만 보고 있었다.<br><br>한 번 흐느낌 없이 소은이의 뺨을 타고 눈물이 굵직한 선을 그었다.<br>나는 그 순간 아내의 뺨에 내리는 하염없는 빗물과 함께, 멈추지 않는 그리움이 되어 흘러내렸다.<br><br><br><br>- 4부 끝 5부에서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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