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height="3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00" src="http://bgm.heartbrea.kr/?3222205" wmode="transparent"><br><br><br><br>겹겹이 덮씌워진 발자국을 따라 계속해서 발을 옮겨보았다.<br>걸음의 보폭이 아닌, 뜀박질의 보폭.<br><br>‘지연이는 계속 업은 채 였나?’<br><br>아무리 환상에 빠져, 이 흙바닥을 뛰어다녔다는 추론을 내 세워도,<br>발자국이 깊게 파여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br><br>좀 전까지 아스팔트를 밟았던 냉랭하고 딱딱한 감촉은 무엇이더란 말인가?<br><br>“지연아, 괜찮니?”<br><br>도로 위를 달렸던 것이 현실이든, 지금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었든.<br>우선순위에는 변함이 없었다.<br><br>겉옷을 벗어 지연이의 몸에 걸치곤, 일으켜 앉혀 뒤에서 부터 끌어안았다.<br>겉옷 주머니에 넣어주려 손을 잡으니, 손의 온기가 느껴졌다.<br><br>다행이었다. 좀 전과 같이 비현실적인 냉기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br><br>“지연아, 대답할 수 있어?”<br><br>정신이 있다면, 성질을 부리겠지.<br>선배, 어디를 껴안아요. 어서 풀지 못해요? 하고.<br><br>지연이는 성을 내는 대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br>무의식중의 대답일까? 아니, 잠꼬대라면, 잠꼬대라면 좋겠다.<br><br>깨기 전까지 마을로 돌아갔으면, 마을 회관 앞에 주차 되어 있는 내 차에 오를 수 있다면.<br><br>떠올리는 생각들이 희망사항처럼 느껴졌다.<br>이것마저 현실이 아닐지 모른다.<br><br>나무에 목을 맨 듯 지연이가 두둥실 떠있던 모습을 보았다.<br><br>‘그걸 현실이라고 말 할 수 있나?’<br><br>방금 전 직접 지연이를 끌어 내렸었다. 무섭게 떨어져 내리던 지연이를<br>받아 낸 그 무게감이 확실하게 손에 남아있었다.<br><br>반면, 얼음장 같았던 지연이의 차가움도 아직 등짝에 남아있었다.<br>양말바람인 사람에게 십 원어치 동정도 없던 아스팔트. 그 위를 달렸던 감촉도,<br>날이 서있던 돌멩이를 밟아 생긴 발바닥의 상처도 그대로였다.<br><br>만신창이로 체력이 방전 된 몸 상태만이, 어느 쪽에서도 설명이 가능한 유일의 사실이었다.<br><br>정말 가축처럼 가지고 놀다가, 지쳐 스스로 목을 맬 때까지 기다릴 공산일지도 몰랐다.<br>목을 매야 한다면, 그게 내가 이 환각같은 현실을 오가는 이유라면,<br><br>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최면이라도 걸린 듯 두 개의 현실 속, 갈피 한 자락 못 잡는 상황이 기에<br>마음 어딘가에서 향나무에게 패배를 인정 해버렸을 지도 몰랐다.<br><br>다만, 지연이 만큼은 아니었다.<br>목을 맬 땐 매더라도, 후배 하나 못 챙기고 가는 팔푼이 선배가 될 순 없다.<br><br>“야, 춥냐?” 물으니 지연이가 또 웅얼대었다.<br><br>“아까부터 뭐라고 대답하니?”<br><br>지연이는 내가 묻는 말에 한 번을 안지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왔다.<br>하지만 매번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br><br>그야말로 방언 그 자체의 웅얼거림이었다.<br><br>지연이를 업어 담장을 넘었다.<br>가로등 하나 없는 논길에서 굴러 떨어지지 나 않았으면 좋으련만.<br><br>“…워!”<br>“응?”<br><br>내가 말을 붙인 것도 아니었는데, 지연이의 알 수 없는 방언이 또 터져나왔다.<br><br>“으으으.”<br><br>완만한 언덕길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지연이의 방언이 점차 소리를 더해갔다.<br>아까 전과 같이 바람은 한 점 없는데, 주변의 키 작은 나무와 풀잎들이 사시나무 떨 듯<br>바들바들 떨며 사라락 요란을 피웠다.<br><br>“야!”<br>“아! 씨, 깜짝아.”<br><br>지연이가 버럭 고함을 치는 바람에 등골이 한 번 오싹해왔다.<br><br>이것도 혹 환각일까?<br><br>지연이의 몸이 휘청하고 내 무게중심을 흔들어 댔다.<br>마치 나를 넘어트릴 심보인 듯, 좌로 우로 반동을 주며 상체를 심하게 움직였다.<br><br>몸을 흔드는 기이한 힘에 휘청이며 생각했다.<br><br>이건, 지연이인가? 나는 또 나무에게 속아 담장 안에 지연이를 두고 온 것은 아닐까?<br><br>지연이를 향해 등 뒤를 돌아보자, 지연이가 내 등을 향해 푹 꺼져왔다.<br>지연이의 이마가 내 뒤통수를 들이받으며 소소한 충격이 일었지만,<br>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주목해야만 했다.<br><br>“봐라! 이것이 네가 감히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존재다!”<br>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내게 소리치는 건가?<br><br>향나무에는 목에 줄을 달고 있는 사람으로 나뭇가지가 빼곡히 들어 차있었다.<br>사람이 얼기설기 붙어 목을 매고 있는 풍경이 향나무를 버드나무와 같이 보이게<br>만드는 것 같았다.<br><br>“단 한 사람도 도망쳐 본 일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거야?”<br><br>내가 묻자, 향나무 대신에 지연이가 또 옹알이를 했다.<br>내 귀에 바싹 붙어 속삭이는 목소리. 분명 아까부터 비슷한 소리만을 내는 듯,<br>지연이의 방언은 집요하기만 했다.<br><br>“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니?”<br>“선, 배 이르그으.”<br>“뭐?”<br>“선, 배 일이르그르 으으으.”<br><br>지연이의 말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었다. 우연일까,<br>지연이가 입을 한 번씩 열 때마다, 밤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br><br>“지연아, 다시 말해봐.”<br>“선배.”<br>“어.”<br>“선배.”<br>“그래.”<br>“선배, 일어나요.”<br>“어?”<br>“선배, 일어나요.”<br><br>지연이가 다시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br>나는 지연이의 몸짓에 겨우 중심을 잡으며 지연이에게 소리쳤다.<br><br>“무슨 소리야! 뭘 일어나!”<br>“선배! 일어나요! 일어나요! 제발 좀!”<br>“왜, 내가 일어나!”<br>“선배! 일어나 봐요! 나 좋아한다며! 대답 안들을꺼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좀 일어나 봐! 좀! 선배!”<br><br>지연이의 흔들거림에 결국 몸이 경사 길로 내동댕이치고 말았다.<br><br>지연이에게 저항하려 쏠린 무게 중심이 앞을 향하며,<br>이마부터 땅에 머리를 빻으려던 아찔한 순간,<br><br>나는 뜨고 있었던 눈이 다시 뜨임을 느꼈다.<br>마침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br><br>“선배? 선배 일어났어요?”<br>“뭐?”<br>“선배, 걱정했잖아요!”<br><br>세상은 한나절이었다. 해는 중천에서 한없이 빛을 쏟아내고 있었고,<br>비처럼 내리는 봄날 뜨뜻한 기운에 새싹들이 고개를 번쩍 치켜세우고 있었다.<br><br>지연이는 내 머리맡에 자기 허벅지를 내어준 채였다.<br>내 어깨를 감싼 손에서 미미한 떨림이 전해졌다.<br><br>“우리 여기 언제 왔지? 지연아. 언제 왔지?”<br>“뭘 언제와요. 아까 아침 댓바람에 선배 따라 온 거잖아요.”<br>“나 언제부터 누워 있었어?”<br>“몰라! 내가 향나무 좀 구경하고 있다 보니까, 쓰러져가지고!”<br><br>지연이가 나를 냅다 밀쳐내는 바람에 머리를 땅에 빻고 말았다.<br><br>그 어느 때 보다도 현실적인 감각.<br><br>“우리, 무슨 할머니 만났었나?”<br>“무슨 할머니요?”<br>“아니야.”<br>“무슨 소리해 진짜! 사람 불안하게!”<br>“우리 여기 얼마나 있었어?”<br>“두세 시간? 진짜. 핸드폰은 회관에 두고 오구. 선배는 졸도하구! 내가 진짜!”<br>“가자.”<br>“응? 사진은요.”<br>“사진이고 취재고 나발이고, 가자. 다 필요 없어.”<br>“미쳤어요? 편집장한테 어떻게 깨지고 싶어서 이래요!”<br><br>다짜고짜 지연이 손을 빼앗아 잡았다.<br>지연이에겐 사람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br><br>“야, 너 어디 아픈데 없지?”<br>“없는데요? 아, 선배 손은 좀 놓죠? 선배! 손은 좀 놓죠?”<br><br>담장 앞에 늘어진 기재들을 급하게 주웠다.<br>반은 달리다 싶게 걸음을 큰 폭으로 걸으니 지연이가 숨이 찬 듯 헐떡였다.<br><br>“아! 이 사람 왜 이래 진짜?”<br><br>회관 앞으로 도착하니, 내 승용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br>매번 똥차소리를 듣는 놈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br><br>“야, 회관 들어가서 니 물건 다 챙겨서 나와.”<br>“챙길 거 핸드폰 말고는 없어요.”<br>“아! 무튼 빨리 핸드폰 가지고 나와.”<br><br>차에 시동을 걸고, 차를 빠르게 선회시켰다.<br>오른쪽으로 존재하고 있을 향나무의 존재감이<br>가려진 시야에서도 극명하게 전해오고 있었다.<br><br>지연이가 보조석에 오르자마자 엑셀을 힘껏 밟았다.<br><br>“선배! 차 또랑에 빠지겠네!”<br><br>잘 달리지도 못하는 차 엑셀레이터를 있는 대로 눌러 밟아 5분 쯤<br>청송마을 입석간판이 순식간에 차 옆을 지나갔다.<br><br>“선배, 살살 가요! 뭐가 이리 급해?”<br>“야 두고 온 거 없이 다 잘 챙겼지?”<br><br>청송마을로 들어오며 지나쳤던 길들이 계속해서 옆을 스쳐갔다.<br>곧 있어 번화가로 통하는 2차선 도로가 나오고, 그 다음부턴 사람들이<br>북적대는 큰 동네가 나온다. 다 왔다 이제. 이제 곧.<br><br>“선배 이거 빠트릴 뻔 했잖아요.”<br>“뭘?”<br>“아! 선배 앞에 보고 운전해요!”<br>“뭘 빠트릴 뻔 했는데.”<br>“녹음기.”<br>“어?”<br><br>지연이가 자기의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br>검붉은 자국이 덕지하게 달라붙은 녹음기를 손에 쥔 지연이가 말했다.<br><br>“뭐야? 이거 녹음중인데요? 언제부터 켜놨지?”<br>“야! 그거 버려!”<br>“예?”<br>“그거 버려!”<br><br>지연이의 손에서 녹음기를 빼앗아 들었다.<br>녹음기에 묻어 있는 기분 나쁜 끈적임에 손을 타고 허리와 뒷목까지 소름이 돋쳐왔다.<br><br>멍청하게도 창밖으로 던지려던 녹음기는 내려가 있지 않았던<br>차 유리에 부딪히며 튕겨 나와 차 바닥을 굴렀다.<br><br>“야! 그거 주워서 버려!”<br>“왜 그래요! 아까부터 진짜!”<br><br>지연이가 소리를 빽하고 지르자, 귀가 멍멍해왔다.<br>싱 하는 귀의 울림이 다른 소음들을 전부 막는 와중에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br><br>볼륨 낮은 녹음기의 소리.<br><br>“사람 과일이 열매를 맺는다고, 인과. 그래서 인과목이라고 부르셨었지요.”<br>“향나무에서 열매가 맺어진다구요?”<br><br>할머니와의 대화. 이건 녹음되지 않았어야 한다. 녹음 될 수 없어야 하잖아.<br><br>“저 담장을 넘어간 사람치고, 저 나무에 목을 걸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어요.”<br><br>지연이는 자동차 밑에 떨어진 녹음기를 찾느라 헤매고 있었다.<br><br>“선배, 녹음기가 얼루 떨어진 질 모르겠어요.”<br>“지연아, 빨리 찾아, 제발 빨리.”<br>“그럼 차를 잠깐 세워 봐요?”<br><br>차를 세워?<br><br>“아! 찾았다!”<br><br>지연이가 녹음기를 들어보였다.<br><br>“이제 버려.”<br>“뭐야? 이거 내 목소리 아니에요?”<br><br>녹음기에선 지연이가 춥다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br><br>“좀! 버리라고 좀!”<br>“선배, 이거 이상해요. 이거 내 목소리인데.”<br><br>지연이가 녹음기의 볼륨을 높이며 녹음 된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br><br>“야! 형 말 좀 들어!”<br>“이거, 이상해요. 고장 낫나봐.”<br>“야!!!!!!!!!!!!!!!!!!!!!!!!!!!!!!!!!”<br><br>지연이가 내 귀로 녹음기를 붙여왔다.<br>녹음기 스피커가 찢어질 듯 볼륨이 올라간 상태에서 반복 된 음성이 재생되고 있었다.<br><br>“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br><br>정녕 나는 이곳을 벗어 날 수 없는 것인가.<br>녹음기의 음성을 들으며 자동차는 커다란 커브를 돌아 나왔다.<br><br>시야에는 이 전보다 키가 더 높아져있는 향나무가 보이고 있었다.<br>지연이가 신이 난 것처럼 내 귓가에 녹음기를 들이대며 웃었다.<br><br>“가긴 어딜 가 선배. 나 여기서 내려줘요. 응? 선배, 나 내려줘요. 나 좋다면서. 선배? 선배. 나 내려줘요. 저기 향나무 앞에서 나랑 같이 내려요. 나랑 같이 내려요.”<br><br><br><br><br>- 사람이 열리는 나무 완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