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옳은 일을 했다고 해도, 가끔은 그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span></p><p>이러면 안되는데, 이럴때마다 '그냥 못본 척 하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p><p><br></p><p>어젯밤에 있었던 일입니다.</p><p>저는 요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p><p>보통은 집근처 헬스장에서 웨이트와 유산소를 겸해서 하는 편이고,</p><p>가끔 퇴근이 늦거나 할 경우는 집 근처 한적한 동네공원에서 줄넘기나 달리기를 하는 편입니다.</p><p><br></p><p>어제는 퇴근이 무척 늦었습니다.</p><p>집에오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날씨도 궂어서 운동을 거를까도 했습니다.</p><p>그래도 '이왕 마음먹은거 제대로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p><p>집 근처 공원에 나갔습니다.</p><p><br></p><p>제가 사는 곳은 경기도 외곽의 전원주택단지 입니다.</p><p>요새는 근처에 대형아울렛이 생겨서 지역경제가 바뀌는 모양이지만,</p><p>아직까지도 이 동네의 지역생산의 <span style="font-size: 10pt; line-height: 1.8;">대부분은 농업이고, 서울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span></p><p>따라서 늦은 저녁이 되면 동네 전체가 고요해집니다. </p><p>시골이라는 특수성과 근처에 논과 밭 등 작물들 때문인지 보안등(가로등)도 어두운 편입니다.</p><p><br></p><p>아무튼 자정이 넘은 시간에 줄넘기를 하면, 이웃에 민폐가 될 것 같아 가볍게 -</p><p>셔틀런(구간반복 달리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쳐서 큰 길가 도로 경계석에서 쉬는 중이었습니다.</p><p><br></p><p>자정 즈음에 동네로 들어오는 막차를 끝으로 지역의 모든 대중교통이 종료됩니다.</p><p>아마도 그때 걸어오시던 여성분은 그 막차를 타고 오셨던 걸로 생각됩니다.</p><p>버스정류장에서 제가 있던 곳으로 오는 길은 특히나 더 어둡습니다.</p><p>어둡긴 하지만 길 자체가 꽤 넓은 편이고 인근에 집들이 많아서 딱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 길입니다.</p><p><br></p><p>멀찌감치 걸어오던 그 여성분의 얼굴은 유독 더 또렷히 보였습니다.</p><p>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걷기 때문이었죠. 얼굴만 둥둥 떠온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p><p>그 모습이 신기해서 한참을 보던 중, 그 뒤를 따르는 한 남성이 어스름하게 보였습니다.</p><p>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아무튼 어두운 계통의 정장을 입은 것으로 보였습니다.</p><p><br></p><p>별 생각없이 다시 공원으로 돌아가려는데, 좀 이상한 광경을 봤습니다.</p><p>걸어오던 여성이 무엇때문인지 갑자기 제자리에 섰고, 그 남자도 간격을 유지하며 제자리에 서는 것이었습니다.</p><p>그러다가 여성이 다시 걷자, 남자도 다시 걷기 시작하였습니다.</p><p>'아 이거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 공연히 나서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그냥 지켜만 봤습니다.</p><p><br></p><p>사실 제가 큰 키는 아니지만 덩치는 좀 있는 편입니다.</p><p>운동복의 하의와 상의 모두 검정색의 속건성 이너웨어(타이즈)였고, 모자까지 뒤집어 쓴 상태였습니다.</p><p>게다가 날이 꽤 쌀쌀해서 검은 짚업후드까지 입은 상태였습니다. 쫄쫄이 위에 짧은 반바지, 후드, 모자만 쓴 덩치 큰 남자.</p><p>이건 누가봐도 위협적인게 분명하지 않나요. 큰 키는 아니지만 일단 키도 180이 넘습니다.</p><p>괜히 나섰다가 오히려 그 여성이 위협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p><p><br></p><p>그렇게 여성이 제가 있는 곳 근처까지 무사히 왔을때는, '아 별일 아닌가보다' 싶었습니다.</p><p>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건, 그 남자의 구둣발소리가 멀리 앉아있던 저한테까지도 들렸지만 -</p><p>그 여성분은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겁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이어폰까지 꽂은 상태였던거죠.</p><p>이거 굉장히 위험합니다. 시각과 청각을 스스로 차단해버린거죠.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p><p><br></p><p>아무튼 그 상황에서 결국은 사단이 났습니다.</p><p>남자가 뒤에서 여성분을 덥쳤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제압당한 여성분은 차마 소리도 못지르고 있더군요.</p><p>제 잘못입니다. 제가 진작에 기척이라도 냈다면 그 남자는 범행을 포기했겠지요.</p><p>그 상황에서 나서지 못한 제가 잘못입니다.</p><p><br></p><p>이후 제가 나서서 남자를 제압했고, 그 여성분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재빠르게 도망갔습니다.</p><p>정말 빠르더군요. 흡사 우사인볼트가 뛰는 마냥 폭발같은 스퍼트로 금새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p><p>그 남자를 제압하는 것은 쉬웠지만 흉기가 있었던지라 제가 좀 다쳤습니다.</p><p>아마도 여성을 위협할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흉기였던 것 같습니다.</p><p>복장이 정장이었기에 제압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제가 너무 쉽게 본 것이 잘못입니다.</p><p>그렇게 허벅지에 흉기를 맞고, 범인을 놓쳤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분도 사라졌습니다.</p><p><br></p><p>범인을 현장에서 잡지도 못했고, 근처에 CCTV도 없는데다가 인상착의 또한 기억을 못하니 잡을래야 잡을수가 없지요.</p><p>혹시나 버스를 타고 온 것이 아닌가하여, 경찰측에서 버스 내 CCTV를 확인한 모양인데 그것도 아니라고 합니다.</p><p><br></p><p>아무튼 그렇게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오늘하루 병가를 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p><p>범인을 잡지도 못했고, 그 여성을 위험에서 구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출근도 못했고, 돈은 돈대로 썼네요.</p><p>그리고 오늘부터 또 한동안 운동을 못하고, 업무에도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p><p>분명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오늘 하루종일 질타만 받고 있는건지.. 절 보는 모든 사람들이 오지랖도 그정도면 병이라고 하네요.</p><p>어떻게 생각하면 한심하기도 하고, 종합무술을 배운 몸으로서 뜬금없이 칼을 맞았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p><p><br></p><p>뭐, 그래도 여성분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을 막아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합니다.</p><p>그 상황에 제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칼까지 들고다니는 범죄자가 설마하니 그 여성을 한번 안아보고 끝내진 않았겠지요.</p><p>허벅지 이거.. 딱히 큰 손상도 아니니 금방 아물 것 같습니다. 그러니 됐습니다.</p><p><br></p><p>하지만 범죄는 발생 이후의 대처보다는, 예방이 더 우선입니다.</p><p>늦은 시각, 특히 어두운 곳에서는 청각과 시각을 열고 주위에 집중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p><p>혹시나 늦은 시각에 퇴근하는 여성분이 계시다면 이 부분 꼭 알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p><p><br></p><p>호신술 별거 없습니다.</p><p>훈련을 잘 받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갑자기 뒤에서 덥치면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차라리 호루라기 하나 들고다니는게 낫습니다.</p><p>또한 근접한 상황에서의 동작은 아무래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유리합니다. 힘으로는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p><p>그러니 예방이 우선입니다. 스마트폰 그거.. 정말로 급한게 아니라면 집에가서 확인하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p><p>그리고 이어폰,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안전과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p><p><br></p><p>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p><p>늦은 시각에 한적한 길을 걸을 때는 스마트폰은 잠시 주머니에 넣어두시고, 음악을 듣지 말고 주위의 소리를 듣길 바랍니다.</p><p>여성분은 물론이고, 남성분도 마찬가지입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