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1995년 가을 쯤... 평화롭던 어느날 저녁...

우리 배 근처에서 항해 중이던 배에서 부임 온 지 얼마 안 된 이병이 사라짐.

밤새도록 십여대의 함정들이 샅샅이 수색을 했지만 찾지 못함.

새벽에 기지로 돌아가던 고속정이 바다에 표류하던 이병을 발견함.

건져놓고 보니 라이프 자켓을 입고 있음.

게다가 비닐봉지에 고기를 싸서 허리에 감고, 현금과 신분증이 있는 지갑은 랲으로 꽁꽁 싸매놨음.

알고보니 이놈은 실족이 아니라 바다 한가운데서 탈영을 했던 거임.

내연(기관)병인 이놈이 그날따라 CIC(전투정보 상황실)에 자주 들락거렸다 함.

전탐병인 자기 동기에게 수시로 가장 가까운 섬의 방위와 거리를 물었다 함.

그리고 가장 근접하게 될 때의 거리와 시간까지 물었다 함.

이놈은 그때를 기다렸다가 탈영을 했던 거임.

내 기억으로는 그때 거리가 대략 12마일(약 19km) 정도였음.

다들 죽으려고 환장했다고 했는데, 그놈이 입대 전에 수영선수를 했다는 말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

그날 이후로 출동 중인 함정은 저녁 8시만 되면 인원 파악을 해서 사령부에 전보로 보고를 하게 됨.

그냥 누구누구 있습니다가 아니라, 누구는 어디에 있고, 누구는 어디에 있고 이런 식으로 상세히 보고해야 함.

※ 비닐봉지는 두루마리로 돼서 칼로 끊은 다음 양쪽을 묶어서 쓰는 형태의 봉지였음. 그걸 허리에 감고 있었다 함.

※ CIC(Combat Information Center) 또는 CCC(Combat Comand Center)는 그 안의 모든 것이 기밀이기 때문에

상황실 근무자 등 인가자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곳임.

아마 그 배의 분위기가 좋아서 부임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병이 동기 보고 싶어 왔구나 해서 봐 줬던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