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r></p><div>나는 스물 여덟살이에요.</div><div>우리 아빠는 일흔 세 살이지요.</div><div>나는 우리 아빠랑 마흔 다섯살 차이가 나요.</div><div>아빠가 어렵게 어렵게 본 외동딸이에요.</div><div>우리 엄마는 내가 네 살 때 돌아가셨어요.</div><div>나는 나이 많으신 할머니랑, 고모가 키워주셨어요.</div><div><br></div><div>우리엄마는 나를 낳고부터 몸이 안 좋았다고 하는데</div><div>엄마는 엄마가 빨리 죽을 걸 알고 있었나봐요.</div><div>난 어릴 때 엄마랑 찍은 사진이 아주아주 많아요. 엄마랑 찍은 사진만 앨범으로 두권이에요.</div><div>그래서 우리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어요.</div><div><br></div><div>내 유치원 입학식 때 쉰이 넘은 우리 아빠는 내 손을 꼭 잡고 입학식에 데려가 줬어요.</div><div>그리고 내가 아이들한테 따돌림을 당할까봐서 그 뒤부터 학부모 면담은 늘 고모부가 왔어요.</div><div>우리 고모부도 정말 좋은 분이에요. 굳이 나를 위해서 그렇게 안 해도 됐는데</div><div><br></div><div>그래도 초등학교 운동회부터는 아빠 손 잡고 달리기도 하고</div><div>고모가 싸 준 도시락으로 소풍도 가고 그랬어요.</div><div><br></div><div>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빠가 할머니한테 어머니 우리 딸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div><div>나는 그래서 할머니 무덤에 엉엉 울어서 울었었고요. 이번 추석에 성묘하러 가서 할머니 무덤에다가</div><div>내가 만든 송편도 놓고, 내가 깎은 사과도 놓고, 내가 만든 전도 놓고 그러고 왔어요</div><div>할머니 무덤에 절 하면서 할머니 할머니 우리 아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라고 했어요.</div><div><br></div><div>나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시골에서는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서 지금은 서울에 있어요.</div><div>주말마다 아빠한테 내려가서 아빠랑 놀고, 아빠네 집 텃밭에다가 오이 심고 가지 심고 토마토심고 파도 심고 고추도 심고</div><div>감자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호박도 심고 무도 심고 배추도 심고.... 이것저것 조금조금씩 잔뜩 심어다가</div><div>그걸로 아빠한테 반찬도 만들어 주고 김치도 담가주고 그래요. 엄마역할을 해 주던 고모도 나이가 많으시니까요.</div><div><br></div><div>우리 아빠는 내가 스물 여덟살이라고 남자친구는 없니 결혼은 어쩔거냐 물어봐요.</div><div>남자친구가 있긴 했는데 헤어졌는데. 그냥 때 되면 하겠지 라고 하고 말았어요.</div><div>주말마다 아빠 만나러 가는 여자친구랑 데이트도 못하고,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바람나더니 헤어진 놈인데</div><div>그런놈을 남자친구라고 데리고 있었다고는 말 못하겠더라고요. 우리 아빠 속상할까봐.</div><div><br></div><div>우리아빠는 왼 손 손가락 두개가 없어요</div><div>어릴 때 마당 감나무에다가 내가 타고 놀 그네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다가 나무를 자르다가 손가락도 잘랐어요.</div><div>아빠는 병원에 다녀 와 놓고서도 결국 그네를 만들어 줬어요. </div><div>어린 나는 그네 타고 놀 줄만 알았지 아빠 손가락이 나 때문에 없는 것도 몇 년 전에나 알았어요.</div><p>아빠 손을 잡고, 깍지 끼고 걸으면 아빠는 손을 자꾸 빼려고 해요. 그럼 나는 미안해서 더 꼭 잡아요.</p><p><br></p><p>우리 아빠는 주말마다 내가 온다고, 불편한 몸으로 방도 치우고, 닭잡아 준다고 닭도 잡고</p><p>늘 큼지막한 다리 두개 나 먹으라고 떼어주고 그래요. 그럼 나는 나 하나 아빠하나 이렇게 나눠 먹어요.</p><p><br></p><p>고모가 아빠 재혼하라고 했는데, 아빠가 이제 나도 다 컸는데 뭐하러 그러냐면서 괜찮다고 그랬어요.</p><p>그 때는 새 엄마 생기는 게 싫어서 아빠가 그렇게 말 해주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p><p>아빠도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매일 매일 옆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 때 누구라도 만나 재혼했으면 좋았을걸.. 이런 생각이 드네요.</p><p>아빠가 저렇게 혼자 외롭게 보내시는 걸 보니 다 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요.</p><p><br></p><p>어릴 때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 아빠는 연금 받아서 사셔야 하고 나도 박봉의 월급인지라 보태줄 돈도 없고</p><p>기름값도 무시 못하는 형편이고.... 그래도 시골엔 버스가 많이 없어서 여기 저기 다니려면 차가 있어야 하는데...</p><p>아빠 이제 눈도 잘 안 보이시고 그러신다고 하셔서, 오늘 운전면허학원 등록하고 왔어요. </p><p>면허증 따서 운전 연습 해서, 이제 내가 아빠 데리고 여기 저기 다니려고요. 가을에 단풍놀이는 못 가도, 봄에 꽃구경은 가겠죠.</p><p><br></p><p>추석에 아빠가 요즘 몸이 자꾸 아프다고 해서... 연휴가 끝나면 납골당에 가 보려고 한다고 했어요.</p><p>아빠 죽으면 납골 할 납골당이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펑펑 울었더니 아빠가 씩 웃으면서</p><p>내가 나이가 일흔이 넘었는데 이제 준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요. 나는 우리 아빠가 오래 오래 내 옆에서 살았으면 좋겠는데</p><p>내 집에 와 있으라고 해도 너도 불편할텐데 어떻게 그러느냐고 하고, 평생 시골에서 살아서 도시는 불편하다고 하고</p><p>나는 아빠가 전화라도 조금만 늦게 받으면 무슨 일 생긴건 아닌가 걱정돼 죽겠는데</p><p><br></p><p>아빠가 내 옆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p><p>내가 정말 좋은 남자친구 사귀고 결혼하고 애기 낳고 그러면 내 아기 앉고서 어떻게 돌보는지 보여주면 좋겠어요.</p><p>그럼 그거 보면서, 아빠가 어릴 때 나 그렇게 키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거 아니에요?</p><p><br></p><p>아빠가 자꾸 몸이 아프다고 해서 속상해요</p><p>면허학원 수강증 앞에 놓고 속상해서 소주 한 병 마시고 넋두리 썼어요ㅠㅠ</p><p><br></p><p>엄마가 아빠를 늦게 데려가면 좋겠어요.</p><p>아빠가 전화해서 내 이름 불러주면서 뭐하니? 하고 물어주는 게 아직도 너무 좋단 말이에요ㅠㅠ</p><p><br></p><p><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