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BR><BR><BR>늦더위가 기승인 9월의 중순. 관광객이래야 맞을지 순례객이라야 맞을지 모를 손님들의 행렬은 여전했다.<BR>깔딱거리며 빙글뱅글 도는 선풍기 소리가 귀에 익숙해지려고 할때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BR><BR>"여...부세요?"<BR><BR>아이와 같은 앳된 여자 목소리.<BR><BR>"네, 그랜드 호텔입니다."<BR><BR>"저, 404호실. 예약하고 싶은데요. 3명."<BR><BR>404라는 숫자의 상징성, 아내는 장사수완에 있어서 나보다 한결 센스가 있었던 것일까.<BR>사람들은 404호실의 마력에 빨려오는 듯 단 반나절도 예약이 비는 날이 없었다.<BR><BR>심지어 예약을 기다리기 위해 일부러 다른 방에서 하루 이틀씩 투숙을 하며 기다리는 부류의 사람들까지 생겨났다.<BR>사람들은 각종 고성능의 사진기와 캠코더를 손에 손으로 쥔체 정문부터 모텔을 프레임 안에 담는 것에 분주했고<BR>그 프레임 안에 담기는 화면 속에서 오래되고 후진 나의 모텔은 귀신이 나오는 모텔의 모습으로써 더욱 안성맞춤인<BR>존재감과 낡은 모습을 갖고 있었다.<BR><BR>그래서였을까.<BR><BR>귀신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만 갔다.<BR><BR>어째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까. 혹여나 싶어 404호실에서 하룻밤을 자볼까<BR>생각도 해봤지만 밀려드는 예약을 취소하는 것은 여의치가 안았다.<BR><BR>최근들어 원래 하룻밤 단가가 높았던 우리 모텔은 하루 숙박비가 십만원을 넘겼고 가격높은<BR>숙박비에는 아랑곳 안는 귀신마니아들의 만원사례로 사상 이례없었던 귀신특수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BR><BR><BR>잠자리에 들며 눈을 감고 고른숨을 내쉬는 아내의 콧잔등을 잠시 바라보았다.<BR><BR>"자기는 봤어?"<BR><BR>아내가 대뜸 입을 열었다.<BR><BR>"귀신?"<BR><BR>"음."<BR><BR>"아니 못봤지. 자기는 봤어?"<BR><BR>"아니..."<BR><BR>아내는 대답을 하더니 등을 돌려 누웠다.<BR>그리곤 수여분이 지났을까.<BR><BR><BR>아내가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BR><BR><BR><BR>새벽시간 모텔 카운터를 지키며 컴퓨터 자판을 끄적였다.<BR><BR>이제 대형 포털사이트에 '그랜드 호텔'을 검색하면 블로그 글 뿐이 아니라<BR>마니아층에서 형성된 팬들이 모여 그랜드 호텔의 카페까지 개설한 상태였다.<BR><BR>의외로 카페의 회원수는 3000명을 넘긴 상황이었고 최근 개설된 탓인지 게시판의 활동도 상당히 활발해보였다.<BR><BR>그곳에서 나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랜드 호텔 방문후기' 게시글들로 그 게시판에는<BR>그들이 목격했다는 귀신의 상세한 특징들이 여러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 뚜렷하게 일치하고 있었으며<BR>더욱 놀라운 것은 404호실 외에 4층 복도에서도 귀신이 목격된다는 것이었다.<BR><BR>목을 맨 남자가 때로는 소릴치고 때로는 웅얼거리는다는데 사람들은 그때마다 가위에 눌려<BR>귀신이 사라질때 까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404호실의 귀신은 사진이<BR>단 한장도 없고 미리 설치된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찍힌 영상에도 그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BR><BR>404호실의 귀신은 사진이나 영상에 잡히질 않는 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이야기였다.<BR>조금 더 스크롤을 내리며 보게된 4층 복도에서 목격 된다는 귀신의 사진들.<BR><BR>벌거벗은 여인의 뒷모습들, 여인은 뒷짐에 시퍼렇게 빛을 띄는 칼을 들고 서있었다.<BR>날개뼈 중간만치 오는 검은 머리칼, 뒷모습에서도 어렴풋 보이는 도드라진 쇄골의 윤곽<BR><BR>오른쪽 옆구리에 선명히 보이는 지워질 것 같지 않은 깊고 거친 선이 드리운 칼자국.<BR><BR><BR>"뭘 그렇게 봐?"<BR><BR>뒤에서 갑자기 입을 연 아내를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니<BR>아내는 태연한 얼굴을 하며 벌거벗은 체로 칼자루를 가만히 싱크대에 얹어두었다.<BR><BR>오른쪽 옆구리에 박힌 긴긴 칼자국...<BR><BR>"너 뭐하는거야?"<BR><BR>아내는 어리둥절하다는 듯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BR><BR>"뭘? 뭘, 뭘하냐는 거야?"<BR><BR>"옷도 안입고 뭐하는 거냐고? 칼들고 어디 갔었어?"<BR><BR>"어딜가긴, 자기도 지금 인터넷에서 읽었잖아."<BR><BR>"무슨 소리야?"<BR><BR>"자기 진짜로 안보이는 구나?"<BR><BR>"뭐?!"<BR><BR>"그 새끼야."<BR><BR>"..."<BR><BR>점점 아내의 눈이 커지며 작은 눈물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했다.<BR><BR>"그 새끼라고..."<BR><BR>"..."<BR><BR>"왜 말이 없어? 나 만났어. 청소 할때마다 만나. 매일매일 만나고있어. 매일 목매달고 나한테, 그 새끼가 나한테..."<BR><BR>나는 아내에게 달려들어 아내를 세게 부여 안았다.<BR><BR>"그 새끼가 나 죽여버리고 싶데, 날 살려준게 실수래. 나랑 한번만 더하면 소원이 없겠데. 여보, 여보 나, 나, 불안해서 잠이 안와."<BR><BR>아내가 품에 안긴체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이 베여가는 옷자락 위로<BR>아내의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내 옷을 부여잡은체 놓을 생각을 못했다.<BR><BR>"문 닫자..."<BR><BR>아내를 웅켜안은 내 손에도 점점 힘이 들어갔다.<BR><BR><BR>그 새끼...<BR><BR>아내가 장기투숙을 하며 몸을 팔던 시절이었다. 그 새끼, 선한인상의 눈매가 뚜렷한 호남형의 장정.<BR>말끔한 청바지 차림을 한 그는 내게 502호실의 위치를 물어 왔었다.<BR><BR>그리고 수시간이 지난 이후 새벽, 카운터로 객실전화가 연결되었다.<BR><BR>떨렸던 아내의 목소리, 내가 방으로 발을 옮겼을때는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BR>아내는 소리죽인체 울며 온몸에 타올을 둘러매어 허리춤에 흐르는 피를 눌러막고 있었고,<BR>그 남자는 대형 실링팬에 몸을 의존한체 목을 매곤 대롱거리고 있었다.<BR><BR>나도, 아내도 그곳에서 성매매가 이루워졌었다는 것을 경찰에 알리기엔 부담이 컸다. 나는 암묵적으로<BR>그녀의 성매매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범죄였다. 그녀의 크나큰 동조자.<BR><BR>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는 모텔을 장기간 닫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BR>나는 그의 시신을 여러쪽으로 갈라야한다는 결심을 했다.<BR><BR>다음날 밤 나는 세자루의 큼지막한 검정색 비닐봉지를 모텔 뒷산에 묻었다.<BR>땅을 충분히 깊게 파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아직 늦겨울이었던<BR>날씨 때문인지 삽자루는 쉽게 땅바닥으로 들어갈 생각을 안했다.<BR><BR>아내의 상처에선 피가 상당히 흘렀지만 병원에 가지 않은체 자연히 살이 붙는 것을 기다려야했다.<BR>장기에 닿지 않을 만큼 얕았던 것이 다행이었다만 흉은 지워질 수 없이 짙게 베어갔다.<BR><BR>그 이후 두달여쯤 후 TV뉴스에서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BR><BR>성매매녀를 노린 연쇄살인. 과학수사로 인해 발켜진 지문조사 결과 용의자가 거의 확실시 되었으며,<BR>범행도구와 범죄자의 위치를 찾지 못했으나 신원을 확인해 추적중에 있다는 뉴스였다.<BR><BR>화면을 꽉체운 그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내가 웅얼거렸었다.<BR><BR>"나는, 이제 죽일 가치가 없데요. 그냥 살려 주겠데요..."<BR><BR>뱃가죽에 붙은 살들이 거진 다 아물었음에도 이따금 쑤셨는지 옆구리를 슬슬 쓸어내렸다.<BR>내가 아내와 결혼을 하게된 것은 어떻게 보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BR><BR>아내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게 된건 그로부터 반년 이후였다.<BR><BR><BR>모텔을 팔기로하고 한달. 예약은 끊임이 없었지만 모텔방은 요즘들어 조금씩 빈방이 생기기 시작했다.<BR>그도 그럴것이 하룻밤 숙박비를 이십만원으로 올렸기 때문이다.<BR><BR>귀신 성수기, 마니아들의 광적인 집착은 몇십만원의 숙박비에는 아랑곳 안았다.<BR><BR>바보같은 건지 열정적인건지 알 수 없는 귀신마니아들은 주인이 돈에 미쳤다는 둥 독한 소리를 뱉었지만<BR>모텔을 찾는 발길이 끊일 줄을 모르며 집안의 통장잔고는 날로 늘어갈 뿐이었다.<BR><BR><BR>404호실의 청소는 언제나 내 담담이 되었다만<BR>어째서인지 내 눈에는 아직도 그 놈이 보이질 않았다.<BR><BR>청소도중 천정에 걸린체 멈춘 실링팬을 지긋히 한참을 바라보았지만<BR>역시나 목을 매단모습의 귀신따위는 나에게 보이질 않았다.<BR><BR>그리고 얼마 후, 방송국에서 찾아들었다.<BR><BR>리포터로 보이는 아리따운 아가씨와 그 뒤로 보이는 열댓의 스탭들,<BR>이미 카메라를 들고 스탠바이중인 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BR><BR>"하룻밤 까지는 아니구요. 그냥 잠깐 한,두시간정도 취재해봐도 될까요?"<BR><BR>새로생긴 종편방송의 심령코너에서 나온 취재.<BR><BR>내가 다른 것을 따지지도 안은체 돈에대해 묻자<BR>그들은 잠시동안의 촬영이라기엔 놀랄만큼의 금액을 제시했다.<BR><BR>404호실의 예약을 두시간 미루며 대기손님에게 남는 방을 무료로 제공했다.<BR>방송취재란 말에 대기객들은 호쾌히 대기를 승낙하며 방으로 사라졌다.<BR><BR>아내는 고개를 좌우로 가르며 촬영엔 참가하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부했으나<BR>결국 404호실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조건하에 촬영을 하게되었다.<BR><BR>리포터는 모텔 정면에서부터 모텔 카운터, 계단, 복도 순으로 촬영을 전개해갔다.<BR><BR>별것없는 계단에서 일부러 겁이나는 듯 호들갑을 떠는 모습과<BR>카메라가 꺼진 후 담담해 하는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만들만큼 판이했다.<BR><BR>404호실에 들어선 나와 리포터<BR><BR>원룸형 모텔에 촬영이랄 것이 무엇이 있으랴. 화장실과 객실을 한방퀴 빙둘러<BR>촬영한 그들은 내게 집요한 질문을 삼십분정도 하고선 촬영을 접었다.<BR><BR>기대하던 귀신은 나타지 않았다.<BR><BR>"이거 언제 방송되요?"<BR><BR>내가 묻자 리포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촬연전의 나긋한 모습은 사라지고<BR>눈발이 날릴 듯 퉁명한 표정을 하며 뒤돌아 스탭들에게 웅얼거렸다.<BR><BR>그러자 한 스텝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BR><BR>"이거 모래 밤 열한시면 방송이에요."<BR><BR>통장입금을 확인한 스텝들은 분주히 촬영장비를 챙기곤 사라져 갔다.<BR>촬영팀들이 모여 만들어 놓은 담배꽁초들이 널부러진 땅바닥을 치울까 고민하다 그냥 카운터로 발을 돌렸다.<BR><BR><BR>"너도 볼래?"<BR><BR>아내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카운터룸에 이불을 깔았다.<BR>10시 55분 얼마안있어 방송이었다.<BR><BR>TV의 전원을 켜자 <BR><BR>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광고화면 오른켠 위로 <특집>이라는 선명한 빨강글씨가 눈을 사로잡았다.<BR>얼마후 특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충격적인 화면이 약 삼십분간 흘러 나왔다.<BR><BR>귀신은 내 눈에만 안보였던 것이 아니었다. 카메라에 분명히 담긴 귀신의 모습은<BR>나의 옆과 나의 등 뒤에서 정신산란히 움직이고 있었고 내 시선을 교묘히 피하며 그것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BR><BR>또 귀신은 내 시선에서 벗어난 틈을타 리포터의 몸을 더듬거나 핥으며 농락하고 천장에 올라 붙었다.<BR>벽구석 이쪽저쪽으로 순식간에 들러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 아닌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BR><BR>방송 마이크의 담긴 귀신의 선명한 목소리가 TV를 통해 카운터룸을 시끄럽게 울리는데도<BR>아내는 아랑곳 안는지 안들리는지 곤히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BR><BR>나는 정신을 빼앗긴듯 TV화면에 몰두해 귀신이 소리치는 반복적인 말을 듣고 있었다.<BR><BR>"야!! 야!!!! 이 새끼 창녀랑 결혼했어!!! 이 새끼 마누라 창녀야!! 내가 돈주고 따먹었어!!! 야!!!! 크하하하 야!!!!<BR>이 개새끼, 야!! 이 새끼가 나 토막내서 나 저기 옆 산에 갔다 묻었어 이 씨발새끼. 야! 야!!!! 야!!!!!!!!!!!!!!!!!!!!!!!!!!!!!!"<BR><BR>한참을 TV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BR><BR><BR>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BR>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BR>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BR><BR><BR><BR>마지못해 수화기를 집어들자. 알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BR><BR><BR><BR>"404호실 예약하고 싶어서 전화했는데요."<BR><BR><BR><BR><BR>-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