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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519538
    작성자 : 형아거긴앙돼
    추천 : 32
    조회수 : 3067
    IP : 121.163.***.93
    댓글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8/28 14:11:58
    원글작성시간 : 2012/08/27 18:26:44
    http://todayhumor.com/?humorbest_519538 모바일
    그사람의 인생을 보면 대통령 자격이 보인다 박근혜의 생애
    박근혜는 1952년
     2월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에서 육군본부 작전‧ 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부인 육영수
    의 딸로 태어났다. 육영수
    에게는 첫 딸이었으나 아버지 박정희는 이혼경력과 전처소생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에게는 차녀가 된다. 형제자매로는 언니 박재옥
    과 동생 박근령
    (훗날 박서영으로 개명), 박지만
    이 있다.
    아버지인 박정희
    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5.16 군사 정변
    에 참여하고 육군
    대장
    에 이르렀다. 어머니 육영수
    는 소학교 가정교과목 교사였는데, 충청북도
     옥천군
    의 대 지주인 육씨 가문의 딸이었고, 외할아버지육종관
     역시 대농토와 수많은 하인과 첩을 거느린 대지주였다. 외할아버지 육종관
    은 박정희
    를 사위로 삼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외할머니 이경령과 어머니 육영수
    가 박정희
    의 대구 관사로 가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가 태어났을 무렵 아버지인 박정희
    는 겨우 여순 사건
    의 회오리를 벗어나 대구
    에 집을 마련한 상태였다. 이후 한국 전쟁
    이 끝나자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서울
    로 올라와 유년기를 보냈다.
    서울
     장충초등학교를 다녀 1964년
     2월
     졸업했으며,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아들이던 정몽준
    은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2]
    [3]
     그 뒤, 성심여자고등학교
    를 졸업했다. 1974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귀국과 퍼스트 레이디 대역육영수 피격 사건, 10.26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후 그는 프랑스
    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
    가 피격으로 사망했다는 급보를 접한다.
    어머니 육영수
    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 육영수 사후 아버지 박정희
    는 재혼하지 않았고 그는대한민국
    의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였다. 어머니가 사망한 1974년
    부터 대통령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한1979년
     10월
    까지 퍼스트 레이디
    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1975년
    부터 최태민의 권유로 새마을 운동
    에 참여하였다.[4]
     또한 박정희가 추진한 새마을 운동
    의 일환인 새마음 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사회사업양친의 서거 이후
    박정희
    가 암살되자 그는 의연하게 대응하였고, 며칠 뒤 청와대
    를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아버지와 어머니인 박정희
    와 육영수
     양친이 서거한 후 남동생인 박지만
    은 2002년
    까지 사창가
    와 여관
     등에서 윤락녀와 어울리며 상습적인 마약
     투약에 빠져 지내었다.[5]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 1994년
     정수장학회
     등을 물려받아 운영하였다.박근혜와 최태민
    박근혜는 어머니인 육영수
    가 서거한 다음 해인 1975년
    에 위로, 격려편지와 전화를 준 최태민
    이라는 목사를 알게 된다.[6]
    한국
    의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
    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박근혜와 최태민이 만난 시점은 1975년
     3월 6일
    이라고 한다.[7]

    이후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관계를 내세워서 기업인
    을 자신이 운영하던 구국봉사단의 운영위원으로 위촉하고, 이들로부터 1인당 2천만~5천만원의 입단 찬조비나 월 200만원의 운영비를 받았다.[8]

    이에 대해 박정희
    가 대통령
    이었을 당시 공보비서관을 지낸 선우연은 2005년
     11월
     월간조선
    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1977년
     9월 12일
     밤 박정희가 물의를 일으킨 최태민을 거세하고, 최태민과 관련된 구국봉사단도 해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자신의 비망록을 공개하였다.[6]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
    는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판결을 받았고, 김재규의 변호인은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 '항소이유서'와 '항소이유 보충서'를 군법회의 측에 제출하였는데, 이 두 서류에 992자 분량으로 최태민 관련 내용이 작성되어 있다.
    김재규 측은 10·26 사건
    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거의 하나로 최태민을 거론하였고, 김재규 변호인 항소이유서의 밝힌 최태민 관련 전문은 아래와 같다.
    피고인(김재규 본인)은 1975년 5월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있는 최태민이라는 자가 사이비 목사이며 자칭 태자마마라고 하고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이 있는데다 여자들과의 추문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런 일을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더니 박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그런 것까지 하냐?’ 하면서 반문하길래 피고인으로서는 처음에 대통령의 태도를 보고 놀랐으며, 대통령은 큰딸인 박근혜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나 근혜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여 대통령이 직접 조사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조사 후에 최태민이란 자를 총재직에서 물러나게는 했으나 그후 알고보니 근혜가 총재가 되고 그 배후에서 여전히 최태민이 여성봉사단을 조종하면서 이권개입을 하는 등 부당한 짓을 하는데도, 박 대통령은 김 피고인의 ‘큰 영애도 구국여성봉사단에서 손떼는 게 좋습니다. 회계장부도 똑똑히하게 해야 합니다’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도 있어서, 대통령 주변의 비위에 대하여 아무도 문제 삼지 못하고 또 대통령 자신 그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9]

    그리고 김재규 변호인은 '항소이유 보충서'에서 아래와 같이 최태민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 비서관조차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9]

    김재규 측에 이러한 증언과 관련하여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파견되어 최태민을 수사를 하였던 백광현은 김재규가 10.26 후에 10.26의 명분으로 주장한 최태민 사건은 김재규가 억지로 10.26의 명분으로 주장하였을 뿐이라고 증언하였다.[10]

    이후 최태민은 활동이 문제 삼아져서 1980년
     초 신군부
    에 의하여 활동을 못하도록 잠시 강원도
    로 보내졌다.[8]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고, 최태민도 육영재단에 합류하였다. 이후 박근혜와 최태민은 함께 1989년
     육영수를 추모하는 단체인 근화봉사단을 조직하였고,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모하는 월간 신문인 근화보도 발행하였다.
    1년 뒤인 1990년
     9월
     근화보는 1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였고, 박근혜와 여동생인 박서영
    과의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이 시작되었다. 박정희, 육영수 숭모회에 따르면 다툼의 원인은 최태민이 박근혜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육영재단의 운영을 전횡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시 육영재단의 간부는 1987년
     9월 2일
     어린이회관 노조원들이 외부세력 물러가라며 1주일 동안 농성하였던 것은 최태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또 '특별한 직책도 없으면서 육영재단 운영을 좌우해온 최태민을 싫어하면서도 박근혜와 막역한 관계 때문에 어느 누구도 기를 펴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에 박근혜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 퇴진 기자회견에서 아래와 같이 밝히었다.
    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 목사는 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11]

    이 때 박근혜의 여동생과 남동생인 박서영
    과 박지만
    은 최태민이 언니인 박근혜를 속이고 있으니 구해달라며,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
    에게 A4용지 12장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 [12]

    최태민은 1994년
     사망하였으며, 이후 박근혜는 언론
    에서 최태민에 대하여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라며 두둔하였다.
    이에 논객인 조갑제
    는 '박대표는 한번 믿어버린 사람
    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를 안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라고 말하였다. 한편 박근혜관련 의혹을 파헤친 '안철수등의 한판승부-박근혜벗기기'(이상윤
     저, 높은새 출판사 ISBN 978-89-93989-04-5
    )의 박근혜 남자문제편에 따르면, 2011년 12월 현재 당시 박근혜와 최태민 관련을 조사했던 중앙정보부 백광현검사와 신모 수사관은 살아있다고 한다[13]
    . [14]
    1980년대
    1980년
     구 민주공화당
     인사들과 유신정우회
     인사들이 한국국민당
    을 창당했고, 1987년
    에는 김종필
    을 중심으로 다시 신민주공화당
    이 출범하였으나 모두 참여하지 않고 관전했다.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 1994년
     정수장학회
     등을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이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정치적 발언은 삼가하며 육영재단
    과 정수장학재단 일에 전념하다가 1988년
     당시 민자당
     총재인노태우
    의 정계 입문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러나 육영재단
    이나 정수장학회
    , 영남대학교
     재단 운영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고 후일 그가 한나라당
     대표나 2007년
     유력 대선 주자로 나올 때마다 수시로 의혹이 제기 되었다.정치 활동정계 입문 초기정치 입문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었지만 정치 입문은 하지 않던 박근혜는 1998년
    에 한나라당의 후보로 대구광역시
    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에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과 미혼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 등으로 국회의원 후보 출마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출신 성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진영 및 영남, 어머니인 육영수의 고향인 충청지역의 지지를 얻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200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염두에 두고 한나라당에서 탈당 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15]
    했었으나 비젼이 없자 대선 전에 복귀했다.
    2002년
     5월 12일
     북한
    을 방문, 1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회담을 하고[15]
    5월 14일
     서울로 돌아왔다.[15]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과 당 대표
    2004년
     3월 12일
    , 한나라당
    이 다수(133석/273석)이던 16대 국회
    에서 한나라당은 새천년민주당
    과 함께노무현
     대통령을 탄핵 소추
    하려고 단식농성을 했다. 비슷한 성향의 언론과 학계의 지원이 있었으나 한나라당은 국민의 외면을 받고 물거품이 되었다. 차떼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유례없는 급락으로 최병렬
     대표마저 사퇴하게 된다.
    한나라당이 '역풍 위기'에 처했을때, 착실하게 당 내에서 입지를 쌓고 있던 박근혜가 그의 뒤를 이어 3월 23일
     당 대표가 되었다.[16]
     기존의 다선의원, 중진의원, 운동권
    에서 포섭해 온 세력 등과 다르게 박근혜는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사죄를 표명했고, 17대 총선
    에서 한나라당은 원내 1당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121석을 차지하여 예상 외의 선전을 하였다. 이로써 '역풍위기'에서 박근혜가 한나라당 구해낸셈이다. 이때부터 박근혜는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잠재적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됐다. [17]

    6월 13일
     오전 신라호텔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5주년기념 기념 학술회의에 다녀오기도 했다.[18]

    2005년
     12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학법을 직권상정해 처리했다. 당시 대표인 박근혜는 곧바로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 내부에조차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한나라당이 무슨 장외투쟁이냐”는 비아냥도 있었고, 국회 등원에 대한 여론의 압박도 심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장외투쟁을 계속했고, 결국 여야는 한나라당의 장외투쟁 3개월 만에 사학법 재개정 논의에 합의하게 된다. 박근혜 대표는 주변의 반대와 한나라당의 체질이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재개정을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됐다. 2004년 17대 총선의 ‘한나라당 천막당사’ 역시 “쇼 아니냐”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상징물로 기억됐다.[19]

    국회의원 선출
     선거 승리를 위한 한시적 당대표가 될 것이라는 일부 예상을 깨고 오랫동안 당대표 자리를 지켰다.

    박근혜 피습사건
    2006년
     지방선거에서 지충호
    가 휘두른 문구용 칼에 베어 얼굴에 심한 상처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당원들에게 선거 판세를 물어보는 모습을 보여 당 안팎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 사건의 상세한 전말을 밝힌 2011년 12월에 출간된 이상윤
    저 '안철수등의 한판승부-박근혜벗기기(ISBN 978-89-93989-04-5
    )'에 따르면, 당시 지충호는 사건당일인 2006년 5월 20일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 신촌에 와서 4시간 가량을 기다리다가 오후7시 20분경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선거유세를 위해 도착한 박근혜에 대해 지원연설 목적으로 단상에 오르는 찰나 박근혜의 목을 문방용 카터칼로 공격을 가했다. 당시 공격으로 박근혜는 11센티에 걸쳐 귀아래부분에서 턱부근까지 그어졌고 최저 1센티에서 최고3센티 깊이의 자상을 입었다.[20]

    박순천
    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여성 당수가 된 그녀는 선거 승리를 위한 한시적 당대표가 될 것이라는 일부 예상을 깨고 오랫동안 당대표 자리를 지켰다.2007년 대선
    2007년 4월 미국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면담
    2004년부터 한나라당의 위기와 재도약을 이끈 박근혜는 2007년 대선의 유력한 예비후보 중 하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당권과 대권의 분리 방침에 따라 2007년 대선을 1년 남긴 2006년
     6월 16일
    에 대표직을 사퇴하고 대선에 돌입했다. 박근혜의 가장 큰 상대는 서울시장
    을 지냈으며, 그 과정에서 청계천
     복원, 버스노선 개편 등으로 인기를 끈 이명박
    이었다. 본격적인 대선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고 박근혜는 이명박의 부패 비리 의혹을 집중 제기하였다. 이 과정에서 BBK 주가 조작 사건
     등이 처음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2007년 당시 인사검증 청문회를 받았다. 이때는 그동안 박근혜가 정계 입문 이후 제기되어왔던 각종 의혹이 모두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전두환 자금 6억원 수수설 등 일부는 시인했으나 일부는 부정, 비판하였다. 이를 두고 朴, 곤란한 질문에는 이리저리 답변 피했다[21]
    는 비판도 있다.
    열린우리당 윤호중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돈이 9억이 아니라 6억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을 빼고 하나도 새롭게 검증된 것이 없는 청문회였다”면서 “국민이 궁금해 하는 후보의 자질의혹을 검증하기보다 면죄부와 해명기회만을 준 시간이었고 후보자의 맷집만 훈련시킨 청문회였다고 평가한다”고 주장했다.[22]
     민주노동당 김형탁 대변인은 “정치쇼에 불과하다”면서 “하나마나한 청문회, 시간낭비, 전파낭비일 뿐”이라고 깎아 내렸다.[22]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전화상 1표를 실제의 5표로 환산한 여론조사에서 뒤져 이명박에게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 표의 등가성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일었으나, 박근혜는 깨끗이 승복함으로써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이명박이 선출되었다. [23]
     하지만, 논란의 연장선상으로 이후에 대선 후보 자리를 박근혜에게 양보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24]
    이명박 정부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한나라당 내부에는 친이명박 계열과 친박근혜 계열의 논쟁이 있었다. 한나라당 내에서 친박계 의원들의 숫자는 2011년 6월 현재 비공식적으로 90~1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25]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를 직접적으로 도와준 이재오
    , 이방호
     등이 한나라당의 주요 직책을 맡았으며, 상대적으로 박근혜 계열의 정치인들은 홀대를 받았다.
    2008년 총선
    에서 이재오, 이방호 두 명은 적극적으로 이명박 계열의 정치인들을 후보로 내세우고, 공천
    에서 박근혜 계열의 정치인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박근혜는 이에 대해 공천의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수차례 비판하였으나 공천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다.
    박근혜는 이에 대해 "한나라당 공천이 잘못돼 가고 있고, 기준도 없는데다 엉망"이라고 격앙했다. 또 "오로지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공정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BBK
     이야기를 한 사람은 공천에 안 된다는 둥 살생부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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