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우 칼럼] 만장일치로 현영희 제명… 박근혜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새누리당이 이상하다. 거대 정당이 군소리 하나 없이 움직인다. 현영희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는 날 새누리당은 의원총회에서 현 의원을 제명 처리했다. 새누리당 참석의원 120명 만장일치다.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도 참석했다.
그런데 더 이상하다. 새누리당은 의원총회가 일사천리로 현 의원을 제명한 뒤 박근혜 후보가 한 말은 매우 기이하다. 박 후보는 현 의원이 제명된 것과 관련해 검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시비 자체가 일어난 것은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 의원, 현기환 전 의원의 거짓말이 들통난 사실로 미뤄 볼 때 공천 뇌물이 왔다 갔다 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검찰이 공식적으로는 아직 결론을 낸 사건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이 사법기관보다 더 서슬 퍼렇게 비리의혹 대상자들에게 형을 집행한 것이다.
더욱이 가관인 것은 새누리당은 제명 조치와 별도로 오후에 당 진상조사위에서 현영희 의원 공천 경위 등을 조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결론부터 내놓고 조사 과정을 꿰맞추는 식의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다. 그렇지만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중죄인으로 단정 짓고 그들을 당에서 이름을 지워버렸다. 현 의원도 검찰에 출석하기 전에 기자들이 자신의 제명에 대해 묻자 당의 결정에 승복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혐의는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 또한 얼핏 수긍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다.
국회의원은 당이 중요하다. 그러나 국회의원에게 더 중요한 것은 국민, 유권자다. 검찰이 유권자 앞에서, 현 의원의 공천 뇌물 수사를 벌이고 있는데 당은 현 의원을 당원 명부에서 지워버렸고 현 의원 당사자는 당의 그런 결정을 승복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는 ‘시비’ 자체가 국민께 송구스럽다면서 현 의원 제명에 찬성했다.
형법의 기본적 상식은, 재판에서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일 것이라는 원칙이 최우선이라고 말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국회의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러면 일반화된 법 논리가 송두리째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나라 제1의 공당에서 ‘시비’가 일어난 것만으로도 당에서 만장일치로 쫓겨나는 새 규범이 자리 잡는다면 일반 국민의 가슴이 철렁할 일이다. 국민들은 만약 어떤 혐의의 대상이 된다면 그가 속한 직장과 같은 조직에서 제명 처분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될 터이니 말이다.
연극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거대 여당에서, 백주에 벌어지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국회의원은 원래 유권자의 머슴이라서 매사에 간단치 않다.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다. 사실 국회의원은 꼼꼼히 챙기고 따지는 것을 잘해야 유권자의 아프고 가려운 곳을 잘 살필 수 있을 법하다.
그런 국회의원, 말 많은 것이 정상인 국회의원 가운데 새누리당 의원 120여 명이 현역 의원을 당에서 이름을 지우는데 군소리 없이 동의했다. 당사자도 동의했다. 그러나 기자 앞에서는 공천 뇌물 사건에 대해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거나 아직 검찰 수사 중이라고 말한다. 쾌도난마의 속 시원함이 아니라 찜찜한 그런 모습이다.
여기서 상상력을 발동해야 한다. 왜 교과서나 일반 상식 책에 써 있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가를 곰곰이 새겨봐야 한다. 새누리당의 일사불란하면서 뭔가 기이한 집단행동을 볼 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생각난다.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법하다. 국민과 유권자만 모르는 그 무엇이 감춰져 있지 않으면 저토록 많은 의원들이 침묵 속에 하나의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무엇일까? 새누리당의 내로라하는 의원들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된 자당 의원의 목을 단숨에 치도록 몰아간 진실은 무엇일까? 여러 가능성 중에 딱 한가지가 가장 선명한 해답으로 떠오른다.
그것은 현영희 의원이 공천뇌물을 준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당 차원에서 이미 파악했고 의원들도 수긍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런 추정이 사실이 아니고, 대선 경선에 차질이 없도록 신속히 문제를 초기 단계에서 도려낸다는 논리? 아니다. 그것은 비박진영에서 침묵할 리가 없는 논리다. 비박진영도 입을 다물게 한 진실은 현 의원의 의혹이 사실일 것이라는 바로 그 점일 것이다.
새누리당이 만약 내부적으로 공천뇌물에 대해 진상을 파악해놓고 이런 일을 벌였다면 그것은 국민, 유권자를 기만하는 행위다. 특히 박근혜 후보가 그렇다. 박 후보는 ‘아직 검찰 수사가 어떻게 날지 모른다’고 말했는데 진실을 감추고 이런 말을 했다면 대통령 후보 자질이 없는 파렴치한 행위다.
새누리당은 총선 전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발생하자 당 간판을 새로 갈아 끼우는 방식으로 거대 여당이 되는데 성공했고 총선 당선자들의 논문 표절, 성추문 등에 대해 탈당 방식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명 처분으로 사태를 일단락 지으려 한다.
당이라는 거대 조직을 살리기 위해 꼬리도 치고 손가락도 자르는 방식에 재미를 붙인 정당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번 공천 뇌물 사건의 경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데 당이 ‘유죄’로 판정한 그 논리를 분명 밝혀야 한다. 제명처분을 뚝딱 해치운 내막에 대해 새누리당, 특히 박근혜 후보는 정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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