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src=http://pds16.egloos.com/pds/201001/24/88/Kyrie_DN.swf>
<br />BGM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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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r />광대한 페르시아 제국.<br /></b><img src="http://cfs13.blog.daum.net/image/7/blog/2008/03/26/16/51/47ea00859c2a2&filename=IMG_1287.jpg"><br />
<b><br />다리우스 2세의 묘의 부조.<br /></b>
다리우스와 그의 이복누이 파리사티스 (Parysatis) 사이에는 두 아들이 있었다. 형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Artaxerxes) 이였고, 동생은 키루스 (Cyrus)였다. 병상에 누운 뒤 이제 삶의 끝이 가까워진 것을 느낀 다리우스는, 곧 두 아들 모두와 함께 있기를 바라였다. 형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때마침 이미 다리우스 곁에 있었지만, 키루스는 자신이 사트라프 (Satrap, 총독) 로써 임명한 지역들로 보내야만 했고, 그를 카스톨루스 평원에 소집된 모든 군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므로 키루스는 임명된 지역에 부임했고, 가는 길에 티사페르네스 (Tissaphernes)를 친구삼아 데려가며, 파르하시아[1]의 크세니아스 (Xenias the Parrhasian) 휘하의 300명의 중무장한 그리스인들 무리에게서 호위를 받으며 갔다.
<img src="http://image.cine21.com/cine21/poster/2007/0221/M0010022_300_poster01_final.jpg"><br />
<b><br /><s>쓰빠르따~!!</s><br /></b>
그리고 마침내 다리우스가 죽었을 때,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자 티사페르네스 (Tissaphernes)는 키루스가 꾸미고 있는 수많은 역모계획에 관한 수많은 중상모략을 그의 형, 대왕에게 일쌈기 시작했다. 그러자 티사르페르네스에게 귀기울인 아르타크세르크세르는 손을 써 키루스를 죽음으로 몰고간다. 하지만 중간에서 그들의 어머니, 파리사티스가 끼어들어 중재를 하여 키루스를 임명지로 안전히 돌려보냈다. 공포와 불명예속에서 겨우 탈출한 키루스는, 형의 권력에게서 피하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할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형의 왕위를 빼앗을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왕의 어머니, 파리사티스가 그의 첫번째 지원군이였다. 그녀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보단 키루스를 더 사랑하였고, 그가 왕위에 오르길 더 바라였다. 그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키루스에게 온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매우 관대하여, 그들이 조정으로 돌아갈 무렵엔 왕보단 그에게 더 나은 “친구”가 되었다. 또한 그는 야만족들을 무시하고 배척하기 보단, 그들을 훈련시켜 자신의 전사이자 헌신적인 지지자로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그는 매우 비밀리에 그리스 용병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야만 왕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잡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병력을 징집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이오니아의 여러 도시들을 수비하는 요새들의 사령관들에게, 티사페르네스가 그들에게 보내려던 탄원서를 통해서 명령을 내려 펠레폰네소스 출신 용병들을 될 수 있으면 많이 징집 하도록 하였다. 이 이오니아는 원래 왕의 명령을 받은 티사페르네스 관할이였는데, 밀레투스를 제외한 모든 도시들이 키루스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밀레투스에선 비슷한 계획을 눈치챈 티사페르네스가 미리 공모자들을 처형시키거나 추방함으로써 분위기를 겨우 진정시켰다. 다시 키루스 입장에선, 이 추방된 자들을 환영하며 군대를 모와 그들이 밀레투스로 복귀하는 것을 도우며 밀레투스를 해상과 지상에서 완전히 포위해버린다. 이것이 키루스에게 용병을 모집할 또다른 핑계를 주었다. 같은 시각에 그는 왕에게 전령을 보내 주장하기를, 이오니아 도시들은 티사페르네스가 계속 다스릴바에야 왕의 형제인 자신이 다스려야 한다고 했고, 더나아가 파리사티스 -왕의 어머니- 가, 키루스에게 협조해주니, 왕은 키루스가 짠 계획을 파악하는데 실패하는데 그치지 않고 키루스가 티사페르네스와 전쟁을 벌이느라 그의 군비를 낭비하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기에 이른다. 하지만 키루스는 이 전쟁에서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키루스가 티사페르네스가 지배하던 도시들에서 조공을 걷어 왕에게 받칠 때 항상 조심했기 때문이다.
<img src="http://community.imaginefx.com/fxpose/johnny_shumates_portfolio/images/66325/340x425.aspx"><br />
<b><br />다리우스 3세 시절의 그리스 용병.<br /></b>
<img src="http://bbs.chinadaily.com.cn/attachments/month_1002/1_bcZXfuwApI3F.jpg"><br />
<b><br />삐까뻔쩍한 갑옷을 입고있는 용병 아찌들이 앞에 나서주면 그냥 막 안전해지는거다.<br /></b>
<img src="http://www.civfanatics.net/uploads8/0003cimbri.jpg"><br />
<b><br />가난한 이들은 경보병으로 복무하였다.<br /></b>
세 번째 군대는 케르소네스에서 아비도스에 대항하며 모였다. 이 병력이 모이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키루스의 "친구"중에는 클레아르코스라는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인 망명자가 있었다. 키루스는 이 클레아르코스를 존경했고, 어느 날은 선물로 1만 다릭[2]을 주었다. 그러자 클레아르코스는 이 자금을 들고 케르소네스를 보급기지로 군대를 일으켜 헬레스폰트 북쪽의 트라키아 인들을 공략했는데, 이에 이득을 본 헬레스폰트 지역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자발적으로 이 군대에 군비를 지원해주기로 합의를 봤다. 이 방법으로 한 군대가 키루스를 위해 비밀리에 유지되기 시작하였다.
또 어느 날엔 고향 땅에서 경쟁 정치세력에게서 압력을 받고 있던 키루스의 "친구"[3], 테살리아 인 아리스티푸스가 키루스를 찾아와 2천여명 정도의 용병단을 세달 정도 유지할만한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고향 땅에서 자신에게 적대적인 이들에게 우위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키루스는 4천여 명의 용병단에 6달치 봉급에 해당하는 자금을 선물로 주는 것으로 그의 요구에 답하였다--계약 조건으로 아리스티푸스는 키루스와의 사전 협의 없이는 그의 경쟁 정치세력과 협정을 맺을 수 없도록 하였다. 이로써 그는 비밀리에 네 번째 군대를 양성했다.
더 나아가 키루스는 또 다른 "친구", 보이오티아 인 프록세누스 (Proxenus)를 고용하여 그와 함께 최대한 많은 이들을 함께 모은 뒤, 그를 자신이 계획하고 있던 피시디아 인[4]들을 겨냥한 원정에 참가시켰다. 당시 피시디아 인들은 키루스가 지배하던 지역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스팀팔리아 인 소파에네투스[5]와 아카이아 인 소크라테스에겐 최대한 많은 병력을 모와 그에게 오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밀레토스의 망명자들과 함께 티사페르네스를 상대로 원정을 시작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 명령들은 각 장교들의 의문 속에 정당히 수행되었다.
<img src="http://img.blog.yahoo.co.kr/ybi/1/1c/cf/rlwjd1504/folder/3/img_3_29_0?1316315057.jpg">
<b><br />조그만 검은 점은 티사페르네스이다.<b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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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르하시아는 아르카디아 남서쪽에 위치한 구역이자 소도시.
[2] 아카이메네스 시대의 표준 금화로, 중량은 8.4g이며 그 2배인 것도 소량 발행했다. 제작지는 대부분 소아시아라고 한다. 은화(아티카의 드라크메(drachme[그리스어])), 아카이메네스 시대의 시글로스(Siglos[그리스어]) 20매와 교환되었다. 표면에 국왕상, 이면에는 파상극인(波狀極印)을 각출했는데 명문은 없다. 그리스인이 다레이오스 1세에게 연유하여 이 명칭을 사용했다 한다.
[3] Lit. "손님-친구." 플라톤의 <메논>에 따르면 아리스티푸스는 라리사 태생이였다고 한다. 알레우아다에 가문의 일원이였으며, 고르기아스의 제자이기도 하였다. 또, 그는 자신 대신에 이 원정에 나선 멤논의 연인이기도 하였다. <s>게...이..?</s>
[4] Lit. "피시디아 인들의 나라를 향하여"
[5] 아르카디아의 스팀팔루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