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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381262
    작성자 : Zz잘꺼여zZ
    추천 : 13
    조회수 : 2121
    IP : 123.254.***.108
    댓글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8/22 11:21:48
    원글작성시간 : 2011/08/13 02:00:03
    http://todayhumor.com/?humorbest_381262 모바일
    강유의 북벌(3)
    6. 장완 시대

     

     장완 집권기(234년 ~ 246년. 그러나 243년부터는 실질적으로는 비의가 실권을 장악했다)부터 비의 집권기(246년 ~ 253년. 실제는 243년부터)까지의 강유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집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강유는 제갈량으로부터 후계자로 지목을 받지도 못했고 비의로부터 권력을 양도받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마치 강유가 제갈량의 후계자인것처럼 나와있다. 장완이나 비의도 강유의 조력자 혹은 조연이라는 느낌이 든다. <연의>에서도 제갈량이 죽기 전에 이복에게 "장완 다음은 비의"라고 명백히 말한 내용은 있으나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서에서도 이 기록은 나와있다. 제갈량은 강유를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았다. 아마도 장완과 비의의 보좌역으로만 생각한게 아니었을까.

     

     물론 제갈량의 북벌의식을 계승하여 고군분투한 강유가 오히려 본분을 넘어서서 지나친 행동을 했다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강유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설명을 해야하는게 옳은듯 하다.

     

     건흥 3년(235년)에 장완은 대장군이 되었다. 비록 장완이 제갈량의 뒤를 이어 촉한의 재상이 되었으나 그는 승상이 되지 않고 대장군이 되었다. 이후 촉한이 멸망할 때까지 승상은 공석이었다. 촉한에서의 제갈량은 그정도의 존재였다. 참고로 당시 장완은 대장군 녹상서사 안양정후였다.

     

     그리고 연희 원년(238년), 장완과 강유는 한중에 주둔한다.  제갈량 생전의 한중은 촉한의 최전선으로써 북벌기지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관중과 관서 어디로든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장완과 강유는 성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국정이 안정되자 다시 북벌을 위해 한중에 간 것이었다. 이때 후주 유선이 내린 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적의 침입이 끊이지 않고 있고, 조예는 교만하고 흉약한 사람이다. 요동의 세 군은 그의 포학함으로 고통받아 서로 규합하여 그와는 떨어져 거리가 있게되었다. 조예는 대군을 대대적으로 일으켜 또 서로 공격하여 토벌하도록 했다. 옛날, 진이 멸망한 것은 진승,오광의 반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러한 변란은 하늘이 내려준 좋은 기회이다. 그대는 전쟁 준비를 하여 군사들을 통솔해 한중에 주둔하고, 오나라의 행동을 기다렸다가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 호응하여 틈을타서 행동하라. 

     

     건흥 5년(237년), 유주자사 관구검은 명제 조예에게 상소하여 요동을 쳐야 한다고 진언한다. 이유는 '폐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아직 크게 기록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조예는 일단 공손연을 낙양으로 불러들이도록 해본다. 안오면 공격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예상대로 몇대에 걸쳐 요동에서 기반을 쌓은 공손연은 낙양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자 관구검이 군대를 일으켜 공손연을 토벌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촉한에서는 이것을 진승, 오광의 난에 빗댄 것이다.

     

     연희 2년(239년), 장완은 대사마가 된다. 강유는 사마로 임명되어 여러 차례 한 군대를 지휘하여 서쪽에 침입했다. 한중에서 서쪽이라면 기산 인근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대대적으로 북벌을 감행한 것은 아니었고, 위군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희 4년(241년), 상서령 비의가 성도에서 한중까지 와서 장완과 일을 의논했다. 북벌에 관해서였다. 장완의 북벌 추진은 확고했으나 제갈량과는 다른 진로를 선택했다. 한수와 면수로부터 위흥과 상용을 점령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논의하는 자들은 승리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길이 매우 험하므로 훌륭한 계책이 못된다고 주장했다. 반대여론은 많았다. 그리하여 장완은 비의와 강유를 성도에 보내 유선에게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도록 했다. 그러나 유선 역시 장완의 계획에 반대했다. 체념한 그는 유선에게 다시 상소를 올린다. <자치통감>과 <삼국지 : 장완전>의 기록을 합쳐보면 다음과 같다.


     " 세상에 만연한 독을 제거하고 재난을 없애는 것은 신의 직책이 처리할 일입니다.신이 명령을 받아 한중에 주둔한 지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신은 어리석고 무능하며 열병이 겹쳐 계획한 일을 실행할수 없어 아침 저녁으로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현재 위는 아홉주를 차지하여 세력을 뻗히고 있어 제거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만일 동쪽과 서쪽이 힘을 합쳐 앞뒤로 호응한다면, 설령 뜻대로 신속하게 얻을 수는 없 을지라도 잠시 영토를 분열하여 잠식하여 우선 그들의 부분적인 힘을 훼손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나라와는 두 세 차례 기약을 했으나 연이어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전진하는 것도 후퇴하는 것도 어려워 실로 침식을 잊게 합니다. 번번이 비의 등과 의논하여 량주는 호인 지역의 요새를 가지고 나가거나 물러날 때 밑천으로 삼아야 하며, 또한 강인과 호인은 마침내 마음 속으로 한을 목마름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과거 한 부대가 강족을 침입했을 때, 위의 옹주자사 곽회가 패배하여 달아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의 장,단점을 헤아려 보면, 량주 점령을 우선으로 해야 되므로 응당 강유를 량주자사로 임명해야만 합니다. 만일 강유가 출정하여 가서 하우를 제압한다면, 신은 군대를 인솔하여 강유의 뒤에서 계속 따라야 합니다. 지금 부현은 바다와 육지가 사방으로 통해 있으니,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호응할수 있을 겁니다. 만약 동서간에 전투 같은 일이 있더라도 그 곳으로 가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청컨데 옮겨서 부현에 주둔하게 하여 주십시오."

     

     천천히 읽어보면, 장완이라는 사람의 고뇌가 역력히 드러나는 글이다. 이런 글에 마음이 안움직일 사람은 없다. 유선도 결국에는 장완의 말에 좇았다. 그러나 장완은 곧바로 부현으로 가지 않고, 242년에 강유를 먼저 보낸다. 그리고 243년에 자신이 부현으로 갔다. 그리고 북벌군을 조직하던 도중, 지병이 심해져서 비의에게 대장군직을 넘긴다. 그리고 강유는 장완의 진언대로 진서대장군 량주자사로 임명된다. 장완이 물러나면서 북벌의 주도적인 역할은 비의와 강유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북벌을 감행하기 전에 위가 먼저 공격을 해왔다. 연희 7년(244년), 위의 조상이 10만여 병력을 이끌고 낙구에서 한중으로 공격해온 것이다. 그러나 조상은 사마의에 비하면 능력이 없는 인물로써, 왕평의 분전과 비의의 지원으로 대파당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위가 대파당한 것이 촉한에게는 역공의 기회가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이다. 위의 정촉은 대단히 실패하여 사상자도 많았고 물자 소모도 많았고 이민족들의 원망도 넘쳐났다. 촉한에서는 이것을 기회로 북벌을 감행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촉한의 희생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일단 10만이면 대병력이다. 또한 아무리 비의가 조상의 후미를 잘라서 두들겼다 하더라도 지형 자체가 험하다. 촉한도 고생하며 위군을 몰아낸 것이 아니었을까. 제대로 선발된 북벌군으로 예정된 때와 장소에서 회전을 벌여 이겼다면 그것은 역공의 기회가 된다. 제갈량의 3차 북벌에서 사마의를 상대로 이긴 노성 전투가 그렇다. 그러나 조상의 정촉은 촉한에서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으므로 아무리 잘 싸워도 계획에 어긋날 수밖에 없다. 당시 촉한은 위군을 몰아내고는 재정비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연희 9년(246년), 결국 장완은 부현에서 병사한다. 시호는 공(恭). 일을 공손하고 단단하게 하며 임금에게 이바지한다는 뜻이다.
    [출처] 강유의 북벌 (5) (삼국지 도원결의) |작성자 포증


    7. 비의 시대 (1)

     

     연희 6년(243년)부터는 실질적으로 비의가 집권을 했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다. 그리고 연희 9년(246년)에 대사마 장완이 죽자 비로소 비의가 명실상부한 2인자가 된다. 하지만 장완이 죽자 유선이 스스로 국사를 관장했다는 기록도 있으니 비의가 제갈량이나 장완과 같은 권력은 가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비의 시대와 이때의 강유를 알아보기 전에 몇가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단 후주 유선은 207년생이다. 그리고 제갈량이 죽은 해인 234년에는 27세였다. 유비는 평생을 한실 복고를 위해 바쳤기 때문에 촉한의 건국기조는 위와 오를 멸하고 한실을 재건국시키는 것이었다. 때문에 제갈량을 중심으로 5차례의 북벌(기산행, 진창행, 음평무도행, 기산행, 오장원행. 여기에 조진의 정촉까지 포함하면 6차례))을 감행했다. 지금도 중국 역사상 손꼽을만한 명재상인 제갈량이다. 후주 유선도 그를 굉장히 신임하고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다. 제갈량이 죽자 "황제의 자리를 노릴 사람이 없어져서 다행입니다."라고 누가 말하자 굉장히 화를 내며 그 자를 처형시켰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집권하고 있던 촉한도 마냥 의욕이 넘치는 것은 아니었다. 위군과의 전투 후 병장기들이 못쓰게 되어서 다시 만들었는데 이후에 만든 병장기들은 몇번을 써도 새것과 같았으니 제갈량이 공문을 통해 병장기 제조를 허술하게 한 관리에게 책임을 문 경우도 있듯이 요령을 피우는 사람은 있었다. 그리고 제갈량은 끝내 옹양주 겸병도 못한채 진중에서 병사했다.

     

     제갈량이 죽으니 자연히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완은 제갈량의 첫번째 후계자로써 대단한 사명감을 가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도 죽고 두번째 후계자인 비의가 재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때의 유선은 40세. 친정을 해도 될 나이였다. 오히려 그 이전부터 친정을 해야했을 나이였다. 그렇기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유선의 성정과 비의의 성정이 문제가 되었다.

     

     유선은 선천적으로 방만한 성격이었다. 나태했다거나 혹은 놀기를 좋아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주지육림과 같은 일은 벌이질 않았지만 그렇다고 명군이나 현군의 자질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요즘으로 치면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사람이 주점에서 수십만원짜리 양주를 마시진 않았으나 근처 소주집을 전전한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비의는 제갈량 사후의 북벌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강유에게 직접 "승상이 죽고 우리는 할 수 없으니 지키고 있다가 승상과 같은 사람이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라는 말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 북벌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을리는 없다. 또한 동윤처럼 깐깐했던 인물도 아니었다. 진지라는 사람을 재주가 출중하다고 하여 중용했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진지와 황호가 투톱으로 권력을 전횡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또한 촉한의 차세대 문무관들이 부족한 것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었다. 연희 11년(248년)에 왕평이 죽는다. 마충은 249년에 죽는다. 요화와 종예는 258년에 70도 넘은 나이였으니 240년대에는 못해도 50세였다. 오의는 237년에 죽었다. 오반은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으나 기록이 없으니 아마도 비의가 집권하던 시기, 즉 243년부터 253년 사이에 죽은 것으로 짐작된다. 장익과 장억은 나이를 알 수 없으나 240년대에는 40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들은 위의 대군을 상대로 회전을 벌이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고상은 행적을 알 수가 없다. 상총은 언제인진 모르겠으나 한가군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서 전사했다. 

     제갈량은 생전에 인재를 발굴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양성에도 소홀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촉한의 인재난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난세에서 삼국 정립으로 고착이 되었기에 인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촉한의 운이 다되었던 것일까. 그나마 군정에는 강유가 고군분투했으나 내정에는 거목이라 할만한 인재가 나오질 않았다.

     

     이런 총체적인 난국의 시발점에서 강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투항하자마자 창조연이 되었다는 것은 국가의 내정을 좀 파악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또한 제갈량을 보좌하면서 대체적인 촉한의 실상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비의마저 당분간 북벌은 중지하자는 말을 했다. 이 말에 강유가 어떠한 반응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생각에 반대했다는 점은 틀림이 없다. 비의가 죽기 전에도 1만 이내이긴 하나 위를 향해 공격을 여러차례 가했기 때문이다.

     

     연희 10년(247년), 문산군 평강현의 이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강유는 이들을 토벌한다.

     

     

    (사진 맨아래 첫번째)

     

     

     상총이 전사한 한가군이나 강유가 토벌한 문산군이나 다 서쪽으로 치우친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뿐 아니라 남쪽에서도 봉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유가 문산군의 이족을 토벌하고 오자 농서, 남안, 금성, 서평의 각 강인 아하, 소과, 벌동, 아사채 등이 서로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호왕 치무대는 촉한에 항복을 청했다. 이 기회를 그냥 보고만 있을 강유가 아니었기에 군대를 이끌고 출병을 한다. 당시 토촉호군 하후패는 위시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옹주자사 곽회는 강유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작전회의를 연다. 논의하던 자들은 포한을 공격하여 평정한 후에야 내부의 흉악한 강인을 평정할 수 있고, 외부의 강유의 음모를 꺾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곽회는 강유가 반드시 하후패를 공격해 올 것이므로 풍중으로 들어가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하후패를 맞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여러 지도를 찾아봐도 위시와 풍중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강유가 남안과 금성의 경계로 나가 조수에서 곽회, 하후패와 싸웠다고 하니 기동력을 살린 유격전을 펼친것으로 보인다. 대략 활동지역을 보면 아래와 같다. 딱히 지점을 확정할 수 없기에 범위를 넓게 잡았다.

     

     

    (사진 맨아래 두번째)

     

     

     <곽회전>에서는 곽회의 군대를 만나자 강유는 점차 퇴각했다고 되어있으나, <강유전>에서는 조수에서 곽회, 하후패와 교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강유는 퇴각하면서도 곽회와 하후패가 군대를 합치길 기다렸다가, 조수 근처에서 교전을 벌였다는 것이 된다. 이 전투의 승자는 알 수 없으나 이후 호왕 치무대가 강유에게 항복하였고, 곽회는 아하, 소과를 참하고 1만여 부락을 다시 복속시켰다고 한다. 애초에 강유가 출정을 한 이유는 치무대에게 호응하기 위함이었는데,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곽회 역시 아하, 소과를 참했으며 강유가 물러났으므로 목적은 달성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전투 자체에서는 강유가 우세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렇기에 치무대가 강유에게 항복한 것이다. 만약 강유가 패배했으면 기존의 것은 파기하고 위에 귀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유의 군대는 수가 적었기에 치무대만을 영접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출처] 강유의 북벌 (6) (삼국지 도원결의) |작성자 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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