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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둑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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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둑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78 [질문] 수조규식 편찬년도 [새창] 2018-04-24 02:15:30 0 삭제
    水操란 수군 훈련입니다. 조선 초부터 한강 또는 각 수영 앞바다에서 수군(조선초 기선군) 훈련이 행해졌으며 난중일기에도 임란 개전 직후 경상도 해역 출동 전 전라좌수영 해역에서 행한 수군 훈련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다만 매년 정례화된 수군 훈련은 임란 이후, 광해군 20년 때부터로 실록에 기록이 있습니다.
    수군 훈련 절차를 병학통을 따라 구체화시킨 시기와 인물은 1785년의 정조입니다.
    그러나 그 전 시기에 작성된 경상좌수영의 수조홀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도 문서화한 수조규식이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수조규식은 수군 훈련 절차를 담은 문서이고, 현재까지 다수 남아있는 수조홀기는 수군 훈련 절차를 서술한 휴대용 문서입니다.
    아무리 모든 수영의 수군 훈련 절차를 규격화시키고 싶어도 각 수영마다 판옥선의 제작 규격, 승선 편제, 인원, 직무가 달라 통일시키기 어렵습니다.
    결국 통영이나 각 수영마다 따로 수군 훈련 절차를 작성했다고 보며, 실제로 현존하는 유물도 수영별로 작성했습니다.

    이하, 개인 의견입니다.
    편찬자는 누구인가? 통제사나 수군절도사가 명령을 해서 부하들이 작성했겠지요. 수군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병종이므로 다른 경우와 달리 감사, 병사, 비변사에서 간섭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통제영과 수영(수군절도사 영)에는 장수가 아닌 다수의 보조 인력이 근무합니다.
    고을 원님들처럼 수사와 통제사, 감사, 병사 밑에 육방이 근무합니다.
    그 중에서 도병방 - 병방의 우두머리로서 별명은 찬획, 하는 일은 작전계획 입안, 장계초 작성, 관할 고을들, 해당 도 및 주변 도의 감영, 병영, 수영과 문서 수발, 관할 지역 병력 모집 관련 업무, 전쟁시 척후, 정찰, 정보수집 및 분석, 경계 및 복병 배치와 운용 등등 군사관련 업무 대부분을 처리합니다. 정만록에 도병방이 하는 업무가 잘 묘사돼있습니다.
    도병방의 지휘를 받아 다수의 병방들, 1인 혹은 다수의 병방군관, 다수의 병방진무들이 실무에 종사합니다. 실제 업무는 이들이 처리한다고 봐야겠습니다.
    함경도의 제승방략 편찬자는 병사 이일이라고 합니다만 혼자 방대한 문서작업을 했다고 보기 어렵고 다수의 인원이 제승방략 저술에 참가했다고 봐야겠지요. 수조홀기도 실무자들이 작성하고 수사 또는 통제사가 필요에 따라 수정, 또는 편집방향 변화 등을 지시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질문에 대한 답, 수조규식이나 수조홀기의 편찬시점은 조선후기 시대별로 다양하고, 지역별로는 통제영 및 각 수영으로 다양하며
    편찬자는 수사 및 통제사의 명령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실무편찬자는 도병방 이하 병방 근무자(다수의 병방들과 병방진무들)라고 봐야겠습니다. 그러니 수조규식 편찬자의 실명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77 기자들 필요없고 시민언론 같은거 있음 좋겠는데 [새창] 2018-04-19 04:21:21 1 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여차 하면 꾼들에게 운영권을 강탈당할 수도 있고요.
    76 그때는 무슨 말씀 하신건지 미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새창] 2018-04-19 04:18:18 31 삭제
    역시 문재인
    확실히 해답은 나와있는데...
    일반 시민이 정당활동에 시간 투자하기 어렵죠. 참여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분명 더 이익인데도 말이죠.
    75 기자들 필요없고 시민언론 같은거 있음 좋겠는데 [새창] 2018-04-19 04:08:16 5 삭제
    안타깝게도 그게 한겨레고
    그게 오마이뉴스였어요.
    요즘엔 팟캐들이 그런 슬로건을 들고 나오는데 맘에 드는 게 별로 없죠.
    그나마 다양한 SNS가 있고 시민들이 관심을 줘서 숨통이 트이네요.
    74 문재인정부에서 유독 이문제가 불거진 이유 [새창] 2017-11-04 17:48:52 0 삭제
    미국 흑인은 언제라도 항의할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비록 흑인 인구보다 많은 히스패닉에 비해 과 대표된 감이 있고 일부 백인들의 동정심을 샀지만 대체로 흑인 스스로 힘으로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한국 노조, 성소수자, 페미, 장애인, 전직 HID 요원들이 그들에게 그나마 호의적인 민주정부를 상대로 그 지랄을 떨면 조급증이며 이기주의이며 민주정부 지지자들에 대한 배반이죠. 결국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하고, 이명박근혜 치하에서는 기대감이 없어서 말도 못꺼냈다 소리나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페미에 대해 우호정책을 펼치는 것에 군게분들이 배반감을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 문재인이나 이명박근혜나 똑같다는 평가는 <일베나 오유나> 프레임과 동일합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뭔가 요구하더라도 증오심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실 오유나 되니까 토론이라도 하지 다른 사이트에서 군게의 논리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남녀가 갈려 싸운다는 어젠더는 어느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만, 문재인 정부를 주요 공격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선을 좁혀 페미나치에 대한 공격이 주가 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디바이드 앤 컨트롤에 대한 의심은 당연히 갖고 가야겠죠. 그래도 민주당 정부가 아닌 문재인 정부를 단순히 기득권 세력의 하나로 규정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각 차이가 있습니다.
    73 문재인정부에서 유독 이문제가 불거진 이유 [새창] 2017-11-04 01:42:42 2/4 삭제
    저한테는 적인데요?
    민주주의 신봉자를 빨갱이라 부르고 증오하는 자들은 정말로 북한 정권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돈 주고 휴전선에서 총 쏴달라고 할 만큼) 국내의 민주주의자들을 싫어하고 증오하고 적으로 대합니다. 너무나 싫어하는 나머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수반하면서 이익을 챙기지요.
    저는 그런 자들과, 사익을 위해 공익을 해하는 자들을 합법적인 한도 내에서 적대합니다.

    병역 토론 과정이야 충분히 의미있는데, 배보다 배꼽이 큰 논리전개를 경계하셨으면 합니다.
    72 문재인정부에서 유독 이문제가 불거진 이유 [새창] 2017-11-04 01:22:39 1 삭제
    에이. 아시면서 그래요.
    문통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나의(혹은 우리의) 적입니다.
    71 문재인정부에서 유독 이문제가 불거진 이유 [새창] 2017-11-04 01:09:01 2 삭제
    대선 투표일 직전 며칠 동안 문 후보의 친페미 정책을 이유로 기권 운동을 하자고 한 곳이 군게였죠. 메갈, 일베로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21세기 들어 병역의무의 형평성을 논의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고 비판도 좋으나, 현 정부를 적으로 규정한다면 마찬가지로 적이 되는 겁니다.
    70 문재인정부에서 유독 이문제가 불거진 이유 [새창] 2017-11-04 00:58:30 5/6 삭제
    인간 같지도 않은 뷔페미니즘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합니다만
    본문의 3번은 구역질 나네요.

    참여 정부에서 노사쟁의가 더욱 격화됐었죠. 며칠 전 오유에서 본 도표에 의하면 파업 두 배.
    군부정권 하에서는 상관에게 생명수당 갈취당해도 찍소리 못하다가, 보상해주겠다는 김대중 정부 때가 돼서야 광화문에서 가스통 굴리던 HID
    장애인 교통권을 보장하는 정책 시행중인 와중에 휠체어 타고 시위하면서 DJ 정부에 증오를 표출하던 장애인 단체 회원들
    새누리 정치인들에게 범죄자, 정신병자 취급당해도 항의조차 못하다가 문 후보 행사에 플래카드 들고 주먹 쥐고 달려들어 군 지지 홍보기회 망친 성소수자들
    새누리 계열 정치인들의 성추행, 성폭행 무시하고 유독 민주당 전현직 의원의 오해 여지 있는 말에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페미

    이번에는, 나머지 모든 정책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권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죽일 놈 만드는군요.

    지긋지긋하다,
    69 인조가 강화도로 못 가서 패했다 하는데 말입니다. [새창] 2017-10-07 20:25:51 1 삭제
    병자호란 당시 수군이 전라도밖에 없었던 건 아니잖습니까? 충무공전서에서 명량해전 참전 의병 마하수의 아들 마 누구가 병자호란 당시 전라좌수영 우후가 되어 전라좌수군과 함께 강화도로 이동중에 전쟁이 끝나 돌아왔다고 합니다,
    실록이나 연려실기술을 살펴보면 강도유수 장신이 가장 많은 수군을 지휘해 강화도의 해상방어에 임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수사, 충청수사 이름도 보이는군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삼도수군통어영 [정의] 1633년(인조 11)에 경기·충청·황해도 등에 수군을 관할하기 위해 교동에 설립된 수군 최고 사령부.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2월 11일 신사 1번째기사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양사가 합계하기를,
    "강도(江都) 수호의 임무를 받은 제신(諸臣)들이 방어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날이나 보내면서 노닐다가 적의 배가 강을 건너자 멀리서 바라보고 흩어져 무너진 채 각자 살려고 도망하느라 종묘와 사직 그리고 빈궁(嬪宮)과 원손(元孫)을 쓸모없는 물건처럼 버렸을 뿐 아니라 섬에 가득한 생령(生靈)들이 모두 살해되거나 약탈당하게 하였으니, 말을 하려면 기가 막힙니다. 검찰사(檢察使) 김경징(金慶徵), 부사(副使) 이민구(李敏求), 강도 유수(江都留守) 장신(張紳), 경기 수사 신경진(申景珍), 충청 수사 강진흔(姜晋昕)은 모두 율을 적용하여 죄를 정하소서.

    연려실기술 제26권 /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강화도[江都]가 함락되다
    ○ 그때 장신(張紳)은 주사대장으로서 갑자기 광진을 출발하여 갑곶을 향해 강을 거슬러 올라갔으나, 이때는 아직도 조금[潮減]이라 조수가 매우 적어서 밤을 새우며 배를 저었으나 이날 22일 새벽에 겨우 갑곶에서 5리 가량 되는 곳에 이르렀다. 그때 강진흔(姜晉昕)은 배 7척을 거느리고 갑곶에 머물고 있다가 적과 힘껏 싸워 적선 2, 3척을 침몰시켰으나, 진흔의 배도 역시 대포에 맞아 죽은 군졸이 수십 명이나 되었다. 진흔도 적의 화살에 맞았으나 적의 화살과 그 밖의 전구(戰具)를 빼앗은 것이 또한 많았다. 그런데 진흔이 거느리고 있는 배는 매우 적었고 장신이 거느리고 있는 수군은 대단히 많았으나 장신은 적세(賊勢)가 급한 것을 보고도 전진할 생각이 없었다. 진흔이 북을 치고 기를 흔들면서 장신에게 빨리 전진하라고 재촉하였으나 장신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 진흔이 배 위에서 외치기를, “네가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고서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느냐. 내가 너를 베어 죽이겠다.” 하였으나 장신은 끝내 듣지 않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버렸다. 이때에 정포 만호(井浦萬戶) 정연(鄭埏)과 덕포 첨사(德浦僉使) 조종선(趙宗善)이 선봉이었는데, 정연이 적선 1척을 함몰시키고 장차 전진하려고 하였으나 장신이 징을 쳐서 퇴군시키므로 정연 등도 모두 물러갔다.
    68 요즘 토론방송 여야4당이 다 나오는거 문제 있어요... [새창] 2017-07-01 13:32:48 1 삭제
    서구(1980년대 방송론 교재 표현... 아마 빈번히 교체되는 양당 중심 의원내각제 유럽국가들) 방송에서는 한 사안에 대해 각 정당에서 정견을 밝히는 방송시간을 여당, 제1야당, 제2야당에게 1:1:0.5로 배분한다고 합니다. 의석수나 지지율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존중한다는 의미겠죠. 한국 방송관계자들은 토론 참가자가 1대 3이나 1대 4면 여당에 극히 불리하다는 사실을 다 알면서도 유독 민주정권에서만 기계적 중립 운운하는 것 같습니다.
    67 수만~수십만 대군, 황해 횡단 가능했나? 가능한것 같은데요?? [새창] 2017-05-31 11:53:46 0 삭제
    참고할만한 사료입니다.

    임하필기 제13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중국과 통하는 해로(海路)

    바닷길로 말하면 우리나라 땅에서 곧장 중국의 사명(四明)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바닷길이 멀고 아득한 데다 중간중간에 섬들이 가로막고 있고 또한 흑풍(黑風 폭풍(暴風))으로 파도가 심한 변고들이 있으니 잘 피해 가야 한다. 그리하여 예성강(禮成江)의 급수문(急水門)을 출발해서 군산도(群山島)에 이르면 비로소 편안히 도달했다고 말을 하는데 수십 일이 걸리지 않고는 이를 수가 없다.
    송(宋)나라 고종(高宗) 건염(建炎) 2년(1128, 인종6)에 양응침(楊應忱)이 자청해서 고려에 사신을 왔었는데 그가 돌아갈 때에는 9월 계미일에 우리나라를 출발해서 무자일에 자기 나라 명주(明州)의 창국현(昌國縣)에 이르렀으니 겨우 6일이 걸린 것이다. 그리고 단공(端拱) 4년에 진청(陳請)이 고려에 사신을 왔었는데 산동반도 등주(登州)의 동모(東牟)에서 출발하여 순풍을 타고 바다에 떠서 이틀 밤을 자는 동안에 벌써 황해도 옹진(甕津)의 어귀에 도착하였다. 육지에 오른 뒤에 160리를 걸어서 해주에 이르렀으며, 다시 백 리를 걸어서 염주(閻州)에 이르고 또다시 40리를 걸어서 백주(白州)에 이르렀으며 여기서 다시 40리를 더 걸어서야 비로소 서울인 개성(開城)에 이를 수 있었다.

    [주D-001]군산도(群山島) : 지금의 전북 김제시 지역인 만경현(萬頃縣)에 있던 섬 이름이다. 고려 때부터 조운(漕運)과 중국 무역선의 기항지(寄港地)로서 번영하였다.
    [주D-002]단공(端拱) 4년 : 단공은 북송(北宋) 태종(太宗)의 연호인데 그 기간이 988년에서 989년까지 2년간뿐이므로 4년이란 없다.
    [주D-003]염주(閻州)에 …… 백주(白州) : 염주는 지금의 연백군(延白郡) 지역이고, 백주는 지금의 배천군(白川郡) 지역이다.

    임하필기 제13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해중(海中)의 군대(軍隊) 이동의 길

    중국 군대의 이동은 모두 바다를 경유해서 요동(遼東)으로 나왔는데, 한(漢)의 팽오(彭吳)가 예맥(濊貊)과 조선(朝鮮)에 침입했을 때에 중국의 연제(燕齊) 지방이 휩쓸리어 소동(騷動)이 일었다. 그리고 양복(楊僕)이 위씨조선(衛氏朝鮮)의 우거왕(右渠王)을 침공할 때에 발해(渤海)를 건너서 열구(列口)에 이르렀는데 이 열구란 한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곳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漢)의 광무제(光武帝)가 장군을 보내 바다를 건너와서 청천강(淸川江) 이남의 지역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조위(曹魏 삼국 시대의 위나라)는 유흔(劉昕)을 보내 침공해 왔고, 사마의(司馬懿 조위의 권신(權臣)으로 진(晉) 무제의 조부)는 우리나라를 공격하려고 군량을 운반하였는데 이를 위해 등주(登州)에다 수입성(水入城)을 쌓았으며, 탁발위(拓跋魏 북위(北魏))는 백제를 침벌(侵伐)하였다.
    수(隋)나라 대업(大業) 8년(612, 고구려 영양왕23)에 내호아(來護兒)가 바다를 건너 패수(浿水)로 들어와서 평양에 주둔하였으며, 당(唐)나라가 정관(貞觀) 18년(644, 보장왕3)에 고구려를 정벌할 때 산동반도의 내주(萊州)에서 곧장 평양으로 왔는데 등주(登州)의 북쪽에 오호도(烏胡島)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용삭(龍朔) 1년(661, 부여 풍왕1)에 소열(蘇烈 소정방(蘇定方)을 말하는데, 열이 이름이고 정방이 자임)이 백제를 멸망시킬 때에 등주의 성산(成山)에서 출발하여 인천의 덕적도(德積島)에 도착하였다. 이 성산의 동쪽 10리에 소석산(召石山)이란 산이 있는데 이 산은 진시황(秦始皇)이 바다를 건너려고 다리를 만들던 곳이라 한다.
    원(元)나라는 범문호(范文虎)를 보내 흑산도(黑山島)의 수로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제주도의 남쪽 바다를 경유하여 일기도(一歧島)에서 고려의 군대와 만나서 왜(倭)를 정벌하였다. 선조 무술년(1598, 선조31) 왜적이 침략할 때에는 진린(陳璘)이 절강(浙江)의 군병을 동원하여 당진(唐津)에 와서 정박하였는데 유구(琉球)와 섬라(暹羅)에 조칙을 내려서 우리나라를 돕도록 하고자 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군대로 말하면 백제가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가서 월주(越州)의 땅을 경계로 삼았는데 이는 곧 옛날 월(越)나라 구천(句踐)이 도읍했던 곳이며, 또 바다를 건너 북쪽으로 가서 요서(遼西)의 진평(晉平)을 경략(經略)하였는데 이는 곧 옛날 고죽국(孤竹國)의 지역이다. 최치원(崔致遠)이 당나라 시중(侍中)에게 올린 글에 보면 백제도 일찍이 중국의 제로(齊魯) 지방을 침공하여 이를 뒤흔들어 놓은 일이 있다고 한다.
    고려 고종(高宗) 임진년(1232, 고종19)에 정응경(鄭應卿)이 수군(水軍) 3천 명을 거느리고 용주포(龍州浦)를 출발하여 몽고의 요청에 호응했던 일이 있으며, 인조 18년(1640)에는 임경업(林慶業)과 이완(李浣)이 주사(舟師) 5천 명을 거느리고 열두 달치 식량을 준비해 가지고 안의(安義)의 바닷가에서 서로 회합한 적이 있다.
    [주D-001]한(漢)의 …… 일었다 : 《사기(史記)》 평준서(平準書)에는 “팽오가(彭吳賈)가 조선을 멸하고 창해군(滄海郡)을 두었는데 연제 지방이 휩쓸리어 소동이 일었다.”고 되어 있는데, 기원전 128년에 위씨 조선(衛氏朝鮮)에 소속되어 있던 예군(濊君) 남려(南閭)가 그가 관할하는 28만 구(口)를 이끌고 한(漢)에 귀부(歸附)한 것을 계기로 일시 이곳에 창해군을 두었던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주D-002]양복(楊僕)이 …… 이르렀는데 : 한의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은 5만의 수군을 거느리고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대동강을 거쳐 왕검성으로 들어왔는데, 열구는 곧 대동강의 어귀 또는 그 어귀에 있는 황해도 은율(殷栗) 지방을 가리킨다.
    [주D-003]광무제(光武帝)가 …… 회복하였다 : 서기 23년에 낙랑군 지역의 토호(土豪)인 왕조(王調)가 일어나서 낙랑군의 태수인 유헌(劉憲)을 살해하고 스스로 ‘대장군 낙랑 태수(大將軍樂浪太守)’라고 일컬었는데, 그 뒤 이 반항 운동이 7년간을 끌다가 후한(後漢)의 광무제가 새로 파견한 낙랑 태수 왕준(王遵)과 이에 협력한 토착 한인(漢人) 세력들에 힘입어 서기 30년에 실패로 돌아가고 만 일이 있으며, 서기 37년에는 고구려의 대무신왕(大武神王)이 보낸 호동왕자(好童王子)에 의해 낙랑군이 습멸(襲滅)되었다가 그 뒤 44년에 역시 후한의 광무제가 해로(海路)로 보낸 군대에 의해 낙랑군이 또다시 살아나게 된 일이 있었다.《後漢書 卷76 循史列傳 王景》 《後漢書 卷1 光武帝紀》 《三國史記 大武神紀》 그러나 여기에서 이유원(李裕元)이 회복이란 뜻의 ‘복(復)’ 자를 쓴 것은 잘 이해할 수가 없다.
    66 수만~수십만 대군, 황해 횡단 가능했나? 가능한것 같은데요?? [새창] 2017-05-31 11:21:27 0 삭제
    산동반도-황해도 직항로는 조선 후기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 삼국시대에 직항로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 한해서, 전기와 중기에 직항로가 부존재했을 가능성을 논했습니다.
    65 수만~수십만 대군, 황해 횡단 가능했나? 가능한것 같은데요?? [새창] 2017-05-31 11:16:44 3 삭제
    기존 무역 및 어업 항로가 있다고 해서, 또한 그 항로를 국가 지도부가 알고 있다고 해서 그 항로를 군사적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쟁은 지극히 모험적인 정치행위이지만 군사적 기동로와 병참선은 극도로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마련입니다. 알프스를 넘은 한씨와 보씨는 그래서 위대한 전략가라고 칭송받는 동시에 무모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인 지휘관은 전투과정에서 전멸에 가까운 아군의 전투손실을 응당 감수하더라도, 위험한 기동 과정에서 발생할 인명피해, 대규모 비전투손실은 절대 감당하지 못합니다. 항로는 더더욱 위험해서 무적함대의 피해 대다수가 전투가 아닌 퇴각 과정에서, 그것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서안에 배가 좌초함으로써 생겼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 해적영주들이 제주도 남방 항로를 따라 중국 남부지방을 유린했던 자랑질을 듣고서도 그 항로를 이용해 중국을 직접 침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큐슈 북쪽 나고야-이키-대마도-부산 항로를 이용했고, 그 와중에도 프루이스 책에 따르면 수많은 배들이 항로를 이탈해 위기에 처했습니다. 실록에도 선조 26년 강원도 평해군에 왜선이 표류했는데 왜군 혹은 왜인들은 다들 누워서 참수당하거나 잡혔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나머지 표류선들은 동해에 빠져 죽었겠죠. 큐슈 북부의 신사에 마을 단위로 노꾼에 징집됐다가 같은 날 물에 빠져죽은 마을사람들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정유년,무술년에 조선에 도착한 명나라 수군은 황해를 가로질러 오지 않고 내부로 빙 돌았습니다. 실록을 보면 중국 수군의 이동로가 시계열로 조선 조정에 파악되는데 요동, 의주, 강화도 순서로 차례로 남진합니다. 지도에서 아주 가깝게 보이는 산동반도-황해도 혹은 강화도 직항로는 조선 전기나 중기에는 항해기록이 없고 후기에 들어서야 항해 기록이 나옵니다. 이 시기에는 황하가 산동반도 남쪽으로 흘렀기 때문에 해저지형이 수시로 변동해서 산동반도를 지나가는 항로는 중국 내에도 없었습니다. 원명 교체기에 남중국의 군량을 운하가 아닌 바다를 통해 연경으로 빠르게 운반했던 해양세력은 통제의 곤란함을 인지한 중앙정부에 의해 바로 숙청당합니다. 지리적, 정치적 이유로 남방과 동방 항로가 차단돼서 당시 산동반도의 항로라고는 발해만 내부, 혹은 묘도열도를 통한 요동방향밖에 없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산동반도-황해도 직항로는 조선 후기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항로 자체는 존재하고 그것을 국가지도부가 인지했더라도 기술적, 정치적인 이유로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없을 상황도 흔했습니다.
    64 재조산하 라는 고사성어가 실제 유래가 있는건가요? [새창] 2017-04-24 18:49:14 1 삭제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검색창에서 "재조산하"를 넣어 검색해서 목록 5번을 클릭하면

    선조실록 45권, 선조 26년 윤11월 16일 병신 8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흠사 일품 복색 행인사가 보낸 자문

    이라고 해서 명나라 외교관계자(행인)가 조선에 보낸 문서 내용이 실록에 인용돼 있습니다.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611116_008
    여기 아래 내용에
    (중략)산하(山河)를 재조(再造)할 것입니다.(후략)
    라는 내용이 있고, 빨간 원문 버튼을 누르면 원문과 국역이 대조되는데

    http://sillok.history.go.kr/popup/viewer.do?id=kna_12611116_008&type=view&reSearchWords=%EC%9E%AC%EC%A1%B0%EC%82%B0%ED%95%98&reSearchWords_ime=%EC%9E%AC%EC%A1%B0%EC%82%B0%ED%95%98

    아래 원문을 클릭하고 스크롤을 내리시면 아래쪽에 재조산하라는 단어가 빨간 박스 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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