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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리비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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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리비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148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12-31 23:34:24 0 삭제
    1 웃었다...자존심 상해...

    암탉 수탉, 계룡 비유가 좋네요~ 잘 봤어요!^^
    147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12-31 22:52:13 1 삭제
    1 자신을 의인화시키고 싶으시다고요? 인간이 아니십니까 ㅋㅋㅋㅋ

    작성자 님, 역사게도 해주세요~ ㅋㅋ
    146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12-30 19:58:19 1 삭제
    1 아하, 모티브가 될 만한 강한 모습을 실제 경종이 보여준 적이 있군요.

    재미있어요! 역사게시판에 이런 역사 소설도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ㅎㅎ 소설이라고 꼭 책 게시판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니죠?
    145 어느 독재자의 연설.jpg [새창] 2013-12-30 19:55:01 0 삭제
    까시나무// 늙은베르테르 님께서 '연설의 형식을 빌렸으나 부적절한 맥락에 인용했다'라고 하신 데에 동의합니다. 제가 첫 댓글에 썼듯이 본문에 인용된 히틀러의 연설은 갈등이 표출되는 상황을 '혼란'이라며 부정적으로 표현해, 갈등의 표출을 막고 자기네의 의지를 강요하며 억지로 갈등을 봉합하는 것으로 흐르기 십상이고,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를 내재합니다.
    까시나무 님께서 변형한 글의 상황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상황입니다. 선거는 다양한 이해관계 및 가치관을 다수결 결집이라는 단순한 방법으로나마 조율하는 것입니다. 부정선거라면 이 갈등의 조율이 공정하지 못했단 거죠.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것은 갈등을 표출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왜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위를 통해 갈등을 표출하면서, 그것을 억누르고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까지 하며 갈등을 억지로 봉합하려 드는 것에 항의하는 거고요.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회복시키고자 하는 '법과 질서'는 갈등의 표출이 체제 안에 받아들여지고 체제 안에서 민주적이고 평화롭게 조율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체제를 말하는 것이지, 히틀러처럼 민주주의가 거세된 강요된 질서가 아닙니다.

    그와 별개로, zrider 님 말씀처럼 저런 논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전체가 뭉치지 않으면 국가 자체가 망할 수밖에 없는, 비상계엄을 내려야 할 지극한 위기상황이라면요. 하지만 그 경우에도 되도록이면 억압을 최소화하고, 위기를 빠르게 해소한 뒤 해소되자마자 즉시 자유를 회복시켜야겠죠.
    144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12-29 19:42:39 0 삭제
    자극적인 언어이긴 한데, 충분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삭제되지 말라고 추천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도, 전쟁을 한 것도 사실이니, 명분이 옳다 해도 그 유혈은 비판하거나 적어도 안타까워 하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한에서 반박을 해 보자면요, http://todayhumor.com/?history_11622 대부분 제가 전에 쓴 글에서 이미 말한 거 복붙입니다만...

    일단 '혁명 반대한다고 사람 다 죽였다'부터 반박해보겠습니다.
    로베스피에르파는 공포정치가 지나치게 막 가는 걸 염려했습니다. 에베르파와 그들을 지지하던 과격 상퀼로트들은 경제통제와 공포정치를 더 과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거부하고 에베르파를 숙청했습니다. 그건 에베르파가 민중봉기 계획을 들켜서였고, 공포정치를 아예 멈추자는 당통파도 숙청했지만요. 리옹의 푸셰와 콜로 데르부아, 낭트의 카리에, 슈트라스부르의 오일로기우스 슈나이더 등, 지방의 반혁명 봉기 진압에서 지나친 학살을 벌인 파견의원(순찰의원)들을 로베스피에르가 소환하거나 처벌했죠. 그리고 지롱드파나 에베르파나 당통파 등 적대 세력을 숙청할 때 지도자급만 처형하고 덜 중요한 사람들은 살려두려고 했어요. 그렇게 남은 적대 정파 잔존 세력이 죄다 뭉쳐서 테르미도르 반동을 일으켜 로베스피에르와 그 동료들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고, 나름 혁명을 위해 그런 건데 비판받아서 빡친 순찰의원들도 테르미도르 반동에 합세했죠.
    그래도 반혁명봉기 진압이 가장 가혹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했던(여자와 아이까지 죽이라는 국민공회의 공식명령이 있었음) 방데 학살은 말리지 않았습니다. 94년 6월 10일에 프레리알 22일 법이라고, 재판에서 변호와 증인 심문을 없애 배심원 심증만으로 유죄가 될 수 있게 하는 말도 안 되는 법을 도입해서(만든 건 최측근인 조르주 쿠통이지만 입법되도록 적극 지지했음), 파리에서 사형선고 받은 사람이 1793년 3월 1일부터 1794년 6월 10일까지 1,251명인데 이 법 만든 1794년 6월 10일부터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는 1794년 7월 27일까지 47일동안은 1,376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정도가 심했다고는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포정치 때 상황이 매우 급박했습니다. 프랑스 밖에서는 저 혁명이 우리나라에 번지는 걸 막겠다며 거의 전 유럽이 뭉쳤고(제1차 대불동맹), 프랑스 안에서는 리옹, 낭트 등 지방 곳곳에서, 특히 방데에서 거세게 반혁명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까딱하다가는 혁명이나 공화국이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 자체가 사라질 판이었죠. 이렇게 안팎으로 위급한 상황이라 전쟁을 수행하려면 전 국민을 총동원해야 했습니다. 군사를 대규모로 징집하고, 물자를 징발하고, 군수 생산을 국유화하고, 경제를 통제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반대 세력을 단호하게 쳐내야 했죠. 근대적 총력전의 유효한 동원이라는 형태로 이해될 수 있는데, 총력전이란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보인 것 같은 징병, 배급과 엄격하게 통제된 전시경제 및 국내외에서의 군인과 민간인 구별을 실질적으로 철폐하는 국가자원의 총동원을 말합니다. 그래서 당대 사람들이 공포정치를 1년 채 안 되는 기간이나마 '참아준' 거고요. 이런 식으로 통제의 필요성 자체를 인정하더라도, 그래도 폭력의 정도가 심했다거나 최고가격제 같은 구체적 정책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부르주아, 상퀼로트, 농민으로 나뉘지만 그들 간에도 분열되어 있던 다양한 세력들의 서로 모순되는 요구들이 분출했는데 후대 사민주의가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정치경제 제도의 다양한 요소들을 전체적 관점에서 조율하는 '제도의 과학'이 발전해 있지 않아서 지극히 미숙한 정책만 나왔다는 것 등, 시대적 한계도 고려는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웃나라와 전쟁한 것'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1792년 4월 20일에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해 혁명 전쟁을 시작한 것은 나중에 공포정치를 하게 되는 산악파가 아니었습니다. 라파예트파와 후일의 지롱드파였죠. 게다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주전론자 나르본을 각료로 임명하고 프로이센 왕과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편지를 써서 침략을 요구하는 등 은밀히 전쟁 시작을 부추겼죠. 후일의 산악파는 이 때 오히려 혁명 전쟁을 반대했어요.
    1792년 8월 10일 튈르리 궁 습격으로 산악파의 힘이 커진 후, 그리고 93년 6월 2일 봉기로 산악파가 집권한 후에, 전쟁이 더 격화되긴 했지만, 1792년 7월에 저항하면 파리를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브라운슈바이크 선언'이 나오면서 위기감이 극히 커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건 당연했습니다. 침략이 거세지는 만큼 그 방어도 거세져야 했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통제경제정책과 공포정치라는 전 국가적 통제를 통해 국민을 총동원해 맞서야 했죠. 네...확실한 승리로 확실한 평화를 얻기 위해 보급 가능한 이상으로 많은 군인을 징집해서 그들이 보급품을 현지조달, 사실 약탈을 하면서 침략군화 되어가긴 했습니다...처음에는 정당방위였으나 자코뱅 정권 시절부터 이미 그걸 넘어섰다며 비판할 수도 있죠.

    혁명이 목표 삼았던 이상과, 폭력이 일어나게 된(날 수밖에 없었던 면도 많이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드러나는 폭력만 강조해 '폭동'이라고만 하는 건 혁명의 복잡한 면을 많이 놓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과 한계 상황을 이유로 폭력을 쉽게 정당화하는 것도 피해야 할 테고요.
    143 박정희 향수는 혹 스톡홀름 증후군 [새창] 2013-12-28 21:47:18 1 삭제
    이건 구체적 역사에 기반한 게 아니라 추상적인 생각이긴 한데, 저는 '자유'의 소중함이란 게 쉽게 알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capcold.net/blog/2843 이하는 이 글에서 거의 베낀 생각이지만...
    볼테르가 했다고 알려져 있는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는 사실 그의 사상을 정리한 이블린 홀(Evelyn Hall)이 <볼테르의 친구들>(1906)이라는 책에서 볼테르의 사상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녀가 오마쥬한 볼테르의 원래 발언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십시오."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자기 머리로 한 생각을 가질 때 완성되는 것이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역사상 '권력자에게 맹목적으로 동의하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자기 머리로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 현존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자유가 그리 소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시대에 자유가 억압되었다고 해도 와닿지 않으며, 오히려 그 시대에 사적인 삶의 풍요로움과 편안함은 커졌기 때문에 나쁜 시대가 아니라 좋은 시대인 거죠. 본문대로 '국민 모두는 자유를 갈구'한 것은 아닙니다. 6월 민주항쟁 후 대선에서 노태우가 36.6%의 지지를 받은 것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지요...

    이건 주변적인 얘기지만요, '이념적으로 사회주의보다 더 무섭고 처참한 게 독재'라는 구절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사회주의=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독재'가 아닙니다. 사회주의에는 혁명과 과도기적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한 사유재산제도의 철폐를 추구하는 '공산주의'도 있고, 현존 의회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사유재산을 어느 정도 균등화하고자 하는 '사회민주주의'(사실 여기서 그치면 '민주사회주의'고 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은 여기에 해당한다는 말도 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사회주의로 가려는 게 원래의 사회민주주의지만)도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그렇게 갈라지기 전부터 고삐 풀린 자본가들의 탐욕에 대항해 노동자들의 저항을 고취해서, 노동자와 빈민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프랑스의 사회당과 독일의 사회민주당 등 사민주의 정당들이 집권당이 되거나 제1야당이 되면서 역시 노동자와 빈민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데 기여했죠. 현실 공산주의는 원래의 마르크스 이론상으로는 과도적이고 잠정적인데다 개인이나 소수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다수 대중의 독재였는데, 스탈린 때 영속적인 일당 독재로 변질되었습니다. 레닌 때도 이미 그렇게 되고 있었다거나, 마르크스 이론에도 그런 구석이 보였다거나 하는 말도 있고, 그 말이 맞는지 틀린지 판단을 아직 못 내렸는데, 결정적으로 그런 부정적인 독재가 굳어진 건 스탈린부터가 아닌가 합니다...이건 자신 없군요 ㅋㅋ 아무튼 현실 공산주의는 적어도 '노동자 및 빈민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라는 위기의식을 자본주의 사회들에게 심어주어 노동자 및 빈민의 권익에 기여하기는 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사회주의가 논란의 여지 없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보기에 따라(제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 같은) 긍정적 면이 있었다는 겁니다 ㅎㅎ
    142 어느 독재자의 연설.jpg [새창] 2013-12-28 20:52:06 22 삭제
    갈등을 두려워하거나 혐오해서 갈등의 표출을 막고 '화합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군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나 가치관을 가지기에 저변에 갈등은 항상 존재하고, 진정한 화합이란 갈등이 충분히 표출되어 서로의 다른 요구를 확인한 다음에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갈등을 강제로 봉합하려다가, 또는 갈등이 조율 가능하게 표출되지 않고 극단으로 치달아서, 실패를 겪은 사례가 많이 있죠.
    141 [개드립]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가 말이죠, 사실은... [새창] 2013-12-27 22:07:35 0 삭제
    1 그러게요. 글에서 여자 드립 친 부분 빼고는 다 동시대인들이 증언한 사실들인데...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525073/Madame-Tussaud-death-mask-used-reconstruction-experts-create-Robespierre.html 이 기사 보니까 FBI에서 쓰는 기술로 복원한 거라고 하니 맞게 복원한 거겠죠, 아마.
    데스 마스크도 일반적으로는 진짜로 받아들여지고 있고요.
    그러니 인정하세요, 님의 로베스는 원래 저랬습니다 ㅋㅋㅋㅋㅋ

    음...그런데 체포될 때 총 맞아서 생긴 상처가 있는 다른 데스 마스크도 있더라고요. http://www.flickr.com/photos/14910688@N08/1539166086/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ㅋㅋㅋ
    140 [개드립]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가 말이죠, 사실은... [새창] 2013-12-26 20:09:02 0 삭제
    얼굴이유머// 이뻤냐고요?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이라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죠~ 초상화랑 데스 마스크(죽은 후에 얼굴 본뜬 것)가 있긴 한데요...
    최근에 데스 마스크를 가지고 복원한 게 있어요! http://ipercalisse.tumblr.com/post/70318453004/robespierres-face
    ...네, 현실은 냉혹합니다 ㅋㅋㅋㅋㅋㅋ
    데스 마스크 보고 그럭저럭 괜찮게 생긴 줄 알았는데 ㅋㅋㅋ 링크한 글 맨 아래에 있는 데스 마스크는 눈 크고 얼굴 작게 생겼는데, 왜 맨 위의 복원도는 눈 작고 얼굴 클까요... 데스 마스크에 포샵 효과가 있을 줄이야 ㅋㅋㅋ 6살 때 어머니를 잃기 전에 천연두에 걸려서 마마 자국이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마마 자국이란 게 저렇게 험악하게 생긴 거였다니 ㅋㅋㅋㅋ
    복원한 분이 복원 과정도 올려놨더라고요. http://www.visualforensic.com/VisualforensicRobespierre.html
    그 데스 마스크의 진위 논란도 있긴 해요.

    사실 로베스피에르가 남자인 걸로 전제하고 복원해서 정확하지 않게 나온...!
    ...죄송합니다. 정줄 잡을게요 ㅋㅋㅋㅋㅋ

    뭐, 어때요. 대신에 생쥐스트가 예쁩니다!
    남자이지만요...

    139 [개드립]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가 말이죠, 사실은... [새창] 2013-12-26 17:10:54 0 삭제
    레오나// 아참, 깜빡 잊고 말 안 한 게 있는데요, 제가 추천한 책들을 봐도 인물들의 성격은 잘 안 나올 거예요. 그나마 로베스피에르는 비중도 크고 성격이 독특해서, 청렴결백함이 민중의 지지를 얻게 해서 최고권력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든가, 타협도 안 하고 친목질도 안 하는 꼿꼿한 성격 때문에 정부의 다른 인물들과 마찰이 심해져서 몰락을 재촉했다든가, 그런 식으로 개인적 성격이 프랑스 혁명의 중요 국면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면이 있어서 성격 이야기도 좀 나오지만요. 흥미가 가는 인물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프랑스 혁명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책이 아니라 인물 전기라든가 인터넷이라든가 다른 루트를 봐야 할 거예요. 전 영어 웹페이지들을 구글링하고 로베스피에르 팬 블로그들에 들락거렸죠 ㅋㅋ


    동식물사랑합//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쓴 글 중 프랑스 혁명 관련된 건 이거 말고는 하나 밖에 없는데... 다른 글들은 정돈되지 않은 단상들을 쓴 거고요. 다 재미없을 텐데...ㅋㅋ 앞으로 공부 더 하고 시간 더 나면, 이런 왜곡은 말고 적당한 개드립을 섞은 프랑스 혁명 관련 글들을 더 써볼까 해요 ㅎㅎ


    다다다다당// 박정희 대통령이요?! 전혀 생각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비슷한 점이 많아요! 와, 박정희는 우파의 우상이고, 로베스피에르는 원조 좌파라 - 어원상으로도(좌파와 우파의 어원은 후의 지롱드파와 자코뱅파가 함께 극좌파였던 제헌의회의 의석배치긴 한데, 국민공회에서 자코뱅파와 지롱드파가 좌우파로 나뉘며 그 단어를 더 굳어지게 만들었죠) 정책상으로도(거의 최초로 하층민을 지지기반 삼은 분배 정책과 통제경제 정책을 썼어요) - 전혀 생각 못했는데... 로베스피에르는 급진적 변화를 이끌었다는 것 때문에 한국인 중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조광조, 김옥균과 연결되곤 하던데요, 오히려 그들보다 박정희 대통령과 더 공통점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박정희 대통령을 역사의 흐름상 나타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죄송합니다. 제가 프랑스 혁명으로 역덕질...이라기에도 약하고 역사 건드리기를 막 시작한 터라, 나머지 역사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요 ㅜㅜ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과정으로 권력을 잡았는지 잘 몰라요... 그런데 저는 세상이 한 사람이나 소수 엘리트에 의해서만 굴러가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데는 주도자들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그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여러 조건들이 받쳐주고, 일반 인민들이 지지 또는 묵인 또는 굴종을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박정희가 나타난 것도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식으로 100% 확신은 못하겠는데, 나타날 만한 필연적 배경이 상당히 갖춰져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단 로베스피에르의 역사적 필연성부터 생각해볼게요. 영국 명예혁명은 왕정과 귀족이 양보해서 부르주아지와 빠르게 타협한 덕에 비교적 피를 덜 흘리고 일찍(그러나 덜 나아간) 수준에서 끝났죠. 그런데 프랑스 혁명은 왕정과 귀족이 끝끝내 타협을 거부해서 부르주아지는 특권을 빼앗기 위해 하층 민중의 힘을 빌려야 했어요. 테니스 코트의 선서를 하고 국민의회를 만들었지만, 궁정은 근위대를 국민의회 해산시키러 회의장에 보냈다가 물렸고, 파리에 외국 용병들을 불러모았어요. 그래서 파리 하층민들이 바스티유 습격을 하고 나서야 국민의회는 인정받았죠. 또 1789년 인권선언도 왕이 계속 재가 안 하다가, 파리 여성들을 주축으로 한 파리 하층민들이 베르사유 궁에 무장하고 쳐들어가 왕실 가족을 파리 튈르리 궁으로 데려온(부녀자들의 베르사유 행진) 후에야 인정되었죠. 이렇게 해서 민중 운동의 힘이 강해졌고,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불만이 쌓이면서 민중 운동이 더욱 격렬해졌어요.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처음부터 남성 보통선거처럼 정치적 자유의 폭넓고 엄격한 평등을 주장하고, 과격 민중봉기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법령에 반영하려고 하면서, 하층 민중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졌죠. 그런데 혁명 초기에 국정운영을 주도했던 온건파 혁명가들은 민중봉기의 요구를 잘 들어주려하지 않아 불만이 쌓이게 했고, 게다가 국내의 빈곤을 국내적 재분배가 아니라 국외로부터의 수탈로 해결하기 위해 혁명전쟁을 시작했으면서 계속 패배하며 빈곤을 심화시키는 바람에, 1792년 8월 10일 봉기에서는 왕정과 푀양파 입헌군주론자들이, 1793년 5월 31일과 6월 2일 봉기에서는 지롱드파가 권력을 잃고, 남은 로베스피에르 주도 자코뱅파가 권력을 잡아 위기 극복을 위한 강력한 통제 체제 즉 공포정치를 한 겁니다.
    박정희는 잘 모르겠는데...4.19혁명에서 분출된 개혁 기대를 장면 정부가 잘 충족시키지 못했고, 혼란 상황(박정희 지지자들 말만큼 심했던 것까지는 아니었단 얘기도 있던데)에 질린 일반 시민들이 안정을 원했고, 일반 시민들의 민주주의 의식 발전이 약했다는 것 등이 원인이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너무 간략하네요 ㅋㅋ
    둘의 상황을 비교하자면, 둘 다 위기 및 혼란 상황 때문에 통제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생기면서 권좌에 올랐다는 게 공통점 같아요. 로베스피에르는 좌파적 혁신, 박정희는 우파적 혁신을 요구받고 실행했다는 차이가 있고요.

    로베스피에르와 박정희의 가장 큰 공통점은 '근대적 민족(국민, nation) 강조'라고 봅니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신분끼리 하나의 공동체라는 일체감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프랑스 혁명으로 모든 프랑스인이 평등하다는 관념이 생기면서, '왕이 국가'가 아니라 평등한 시민(인민)의 집합체가 곧 국가라는 생각이 생겼죠.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흔히 '자유, 평등, 박애'라고 하는데요, 마지막 'Fraternite'는 박애보다는 '형제애, 우애'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한, 전 인류 차원의 연대감이 아니라 프랑스 시민들 간의 연대감이에요.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한 시기는 거의 전 유럽이 프랑스에 맞서 뭉쳐서(제1차 대불동맹) 전쟁을 벌이고, 내부에서 혁명 정부에 반대하는 지방의 봉기들이 일어나던, 전무후무한 최악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이걸 돌파하기 위해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민족을 위해 전 인민이 뭉쳐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징병제와, 최고가격제 등의 통제경제 정책과, 군수물자 생산의 국유화와, 위반자의 가차없는 처벌 등 국민총동원으로 총력전에 준하는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애국심=민족애=시민적 덕성을 고취하기 위해 빨간 프리기아 모자, 삼색기, 이성의 여신, 헤라클레스 동상, 라 마르세예즈 같은 혁명 가요 등등의 상징들을 홍보하고 공화주의 축제를 벌이며, 프랑스 공화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민족주의(nationalism)를 일종의 '종교'로 만들었죠.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가 들어가는 국기에 대한 경례나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가 들어가는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민족애를 고취시켰어요. 이미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저항적 민족주의'로서 근대적 민족주의가 생겨나 있었지만, 현존하는 국가에 충성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를 강력하게 고무했죠.

    그렇게 민족으로 뭉치게 하는 과정이 폭력적이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네요.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정부의 정책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형제 아닌 자, 형제애의 대상이 아닌 자, 적으로 규정하고 폭력적으로 배제, 처형했고, 박정희도 정부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국민 아닌 자, 간첩으로 규정하고 폭력적으로 사회적 배제, 구속, 고문, 처형했죠 ㄷㄷ 물론 로베스피에르가 죽인 수가 훨씬 많지만(20세기 중반에 18세기 후반보다 더 많이 죽이는 게 막장이긴 해요) 로베스피에르가 상황이 더 절박하긴 했어요... 누가 더 선하다 악하다를 따지려는 건 아니에요! 전혀 다른 상황의 둘을 그렇게 비교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ㅎㅎ

    통제경제 정책을 썼다는 것도 공통점이군요. 방향은 전혀 달랐지만요. 로베스피에르는 '모든 사람이 작은 토지, 작업장, 상점 등 소규모 생산수단을 가지는 소小생산자들의 사회'라는 루소적 이상을 위해, 봉건적 공과(봉건 영주에게 세금을 내야 하는 의무)를 무상으로 폐지하는 정책을 실행했고, 반혁명죄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재산을 압류해 가난한 애국자들에게 분배하는 '방토즈법'을 입안하는(실행은 못 하고 죽었죠) 등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정책을 썼어요. 그런데 근대 자본주의가 발달하려면 사람들이 정해진 신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또 자본 및 생산수단이 집중되는 양극화가 일어나는 와중에 자기 토지를 잃고 쫓겨나서 대규모 공장에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게 되는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사실상 굶어죽을 자유)'가 있어야 하거든요. 로베스피에르의 분배 정책은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를 방해해서 프랑스의 자본주의 발전을 방해했고 프랑스의 국력이 영국보다 뒤처지게 만들었죠.
    반면에 박정희는 대규모 중화학 공업 위주로 육성하면서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대기업들에게 자본을 몰아주는 성장 정책을 펼쳤어요. 저는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는(물론 둘 다 필요하지만) 좌파이긴 한데, 로베스피에르는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박정희는 결과적으로 성공해서 오히려 국민 대부분을 더 부유하게 만들고 중산층을 늘려서 빈자들에게도 당장의 결과에 있어서는 박정희 쪽이 더 도움이 되었네요. 하핫...

    둘 다 '독재'라는 점도 공통점이랄까요?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독재'인데, 1791년 말 혁명전쟁 반대할 때와 테르미도르 반동 전날 연설할 때 군사독재를 경계하면서, 경찰이나 군대 등의 탄탄한 기반을 가진 영속적 독재를 거부했어요.(더 살았으면 변했을지도 모르는 거긴 한데, 살아있을 때 한 말과 행동만 봐서는요. 경찰을 통한 정보 수집이 있기는 했는데 권력 유지의 핵심 수단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공안위원회'라는, 위기 대처를 위한 의회 내 임시 위원회였지만 사실상 행정부 기능을 하며 공포정치를 주도한 기관에서 로베스피에르가 가장 영향력 있는 위원이긴 했는데, 본질적으로 민중의 지지 때문이지 다른 위원들보다 더 큰 권력이 공식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민중(파리 인민)의 지지를 받는 한에서, 또 재산소유자들의 용납 내지는 소극적 지지를 받는 한에서만 유지될 수 있었죠. 그래서 독재에 준한다고는 해도 엄밀한 의미의 독재는 아니래요. 마지막 한 달 쯤에 국외전쟁들이 승리하면서 위기가 제법 사라졌는데(완전히는 아니고) 처형은 잦아지니, 재산소유자들이 참아줄 이유가 많이 사라지고, 그 전에 과격 민중운동을 탄압해 정부 권력을 강화했는데 단두대의 지겨움까지 생겨나서 민중의 지지를 상당히 잃었고 남은 지지도 느슨해져서, 테르미도르 반동 때 그토록 빠르게 몰락한 겁니다. 반면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집권해서 군대와 정보정치라는 탄탄한 기반으로 비교적 영속적인 독재를 했죠.

    좌파 대표 로베스피에르와 우파 대표 박정희 간에 이렇게 공통점이 많았다니...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주셔서 정말이지 감사합니다!! ^0^
    대답이 장황하게 긴 건 죄송하고요^^;; 제가 간단하게 정리하는 걸 영 못해서...ㅋㅋ


    동네뚱남// 아하,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ㅜㅜ 그 교수님 루소의 모국에서 루소로 박사 따셨다니 참 루소루소한 공부를 하신 분이네요 ㅋㅋㅋ 그래도 그렇게나 찬양 일색의 말을 계속 늘어놓으면 당연히 질리는데 왜 그런 루소 안티짓을 ㅋㅋㅋㅋ
    제가 앞서 동네뚱남 님께 드린 댓글에서는 이론과 실행의 차이를 강조했는데, 이론에서 드러난 이상이 실행자들에게 자신이 정당하다는 생각과 목표의식을 주어서 실행을 강력하게 추동한다는 것도 중요하죠. 말씀하신 루소의 면모들이 다 맞다고 생각해요. 동시대 계몽주의자들이 보지 못한 '평등'의 지점을 지적해서 자코뱅의 이상, 프랑스 혁명의 독특한 부분인 공포정치를 가능케 한 그 이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공포정치가 피를 무지막지하게 불렀던 게 분명 맞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에서 더 평등한 자유와 노동권과 사회부조권 등의 요구를 하는 급진파(급진 공화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의 운동에 시범 겸 모델이 되어서 그 급진적 운동을 고무함으로서, 근대 정치가 지금처럼 더 실질적이고 넓은 민주주의로 가도록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코뱅이 숭배한 루소는 재앙과 축복을 동시에 가져다 준거죠 ㅎㅎ

    네, 루소가 개인적으로는 미치광이와 동네날백수와 건달의 요소를 갖추고 있죠 ㅋㅋㅋㅋ 로베스피에르는 본인은 금욕적이고 재미없게 살면서 어떻게 루소에게 끌렸는지 ㅋㅋㅋ 루소는 사상도 앞서 말했듯 다면성을 갖고 있는데, 개인적 삶까지 생각하면 더욱 복잡해요. 골 빠개지겠네요 ㅋㅋ 그런데 복잡함 역대급인 프랑스 혁명에 빠진 시점에서 제 인생은 이미 망했으니 걱정 안 해주셔도 돼요! ㅋㅋ 루소도 같이 파서 더 망해볼렵니다~ 아하하...


    졍기사// 감사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개그를 재미있게 봐주시는 도량에도 감사하고요~ ㅋㅋ
    138 [개드립]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가 말이죠, 사실은... [새창] 2013-12-26 01:13:00 1 삭제
    바야바아// 오,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가 나오는 만화가 또 있군요! 이케다 리요코 씨의 <베르사유의 장미>랑 김혜린 씨의 <테르미도르>만 알고 있었는데. 정보 감사합니다! 역사 속에서도 선악 중 어느 쪽으로 판단하든 간에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인물들인데, 거기서도 엄청 인상적인가봐요.
    <베르사유의 장미>에 오스칼 예쁘고도 멋있죠 ㅎㅎ 로베스피에르를 권력을 탐하는 테러리스트로 표현한 애니메이션과 달리 만화책은 로베스피에르가 꽃미남 스타일에 진정한 민주주의자로서 긍정적으로 그려져서 놀랐어요. 후자는 그렇다쳐도 그렇게 꽃미남 스타일로 그리면 실제 초상화와의 괴리에 충격받을 독자들은...ㅋㅋㅋ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남장여자설을 진지하게 믿는 건 아닙니다, 개드립이에요 하하핳;; (2)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오나// 보잘것없는 지식인데 그리 높이 평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프랑스 혁명이 본문 초반에 썼듯 해석이 분분하게 갈리는 책이라, 하나의 책만 보면 관점이 치우치기 쉬워서 조심스럽네요...
    으, 가볍게 읽을 책이 영 안 떠오르네요...ㅠㅠ 문학 중에는 빅토르 위고의 <93년>과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있어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 약간은 재미있게 해주는데, 문학인 만큼 역사적 엄밀성까지 기대하기는 힘들죠. 오르치의 <빨강별꽃(Scarlet Pimpernel, 스칼렛 핌퍼넬)>은 공포정치가 배경이긴 한데 그저 배경일 뿐 별 고찰이 없고 그냥 모험 활극이라서, 재미로라면 몰라도 프랑스 혁명을 알기 위한 용도라면 비추예요.

    일단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대가인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가 1789~1848년의 유럽 상황을 전체적으로 잘 그렸는데, 그런 맥락과 연결해 프랑스 혁명을 잘 고찰한 것 같아요. 또 노명식의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은 친 로베스피에르 편향이 강하지만 프랑스 대혁명과 그 후의 혁명 전통의 주요 흐름을 간략하고 개괄적으로 알아보기 편해요. 로베스피에르 개인에 대해서라면 장 마생의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이 있는데, 로베스피에르 개인의 행적을 쫓아가면서 프랑스 혁명 상황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죠. 전체적으로 알기는 힘들고요. 뒤에 말할 정통주의 해석이고, 로베스피에르 편을 강하게 들고 있어서 그 반대파들을 악으로 치부하는 등 중립성은 떨어지는데요, 그렇게 평가하는 근거는 비교적 명확히 밝히고 있어서 비판적으로 읽으면 문제 없을 것 같고, 친 로베스피에르 시각을 전형적으로 잘 보여주기에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지식을 쌓기에 좋아요 ㅎㅎ

    프랑스 혁명의 해석으로 크게 정통주의와 수정주의가 있습니다. 정통주의는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으로, 프랑스 혁명의 계급 갈등 측면을 강조해서 부르주아지 계급이 귀족 계급을 타도한 사건으로, 즉 마르크스 역사발전단계의 필연성에 따라 중세 봉건제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한 사건으로 보면서, 자코뱅 집권기를 소련 공산주의로 이어진 전통의 선구 내지는 맹아로서 찬양합니다. 이것의 대표 저작으로 알베르 마띠에(알베르 마티에, 마티에즈)의 <프랑스혁명사>와 알베르 소부울(알베르 소불)의 <프랑스 대혁명사>가 있어요. 수정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정치적 사건이자 우연적 사건으로 보면서, 자코뱅 집권기를 소련 공산주의로 이어진 전체주의(그리고 다른 갈래로 파시즘에도 이어진)의 선구로 비판합니다. 이 해석의 대표 저작으로 F.퓌레(프랑수아 퓌레)의 <프랑스 혁명사>가 있어요. 문제는 이 세 권이 다 절판되었다는 건데요...도서관, 헌책방, 인터넷 중고서점 등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통주의와 수정주의 말고, 2000년대 무렵부터 제기되고 있는 제3의 길로, '신자코뱅적 해석'이라고 부르는 해석도 있어요. 사회경제사 중심으로 보는 정통주의와 달리 정치사 및 법제사에 주목하고 있고, 자코뱅 집권기를 혁명의 일탈이자 전체주의의 선구로 보는 수정주의와 달리 자코뱅 집권기를 프랑스 공화주의와 근대성 형성에 결정적이고 정초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대요. http://blog.naver.com/kimseye3/130068532433 장 피에르 그로스(Jean-Pierre Gross)의 르몽드 기사와, http://taupes.org/wp/2013/11/26/%ed%94%84%eb%9e%91%ec%8a%a4%ed%98%81%eb%aa%85%ec%82%ac-%ec%97%b0%ea%b5%ac%ec%9d%98-%ec%83%88%eb%a1%9c%ec%9a%b4-%ea%b2%bd%ed%96%a5%ec%97%90-%eb%8c%80%ed%95%9c-%ec%b9%bc%eb%9d%bc-%ed%97%a4%ec%84%b8/ 칼라 헤세(Carla Hesse)가 이 흐름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글이 있습니다. 이 쪽 해석의 책들은 국내에 번역이 안 되어서 저도 이 두 글로만 봤는데;; 흥미롭고도 정통주의와 수정주의보다 더 많은 것을 본 해석으로 보여요.

    최대밝기// 머, 멋있나요, 하하하;;; 크리스마스의 울분;;으로 살짝 미쳐서 써버리긴 했는데 수치스럽네요 ㅋㅋㅋ 진지하게 믿는 게 아니라 개드립입니다! (3)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쓰잘데기 없는 잡지식을 모아본 건 뭔가 뿌듯하네요. 내가 이렇게 잉여짓을 많이 했구나 싶어요 ㅋㅋㅋㅋ 애초에 학문의 라틴어 스콜라(schola)가 여가라는 뜻이니 이것도 나름 학문의 일종...하하핳하;; 아무튼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계라슥// 음모론은 진지하게 믿을 때 음모론이라고 하는 거고, 이건 절대 믿는 게 아니라 막 나가는 개드립이었는데...오해하게 해서 죄송합니다ㅜㅜ 저도 당연히 안 믿어요! '프랑스 혁명이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음모였다는 얘기보다는 설득력 있을 걸요?'라고 본문에 써서, 그만큼 말도 안 돼고 우스꽝스러운 개그일 뿐이라는 걸 암시하려고 했는데 전달이 안 됐군요...ㅜㅜ
    137 [개드립]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가 말이죠, 사실은... [새창] 2013-12-26 00:15:21 1 삭제
    동네뚱남// 아, 아랫댓글 쓰는 사이에 댓글 다셨는데 제가 못 봤네요 ㅎㅎ
    음... 그런데 꼬릿말에 써놨듯 저는 자코뱅 집권기에 긍정적 면도 있다고 보고 있어서요.
    루소는 그 긍정적 면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어요. 로크 등 다른 계몽주의자들과 달리, 루소는 사유재산제도가 인위적인 것이고 따라서 소유권이 불가침의 자연권이 아니란 점을 밝혔고, 그에 따라 다른 시민들의 생존권을 위해 소유권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자코뱅의 정책과 후에 사회민주주의와 혁명적 공산주의로 갈라진 사회주의에 반영된 관념을 낳았거든요. 그 덕에 노동자 및 하층민들의 처지가 많이 나아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나의 의견에 반대되는 것이 승리했을 때 그것은 내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전체 의사라고 믿었던 것은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증명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 등을 보면 루소의 '일반의지론'에 전체주의적 면모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http://www.yes24.com/24/Goods/2782079?Acode=101 책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에서 김용민 씨의 루소 챕터에 이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사회계약론>의 '전체의지와 일반의지 사이에는 자주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일반의지는 공동의 이익만을 고려한다. 전체의지는 사적 이익을 고려하며 단지 사적 의지들의 총화일 뿐이다. 그러나 사적 의지들은 넘치고 모자라기도 한다. 넘치는 것과 모자라는 것을 서로 가감상쇄하면 차이들이 남게 되는데, 그렇게 남아 있는 차이들의 총화가 일반의지다.'를 인용하고, 김용민 씨가 마지막 문장에 대해 해설하기를, "왜 루소는 일반의지를 정의할 때 보다 간단하게 평균이란 개념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그에 대해 필자는 루소는 '넘치고 모자란다'는 표현을 통해 개인들 간에 존재하는 사적 의지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그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을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라고 했어요. 루소 철학은 일관되지 않고 상당히 다면적으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로베스피에르도 1789년 인권선언 만들 때는 11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들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출판할 수 있다. 다만 법이 정한 경우에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에서 마지막 문장의 유보 조건을 삭제해야 한다며 언론의 무제한적 자유를 주장했는데... 로베스피에르는 93년 12월 25일 "혁명정부의 원리에 관한 보고서"에서 '입헌 체제 아래서는 공권력 남용에 대항해 개인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거의 충분하다. 그러나 혁명정부 아래서는 공권력 스스로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당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라면서 혁명 시에는 평화 시와 다른 예외적 원칙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 앞에 '혁명정부의 이론은 그 이론을 낳은 혁명만큼이나 새로운 것이다. 이 혁명을 결코 예견하지 못했던 정치적 저자들의 책 속에서 그 이론을 찾아서는 안 된다'라고 썼어요.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공포정치가 루소 철학으로 정당화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로베스피에르 개인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나 공포정치의 다른 실행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래서 루소가 공포정치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루소와 공포정치의 관계는 흔히 비교되는 마르크스와 스탈린 독재의 관계보다는 멀다고 생각해요.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과도기적 독재를 상정한 폭력혁명 이론을 내세웠고, 볼셰비키는 마르크스 철학을 자신들이 정당화 논거로 사용했습니다. 반면 루소는 직접적으로 폭력혁명을 말하지는 않았고,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의 정당화 논거가 '정치적 저자들의 책 속'에 있지 않다고 했죠. 루소의 사회계약이 '기존의 체제는 부자들의 기만으로 세워진 것이기에 전면 부정하고 새롭게 사회계약을 이루어야 한다'는 식으로 혁명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상기했듯 일반의지론에 전체주의적 면모가 있다고 볼 수도 있어서, 그런 걸 강조해서 루소가 공포정치에 책임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너무 과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루소는 프랑스 혁명 초기의 온건파 혁명가들과 테르미도르 반동 후의 주도세력들도 존경했어요. 어떤 사상이 어떤 정치적 행동의 토대 및 정당화 논거가 되었다고 해도, 결국 이론은 추상적인 이론일 뿐이고, 실행은 구체적 현실에서 실행자들과 현실을 제약 조건들에 의해 얼마든지 다르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네...길게 말했지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더 공부하고 더 고민해 봐야죠 ㅎㅎ

    토로링// 감사합니다~♡ 프랑스 혁명 좋아하시는 분 만나니 반갑네요! Liberte, Egalite, Fraternite!!
    여자 같다는 생각은 흔히들 하는 걸까요 하하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진지하게 믿는 건 아닙니다, 개드립이에요 하하핳;;

    물의백작// 모에 소리까지 듣게 만들다니 로베스피에르 씨 진짜 미안합니다 하하하;;; (2) 아무튼 추천 감사합니다!^0^
    136 [개드립]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가 말이죠, 사실은... [새창] 2013-12-25 23:53:11 1 삭제
    랑랄라// 역사게시판 이미지가 역사인물 가지고 되도 않는 개드립 치는 곳이 되어도 상관 없단 말이죠? ㅋㅋㅋ 아무튼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ILoveCaRRier// 님을 토해 베스트 가버렸네요... 미안합니다, 역게... 내 첫 베스트가 이런 글이라니, 크흑 ㅜㅜ 모에 소리까지 듣게 만들다니 로베스피에르 씨 진짜 미안합니다 하하하;;;
    농담이고, 모두들 감사합니다!
    135 [개드립]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가 말이죠, 사실은... [새창] 2013-12-25 23:33:33 0 삭제
    물의백작// 네? 어느 쪽과 연결돼요?? 아무튼 칭찬 감사합니다 *^^*

    그나저나 추천 수가 9에서 멈춘 건, 이런 이상한 글이 베스트로 가 다른 게시판 사람들 눈에 띄어서 역게가 이상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주면 안 된다는 억지력이 작용한 걸까요? ㅋㅋ 그런 거라면 바람직하군요 ㅋㅋㅋ 아, 추천받는 게 왠지 수치스러워 ㅋㅋㅋㅋ 그래도 추천, 댓글 주신 분들, 봐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134 [개드립]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가 말이죠, 사실은... [새창] 2013-12-25 23:02:44 1 삭제
    한솥매니아// 가, 감사합니다^^;; 프랑스 혁명사 연재 진지하게 하고 계신데 저는 프랑스 혁명 가지고 이런 개드립이나 치니 죄송합니다 ㅋㅋ

    carrak// 남자랑 사귀었다는 기록이나 소문은 정말로 전무하니까 게이는 더 아닐 거예요 ㅋㅋ http://en.wikipedia.org/wiki/%C3%89l%C3%A9onore_Duplay 하숙집 주인의 맏딸인 엘레오노르 뒤플레(Eleonore Duplay)와 사귀었다는 이야기도 있거든요.
    ...로베스피에르에게 미안해지네요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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