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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창]
2014-10-23 19: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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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rixist
위에 설명했듯이 '프로그램 지연'으로 인해서 같은 값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프로그램 지연에 대해서 생각해보세요.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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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창]
2014-10-23 16: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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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글에 쓸까 하다가 여기에 씁니다.
우연: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프로그램의 임의의 추출에서 우연이 없다고 하셨지만 실제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논리상에서는 우연이 없겠지만, 프로그램은 컴퓨터란 도구를 통해 행해지므로 결과적으론 범위가 커질 수록 우연이란 요소가 부각되게 됩니다.
프로그램의 우연은 프로그램의 논리와 관계없이 현실적 구조적으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외부조건이 들어간 경우를 말합니다.
가령, 랜덤함수를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1/1000초의 단위로 연산되는 time함수에서 현재 결정된 순간에 그 숫자를 끄집어 내는 함수가 있다고 합시다. 그 결정된 순간을 1/1000초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계로 랜덤함수의 숫자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1/1000000000000000000000000 초 까지 내려가면 어떨까요? 우선 일반 컴퓨터는 그 시간을 연산할 수 없을 뿐더러, 있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프로그램의 지연 때문이지요,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프로그램도 끄집어내는 연산처리의 시간지연이 항상 존재합니다.
가령 일반컴퓨터에서 10000000회의 연산을 해야하는 랜덤프로그램이 있다고 본다면, 과연 앞서 말한 1/1000초의 랜덤함수와 같은 결과값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컴퓨터가 빨라도 언제나 지연이 발생하고 연산보다 큰 경우의 수에는 우연의 값이 나올 확률이 더욱 증가하게 됩니다. 이 밖에도 입력이나 기타 지연되는 부분이 상당하므로 이 또한 우연이란 값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관찰자효과에 대해서도 그게 깨지든 아니든 (개인적으론 효과 있을 때도 아닐 때도 있다고 봄)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는 한 파동에 대해 절대적인 관측이 불가능하며 그 부분을 우연의 내제된 것으로 본다면, 파동에 의해 달라지는 행위들은 우연이란 요소가 어느정도 들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봅니다.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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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창]
2014-10-18 1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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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좋네요.
궁금한게 몇가지 생기긴 했는데요 그 중에,
믿음에 대해 불가지론을 폈는데요, 불교의 핵심인 연기 혹은 무아에 대해서도 믿음이 작용하지 않나요??
인과율을 진리로 단정하였는데, 내가 전에 '나는'이란 글 제목으로 올렸듯이 인과율일지 아닐지 둘중하나가 진리지 어느 하나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것 또한 믿음이 아닐까요??
936
궤변인지 아닌지 헷갈려서요
[새창]
2014-10-15 09: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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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지 않은 상황의 모호함에 따라서 두가지로 분류하여 진행하면,
1) 모든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을 때 , 메타언어에 의해 어떤 자유로움도 느낄 수 없으므로 거짓이며, 궤변입니다.
2) 때에 따라 변하는 자유의 범위일 때, 그것이 정신적 자유를 모두 구속하지 않을 것이라면, 정신적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메타언어에 의해 앞서 말한 자유의 범위를 벗어난 자유가 되어 거짓이됩니다. 그러나, 정신적 자유로움도 포함되었다고 재주장하면, 위의 1번으로 다시 내세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므로, 이때는 자유롭지 않은 상황의 범위를 명확히 지정해 줄 것을 다시 요구하면 됩니다.
결과적으론 본글은 궤변입니다.
935
목표가 없다면 공부나 해라는 말을 듣고
[새창]
2014-10-04 13:52:3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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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는 경험도 공부에 속하니 '목표가 없으면 공부나 해라'를 나쁘게만 볼게 아니라, 학교 공부 외의 경험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들을 두루두루 해보라는 말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가 나이 들 수록 더욱 가슴을 찌르는 말로 다가 온다는 게 그냥이 아니니까요.
현재의 나에게 목표가 없다고 느낄 정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단순하게 보거나 읽는 경험이 아닌 직접 부딪치는 체험하는 경험을 통해 현재까지의 나에게 걸맞는 하나의 목표를 찾을 수 있을거라 봅니다.
934
에세이스트의 개똥철학 1
[새창]
2014-09-19 1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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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laugher
총량이 변함 없다는 것에 쉽사리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총량을 인류 전체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일정한 우리 지역으로만 볼 것인가에 따라서 달라 질 것이며,
시대, 지역, 여건 등에 의해서 총량은 언제든지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가까운 과거의 일제강점기 때만 봐도 그렇지 않을까요?
개인적 문턱 또한, 개인이 짊어진 짐이 과거와는 많은 양상에서 달라졌다고 봅니다.
전쟁승리와 복귀후의 삶은 문턱이라기보다 어떤 지향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문턱은 전쟁의 전투 중의 목숨에 대한 다양한 선택이겠으며, 복기 후의 삶도 마찬가지 삶 중의 다양한 선택의 문턱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전쟁승리와 복귀후의 삶 중 중요한 것을 고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중요도가 갈린다고 봅니다.
933
에세이스트의 개똥철학 1
[새창]
2014-09-19 14:06:0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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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은 '문턱효과'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이 시대는 수많은 요소가 문턱을 높이고 있기에, 벌써 여러 짐을 짊어진 나에게는 가슴이 향하는 곳의 높은 문턱은 쉽지가 않습니다.
짐을 잠시 내려 놓을 어떤 용기가, 혹은 가슴을 꽤 뚫을 어떤 생각이, 또는 사회적으로 도달한 어떤 운명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정말 움직일 수 없어보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뭔가 문턱을 낮출 것이 없나 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거리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곧 정열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움직일 기회가 있을거란 헛된 희망을 품고서요...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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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창]
2014-09-19 09:06:0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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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시각의 사이를 시간이라고 한다는 정의에 동의를 합니다.
현재는 변화의 최소 형태 중에 하나인 원자의 진동수를 시간의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즉 원자의 진동이 우주의 어떤 상황에서도 거의 변화하지 않으니 시간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지만, 빅뱅의 순간 등 특이한 상황에서도 그럴까요?
예전에 과게에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science&no=33122&s_no=7665111&kind=member&page=1&member_kind=total&mn=38679
별다른 답변을 못받았지만, 다른 루트로 알아본 결과 시간이 엄청나게 느려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접점인 빅뱅의 시작은 명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빅뱅의 시작과 우주의 끝은 이론에만 머물고 있으며, 다양한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영역에 궂이 신이란 초월자를 껴넣지 않더라도 많은 이론이 있으며,
그러한 것 중 다양한 우주관도 있는데, 우주관에 따라서 빅뱅으로 탄생한 우리의 우주와 또 다른 우주가 있다고 한다면,
그 다른 우주의 시간은 이론에 따라서 우리의 우주와 다른 시간(차원이 다른)이 될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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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창]
2014-09-03 11: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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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밑바탕인 연기나 무아를 어떻게 죽이셨는지 경청하고 싶습니다..
930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형식
[새창]
2014-09-01 21:43: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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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공격, 삶의 형식,,,즉 문화 정도로 대표되는 것조차 돌고래나 원숭이 종류에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자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집단마다 문화가 좀더 달라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929
선택과 중립
[새창]
2014-08-29 21:48:4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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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laugher
임오유님의 글의 교황의 리본의 문제는 중립의 기점을 지정하기에는 객관적 시점이 필요하겠지만, 리본이라는 문제를 우선 봐야 한다는 것이 더 맞다고 봅니다.
리본을 붙이고 떼고가 중립의 기점이라고 가정하였을 때, 리본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리본을 떼라는 '누군가'의 입장은 어떤 정치적인 목적으로 본다면, 정치적 목적이 어떻든, 교황은 그런 정치적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 아니므로 리본의 붙이고 떼고는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리본에 인도적인 목적을 생각한다면 교황은 양심에 따라서 리본을 붙이고 있는 것이 됩니다.
리본은 결국 누군가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끌길 원했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리본을 정치라는 프레임으로 가두고 교황을 그런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결론입니다.
일본의 우경화의 의미도 단지 민족주의를 떠난 군국주의 혹은 제국주의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에 지금의 입장으로서도 반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928
선택과 중립
[새창]
2014-08-29 09: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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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laugher
과거 일본의 우경화가 어땠는지 실상을 경험하지 않아 명확하지 않다는 것엔 동의하나, 현재의 모습에서 과거의 모습을 유추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일본의 우경화의 시위 현장의 상황을 느껴 본 바로는, 이들의 시위는 개인의 선택이고 진심을 담은 것이며 그것은 양심도 그러해야 가능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그 정도가 심했다고 알고 있기에 당연히 과거에는 전반적으로 대다수가 그러한 흐름이라고 가정해도 맞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 때문에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부일 뿐이며 전체적으로는 양심의 추는 기울었다고 봅니다.
927
선택과 중립
[새창]
2014-08-28 10: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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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수단이란 작은 목적의 집합체로 보며, 목적은 작은 목적 집합체의 일단락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혁명에서도 작은 목적들에서도 도덕과 정의를 평가하며, 결국 후대에서의 평가는 달라지리라 봅니다.
그러면, 갈색혁명의 성공을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어떤 도덕이나 선이 있다고 봐야할까요.
지금 시점이 아닌 그 때의 시점에서 혁명에서의 선과 정의는 그 혁명세력이 볼 때만 선과 정의가 아닐까요?
결국, 선과 정의 양심 등은 시간에 따라 항상 변해 왔다고 봅니다.
과거의 일본에서의 우경화는 그 때는 선과 정의 였을지 모르지만, 현 시점에서의 우경화는 현 시점의 선과 정의가 아니라고 보며, 비난의 대상이 되어도 마땅하다 봅니다.
,,,기회주의자 박정희는 어떤 혁명한 것이 아니라 그냥 권력 쟁취를 위한 쿠테타를 했다 봅니다.
926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8-03 03: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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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bby
'배움은 ‘상기’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혼이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기 전에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상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떠한 지식을 배웠을 때 그 지식 이상의 것을 저절로 알게되고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상기로만 설명 가능하다.'
선천성 시각장애인은 한번도 사물을 본적이 없기에 이미지나 색깔을 생각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떤 영혼은 영원히 시각장애인으로만 태어난다고 주장한다면 할말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각장애인의 인식과 영혼의 '상기'는 모순이 되어버립니다
DNA에 새겨진 몇 안되는 본성과, 태아때부터 쌓여진 여러가지 인식작용에 의한 자극과 자라면서 습득한 다양한 지식이 밑바탕이 되어
개인 고유의 뇌의 신경 네트워크에 의해 다양한 생각을 한다고 봅니다
925
자유의지는 존재하나요?
[새창]
2014-08-02 08:59:1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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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모두 뇌에서 이뤄진다는 전제하에.
뇌의 신경 네트워크 시스템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지며, 그 또한 인간적 절대적 두가지 입장이 있음
뇌의 연상 작용중에 일부가 컴퓨터의 랜덤함수 처럼 되어있고, 랜덤함수 원천이 플랑크 상수의 역수 이상으로 크다면, 자유의지가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봄
뇌에 관해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이런 가정하에 말한 것이고, 이 또한 인간적 입장이며, 개인적으로 인간의 랜덤한 생각의 자유도가 떨어지면 슬프다고 봄
절대적 입장에서 본다면, 컴퓨터의 랜덤함수의 원천을 아무리 늘려봐야 무한 안의 유한이며, 마찬가지로 뇌의 신경 네트워크의 복잡성을 늘리고 크기를 키운다 해도 무한의 안에 있기에, 자유의지는 없음
결론, 일반적으론 자유의지는 있다고 봄(논쟁중이며 앞으로 밝혀지는 것에 좌우됨)
신, 종교, 절대적인 특이적인 대화에서 절대적 자유의지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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