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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원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48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5-05-22 17:35:43 0 삭제
    흑역사는 지우자는게 대표적인 역사왜곡인데 왜 역사왜곡을 해야하는데요?
    46 혐한들의 주장.txt [새창] 2015-05-13 12:36:51 2 삭제
    ...일본식 근대농법의 근간인 후쿠오카 농법은 건전마경을 그 핵심으로 삼는데, 이느 경지 한 필지의 규모를 키우고 형태를 반듯반듯하게 재편하는 구획정리사업과 명거 및 암거배수시설을 조성하는 배수공사의 진전, 그리고 그 당연한 귀결로써 이듬해 농사를 위한 용수운의 안정적 확보를 전제로 한다....(중략)

    ...이는 배수공사가 벼-보리 이모작의 실시를 위해서, 그리고 벼농사 자체의 증수를 위해서 관건적인 문제였음을 설명한 것이다. 오카 역시 수도작 기술의 근세에서 근대로의 전개과정에서 특징적인 기술혁신의 지점으로 '종자교환', '노후수전대책', '금비도입' , 반당다종량 감소' 와 함께 '배수기술의 전개' 를 들고 있다....(중략)

    바꿔말하면, 일본의 농업기술 근대화 과정에서 논농사개량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었던 것은 물의 부족이라기보다는 과잉이였던 셈이다. 이는 그 양상의 심각성에 편차는 있으되, 후쿠오카농법(메이지농법)을 근대식 개량농법을 받아들인, 그리고 이에 의해 비약적인 생산력 상승을 이룬 일본 내 도처에서 기본적으로 공통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배수보다는 용수난의 문제가 이양법 도입을 가로막는 문제였으며, 동력이양기 도입 전까지 수렁논을 좋은 논으로 간주하던 조선의 상황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다음은 이에 대한 일본인 농학자들의 설명이다.


    대개 한국의 벼농사라는 것은 한편으로 수해를 입음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물 부족으로 곤란을 겪게 되어 있으니 두 가지 재해 중 어느쪽이 클 것인가. 우리나라의 벼농사가 우습이 많음을 근심으로 여긴다면 한국 또한 다우다습을 두려워함은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39년(1906년)처럼 '올해는 비가 많은 해인 관계로 양작이 된다' 고 하고 우리나라(일본)는 '가문 해'인 고로 풍작이 된다' 고 하니, 조선의 논이 여하히 급수에 궁한지를 아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강우의 시기가 늦어져 이앙에 필요한 물을 얻지 못하면 여하간 방법도 없다. 한인은 매년 이에 익숙하여 별로 대수롭지 않아하며 오직 전혀 이앙할 수 없는 논이 많지 않기를 비는 데에 그친다... 이렇게 수리에 불편한 곳이면 이앙의 시기는 오히려 강우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으로, 강우가 빨리 이르면 다소 어린모라 하더라도 이를 무릅쓰고 이앙에 착수한다. 이는 한국에 있어서 벼농사가 특히 주의해야할 상황이다. 한국의 농부는 이앙을 완수하면 벼농사의 과반은 이미 성공한 것으로 간주한다.


    한쪽은 비 많고 습기 많음을 두려워하고 한쪽은 다우다습도 두렵지만 그보다는 가뭄을 크게 두려워한다는 설명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히시모토는 이와 같은 표현에 대해 '모내기철에 홍수가 나서 일부 저습지는 농사를 망치더라도 대부분의 다른 논은 모내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용수가 풍족한 것이 전체 풍작의 배경이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 후, 속칭 조선에 '모내기 반농사' 라는 말이 잇는 것도 같은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1938년). 후자의 인용문과 같은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반면 '이앙시기가 강우에 의해 지배된다' 는 것을 새삼스러워하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몹시 낯선 정서이다. 조선에서 그러한 상황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70년대 들어 동력양수를 시작하고 관정굴착을 통한 지하수개발을 본격화하면서였고, 이것이 광범위하게 효과를 나타낸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선과 일본의 농업환경 차이에 대한 인식은 일제시기에 들어서도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였다.
    - 안승택 저 <식민지 조선의 근대농법과 재래농법>, p182~p185

    물론 이러한 입론은 이영훈이 독창적으로 도달한 것이 아니라, 일본 내 조선사, 동아시아사 연구자들, 특히 나카로 사토루나 미야지마 히로시 등과의 영향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전자는 조선사에 대한 실증적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이른 논의가 아니기에 일단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하고, 미야지마의 그것을 보기로 하자.

    미야지마는 소농사회를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는지 타인의 토지를 빌리는지를 불문하고 기본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만을 가지고 농업경영을 행하는 소농이 지배적인 존재로 있는 사회"라고 정의한 후 "중국에서는 명대 전기에, 조선, 일본에서는 17세기경에 기본적으로 소농사회로의 전환을 완료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적음으로써, 이영훈보다 앞서 17세기 조선 소농사회 성립론을 제기한 바 있었다. 그는 소농사회적인 특징이 중국과 조선,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특징적으로 그리고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으로 상정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 동아시아 공통의 양상을 출현시켰던 양대 근본동력 중 하나가 삼국의 농업기술이 기본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는 가운데, 중국의 강남이나 일본의 농업기술 발전방향과 조선의 그것이 서로 다른 궤적을 밟고 있었음을 언급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르면, 중국 강남과 일본의 농업기술은 산간평야지대의 집약적 벼농사->충적평야지대의 개발->충적평야지대의 집약적 벼농사라는 발전궤적을 따랐다. 반면 조선의 농업기술은 이 중 제3단계를 결여한 채 경지면적의 외연적 확대를 철저히 추구하였다는 차이가 있었고, 이에 따라 전근대 단계에서 이미 기본적인 경지개발이 완료되는 양상을 보였다. 미야지마는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최대원인을 자연조건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즉, 중국 강남이나 일본과 달리 조선은 '관개이식형' 벼농사의 가장 중요한 작업인 모내기철에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가 곤란하였고, 이로 인해 막대한 수리시설에의 투자를 행하기보다는 물의 공급이 불안정한 조건 아래에서도 가능한 벼농사 기술을 개발하는 방향을 취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벼농사 기술이 화북형직파주변구의 계보에 속하는 것이였지만 그 집약도에 있어서는 관개이식형에 필적하는 것이였기에, 농업기술의 발전방향은 산간평야부의 관개이식형과 충적평야부의 화북형 두 방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였다고 정리하였다.

    -같은 책, p384


    왜 일본에서는 수차 쓰는데 조선에서 수차를 안썼냐고요? 일본에서는 물이 펑펑 쏟아졌지만 조선에는 물이 부족했거든요. 수차는 물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겁니다.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물을 확보하는 거였고, 그래서 농사기술의 발전은 저수지 축조를 비롯한 물 확보와 '물이 적을때도 농사 지을 수 있는 기술' 을 추구했습니다. 물이 넘처나야 쓸 수 있는 수차는 한반도 환경에 전혀 맞지 않았던 셈이지요.

    일제시기 기준으로 일본의 강우량이 한반도보다 30% 이상 많던가 그렇습니다. 수차에 대한 관심이야 많았죠. 설계도는 몇번이나 배껴갔습니다. 하지만 적용은 할 수 없었죠. 조선에서 수차를 사용하고 싶다면 기우제라도 지내서 일본만큼 비가 많이오게 해야 합니다.
    45 태평양 전쟁 개전직전 일본 제국의 경제상황을 아시는분 계시나요? [새창] 2015-04-24 10:16:54 0 삭제
    당시 일본 경제상황은 '금해금'이라는 키워드로 정리가 되죠.
    44 허균이 인현왕후를 싫어하는 이유? [새창] 2015-04-23 12:45:33 1 삭제
    허균은 대북 수장 이이첨의 수족이니까요. 그것도 쓰다 버리는 수족급.
    애초에 인목대비는 대북파에겐 딱 좋은 상대였죠. 밟으면 저항할 힘도 없고, 그러면서도 위치상 저거 적이라면서 몰아세워 세력 결집하기 좋고.
    그래서 계속 공격했는데 그만 허균이 선을 넘어버리자 이이첨은 허균을 바로 꼬리자르기 해 버렸죠. 몸통이 시키는 대로 했다가 일이 커지자 난데없이 끌려가 심문한번 못받고 바로 처형장으로 가버린 깃털 허균인 겁니다.
    43 혹시 프랑스의 스탈린이라는 클레망소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십니까? [새창] 2015-04-22 10:12:29 5 삭제
    클레망소가 반대파를 숙청어쩌고 총살어쩌고 하는건 그냥 독재정당화를 위한 유언비어입니다. 1차대전이 한국에서 인지도가 아주 낮다는 걸 악용한 짓거리죠.
    42 왜 조선조정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를 그토록 중요시했나요?? [새창] 2015-04-22 10:10:33 1 삭제
    양명학, 고증학은 당시 유행했던 학문이고, 명나라 청나라 모두 국학으로 대우해준건 성리학입니다. 특히 고증학은 청나라가 강력한 문자의 옥으로 사상통제를 해버린 결과 나온 학문적 우회로에 불과해요.
    41 예전부터 전쟁이 심하면 왕이 ㅌㅌ 하는경우는 많았는데 [새창] 2015-04-13 10:39:30 0 삭제
    한국역사의 슈퍼스타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부분에서 악역이잖아요. 그래서 밉보인거죠 뭐.
    40 선조가 한양버리고 도망친게 사실인가요? [새창] 2015-04-06 17:53:48 0 삭제
    사실 일본군은 여기저기 다 먹은 거 같은데 실상 조선의 핵심적인 물류 통신 라인이 지나는 수로, 해얀선은 거의 확보를 못했죠. 한양은 먹었는데 인천 서쪽 절반과 강화도는 확보 못해서 한양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손쉽게 파악되기도 하고...
    39 선조 임금에 대한 후대의 평가 [새창] 2015-04-03 18:35:51 0 삭제
    clove//임란 후 조정의 지배적인 당파로 부상하는 건 북인계인데, 북인이라는 당파는 임란 당시 가장 많은 의병장들을 배출한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38 선조 임금에 대한 후대의 평가 [새창] 2015-04-02 01:14:51 2 삭제
    애초에 암군 낙인찍기가 성행하는 건 인터넷 역사관에서 벗어나질 않죠.
    37 초기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지도부와 나치의 협조관계 [새창] 2014-07-31 00:14:29 0 삭제
    유태인들을 보낼 명단을 작성한 게 유태인 위원회였다, 요건 거의 십중팔구 헝가리 유태인들과 루돌프 카스트너(아마 홀로코스트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카스트너 트레인' 사건) 이야기일 겁니다. 이건 헝가리에서의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해야 하는데요. 당시 헝가리 독재자였던 호르티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대충 뭉기적 뭉기적 거리면서 얼렁뚱땅 넘어갔습니다. 여기에는 카스트너와 헝가리 유태인 위원회가 호르티에게 지속적으로 먹인 뇌물도 한몫 했죠. 그래서 다른지역 유태인들이 이곳으로 피난오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1944년 호르티 정권이 무너지고 독일군 군정, 그리고 아이히만이 직접 들어왔던 데 있습니다. 아이히만이 조엘 브란트를 통해 영국에 건 딜(자기네들이 정리 안한 유태인 100만명을 풀어줄테니 다수의 트럭을 내놔라. 처음엔 1만대나 요구했습니다만, 나중엔 요구를 좀 줄입니다)이 영국의 거부로 무위로 돌아가자 아이히만은 이제 슬슬 헝가리 유태인들도 정리할 생각을 했고,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유태인 위원회에 요구합니다. 너네가 명단 넘기면 일부는 살려주겠다, 고. 그리고 카스트너는 결국 유태인 위원회 대표로 이를 승인하고 1684명의 유태인들을 구출('카스트너 트레인'에 타고 스위스로 탈출합니다)하고 대신 80만에 달하던 헝가리 유태인 명단을 넘깁니다. 이들 전부가 저명한 유태인인가? 라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전체 승객 1인당 1천달러의 몸값을 공동 지불한 150명 정도의 부유한 유태인들은 저명한 사람들이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본문 글의 왜곡은 전쟁 후 난민캠프에 선택권을 준 게 시오니즘 지도부라고 하는 거죠. 실제론? 연합군 사령부측이었습니다. 대영제국은 유태인들을 받을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고, 다른 유럽 국가들은 유태인들이 오히려 사라져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야 그들이 남겨놓고 간 재산들을 자기들이 갖거든요. 미국? 미국의 강력한 이민법은 이시기까지도 살아있었습니다. 전쟁전 미국은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유태인의 두배를 받아들였는데, 전쟁 후에는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유태인들의 절반만 받아들였지요. 심지어 이들이 머물던 난민 캠프 대다수는 원래 그들이 수용되었던 강제수용소였습니다. 시오니즘 지도부는 이들에게 선택권을 제시할 형편도 안됐어요. 선택권을 던져준 건 연합군측이었죠. 팔레스타인으로 재산 냅두고 꺼지던가, 그냥 난민 캠프에 남아있던가.
    36 초기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지도부와 나치의 협조관계 [새창] 2014-07-31 00:14:13 0 삭제
    오마이발 dog소리입니다. 애초에 유태인 무장조직을 정규 군사력으로 인정해준 게 독일군이 카이로로 치고 들어오고 아랍측이 히틀러하고 붙어먹으려 드니까 영국이 기겁해서 인정해준 건데.

    스티븐 애뉴얼 와이즈? 이사람은 랍비고 뭐고 이전에 루즈벨트의 측근(루즈벨트를 '치프' 로 부르던 사람)으로서 '미국의 승리를 위해 유태인들은 닥처라' 수준의 정책을 이끌어냅니다. 미국이 이겨야 하는데 유태인들을 위해 줄 물자같은 건 없다 이거죠. 유태인 게토로의 구호물자? 그거 나찌놈들 손에 들어갈테니 안보냅니다. 유럽의 유태인 문제를 언급하는 운동가들? 루즈벨트 행정부가 유태인 문제를 2선으로 돌렸는데 이런 운동가들이 유태인 문제를 계속 언급하면 루즈벨트의 정책이 비판받을테니 그 입도 막습니다. 이사람은 아예 대놓고 '미국인으로 싸워야지, 유럽의 유태인을 위해 싸워서는 안된다. 먼저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던 사람입니다. 미국 시온주의회 꼭대기에 이사람이 앉아서 아무것도 못하게(그래서 미국의 전쟁수행에 방해되지 않게)하는데 전력을 다했던 사람이죠. 시온주의자여서가 아닙니다. 시온주의보다 루즈벨트 최측근으로서 루즈벨트 행정부측의 입장을 우선시했던 사람이죠.

    이츠하크 샤미르, 이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태인 무장세력 중 하나였던 이르군은 본래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식민지 지배를 자행하는 영국에 맞서 독립을 위해 싸우자!'던 조직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이 조직이 두동강이 나는데, 이츠하크 샤미르는 그 중에 '어쨌든 우린 계속 이 땅에서 영국과 싸워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레히파에 속했죠. 워낙에 홀로코스트가 무자비해서 레히파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사실상 꼴통중의 꼴통만 남았다 보면 됩니다.
    35 조조의 인재선발에 관한 썰.txt [새창] 2014-02-17 14:13:36 0 삭제
    근데 조등의 권세는 조조가 위왕 되기 전까진 조조보다 우위.
    34 조선을 까는 사람을 까는 글(펌) [새창] 2014-02-17 11:57:56 2 삭제
    도시화? 좋죠. 에도막부 도시화 끝내줍니다. 에도에 모든 사람과 재물이 몰리니 에도 한곳은 아주 휘황찬란해요.
    근데 그거 아세요? 막부측은 에도에 너무 사람이 몰린다고 결혼도 규제하고 있으며, 도시 하층민들의 사망률은 40%에 육박하고 있다는 거. 유아사망률도 아니고 성인 사망률이 이정돕니다. 이게 그 자랑스러운 도시화의 실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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