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 왠지 모를 구역질이 올라왔다. 지나친 공복이 발버둥치듯 속을 역겹게 만들었나 보다. 결국 버티질 못하고 본능적인 것에 따라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나름 오래 버텼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일어나면서 어지러움이 일어났던 것 같다.
" 하, 배고파...... "
배를 한 손으로 움켜줬다.그리고 방문을 열었다. 바로 거실이 나타났다. 오늘도 집 안은 그렇게 쓸쓸하더라. 그나마의 소중한 가족인 뭉실이는, 기를 죽이고 색색 잠이 들어있었다. 살금살금 도둑 저리가라의 발걸음을 하며 나 나름의 배려심을 발휘했다. 거실로 완전히 나와 오른편에 길게 이어져 있는 부엌에 도착했다.
달칵, 냉장고 문이 열렸다. 나의 눈 앞엔 노오란 빛들과 함께 몇 통의 락앤락, 비닐랩에 쌓여진 도자기 그릇들, 그리고 물병들 등등이 보였다. 락앤락에 초점을 두자 하양, 진갈색, 초록...... 색깔도 가지각색 아름다운 채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 그래, 그거다! "
허기를 떼울만한 것이 생각났다. 다름아닌 '비빔밥' 이었다. 엄마께 어렸을 적 떼쓰면 꼭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같은 야채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으시고 비빔밥을 만들어 내 입에 꼭꼭 넣어주셨다.
이런, 새벽이라 감성에 지나치게 잠겼나. 크게 울리는 꼬르륵, 하는 뱃소리에 난 급하게 락앤락 통 세개를 들고 꺼낸 다음, 가장 중요하다 해도 되는 영양란 한 알도 잊지 않고 꺼냈다. 이내 문은 탁,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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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겠습니다, 새벽에 굶주림에 완성된 양푼비빔밥은 완벽했다. 한번 더 크게 수저를 휘저은 다음 한 스푼을 떠 꿀꺽, 입 안에 넣고 삼켰다.
아, 정말 오랜만에 만든 비빔밥은 일품이었다. 먼저 도라지의 맛이 느껴졌는데, 산나물의 절정인 봄에 땄다는 것 답게 씁쓸하지만 무언가 입맛을 돋구는 고운 향긋함이 미각신경을 건드려 입 안에 크게 퍼졌다. 다음은 고사리였다. 고사리의 씹히는 맛은 고기없는 비빔밥에 고기를 새로 추가시킨듯, 찰지게 조직을 찢어가며 역시 도라지와 함께 입안에 퍼졌다. 마지막은 시금치, 그리고 계란이었다. 시금치는 도라지의 향긋함에 묻혔지만, 역시 향긋함은 비등비등 했다. 초록빛 산나물 답게, 암향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었다. 미각을 타고 흐르던 도라지 향의 손을 잡고 후각 신경에게 다가와 꼭 산 속에 있는듯한 기분을 줬다. 계란은 끄트머리가 입 안에 들어왔는지 바삭바삭함이 이빨의 예민함을 자극시켰다
" 역시 엄마, 맛있는 재료는 끝내주게 선정한다니까. "
그 때, 탁탁탁, 자그마한 발소리가 내게 달려왔다. 검은 두 덩이가 빛을 받아 느리게 껌뻑거리고 있었다. 굉장히 어수룩해 보이는 그 모습은, 이미 누군지 짐작이 되었다. 픽, 작은 웃음이 새나왔다. 숟가락을 쳐박은 양푼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 그래, 그래. 너도 줄게, 맛난거. "
먹는 건 다같이 먹어야 행복한 거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부엌의 찬장으로 다가가 개껌 한 봉다리를 꺼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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