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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늙은국삵도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가입 : 12-11-30
    방문 : 10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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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국삵도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33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04-25 11:28:50 0 삭제
    안타깝군요... 역사를 사이트나 블로그에서 공부하신다는 말이...
    왕력 중심의 역사해설은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수업내용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될겁니다.
    괜히 강의하시는 분과 의견이 다른분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공부를 한다면 아마 점수받기는 힘들겁니다.
    교양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교양일수록 그러한 조선왕조의 대한 기본 이데올로기가 극명하게 갈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수십명의 왕들을 획일적으로 가르칠 수는 없으니까요. 학자의 기본 틀 속에서 왕을 평가하지만 27명의 성향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지는 않을겁니다.
    32 아래 댓글을 기반으로 몇가지만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새창] 2013-04-24 15:23:41 0 삭제
    역사학은 가정이 아닙니다. 역사학에서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쓰지 않습니다.
    역사학은 그런 비유를 들어 논거를 하지 않습니다.
    역사학은 위서니 진서니 하는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역사학은 견해의 차이 따위는 글로 적지 않습니다.
    역사학은 이러한 글들도 학문적 견해로 봐줄 만큼 관대하지도 않습니다.
    역사학적 관점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역사학이기 때문입니다.
    31 아래 댓글을 기반으로 몇가지만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새창] 2013-04-23 16:23:25 0 삭제
    역사학적으로 일본서기의 사료적 가치는 인정될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료적 가치판단의 기준에 의거하여 역사학의 문헌자료로서 보느냐
    아니면, 서지학적인 문헌자료로서의 일본서기로 보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님께서 주로 하시는 표현들은 이 분야 저 분야에서 통용되는 모든 가치
    판단적 자료를 인용하여 역사적 결론을 추론하고 있는데, 역사학에서는 그러한 논점 제기에 의한 결론도출은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즉 일본서기를 사료적으로 인용하여 역사적 가치를 가진 문헌사료로 결론을 짓기 위해서는 사료적 가치판단의 중요한 기준에 일본서기를 맞추서
    사료적으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그 유무에 대한 절대적 평가기준이 올바르게 작용하였느냐에 대한 관점을 서술해야 함이 옳은 것이지,
    위서니 진서니 하는 가치평가기준은 역사학에서 절대적 평가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서기를 비교인용하는데 있어 조선왕조실록을
    비유하여 서지학적 관점을 통용기준으로 역사학적 관점의 결론과 부합하려고 하는 것 또한 역사학적 관점과는 맞지 않는것이라는 걸 말씀드립니다.
    30 아래 댓글을 기반으로 몇가지만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새창] 2013-04-22 22:36:58 2 삭제
    글쎄요..저또한그논문제공사이트를주로이용하지만..일본서기라는문헌자료가역사학카테고리에소중화라는키워드를쓰는것까지는모르겠군요혹일본서기에대한역사학적혹은서지학적연구에소중화사상,외교론적측면을언급한논문대표적이라고간주되는것을알려주시기바랍니다그럼훨씬용이하게토론이될듯하네요
    29 아래 댓글을 기반으로 몇가지만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새창] 2013-04-22 21:01:15 2 삭제
    각설하고, 한국고대사 전공자로서 질문드리지요. 고대사 전공자들이 공히 가지고 있는 공론에 대해 같이 지적하였기에,
    소중화사상이라 하면 철학을 말하는 겁니까? 철학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건 역사학이 아니지요.
    제가 말하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역사학입니다. 역사학계를 말하는 것이고, 역사에서 말하는 일본서기에 대한 사료적 접근을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일본서기'에 대한 접근은 사료적 가치에 국한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소중화사상이니, 외교론적 접근이니 하는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포괄적인 개념 속에서 일본서기에 대한 접근을 말하고자 하심에 '학계'라는 두리뭉실한 단어 선택에 있어서 경계를 해야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전 다분히 '역사'학계를 말씀드린다는 걸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28 아래 댓글을 기반으로 몇가지만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새창] 2013-04-22 18:42:42 4 삭제
    사서를 외교론적으로 봐야한다는 견해가 잘 이해가 안되는군요. 당시에 역학관계를 외교에 주안을 둔다는 소리인 듯 한데, 이론적 근간은 어디에 두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비슷하지만서도 약간은 다른 일본서기에 대한 역사학계의 하나의 공론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 고대사 서술에서 초기 한일 관계사가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만큼 일본 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돌려 왔고 또한 많은 '연구 업적'을 남기고 있다. 18세기 일본의 이른바 '국학자'들이 자기 나라 고문헌들을 정리하고 연구할 때부터 이러한 관심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고대 역사에 대한 반성이 이들로 하여금 초기 한일 관계사를 중요한 문제로서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하였고, 황실주의 편견으로 일관된 그들의 입장은 일본 고문헌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과 시비, 전도를 그대로 맹신하게 하였다. 19세기 후반기 일본의 근대화와 군국주의의 발생은 곧 '대륙' 한국에 대한 침략의 지향을 낳게 하였고 이로부터 '국학자'들의 유산들은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미마나 미야께(임나 일본부)"설은 귀신 단지 속에서 나와 '합리주의'의 외피를 쓰게 되었다. 1890년대에 출판되었다고 하는 관정우의 '임나고'를 필두로 하여 이 부문에 관한 일본 학자들의 저서와 논문들은 이른바 '대작'만 해도 열 개가 넘을 것이다. '합리화'된 '미나나 미야께'에 관한 설이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과 그 식민지 통치에 어떻게 복무하였겠는가 하는 것은 별로 해설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자기 역사를 서술할 때, 더우기 한국 역사나 한일 관계사를 서술할 때는 이 문제는 어디서나 항상 대서특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물론 님께서 인용하신 것이 정치외교적인 분야의 견해라고 한다면 모르겠으나, 역사학계에선 크게 부각되지 않는 측면을 말씀하고 계시길래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27 (질문)다카키 마사오란 이름이 고목정옹이라는것 [새창] 2013-04-22 18:09:34 1 삭제
    더하자면, 우기고 우겨서 '고령 박'이라고 하니 그런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 개연성은 조금 인정한다고 하는 것이고,
    '지키다'라고 우기고 우기지만, 그건 분명히 일본식이름으로 완성하기 위한 자의적 개명일 뿐이지, 그것을 한자식으로 한건 절대로 아니란 거죠.
    즉, 한자의 뜻을 쫓았다고 창씨개명을 미화시키려고 우기지만, 결국은 창씨개명이라는 것이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지.
    일본식으로 바꾸되 의미는 남겨놨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창씨개명을 적극적으로 했다는 증거를 스스로 제시한 것이 되는 것이죠.
    역사는 과정을 통해서 교훈을 주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것 또한 아니지요.
    아랫돌 빼 내 윗돌을 괼 수 없듯이 역사는 차근차근 돌을 쌓아올리는 것입니다.
    돌빼내어 탑을 쌓는 것은 역사가 아니죠. 공사죠.
    26 백제라는 국가와 일본이라는 국명이 상관 없는 이유입니다. [새창] 2013-04-15 16:26:17 0 삭제
    단순한 설을 가지고 역사적 사실로의 추론을 하기엔 무리가 많다는 건 아실터이고, 그러한 가설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설'이 아니라
    하나의 명제가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는 것이기에 질문드리는 것입니다. 즉 '설'은 설일뿐 적어도 지금까지는 역사적 사실이 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역사라는 테두리에 설로서 인용하는 부분은 타당성을 잃은 것이 되는 거구요.
    목협만치에 대해 언급하셔서 여러 논문을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목협(목)씨 세력에 대한 기왕의 연구가 있어 인용을 해드리자면,
    '(전략) 두가지 면에 주로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하나는 목협(목)씨 세력과 왜의 소아씨 세력과의 연관성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목협만치라는 인물과 일본서기에 나오는 왜의 소아만치가 동일인물이냐의 여부가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목나근자와 그의 아들 목만치의 활동상에 관한 것이었다."(노중국, 백제의 귀족가문 연구-목협(목)씨 세력을 중심으로-)

    제가 이해를 잘못한 것이라면 죄송하지만, 목협만치와 목만치가 동일하다는 설은 이미 사료(삼국사기-수서-일본서기)를 통해 충분히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즉, 논의가 되고 있을지언정 그러한 것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죠.
    25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04-15 13:58:57 0 삭제
    始祖東明聖王, 姓高氏, 諱朱蒙【一云鄒牟, 一云衆解】이러한 삼국사기의 원문기록입니다.

    "朱蒙(주몽)은 혹은 鄒牟[추모:好太王碑(호태왕비)·牟頭婁慕誌(모두루모지) 및 百濟本紀(백제본기)], 鄒蒙[추몽:遺事(유사) 王曆(왕력)], 中牟[중모:安勝冊文(안승책문)], 仲牟[중모:日本書紀(일본서기) 天智紀(천지기)]라 썼으므로 註(주)의 象解(상해)는 衆牟(중모)의 訛誤(와오)로 볼 것이며, 또 이들 書稱(서칭)은 東明(동명)과 都慕(도모:日本側(일본측) 史料(사료)에 보임)와 함께 同音同語(동음동어)의 借字(차자)로 同一人(동일인)임은 學者(학자)의 共認(공인)하는 바이다. 단 東明(동명)은 論衡[논형:吉驗篇(길험편)]과 이를 인용한 듯한 魏略(위략)에는 夫餘(부여)의 始祖(시조)로 되어 있으나, 이는 卒本夫餘(졸본부여)의 史話(사화)를 誤記(오기)한 것으로 볼 것이다."

    라고 하여 두계선생에 의해 고구려 시조 동명과 부여의 동명왕과의 음이 같은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 있는데, 동명왕의 논쟁은 바로 이러한 고구려와 부여의 왕
    동명에 관한 것이지, 주몽과 동명의 내용이 아니란 사실을 재차 말씀드립니다.
    24 백제라는 국가와 일본이라는 국명이 상관 없는 이유입니다. [새창] 2013-04-15 13:19:47 0 삭제
    "소가씨의 경우 소가씨의 시조인 소가노 마치는 친 백제계 인사로서, 백제 출신의 호족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

    이러한 설의 근간이 되는 역사적 근거를 문의드린겁니다. 문헌사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비문 등의 금석학적 사료, 혹은 족보 등의 보학 사료...
    백제와 일본의 관계의 근거 사료를 문헌사료인 삼국사기, 일본서기를 든 것 처럼.
    '소가'씨에 대한 사료를 제시해 달라는 것이지, 가정에 입각한 설을 물은 게 아니란 말씀이죠.
    23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04-15 13:15:40 0 삭제
    광개토왕, 즉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릉비문에는 추모왕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추모와 동명왕을 구분하여 언급한 내용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흔히 주몽이라 일컬어지는 이는 광개토왕비문에는 '추모왕'이라 추존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였다는 말이고,
    문헌사료에는 '동명왕' '동명성왕' '추모왕' 등으로 불린다고 사서에 주를 달거나 하는 방식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즉, 논쟁이라 일컬어야 함에는 그러한 주장에 어떠한 사료적 검증이 수반되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주장이나 가설 등으로만으로는 학계의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22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04-14 18:00:51 0 삭제
    학계의 논쟁이요? 논쟁의 심도가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까지의 정설은 주몽과 동명왕은 동일인입니다.
    주몽의 사후 시호를 동명왕이라 하였다는 역사적 기록으로 인해 이는 정설화된 부분입니다.
    동명왕과 주몽의 불일치를 주장하는 주된 근원이라는 것이 사실적 기록에 기인한 것이 아닌 부분이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죠.
    즉, 역사학계에서는 '기록'을 중심으로 한 사료상의 기초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는 있으나, 학계의 정설은
    또 다른 명확한 사료가 나오기 전에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말씀드립니다.
    21 백제라는 국가와 일본이라는 국명이 상관 없는 이유입니다. [새창] 2013-04-14 17:56:05 2 삭제
    사서에 없는 내용들이 주로 언급이 되는데... 당췌 사료는 뭡니까?
    일본쪽 이야기야 관심없지만... 도대체 백제 관련 글들은 당췌 어느 사서에서 나오는 내용인지...
    어디서 누가 저렇게 얘길해서 '역사적 사실'이라고 단정짓는지 궁금하네요.
    예를 들어 '소가'씨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측 어떠한 역사 사료(문헌자료, 금석문 등 문자화된 사료)상 증명이 된 부분입니까?
    20 대단한 박원순시장님 [새창] 2013-04-14 17:31:11 0 삭제
    '창조경제' 니 말장난 하지 말고, 이런 '정책'을 해야할 터인데...
    '창조과학'은 뭔줄 안다. 성경대로~ 띵띵띠딩띵~ 그럼 그냥 그거한다고 커밍아웃을 하든지...
    19 조선시대 노비의 성씨 질문 [새창] 2013-03-27 14:15:59 0 삭제
    성관은 필요에 의해서 붙여지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성관을 필요로 하는 신분이 사용하는 것이지 굳이 필요없는 이들은 성관을 붙일 이유가 없었다는 이야기죠.
    조선시대 양반사회에서는 혈족을 중요시 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족의 대표성을 나타내는 성관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아주 중요시한것입니다.
    반면 양반을 제외한 모든 계층에서는 성관은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굳이 부계나 모계 혈족의 정통을 이어받았다는 식의 표현을 이름에 붙일 이유가 없었죠.
    조선사회는 과거를 통하여 인재를 양성하거나, 음직, 서경 등의 천거로 관리를 선발하였답니다. 실질적으로 과거나 천거를 통한다는 것은 양반들로 한정된 것이었기
    때문에 성관의 사용은 양반의 고유물로 인식되었지만, 중인 및 서얼 계층도 조선사회가 사회 질서가 흐트러지는 시점에서 자칭 성을 붙이게 되었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향리계층이 될 수 있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향리가 지방 향촌사회에서 영향력을 점차 키워갔고, 그러한 영향력을 유지, 관리한다는 명목에 성관을 통해서 혈족
    중심으로 이어 나가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노비의 경우, 양반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재산목록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명문화시킬 수 있는 이름은 필요했습니다.
    흔히 알고 계시는 개똥이, 소똥이, 끝단이 등등...(이는 노비문서에서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비에게 성이 붙은 경우는 쉽게 얘기해서 노비를 이름이
    같은 양반집 안에서 겹치거나 유사하여 차별을 두기위해 임의로 성을 붙이는 일은 있지, 굳이 성을 붙여 실제로 그 성관을 가진 주변의 양반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
    을 것입니다. 쉽게 말해 조선시대 누구 양반네 노비 성이 뭐라고 하더라 이랬을 경우, 그 성을 가진 다른 양반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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