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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위와 메시지의 아이러니
[새창]
2018-06-04 22:24:20
4
삭제
가슴을 노출하는 것은 이목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추어야 했던 신체 일부를 가감없이 진열함으로써 그것에 부여되었던 기존의 성적 시각들을 제거하려는 시도로 보는 것이 그 운동의 목적과 특성상 더 맞는 해석일 듯합니다
431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관해
[새창]
2018-05-29 21:28:38
1
삭제
우리가 볍씨를 빻는 것보다 개를 죽이는 것에 더 큰 고통과 연민을 느끼는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죠. 볍씨보다는 개가 인간과 공유하는 유전자가 훨씬 더 많을 테니까요. 나는 나와 유사한 유전자의 더 많은 번성을 바란다는 이기적 유전자 같은 이론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생물학적으로 우리가, 우리와 훨씬 더 닮은 개라는 동물에게 더 많은 정을 갖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인 감정에만 기대어 도덕적 무게감에 차등을 두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나 싶습니다. 도덕이라는 게 여러 사람들의 주관적 가치관들을 공존 가능하도록 정리해놓은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저는 그것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도덕의 정체가 단지 그뿐이라면, 도덕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불변하는 도덕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 게 되겠죠.(+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흑인을 가축처럼 취급하던 백인들의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흑인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무게감이 감정적으로 덜했을 것이므로 당시 기준에선 도덕적인 게 되니까요.
그게 옳지 않음을 지금은 알고 있고, 흑인과 백인의 인권이 다르지 않음을 지금은 알고 있다면, 우리는 개를 방망이로 때려 죽이는 것과 볍씨를 방망이로 찧어 가루를 내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미래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또한 이는 윤리 감정을 팽창시키는 것은 맞지만 그리 극단적인 팽창도 아니고 무의미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기존에 먹어왔던 무언가에 대해서 먹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다시 회의하게 될 때는, 당연히 우리가 먹어왔던 다른 것들에 대한 탐구가 수반될 수 있고, 수반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위는 우리가 기존에 먹던 게 아니니 좀 지나친 논의가 될 테지만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도덕 문제를 야기하는 특정한 이슈가 처음 제시될 때에는 감정에 호소하는 게 효과적이고 그럴 수 있을 테지만 그게 사회를 지배하는 윤리적 명제가 되고자 한다면 개개인의 주관들을 취합하는 것 이상의 합리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착취당하는 극단적인 무슬림 국가에서조차도, 그 국가 구성원들의 주관적 가치관들을 취합하고 최대한 공존하게끔 만든 도덕적 결론이 코란의 경구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발언권이 더 강하고 숫자가 더 많아서 그들의 주관적 가치관들이 다른 이들의 것들보다 더 많이 반영될 수 있을 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진실을 직시하라는 말씀에 대해서는많이 공감합니다. 식물 동물 구별없이 먹는 것 자체가 비도덕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이러한 고민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인간이 세계를, 또는 생물을, 또는 인간을 도구화하는 이성적인 폭력의 가장 원초적인 뿌리가 먹는 것에서부터 기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 설득력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만, 인간이 만약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존재였다면 지금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도 인간은 훨씬 덜 탐욕적이고 덜 야만적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fish님의 문장을 빌려와 쓰자면, 저는 인간은 무언가를 먹는 것에 익숙한 동물이기 때문에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진실을 회피하는 데 능숙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430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관해
[새창]
2018-05-29 01:38:19
1
삭제
육식 채식을 떠나서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굶주림과 그 결과로 발생하는 내 생명의 상실은 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열역학 법칙 중 하나인 '엔트로피 법칙'은 우리처럼 거대한 분자 덩어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분열시키고자 하거든요. 마치 향수를 뿌려도 그 향수 분자들이 목덜미에 평생 붙어있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날아가고 구조가 쪼개져서 모두 흩어져버리듯, 모든 생물체는 산소나 질소 같은 매우 작은 단위의 분자로 산산이 쪼개져서 세상 곳곳으로 흩어지는 게 물리적으로 '자연스럽'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물리 법칙이 그렇습니다. 생물체 같은 거대분자를 매우 불편해해서 분해해서 없애버리려고 하죠.
그러나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이는 수정란은 키 180이 넘는 거대한 인간으로 성장합니다. 분해되긴 커녕 오히려 커지죠. 물리 법칙 중 타노스급 전투력을 자랑하는 엔트로피 법칙의 죽빵을 갈기면서 오히려 더 거대한 분자를 만들어버리는 이 말도 안 되는 기적의 원동력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먹는 데서 나옵니다. 닭 한 마리가 진공 상태에서 먼지로 분해되는 데는 수억 년이 걸리지만 우리 뱃속에선 몇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 효율차를 이용하는 것이죠. 닭 한 마리를 속성 분해해버리는 대신 우리 몸속에는 닭 발가락 한 개 정도의 근섬유와 골세포 따위가 자라날 겁니다. 죽은 건 닭 한 마리고 얻은 건 닭 발가락 한 개니 공정한 거래는 아니지만 이 정도는 밑지고 들어가야 엔트로피 법칙도 딜을 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남의 죽을병보다 내 발뒤꿈치 까진 게 더 아픈 법이니 나도 엔트로피 법칙하고 그 딜을 하죠.
만물을 파괴하고 재로 만드는 힘,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서 예고된 파멸을, 우리는 다른 생물을 희생시켜서 유예하고 있습니다.
먹는다는 행위의 생물학적 의미는 위와 같습니다.
다만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는 민주적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돼지에게 "우리 어차피 결국 모두 죽을 운명이니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놈이 진 놈을 잡아먹고 조금 더 살기로 하자."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힘의 우열에 따라 일방적으로 그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약탈할 뿐입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육식이 비도덕적이다, 채식은 어떠냐 따위의 논의들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동물도 식물도 모두 인간만큼 오랜 시간을 진화해온 같은 가치를 가진 생물체일 뿐이거든요. 그리고 내 몸의 자기보존을 위해 상대를 잡아먹어서 파멸시킨다는 비도덕의 구조도 똑같습니다.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같은 변명도 핑계일 뿐인 게,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의 존재 유무가 행위의 도덕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린다면 문제적인 질문들이 던져질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뇌사 상태의 인간을 잡아먹는 것은 살아있는 강아지를 잡아먹는 것보다 도덕적이냐 같은 질문. 또는 동물을 마취시킨 후 안락사하여 먹으면 괜찮은 거냐 같은 질문들도요. '고통을 느낀다'라는 개념 자체가 지극히 인간적이지 않냐는 질문도 할 수 있고요. 식물에겐 감각 신경 세포가 없을 뿐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체제는 갖추어져 있거든요. 동물의 감각 신경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을 뿐입니다.
사육 환경의 '잔인함, 또는 부자연스러움'을 문제시한다면 식물의 재배 환경만큼 잔인하고 부자연스러운 게 없습니다. 1cm 간격으로 빼곡히 한 종만으로 꽉 채운 수천 평의 논과 밭에서 막대한 비료와 농약과 물을 써서 수확량의 상승만을 목적으로 하는 비정상적인 사육을 하고 있죠. 수천 년 동안 개량해서 낟알의 크기가 너무 커져 열매를 맺는 데만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게끔 되어 있는 부자연스러운 종을 육종해놓고 그걸 1cm 간격으로 자수 놓듯 깔아놓은 다음 잡초도 벌레도 전부 제거하고 강제로 비료와 물을 대량으로 먹인다? 그렇게 얻어진 곡식은 모조리 몰수하고요? '돼지를 고개도 돌릴 수 없는 좁은 틈에 가둬놓고 키운다' 같은 문제를 훌쩍 뛰어넘는 끔찍함이죠.
또 한 가지 재밌는 건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 출현한 이후 거의 모든 생물종이 굉장한 속도로 멸종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어떤 종들은 인간 출현 이전에 비해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개체수 폭등을 겪었다는 겁니다. 개체수만 비교하면 인류 다음으로 지구를 지배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죠. 얼마 전에 멸종한 아프리카 서부 흑코뿔소의 마지막 수컷이 조금만 머리가 좋았다면, 어쩌면 닭이나 돼지를 보며 부러워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종도 저렇게라도 살아남았다면 미래에 다른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물론 더 불쌍한 멸종하는 종이 있다고 가축들의 공장식 사육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결론은 식물을 먹는 것도 동물을 먹는 것도 둘 다 비도덕적이라는 생각입니다. 극단적인 비건들처럼 자연적으로 떨어진 열매를 먹는다 정도의 생식을 한다면 도덕적 책임감에서 약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생존하기가 좀 힘들겠죠.
그럼 넌 어떤 식으로 먹고 살고 있느냐, 라고 저한테 물으신다면 저는 거의 도덕이란 게 박살나버린 인격 파탄자 수준이기 때문에 죄책감 느끼면서 모든 것을 열심히 잘 먹고 있습니다... 추가로 공장식 육식 문화는 너무너무 거대해져버렸기 때문에 구조 개편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고, 인간의 모든 자유는 과학 기술에서 나온다는 개인적인 믿음과 일치되게, 육식을 하면서 죄책감을 덜 느끼고 싶은 우리의 위선적인 이기심은 배양육 기술의 상업화 이전에는 불가능할 듯합니다.
429
엄마가 관리안한 아이의 치아상태
[새창]
2018-04-27 01: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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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아빠가 치과 의사인데 왜 애 치아 관리를 엄마 탓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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