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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2 02: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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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요?
261
권리는 의무에서 나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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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2 02: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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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는 의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투쟁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인강 강사분이 여권에 대한 얘기를 할 때도 아마 1차 세계 대전 등에 여성들이 참전하면서 여성 인권이 신장되었다는 얘길 하면서
의무를 다함으로써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비슷하게 얘기했던 것 같은데
갠적으로는 그러한 역사 자체를 여성의, 세계에 대한 투쟁의 일부분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쟁이라는 게 꼭 머리에 두건 쓰고 모여 앉아서 소리치는 것만이 투쟁이 아니니까요
260
글쓰고 삭제하시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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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2 0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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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똑같다는 거예요? 동일인이 다른 아이디를 쓴다는 뜻인가요?
259
글쓰고 삭제하시는 분들
[새창]
2015-11-22 01:55:4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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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삐뚤어진 마인드를 가졌다거나 궁예질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구 원래 철학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래요
당연시 되는 어떠한 상식선 비슷한 걸 마주치면 항상 저건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지표인가 주관적인 것인가 고민하게 됨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거죠 기분 나빠하지 마세용 그리고 저도 갠적으로 서.진희님이 가진 의문에 공감함. 동시에 공들여 쓴 댓글 날아가서 기분 나쁜 작성자의 마음에도 공감하구요.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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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0 20: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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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별개였군요 추가 수정 감사합니다. 저도 하나 더 배웠습니다
오스만투르크가 말기에 매우 쇠퇴한 상태였고 아랍민족 통합국가라고 보기에 무리가 따른다는 점도 맞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당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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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창]
2015-11-20 03:56:3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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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지금 중동이 개판된 것 자체가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의 탓이 크다는 겁니다
"지들 업보다."라고까지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중동에 비해 파리에만 과도한 애도가 쏠리는 것은 우리가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거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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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0 03:53:16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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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이란, 이라크 같은 중동 나라들 전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아예 존재하질 않았던 나라들입니다. 그 지역은 당시 오스만 튀르크라는 거대한 다민족 제국이 굉장히 오랜 기간 통치하고 있었는데, 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튀르크가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살벌한 줄타기를 하다가 결국 독일의 편에 서게 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죠..
그런데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확신하기 전에, 영국군은 그들이 승리하기 전에 휴전을 맺게 될 경우, 팔레스타인 지역을 독일이 먹을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쪽 지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지역이며, 수에즈 운하와도 가깝고, 영국과 인도를 이어주는 길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영국군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친영 정부'를 수립하려는 공작을 펼치게 되었는데, 그게 벨푸어 선언입니다. 영국군은 예루살렘 지역을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1/6에 지나지 않았던 유대인들에게 주면서 그 지역을 유대인의 독립국가 이스라엘로 인정해줍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이 해체된 후, 그 광활한 지역을 통째로 먹게 된 영국은 세계 최강 제국의 지위를 가진 채로, 프랑스 미국 등 승전국들과 땅을 나누는데, 이 과정을 보면 영국 프랑스 등 열강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위도 경도 따위를 기준으로, 마치 지도에 자를 대고 선을 긋듯이 국경을 나눠놓은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누어진 국경선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국가들이 이란, 이라크 같은 현대 중동 국가들입니다. 그들은 당연히 자연스럽게 탄생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민족 국가로써의 정체성도 불분명하고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됐습니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이 그 다민족들을 전부 통치하던 시절, 그들을 유일하게 하나로 묶어주는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종교'였습니다. 그들 모두 무슬림이었죠. 오스만 해체 직전 즈음 해서는 이미 종교적으로도 많이 분열된 상태였지만, 최소한 무슬림이 가장 지배적인 종교이기는 했습니다.
따라서 안 그래도 불안정한 중동 국가들에게 유대인들로 가득한 기독교 국가 이스라엘은 존재 자체가 증오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인정할 수 없었던 중동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했고, 이 전쟁 국가들 상당수가 '군부 독재 정권'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당연히 전쟁 중이니까 군부가 힘이 셀 거고, 정치도 좌지우지 하면서 독재를 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가 '시리아'입니다.
그리고 중동전쟁들은 전부 이스라엘이 이깁니다. 그들은 영미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니까요.
이후에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는, "아랍에도 민주 국가를 만들자" 하는 운동이 중동에서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독재 정부와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반군'이 됩니다. 시리아 내전도 그렇게 일어나게 되었죠... 시리아 난민도 그렇게 발생하게 된 것이고요.
근데 여기에 종교적인 배경이 같이 맞물리게 되는데,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중동 국가들의 탄생 배경들이 모두 서구 열강의 손아귀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보니, 그들은 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았고, 종교적인 갈등도 매우 심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 지역에서 "아랍인만의,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자."는 주장은 상당히 강력한 세력을 모음직한 주장이 되겠지요... 그게 IS의 대외적인,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시리아 군부 독재에게 탄압받은 반군들도 상당수 IS의 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IS가 마치 독립투사처럼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테러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조선이 일제강점기 때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단 한 번이라도 자행한 적이 있었나요. 우리 선조들의 인권 의식과 애국심이 그 정도였습니다. 국뽕이라고 저를 놀릴 수도 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좀 경탄스럽긴 합니다. 얘기가 좀 샜는데, 어쨌거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절대 지탄받아야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프랑스 테러 희생자들에 대해서 추모하는 것도 명백하게 ‘바람직’합니다.
다만, 우리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대한민국은 유럽과 중동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이 땅에서, 마치 제 3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우리가 중동에서 일어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테러와 기아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피부로 체감을 하지 못하면서 프랑스 테러에 대해서는 유독 슬퍼한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에게 프랑스가 더 친숙하니까 그러는 건 이해가 됩니다. 파리에 추억이 있는 사람도 있을 거고, 파리에 다녀온 사람도 있을 거고요. 아니면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겠죠. 아니면 지인이 그곳에 산다든지요. 훨씬 친숙한 이미지여서 더 슬퍼하는 것은 타당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과 당위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파리가 중동 국가들에 비해서 더 친숙하기 때문에 더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들에 대해서 더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이 바람직한 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역시 중동 국가들처럼 강대국에 의해 식민지배 당한 아픔을 겪었던 나라이기 때문에요.
254
나는 게이를 혐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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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8 01: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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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그의 선택적인 행위에 근거해서가 아닌 단순히 그 사람의 자연적인 특성에 근거해서 혐오할 자유라는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그것은 기호의 차이 정도로 인정 가능한 것일까요? 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혐오감이 느껴진다면 그러한 감정 자체야 가치 판단의 대상이 되지 못하겠지만, 그 감정이 사회에서 자유의 이름으로 옹호되지는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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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23: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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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는, '자유'라는 단어를 원하는 바대로 행위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때, 우리가 선택권을 가진 상황에서 그 상황 자체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는 전제를 먼저 확보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즉, 내가 잠을 잘 수도 있고 그 시간에 오유를 할 수도 있다고 할 때, 그 누구도 내게 어떤 것을 하고 어떤 것을 하지 말라고 강제하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바'가 '잠'과 '오유' 둘 다라면, 이 상황에서 나는 자유롭지 않다는 거죠. 우리는 일반적으로 선택권을 가진 상황을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은 그의 선택권이 그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포함하는 경우입니다.
만약 어떤 인간이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하며, 수영을 못하는 자신은 자유롭지 않다고 불평한다면, 현대 사회의 자유주의자들의 논리 아래에서 우리는 그에게 "그 누구도 너에게 수영을 하라 마라 강요하지 않았다. 너는 익사할 각오로 물에 들어갈 자유가 있다. 익사라는 위험 부담은 네가 짊어질 책임이다. 그것이 싫다면 너는 수영을 연습했어야 했다." 식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자유는 그 따위 허접한 2차적인 선택권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튜브'를 가지는 데서 오는 것이죠. 수영 실력이 없더라도 물에 빠지지 않고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튜브요.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자유라는 단어의 뜻을 "행위 가능한 범위의 외연"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freedom from~과 구별된, "freedom to~" 라고 일컬어지는 이사야 벌린의 자유 개념과 비슷하다고 이해해도 좋을 겁니다. 저는 테일러의 입장에 동의해서, freedom from이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허상에 불과한 것이며, 자유는 능동적인 행위 가능성을 내포하는 단어로, 모든 '자유'라는 것은 freedom to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을 확보해주는 수영 못하는 애들의 '튜브'를 만드는 것이 사회의 의무고 역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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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23: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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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은 생명체 일반에 대한 것 맞아요. 그런데 과학이 발달해서 규정하는 데 성공할거라는 데에는 회의적이에요... 실제로 과학이 발달할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거든요. 다들 사춘기 때 한 번은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사후 세계가 진짜 있을까" 이런 고민들 해보셨을 텐데, 저는 그걸 고민하다가 "죽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살아있다는 건 정확히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됐어요. 근데 고등학교 공통과학 생물 파트 첫 장이 '생물의 정의' 였고, 꽤 명확해 보이는 기준들을 제시해주더라구요.. 1. 세포로 구성되어 있을 것, 2. 물질 대사를 할 것, 3. 작용에 대해 반작용 할 것, 4. 발생하고 생식할 것. 이런 기준들요...... 근데 이러한 기준들은 미시 세계로 내려갈 수록 하나씩 파괴되고 맙니다
바이러스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공기 중에 있을 때는 물질 대사도, 반작용도, 발생, 생식도 하지 않지만, 숙주 세포 내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다 하죠. 숙주가 '세포'니까 세포로 구성되게 된 셈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숙주 세포 속에 있는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의 리보솜, 아미노산, 트랜슬레이션 컴플렉스 등을 이용해서 바이러스 자체를 복제합니다. 숙주 세포에게 이득이 되는 어떤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기생을 해요... 결국 마지막엔 숙주 세포를 죽이고 탈출하는 방식으로 번식합니다. 그럼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와 별개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생물체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죠..... 긍정하려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물질 수준의 바이러스(어떠한 생명 현상도 하지 않고 세포로 구성돼있지도 않은)도 생물체로 인정되어야 하고, 부정하려면 숙주 세포 속에 있는 바이러스의 생물적인 특성도 부정해야 해요.
실제로 이런 이유로 바이러스는 아직도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학술적으로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분류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어요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생물체'라는 입장에 동의하고는 있지만요..
바이러스 얘기를 더 하자면,
놀랍게도 바이러스 중에는 숙주 세포를 죽이고 탈출하는 기작을 하지 않고 그냥 숙주 세포에 융합해버리는 애들도 있습니다... 숙주 세포의 DNA 안에 자신의 DNA를 집어넣고 그냥 같이 살아요. 그런 바이러스들을 transposon이라고 부르는데, 사람의 경우 사람 DNA의 절반 이상이 transposon입니다.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의 먼 조상의 DNA 속에 섞여 들어간 애들이에요. 그리고 그들의 돌연변이의 주 원인이 되어서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와 바이러스는 대체 어떤 기준으로 구별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죠..... 이런 질문들은 인간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치명적이면서 반론하기 어려운 난제입니다
또 다른 예시로 인간 세포 하나하나도 모두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물질대사를 하고', '작용에 대해 반작용 하고', '발생하고 생식'하는데, 세포 하나하나를 모두 생명체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할 수 있죠. 그럼 그들 각각이 모두 생명체라면 그들에게 독립된 아이덴티티를 부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나'라는 생물은 단수가 아닌 수십 조 개의 생명체들의 복합체인가, 그렇다면 나의 사유 전체는 뇌세포들의 뉴런의 전기화학작용일 텐데 그것들은 뇌세포들 전체의 전체 의지인 것인가, 그 '의지'라는 것이 단수로 취급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도 제기될 수 있고요
위에서 한 인간이 세포 복합체라는 전제에 동의할 때, 인간의 몸에 살고 있는 (인간이 아닌) 미생물들의 세포들의 무게가 수 kg에 이르고, 그 개수가 인간 세포 수의 열 배에 달하고, 그들의 DNA 양도 인간 DNA 양보다 압도적으로 많은데 과연 이 세포 복합체는 호모사피엔스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미생물 덩어리인가, 이것은 미생물들의 거대한 영양 배지가 아닌가? 이런 질문도 가능하죠.....
한 마디로 생명과학의 놀라운 성장들이 지금 인간 개인을 매우 미시적인 시각에서 관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오히려 그것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 같아요. 과학이 더 발달한 미래라고 해서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답을 내놓기는 어려울 겁니다. 인간 뿐 아닌 생물 일반의 정체성이라는 게 영구히 삭제될 가능성이 오히려 훨씬 커요. 그냥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자연계의 화학 작용의 한 현상으로 생물이 발생하고 성장하여 생활하다 죽는 것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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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창]
2015-11-11 04: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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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크게 두 개...
1. 단일 개체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존재는 어떻게 규명 가능한가?
2. 자유란 무엇인가?
2는 개인적으로 거의 답을 구했는데 1은 아마 영원히 노답일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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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창]
2015-11-07 04: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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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ㅋㅋ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죵.. 불매운동이나 사과 요구. 법적인 강제성을 띄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 이것도 자유의 범주 안 아니냐. 이런 비판 타당합니다. 남양에 대한 불매운동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남양 경영진의 자유(?)에 대한 사회의 공격이었는데 진중권도, 저도 그런 불매운동을 긍정했죠. 개인적으로는 남양의 경우에는 경영진이 이미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 먼저 룰을 어긴 경우라 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어쨌든, 사례들을 하나씩하나씩 분석하다보면 아이유 사과 요구와 남양 불매 운동 사이의 구별점을 찾아내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고, 작성자님의 비판은 타당해요.
주제 어긋나서 죄송하고 베스트나 다른 글에서 이런 댓글 달면 비공 폭탄 먹을까봐 무서웠는데 입이 근질해서 여기서 댓글 달았었어요 ㅋㅋ 철학게는 조용하니까요.....
본문 얘기를 좀 하자면, 저는 작성자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소아성애라는 것이 좀 더 정신의학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어요
저는 "난 양심 없어 잘 생기면 다 오빠야" 식의 드립들의 기저에 있는 감정들도 소아성애와 뿌리가 닿아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아에게 "성교하고 싶다."는 감정까지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섹슈얼함'을 느낄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성인이요.
소아성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감정 자체가 죄악시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 역시 또 한 가지 형태의 차별과 억압이 될 수 있죠.
1, 2, 3 질문은 너무 어려워서 포기~
249
조금 이 시대와 동떨어진 분들의 철학책을 읽는게 효율적인가요?
[새창]
2015-11-07 03: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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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어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철학은 고전일수록 그 후의 작품들에서 많이 언급되면서 반박되며 발전하니까 매우 효율적일거예요. 수많은 철학자들이 플라톤 얘길 하는데 플라톤을 알면 훨씬 읽기 쉽겠죠.... 그리고 마르크스 헤겔 정도면 상당히 현대적?인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ㅋㅋㅋ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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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창]
2015-11-07 03: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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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진중권씨의 시각에 100%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출판사가 제제는 이런 아이다, 아이유에게 유감이다, 했을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고 불쾌했어요.
지들이 뭐라고 제제는 이런 아이라고 정해주는건지. 어느 작가가 이런 말을 했죠 "작가는 작품 밖에서 그것에 대해 얘기하면 안 된다."
우리가 '자유'에 대해서 혼동하는 것들이 있는데, 자유와 윤리가 충돌할 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본문은 행위가 없는 소아성애의 감정 자체가 죄가 되느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 윤리의식 자체를 조심스레 공격하고 있는데, 그 부분은 나중에 논하는 걸로 하구요.
자유와 윤리가 충돌할 때 우리는 종종 윤리가 자유 위에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성애 역시 한 때는 '윤리적으로' 금기시 되었죠. 그런 시대에 동성애에 관한 음악이나 책을 쓴다면 '윤리적으로' 공격을 받았을 겁니다.
'윤리'라는 것은 사실 한 시대의 기준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옳음의 가치를 가진다는 걸 우리가 '증명'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먼 후대에 가치 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라는 겁니다.
(소아성애가 먼 후대에 가면 허용되는 가치가 될 거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포착하고 자유에 대한 현대적인 철학적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 존 스튜어트 밀이었죠
밀은 자신의 저작 <자유론>에서 자유의 한계를 아주 명쾌하게 정해줍니다
"타인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극한의 자유"
즉,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하든 자유라는 거죠...
"위 조건을 만족한 자유는 '사회 윤리', '여론'보다 우선한다." 라는 것이 자유론의 핵심 명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머리를 무지개색으로 염색을 하고 다니든. 라푼젤 수준으로 길러서 다니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니까 내 맘이라는 겁니다
대신 "저새끼 머리 진짜 지랄맞게 하고 다니네"하고 누군가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것은 감수할 수 있어야겠죠.
근데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야 너 머리 병신같아서 지나다니는 시민들의 기분이 나빠졌으니까 사과해!" 한다든지, 바리깡을 들고 와서 제 머리를 밀어버린다든지 하면 문제가 될 겁니다.
똑같은 비교를 아이유에게 할 수 있어요.
아이유 같은 경우,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그걸 음악으로 만들었죠.
그 작품이 소아성애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 소아성애가 우리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터부시 된다. 아이유가 욕을 먹는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다만 음원을 내려라. 사과문을 써라. 식의 요구를 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건전한 소비자로서의 피드백이 아닌, 소비자로서의 갑질을 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대중이 입맛에 맞는 음악을 듣고 싶은 자유만큼, 예술가가 본인이 하고 싶은 예술을 할 자유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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