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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마다.하지만 천국에 간다???????
[새창]
2013-07-27 16: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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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실제적인 삶의 물음에 대해서 잔인할 정도로 건조하게 느껴질 답변에 대해서 사과를 드립니다. 햐리 님의 질문을 잘못 해석한 것 같네요. 제가 했던 답 또한 어떤 측면으로는 필요하겠지만 햐리님의 입장에서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피상적인 문구였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악한 성품에 근거한 논리는 개인이 맞닥뜨리는 악에 관련한 상황에서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이죠.
햐리 님의 질문은 기독교 전도라는 분야의 심장을 겨누고 있습니다. 남들이 당하는 고통에 실제적인 답을 해주지 못하면서 감히 전도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만큼 매우 커다란 질문이고, 그래서 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답으로 끝나는 질문에 불과하지도 않습니다. 공감하고,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비록 저는 컴퓨터 앞에서 햐리 님의 질문에 대답합니다만, 햐리 님의 주변에 있는 기독교인이 햐리 님의 그 심정에 공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햐리님이 하신 질문을 제가 여러 가지로 나누어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제넘지만 이것이 나름대로 옳게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햐리 님의 질문을 임의로 나누어 보면 먼저는 이것 같습니다. "비기독교 인에게 그런 용서로 합리화하시려는 것입니까?"
어떻게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용서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사실 이것이 햐리 님의 진정한 질문이겠죠. 오늘 햐리 님의 관련 질문을 모두 읽어보고 받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도 있으셨습니다. "만일 살인자가 저의 가장 소중한 사람(예를 들어 자식 같은)을 죽였다면 그를 용서할 것입니까?"
그 문장을 읽을 때 숨이 멈춘 것 같이 가슴이 먹먹합니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고통보다 더욱 큰 고통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피해자는 절대로 가해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 3자 역시 감히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단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방관하시는 하나님은 정의로우신가?"하는 질문도 있었고, "과연 자식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도 있는가?"같은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과 "성경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왜 강요하려는가?"라는 저의 태도에 대한 반문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을 대답하기 전에 두 번째 질문을 다루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깊이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야 햐리 님꼐 제 진심을 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비록 제가 지금은 미혼이기는 하지만 '만일'의 세계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야기는 실체로 다가오는 힘이 있으므로 제가 느낄 수 있는 고통을 그나마 현실과 비슷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세상에서는 제게 아름다운, 그렇지만 병약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매우 사랑했고, 귀여운 딸을 낳았지요. 그런데 아내는 몸이 안 좋아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저는 기독교 인이었기 때문에 아내가 천국에 갔으리라고, 그래서 지금은 아프지 않고 행복하리라고 마음의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딸을 마음의 기쁨으로 삼고 온 정성을 다합니다. 딸은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집에 오지 않았어요. 저는 먼저 떨리는 손으로 경찰에 연락을 합니다. 사적으로는 미친듯이 딸의 행방을 찾습니다. 비록 냉철한 형사에게는 이제 딸이 살아 돌아올거란 희망을 포기할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매일 기도합니다. 제발 살아서 나를 보고 웃어달라고. 하지만 딸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아. 이제 저는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요.
범인을 잡았습니다. 딸의 시체를 발견한 뒤부터 매일 저주하던 그 사람있니다. 사형을 언도받았다죠. 하지만 이제 사형집행도 하지 않는 더러운 관례 때문에 그 목숨은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모범수로 풀려날 수도 있겠죠.
저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기도와 위로 덕분에 얼마간의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이제는 기독교인의 의무인 용서를 하기 위해 갈 시간입니다. 그래도 가기 싫습니다. 얼마나 망설였는지 몰라요. 교도소 앞에서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간 것도 수 차례입니다. 그러다 결국 용기 내어 그 사람을 면회합니다. 그런데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있어요. 예수님을 영접하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딸을 두 번 버리신 거죠.'
아마 저는 저런 상황이 되면, 그래도 그가 회개하길 바랄 것입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가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물론 성자같은 마음처럼 그를 완전히 용서한 것도 아니에요. 회개가 그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뿐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직시하는 거에요. 살인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어야 할 자신 대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나 강간범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다른 사람들을 황폐화시켰다는 사실, 그래서 본래 자신은 용서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천국에 갈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바울이 회심한 이후 그는 죽을 때 까지도 자신이 했던 죄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커다랗고 끔찍한 죄였는지도 더더욱 알아갔습니다. 죄에 대한 깨달음은 신앙이 꺾이지 않는 한, 평생 깊어만 가는 겁니다. 그게 바른 신앙이에요. 그래서 저는 저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죽인 사람까지도 회개하고 천국에 가길 바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사람의 신앙이 위대한 성인의 반열에까지 오르기를 기도할 겁니다. 후회의 탄식이 깊어질대로 깊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바라는 것은 기독교가 요구하는 용서의 기준에서 볼 때 함량 미달입니다. 그래도 저렇게라도 용서를 시작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저는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양아들로 삼았다는 손양원 목사님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언젠가는 그런 신앙을 가질 수 있겠지만 솔직히 아직은 아닙니다.
이제 첫 번째 질문의 답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기독교인이 읽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그 용서를 통해서 그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지었던 죄를 더욱 죄로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십니다. 이것이 제가 어제 답한 부분의 뒷모습입니다. 그러니 만일 어떤 사람이 햐리 님께 악행을 저지르고 기독교 인이 되어 마음속의 평안을 누리고 있다면, 그가 더욱 더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바라시는 것이 더 통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 신앙이 깊을 때,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이방인의 사도라고 높임 받을 때,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신자를 '의인 그러나 죄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신앙이 좋다고 높임을 받았던 성도들은 모두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지었던 죄 때문에 우는 시간이 많아져 갔습니다. 제가 착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회개의 모습입니다.
햐리님의 질문 속에는 "방관하시는 하나님이 과연 정의로운가?"가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앞서 드렸던 대답에서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햐리님께서는 기독교인이 말하는 성경일 뿐이라니만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근거하는 부분이 이것밖에는 없네요)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인간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인간에게만 돌리지 않고 자신이 창조한 세상의 악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죄로 인해서 사람의 본성이 형편없이 망가졌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래서 인간은 죄를 직시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나선 것입니다. 창조로부터 타락, 구속, 종말에 다다르는 성경의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십자가에서 스스로를 희생하셔서 악에 대해서 승리하시고, 끝내는 악을 심판하시리라. 약속하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분이 과연 정의로운가 비난하는 것은 너무 일방적입니다.
"살인자를 용서하는 부모도 있는가?" 한국에서는 과거 일제 강점기 때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이 있었고, 자신 앞에서 자식이 죽는데 적을 용서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핍박당하던 초기 기독교 사회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노예로서 학대받으면서 학대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들도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냈습니다. 기독교가 추후 로마를 이긴 것은 그들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햐리님께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한국 기독교가 성경이 말하는 바람직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포비아가 만연한 지구에는 그런 기독교인 또한 많을 것입니다. 실제로, 순교자는 초대교회보다 지금이 훨씬 많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것은 여러 의미로 읽혀지므로 각각의 의미에 대답하려 합니다. 먼저 '성경이 진리라는 믿음을 너무 확신하지 마라'는 의미에 대답하자면, 저는 물론 성경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진리라고 믿는 저의 믿음이 당연하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회의를 거부하는 믿음은 병든 믿음입니다. 제가 읽고 해석한 것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해석도 찾아보고 우리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믿음이 옳은 것일까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고는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햐리님께서 하신 질문이 '커다란 질문'이라고 추켜 새우지 않았겠죠. 명명백백한 진리도 제대로 못 보는 사람이라고 흉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햐리님의 질문은 충분히 가치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댓글에 장문의 답을 올리는 것이고요. 그것에 대한 저의 대답은 기독교적인 발판 위에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인 부분을 파고드는 질문이었고 저는 그것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없었으니까요. 아마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이 게시판에 오지 않으리라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다음으로 이해되는 의미는 '성경은 판타지인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이 판타지라는 것은 어떤 불신자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마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신자들의 주장일 뿐인 것 처럼 말입니다. 또다른 불신자들은 성경에는 충분히 숙독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그런 주장을 보기 힘드실 것입니다. 우선 한국 기독교가 해온 것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블로그를 찾아 보시면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고전이나 책에 있습니다.
존 도미닉 크로산이나 바트 어만 같은 사람들의 주장을 듣고 예수가 행했던 기적을 거절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크레이그 에반스나 톰 라이트에게도 귀를 기울여 보시는 편이 공정할 것 같습니다. 학자의 입장에서 성경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학자의 입장에서 성경을 온전히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 믿음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습니다.
물론 햐리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셨던 바는 저런 대답이 아닌 줄 압니다. 햐리님의 질문은 하루하루의 필요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여력이 있느냐 하는 것일 테죠. 그런 의미에 대한 대답 또한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의 메시지는 삶을 통해서 보여져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나와있습니다. 그러니,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같이 슬퍼하면서 삶을 통해서 기독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한국 메가처치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햐리님께서 제게 신이 없는 것을 전제로 즉, 성경은 사실이 아니라는 전제로 기독교의 입장을 말하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그런 질문에는 저도 질문으로 대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째서 성경은 사실이 아니라는 전제를 제게 강요하십니까?
결론을 맺습니다.
햐리님께서는 어떻게 회개따위로 그 살인자를 용서하시는지 감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회개따위로. 상황이 주어진다면 충분히 그 살인자보다 잔인해지는 저를 용서하시는지. 감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답하려 노력했지만, 죄송하게도 햐리님께서 원하셨던 종류의 답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17
나는 살인마다.하지만 천국에 간다???????
[새창]
2013-07-26 16:02:41
1
삭제
햐리 님께서 물으신 것은 신학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답변도 많습니다. 그중에 제가 나름대로 생각한 답변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물론 저는 신학생도 아니고, 기독교를 대표하는 신자도 아닙니다. 일개 평신도일 뿐입니다.
저도 작성자분 만큼 콜로세움을 원하지 않고, 다만 작성자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길 바랍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최소한 그렇게 보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고 땅은 동식물의 창조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초자연적인 것이 없다고 하지는 않지만 성경은 물질 또한 신성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자유의지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는 모두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세상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뱀이 나타나서 이브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합니다. 아담도 함께 죄를 지었고, 인간 속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은 더럽혀졌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기뻐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되, 자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후로 보여지는 인간의 모습은 죄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은 것을 깊이 탄식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악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보다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악은 반 창조를 지향하는 것은 틀림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에게 대응하시는 방식은 심판과 자비입니다. 악 자체를 심판하시고,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비를 남겨 놓습니다.
심지어 악을 명쾌하게 제거하시는 모습이 보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인간의 악이 어느 한계를 넘지 못하게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세상과 악은 외과수술로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릅니다.
"선과 악의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선은 '우리'와 '그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을 지나고 있다."라는 솔제니친의 말처럼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실수하고 죄를 저지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죄인입니다.
그런 악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대답하십니다. 더욱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죄(혹은 악)를 다루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 뒤 극한의 고문을 받고 죽음에 이른 젊은 유대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복음서에서의 예수는 잘못된 통치 기구의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로마에서 온 빌라도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만드셨던, 그러나 지금은 왜곡되어 부패한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양자에게 저주받고 사형을 언도받습니다.
성경은 또한 초월적인 악의 세력을 말합니다. 고소자라고 불리우고 첫 살인한 자라고 불리우는 힘입니다. 그들이 예수의 죽음을 이끌었습니다.
악에 대한 모든 세상의 처방은 그 안에 악이 내재되어 있어 다시 악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악은 십자가 위의 예수에게 수렴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신성을 지닌 '인자 같은 자'를 이야기합니다. 기독교는 그 인자 같은 자가 바로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 세상의 악을 정복하셨습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죽었고, 그 이스라엘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입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죄 용서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복음은 이런 이야기이고, 그를 믿는 믿음이 예수와 죄인을 연결한다고 말합니다.
햐리 님께서 본문에 '살인자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십니까?'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제가 알기로 성경은 그 질문에 '당연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악은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의 학살을 진행했던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던 일반인이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이웃을 능욕하던 사람은 전날까지도 서로를 향해 웃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칭기즈 칸의 삶을 살면 저도 정복지를 불태우고 그들을 학살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셨습니다.
바울은 더 큰 죄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거듭난) 신자들을 죽이고 학대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바울조차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자신의 은혜를 보이셨습니다.
일단 본문에서 질문하신 것에 대한 대답은 여기까지입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제 생각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나지 않은 조잡한 글이 되었네요.
16
개독들이 반박할수 없는 기독교의 모순, 까드립니다.
[새창]
2013-07-26 14: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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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에 대한 부분을 더 말씀드리자면, 초창기의 기독교는 유대교와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모시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유대교의 박해가 심해지면서 따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비슷한 기간에 안식일과 주일을 지키다가 주일만 지키게 되었습니다.
15
개독들이 반박할수 없는 기독교의 모순, 까드립니다.
[새창]
2013-07-26 14:42: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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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신학생도 아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옥탄가 님이 말씀하신 모순점에 대해 답해봅니다.
3번부터 말씀드립니다.
안식일은 두 가지 의미로 제정되었습니다. 먼저는 창조를 기리는 것이고, 다음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탄생(출애굽)을 기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는 타락으로 망가졌고, 이스라엘은 구속을 위해서 하나님이 선택하고 만든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 구속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졌고요.
구속은 창조보다 더욱 커다란 일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세상의 재창조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 이후로 나타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끌어가는 창조보다 더 큰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주일입니다. 그 날은 안식일의 주인이 부활한 날이고,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을 이룬 날입니다.
당연히 주일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십자가와 성상에 대한 글쓴 분의 시각은 맞는 부분이 많습니다. 십자가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십자가가 우상이 되는 것이고, 성상(혹은 성화)을 예수님과 동일시하면 그것 또한 우상이 됩니다. 그래서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그런 성상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으로는 우상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십자가와 성상이 말하는 바를 해석해 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14
예수믿으라고 선교하는 사람들께 보여주고 싶은 그림..
[새창]
2013-07-26 12: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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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있는 한계는 무엇입니까? 외부에서만 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부에서도 있는 것입니까?
제가 묻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도덕적 한계에 관한 것입니다.
용인 살인사건에서 본 인간의 추악함은 인류가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기시는지 궁금합니다.
13
불교의 기본적 교리
[새창]
2013-07-26 12: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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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리 감사합니다.
불교에 대한 입문서같은 것은 없나요? 그냥 금강경 같은 불경을 읽어도 될런지 질문 드립니다.
12
휴식타임, 선불교 화두 하나 읽어보고 가세요 (비논리?무논리?)
[새창]
2013-07-26 12: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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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불교의 화두에는 담담한 맛이 있어요.
11
예수의 실존 여부에 대해 질문 하나
[새창]
2013-07-26 12: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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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을리가 없죠. 예수는 당시 식민지에서 십자가형을 당한 죄수일 뿐이니까요. 그렇다고 예수가 역사적으로 크게 무슨 일을 한 것도 없으니까요. 성경에도 나와있듯이 예수는 로마의 체제 자체에는 이렇다할 갈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층민으로부터 시작해 종국에는 로마 전체를 바꿔버린 반체제 사상이었으니 지배층과의 갈등도 당연히 있고,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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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해야 할때, 침묵하는자는 죄악이다.[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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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5 23: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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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의 '여론조작'과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라는 책들을 추천합니다. 대중의 주도세력들의 선전모델과 원리가 적나라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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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美 "동해 아닌 일본해" 공식입장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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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8 13: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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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레어닉넴님의 역사 지식이 놀랍습니다.
평소에는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었거든요.
저도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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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8 13: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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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레어닉넴님의 역사 지식이 놀랍습니다.
평소에는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었거든요.
저도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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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8 13: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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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혹시 몰라서 몇 자 적자면, 원래 레어닉넴님을 비판하려고 썼던 글이 아니였습니다.
지금 보니까 제 글이 레어닉넴님의 글을 반박하는 걸로 보이는데,
그냥 글 위치가 레어닉넴님의 글 아래로 들어간 거에요.
사료적으로 보자면 레어닉넴님의 글이 맞을 겁니다.
저는 그냥 국제수로기구 구조가 저따위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 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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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혹시 몰라서 몇 자 적자면, 원래 레어닉넴님을 비판하려고 썼던 글이 아니였습니다.
지금 보니까 제 글이 레어닉넴님의 글을 반박하는 걸로 보이는데,
그냥 글 위치가 레어닉넴님의 글 아래로 들어간 거에요.
사료적으로 보자면 레어닉넴님의 글이 맞을 겁니다.
저는 그냥 국제수로기구 구조가 저따위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 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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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8 12: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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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닉넴//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 아닌 동북아 역사재단의 강사님께 직접 들은 말입니다.
1. 베이징 올림픽이야 국제적으로 공인된 말을 써야 하니까 일본해라고 표시한 거죠.
2. 중국과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동기가 별로 없죠. 영토분쟁에서 분명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냥 이 안건이 올라오면 찬성하는 정도입니다. 실제로 제가 말한 부분은 이 부분이고요.
3. 조상님들의 고지도에는 영해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어요. 그러니까 '육지부터 몇 해리까지가 조선의 영해다'이런 기준이 없었다는 거에요. 그냥 '한반도 동쪽에 있으니까 동해. 그 건너에는 일본'정도였습니다.
4.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국제수로기구에서 바다 이름을 정하는데, 일단 일본해를 동해로 명칭을 바꾸자는 안건이 투표에 올라가면 그 관련국들인 대한민국, 러시아, 중국의 찬성으로 가결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상황이 불리하니까 일본은 이 안건이 나오기만 하면 자리를 떠나는데, 국제기구의 구조상 국제기구에 기금을 가장 많이 내는 일본이 자리에 없으면 아예 투표조차 못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런 구조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끝났을 문제에요.
근데, 한국전쟁 후에 수로국에서 우리나라에게 위원을 요청했는데, 전후복구로 바쁜 우리나라가 보내지 않았던 게 이 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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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8 12: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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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닉넴//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 아닌 동북아 역사재단의 강사님께 직접 들은 말입니다.
1. 베이징 올림픽이야 국제적으로 공인된 말을 써야 하니까 일본해라고 표시한 거죠.
2. 중국과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동기가 별로 없죠. 영토분쟁에서 분명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냥 이 안건이 올라오면 찬성하는 정도입니다. 실제로 제가 말한 부분은 이 부분이고요.
3. 조상님들의 고지도에는 영해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어요. 그러니까 '육지부터 몇 해리까지가 조선의 영해다'이런 기준이 없었다는 거에요. 그냥 '한반도 동쪽에 있으니까 동해. 그 건너에는 일본'정도였습니다.
4.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국제수로기구에서 바다 이름을 정하는데, 일단 일본해를 동해로 명칭을 바꾸자는 안건이 투표에 올라가면 그 관련국들인 대한민국, 러시아, 중국의 찬성으로 가결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상황이 불리하니까 일본은 이 안건이 나오기만 하면 자리를 떠나는데, 국제기구의 구조상 국제기구에 기금을 가장 많이 내는 일본이 자리에 없으면 아예 투표조차 못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런 구조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끝났을 문제에요.
근데, 한국전쟁 후에 수로국에서 우리나라에게 위원을 요청했는데, 전후복구로 바쁜 우리나라가 보내지 않았던 게 이 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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