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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5597
    작성자 : 밀리좋아
    추천 : 14
    조회수 : 3541
    IP : 121.142.***.43
    댓글 : 8개
    등록시간 : 2017/09/24 02:43:02
    http://todayhumor.com/?panic_95597 모바일
    방파제의 괴물
    방학때 친구들과 섬으로 여행갔을 때 일어난 일이다.


    남자 다섯이서 갔는데, 남자들이 놀러나오면 다 그렇듯이, 기껏 배타고 섬까지 왔음에도 물놀이 1시간정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숙소에서 밤까지 술먹고 떠들다가 잠들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3시쯤부터 마시기 시작하고 8~9시쯤에 잠들었던것 같다.

    몇시간이나 잠들었을까. 근처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나는 숙취로 징징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섰다.

    처음에는 어둠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윽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는지 어스름하게나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주병과 싸구려 안주들로 개판이 된 방 구석에서 찬호가 뭔가를 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잡아 시간을 확인하니 정확히 새벽 2시였다.

    "야, 뭐하냐?"

    다소 짜증섞인 내 목소리에 찬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깼어? 낚시좀 하려고"

    그러고보니 이놈은 여기서 낚시하겠다고 낚시채비를 가져왔었다. 그리고 우리가 물놀이할때 한쪽에서 낚시대 드리우고 아무것도 못낚았었지.

    "아까 했잖아. 그리고 뭔 새벽에 얼어뒤질 낚시야"

    "야, 원래 낚시는 새벽낚시가 진리다. 내가 돌돔 몇마리 잡아서 해장 끝내주게 해줄게"

    "지랄. 아까도 헛탕쳐놓고."

    "야야, 아까는 물때가 안좋았고. 지금 시간이 딱 밀물이라서 잘 낚여."

    "...헛탕에 만원 건다."

    "개자식. 낚으면 니 몫은 없다."

    이런 잡담을 하면서 나도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낚시는 관심 없었지만 숙취때문에 바깥바람을 좀 쐬고싶었기 때문이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조심스럽게 피하며 숙소에서 나온 나와 찬호는 선착장 근처의 방파제로 향했다.
    편의점 하나 없는 작은 섬마을이라 그런지 드문 간격으로 설치된 가로등을 제외하면 깜깜했다. 지금 철에는 뭐가 잘낚이니하는 찬호의 낚시열변을 반쯤 흘려들으며 나는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별자리로 수놓아진 밤하늘을 바라보고 걸었다.
    그렇게 한 10분을 걸었을까. 새까만 바다와, 어둠에 덮힌 방파제가 보였다.


    사진08-방파제의-낚시꾼.jpg
    ※방파제


    커다란 방파제를 성큼성큼 뛰어넘으며 적당한 포인트에 자리를 잡고, 찬호가 낚시대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낚시대를 펼치고, 거기에 낚시줄을 꽂고, 바늘과 추를 단다. 그리고 미끼통에서 큼지막한 갯지렁이를 한마리 꺼내더니 3등분으로 잘라 3개의 바늘에 꽂았다. 그리고 가까운 위치에 낚시줄을 던졌다.

    그리고 과정을 3번 반복했다. 찬호가 가져온 낚시대가 3대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낚시대 끄트머리에 방울을 달은 찬호는 그대로 주저앉아 숙소에서 가져온 캔맥주를 땄다.
    한편 나는 숙취때문에 알콜을 더 먹을 마음이 없었기에 어제 마시다 남은 김빠진 콜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적당히 잡담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찬호의 호언이 허풍은 아니었는지, 중간중간 낚시대가 흔들렸고, 한 1시간쯤 후에는 손바닥만한 우럭 1마리와 볼락 2마리가 어망에 들어갔다. 비록 그의 장담처럼 돌돔은 낚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특필할만한 성과였다.

    오늘 아침에 숙소 이모한테 고추가루랑 무를 좀 얻어서 매운탕을 해먹을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다. 갑자기 찬호가 벌떡 일어났다.

    "왜?"

    "나 화장실좀 다녀올게"

    "그냥 여기서 싸"

    "...큰 거다 이놈아."

    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는 그에게 다녀오란말을 하고, 찬호는 나에게 물에 드리워진 낚시대를 부탁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멍하니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찬호가 방파제를 성큼성큼 뛰는 발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그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쏴아아-

    쏴아아-

    혼자 남은 밤바다에는 파도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숙취가 상당히 진정되어 어느정도 여유가 생긴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있었다.
    솔직히 생각할 일이 많았다. 가족문제, 알바문제, 학업문제 등등. 이번 여행에 승낙한 이유도 잠깐 이 문제들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렇게 조용히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지금은 좋은 기회였다. 그렇기에 나는 조용히 상념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파도소리에 섞여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니까.
    상념에서 깬 직후의 나는 그것이 고양이 울음소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것은 발정기를 맞이한 고양이의 음산한 울음소리와 비슷했었다. 나는 이것이 마치 아기 울음소리같아서 매우 싫어했다.
    하지만 잠시 후, 나는 그 소리에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어으애흐

    -다러즈애으

    -사러주새오



    -살려주세요


    그래. 어눌한 그 소리는, 확실히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멍해있던 머리가 망치를 맞은 듯이 또렷해진다.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어둠으로 덮혀진 이곳에는 여전히 나 밖에 없었다.
    무서워진 나는 외쳤다.

    "누구 있어요?"

    얼마 후, 아까의 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려주세요

    그 목소리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래, 방파제 한 가운데에서 들려왔다. 나는 휴대폰의 후레시를 키고 조심조심 소리가 들린 쪽으로 걸었다.

    "어디에요?"

    -살어주세오

    여전히 어눌한 소리. 하지만 그 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나는 이 소리의 주인이 방파제에서 떨어졌으리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방파제에서 떨어지면 매우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어디냐고요!!"

    -살려두세요

    계속 걷는다. 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진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봐요!!"

    -살려주세오.

    이윽고 소리가 매우 가까운 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특정할 수 없었다. 이 주변 방파제 밑을 하나하나 뒤지기도 힘들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일단 사람을 불러오기로 했다.

    "사람 불러올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는 그렇게 외치고 육지쪽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옆의 방파제로 뛰어넘으려고 한쪽 발을 들었을 때,
    방파제 위에 있는 다른 쪽 발목에 축축한 감촉이 느껴진 직후,
    나는 균형을 잃고, 공중을 부유했다.




    가파른 언덕에서 구르는듯한 감각, 그리고 격통이 느껴졌다.
    특히 등과 뒷통수가 아팠고, 팔과 다리도 크게 긁혔는지 많이 따가웠다.
    욕지거리를 하며 어떻게든 자세를 잡은 나는 눈을 떴다.

    밝은 방의 불을 갑자기 끈 듯이, 사방은 새까맸다. 희미하게 눈 앞에 새하얀 콘크리트가 보이는걸 보아 아무래도 나는 방파제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어두움을 밝히려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찾았지만, 떨어질때 휴대폰도 떨어뜨렸는지 발견되지 않는다.
    방파제 사이로 약간의 달빛이 들어왔고, 파도소리에 맞춰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는것이 보였다.
    그리고 시선을, 달빛이 거의 닿지 않는 곳, 방파제와 방파제 사이로 돌린 나는, 그 직후 후회했다.

    동그란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툭 튀어나온 새하얀 흰자위와, 가운데의 새까반 검은자위. 그래, 마치 동태눈깔같은 그 눈이, 번뜩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어져버린 나를 바라보며, 아주 약간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윤곽이 간신히 보이는, 마치 양서류처럼 쫙 벌어진 입이 움직였다.

    -사려주세오

    그 소리였다. 아까부터 나에게 끊임없이 구조를 요청한, 그 어눌한 소리였다. 그것이 지금 내 바로 앞의, 괴물의 입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괴물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정신이 든 것과, 비명이 터져나온 것은 동시였다.
    그리고 본능에 따라 방파제를 기어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바닷물에 젖은 방파제는 미끄러웠고, 내 손은 자꾸 미끄러져 헛손질을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올라간 순간, 발목에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강한 힘으로 잡아당겨졌다. 그대로 나동그라진 나는 아픔과 함께 방파제 밑으로 다시 떨어졌다.
    절망에 빠진 나는 뒤를 돌아봤다. 마치 긴팔원숭이처럼 긴, 그러나 털이 아닌 비늘로 덮힌 팔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떨어진것을 확인했는지 그 팔을 거두었다.
    나는 괴물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긴장하고 있었지만, 한참동안을 바라봐도 괴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듯했다.
    그리고 괴물이 기다리는것이 무엇인지 곧 알 수 있었다. 갑자기 파도가 들어와 내 몸을 강하게 때렸기 때문이다.
    파도의 물살에 휩쓸려 방파제에 머리를 부딪히고 나는 놈의 속셈을 깨달았다.
    찬호는 분명 밀물이라고 말했다. 밀물, 들어오는 물. 확실히 갓 왔을 때에 비해 물이 많이 들어왔었다.
    그래. 이 놈은 내가 바닷물에 익사하기를 기다릴 생각인 것이다.

    잠깐만. 찬호?
    찬호가 있었다. 화장실 다녀온다고 했고, 그 때부터 시간도 꽤 지났으니 슬슬 돌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그 생각에 이르른 나는 위를 향해 최대한 크게 외쳤다.

    "찬호야!!!! 살려줘!!!!!! 찬호야!!!!!"

    "살려줘!!! 찬호야!!! 제발!!!"

    "찬... 컥... 쿨럭쿨럭"

    아까처럼 파도가 내 몸을 때렸다. 하필 외칠때 파도가 들어와서 목에 바닷물이 들어가 기침을 했다.
    그러고보니, 들은 적이 있었다. 방파제 아래에 떨어지면 파도소리때문에 바깥에 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그래서 구조를 구하기 힘들어 매우 위험하다고.
    그래, 휴대폰. 휴대폰으로 구조를 요청하면 된다. 같이 떨어졌다면 분명 이 근처에 있을것이다. 나는 손으로 주변을 더듬었고, 다행이게도 휴대폰은 곧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절망으로 바뀌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바닷물을 먹은 휴대폰은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았던것이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방파제 사이에 있는 괴물의 얼굴.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기분탓인지 나의 발버둥을 비웃는것처럼 느껴졌다.
    사면초가였다. 방파제를 기어올라가려면 놈이 끌어내리고, 목소리는 닿지 않고, 전화는 고장났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건 없겠지. 나는 좌절감에 빠졌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외쳤다.

    "찬호야.... 찬호야.. 살려줘.."

    얼마나 외쳤을까. 목이 완전히 쉬어버릴 정도로 오래 소리지른것은 틀림없다.
    그 사이에도 놈은 움직임이 없었다. 여전히 번뜩이는 눈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고, 어느새 바닷물은 내 가슴까지 차올라 10초에 한번 꼴로 파도에 맞아 물을 먹는다.
    내가 완전히 체념하려던 참이었다. 마치 기적처럼, 하얀 전조등빛과 밧줄이 방파제 위에서 내려왔다.
    허겁지겁 그 밧줄을 붙잡고, 천천히 끌어올려진 나는, 마지막으로 놈을 보았다. 분노로 충혈된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놈은 서서히 방파제 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후, 구조된 나는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고, 그대로 숙소에서 쉬게되었다. 그 때가 새벽 4시였다.
    듣자하니 화장실을 다녀온 찬호가 내가 사라진것을 알고 바로 마을 해경에 연락, 마을사람들도 총출동해서 수색작업을 벌였고, 늦지 않게 나를 찾아냈다고 한다.
    내 상태는 찰과상이 많고, 잠깐 저체온증이 온 걸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방파제에서 떨어지면 골절하는 경우도 잦다고하니 운이 좋았다나 뭐라나.
    아무튼 아침해가 뜨고 찾아온 마을 이장님한테 엄청나게 혼난 우리들은 숙소를 간단히 정리하고 선착장에서 아침 첫 배를 기다렸다.

    "야, 너 나한테 목숨 빚진거다?"

    "그래그래. 존나 고맙다"

    찬호의 말에 대충 대답한다. 내심으로는 찬호가 낚시하겠다고 설쳐서 이렇게 된게 아닌가하는 불만이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 때 저 멀리서 배가 오는게 보였다. 찬호와 나머지 친구들이 짐을 챙기고, 환자특권으로 짐이 면제된 나는 잠깐 선착장의 화장실에 다녀왔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방파제가 보였다. 어제 내가 사고를 당한 방파제이다.
    참고로 나는 그 괴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믿어줄까하는 의문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도 지금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긴장으로 인한 환각, 환청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뭐, 상관없나"

    어차피 두번 다시는 이 섬에 안올거다. 그리고 두번 다시는 방파제 위에 올라가지 않을거고.
    어제의 일이 사실이든 환각이든 꿈이든간에, 살아 돌아온 이상 나와는 관계 없다.
    나는 방파제쪽에서 등을 돌리고 선착장을 향해 걸었다. 그 때였다.

    -차노야 살러저

    나는 홱 뒤돌아보았다. 눈 앞에는 방파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놈이 방파제 아래에 숨어있는 것을. 잡은 사냥감의 목소리를 흉내내, 다음 사냥감을 함정으로 유인하고 있다는 것을.
    두려움에 빠진 나는 도망치듯이 배로 뛰어갔다.
    출처 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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