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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dit][WP] 여자친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동생들
게시물ID : panic_794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XdbX
추천 : 19
조회수 : 5289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5/05/02 04:48:56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배경음 (자동재생, 반복재생 주의):

http://listenonrepeat.com/watch/?v=-2wfD10MT7E#A_Tale_Of_Two_Sisters_-_Soundtrack_-_15.__Epilogue____(Good_Quality)



레딧에는 Writing Prompt, 줄여 WP라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소설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내용을 글 제목으로 제시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에 영감을 받아서 댓글로 소설을 쓰는 게시판입니다.

이 중 제 취향에 맞는 글 하나를 번역했습니다.


원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WP] 맨날 자기 여동생들이 커간다고 얘기하던 내 여자친구.

항상 걔들 말썽에 엮여서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뵌 날, 여자친구가 외동딸이라는 말을 들었다.


제출자: AsianAlan


출처: http://redd.it/338uck




작성자: Cymoril_Melnibone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맥도날드에서였다.

도시 여자들이 연 동성애 파티1에서.


억센 아이였다.

가죽 재킷을 입고, 금발을 언더컷으로 자른 갓 난 부치2.

1년 전에 새긴 문신이 있던 그 아이는

훗날 대학에서 자퇴하고 나선 관심이 식을 인더스트리얼 피어싱3을 끼고 있었다.


첫눈에 얜 그저 특이한 걸 시험해보려는 흔한 여대생 중 한 명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연애 대상에서 제외했다.

심지어 나는 30살 먹은 레즈비언 사서였다.

애까지 딸려있는 데다 융자금 걱정도 해야 했다.

안정적이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차마 그 아이를 못 본 척하는 것까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자기 자매가 다 같이 맥도날드에 갔던 때 얘기를 풀었다.

다들 나사 빠진 행동을 하는 동안 맏이는 간호인 시늉을 했단다.

존나 웃겼다.

이야기가 끝날 즘에는 너무 웃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고,

살짝 사랑에 빠져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젠이었다.

젠은 맨날 자기 자매 얘기를 하곤 했는데,

들을 때마다 부러워 죽을 것 같았다.

내게는 은둔형의 남동생밖에 없었다.

게이에 성전환자로 커밍아웃한 뒤로 가족이 호적에서 파버린 아이다.

가족이 날 받아들였던 건 그저 내가 그나마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젠의 자매가 서로 얼마나 가까운지 듣고 있노라면

이 아이가 가진 행복의 절반만큼이라도 내게 있었기를,

젠네 가족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우리 가족이 가깝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날 밤이 끝나갈 무렵,

젠은 내 무릎 위에 걸터앉아 키스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마치 10대로 돌아간 것처럼 입을 맞췄다.

주변 사람들이 놀려대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사귀게 되고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다.

젠에게 극적인 사건과 위험천만한 일이란 일용할 양식과도 같았다.

자기가 만족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갈구했다.

자기도 남자만큼이나 억세다는 걸 증명하려고 싸워대질 않나,

혼수상태에 빠질 때까지 술을 마셔대질 않나.

어느 밤, 젠이 피범벅이 되어, 주먹에는 멍이 가득한 채로

입에선 욕지거리를 뱉으면서 들어왔다.

그날 밤, 젠을 집에서 쫓아냈다.

내 딸에게 그런 꼬락서니를 보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젠이 여름 방학 동안

머리를 좀 식히고 난 뒤에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젠은 상담을 받기로, 나는 좀 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젠이 춤추고, 술을 들이켜고, 투덜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엉뚱한 시대에 태어난 애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60, 70년대에 태어나

동성애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어야 했을 여자였다.



그러나 젠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문제는 잔뜩 있었다만.



젠은 가끔 자해를 하곤 했다.

얘네 세대의 동성애자 사이에서 유행하는 모양이었다.

애를 미친 듯이 흔들며 씨발 자기 몸에 뭔 짓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젠은 울음을 터트리며 무너지듯 내 품으로 안겨왔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젠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꼭 껴안아 주며

진정할 때까지 젠의 손에 입을 맞췄다.


몽유병도 있었다.

아마 젠의 문제 중 가장 대처하기 쉬운 문제였을 거다.



젠의 자매를 만나보고 싶다고 할 때면

젠이 전화를 걸어 각자 어디서 뭘 하는지 물어보았다.

제시카는 자연 보호를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하고 있고,

시오반은 런던에서 작은 금은방을 하면서 주부로서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고,

알렉스는 아시아에서 배낭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알렉스가 유럽을 걸쳐서 미국 쪽으로 올 수도 있긴 하겠다"고 했다.


다른 애들은 사는 곳이 너무 멀었고,

우리에겐 만나러 갈 정도로 돈이 남아돌지 않았다.

하지만 젠의 부모님은 뵐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젠의 아버님과 악수하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하필 장 보던 중에 뵙게 될 줄이야.


안녕하세요, 줄리 양.”


아버님께서 가시 돋친 목소리로 유쾌하게 말씀하셨다.


제 딸내미 여자친구분을 드디어 뵙게 되다니 참으로 영광스럽네요.”


아버님께선 젠을 쏘아보셨다.

그간 젠은 바로 이 만남을 피하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우리를 스타벅스로 데려가 커피를 대접해주셨다.

아버님께서 딸의 성적 취향뿐만이 아니라

나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시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직설적인 성격상,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아버님, 솔직히 말하자면 절 이렇게 좋게 봐주셔서 놀랐어요.

미국 중산층 아버지 중에서

자기 딸이 싱글맘 레즈비언이랑 사귀는 걸 보고

이렇게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실 분은 없다시피 할 텐데요.”


아버님께서 라떼를 한 모금 드시더니

회색 콧수염 밑으로 작은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딸이 저번에 사귀었던 애가 딸이랑 판박이였거든.

어땠을지 상상이 가나?

적어도 자네가 여자친구면

뒤에서 봐도 누가 누군지 헷갈릴 일은 없잖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젠 부모님께서 저녁 먹으러 오라고 초대해주신 날,

젠은 나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내가 따지고 들었다.


너희 아버님 진짜 짱이시라고.

씨발, 우리 아빠가 아버님의 10분의 1만큼만이라도

동성애자 문제를 잘 받아들여 줬으면 원이 없겠다.”


네가 몰라서 그래!”


젠이 소리쳤다.


안 받아들여 주셔! 안 받아들여 주신다고!”


그럼 뭐, 스타벅스에서 하신 말씀은 전부 연기였단 거야?

씨발 연기대상 받으셔도 되겠네.

난 바보라서 그런지 아주 그냥 껌뻑 속아 넘어갔거든.”


그런 말 하지 마.”


젠이 말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듯 보였다.


너 바보 아니야.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아줘.”


, 난 대학 문턱에도 가본 적 없는 데다

사무실에 예쁘게 걸어둘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노동자 계층에서나 일하는 멍청이인 거잖아.”


이미 골백번은 싸워온 주제였기에 입을 닫았다.


아무튼, 네가 뭐라고 하든 간에

난 네 부모님이랑 저녁 먹으러 갈 거야.

따라오든가, 아니면 집안에서 징징대고 있든가

맘대로 해.”


젠이 징징대기로 해서 내 딸을 맡겨두고 나왔다.

적어도 보모한테 줄 3만 원은 아꼈네.



젠의 어머님께서도 아버님만큼이나 좋으신 분이셨다.

두 분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자유롭고 편견 없는지를 보면서

다시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포츠, 정치, 내 직장, 두 분 직장에 관해 얘기하다가

젠의 자매 얘기를 꺼낼 기회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다른 따님들은 다들 잘 지낸다던가요?”


어머님께선 숟가락을 떨구셨고,

아버님께선 맥주를 들이켜시다가 사레들리셨다.

어머님께서 아버님의 입술과 뺨을 냅킨으로 닦으신 후

나를 향해 불안한 미소를 띠고 말씀하셨다.


정말 미안하다, 줄리야.”


아버님께서 수치스럽고, 또 사과한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나도 미안하다.”


나야 무슨 말씀이신지 알 턱이 없었다.

내 바보 같은 얼굴에도 그대로 드러났으리라.


이미 몇 년 전에 끝난 줄 알았는데.”


아버님께서 낮은 탄성을 뱉듯 말씀하셨다.

아버님 콧수염이 실룩거렸다.


그 지랄을 멈추려고 우리가 정신과에 얼마를 퍼부었는데!”


, 진정하세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미안하구나.

딸들문제 때문에 고생한 게 벌써 20년이나 되어서 그렇단다.”


하지만…… 제시카는 18살밖에 안 됐다고 했는데요?”


진짜가 아니니까 그렇지!”


아버님께서 고함 지르셨다.

주방에서 스카치 위스키 한 병을 꺼내시더니

술잔을 반 정도 채우신 다음 들이키셨다.


전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이야.

망할 머릿속에서 지어낸 환상이라고.”


애가 세 살이었을 때부터였단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때쯤에 시오반이 나타났지.

그 후로 다른 애들도 떠올리고, 진짜라고 믿더구나.”


경악에 빠진 채 이어지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단다.

아기가 동생들노는덕분에 키우기도 쉬웠지.

언제나 혼자서 잘 놀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같이 노는 게 아니었단다.

동생 중 한 명으로 변하는 거였지.

그리고 당시에 변해있는 아이의 이름에만 답했단다.”


각자 성격도 다 달랐다.

제시카는 배려심 많고 성실한 애였지.

시오반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애였어.

그리고…….”


아버님의 말씀을 끊었다.


알렉스는 모험심 강한 애였겠군요.”


?”


어머님께서 되물으셨다.

아버님께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시면서 나를 바라보셨다.


아니란다, 줄리야.

알렉스가 진짜야.

모험심 강한 아이는 젠이었단다.

언제나 반항적인 아이였지.”


미안하다.”


아버님께서 내게 술병을 건네며 말씀하셨다.


여태 상상 속 사람과 사귀고 있던 것 같구나.”






※번역 관련 지적, 조언 등등 환영합니다.


※퍼가는 건 괜찮습니다만

제출자, 원작자가 다 나오게 퍼가고, 뒤에 번역자가 누군지만 적어주세요.

(기왕 퍼가실 때 퍼가신 곳 링크를 달아주시면 제가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남기는 댓글는 번역되어 원작자분께 전달됩니다.


  1.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동성애 파티’라고 의역했지만 원본은 다이크 나이트(Dyke Night)입니다. 성적소수자 (LGBT) 관련 유흥거리, 모금 행사 및 잔치를 열어주는 단체라고 합니다. 관련 정보: http://www.dykenight.com/sample-page/ [본문으로]
  2. 부치: 레즈비언 중 연애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대체로 남성적인 쪽을 일컫는 단어. 이끌리고 여성적인 팸과 반대되는 개념. 편의상 지어진 개념이라 이런 식으로 사람 성격과 연애 방식을 고정관념에 따라 이분하는 것이 싫다고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본문으로]
  3. 인더스트리얼 피어싱: 피어싱의 한 종류. 귀의 두 구멍 사이를 장식구 하나가 관통하는 형태. 예시로 드는 구글 이미지: http://goo.gl/19sTBz [본문으로]
출처 출처: http://redd.it/338uck
제출자: AsianAlan - https://www.reddit.com/user/AsianAlan
작성자: Cymoril_Melnibone - https://www.reddit.com/user/Cymoril_Melnibone
배경음: 장화홍련OST '에필로그' - https://www.youtube.com/watch?v=-2wfD10MT7E
번역자: http://blog.daum.net/rhermaksenfdlfrlwkd/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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