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날 15.04.29
출판일 02.01.28
7p.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31p.
애당초 오직 이 여자를 원하고 있었음에도 여느 때처럼 굳이 먼 길을 빙빙 돌았다고 분명히 깨닫자, 시마무라는 자신이 싫어지는 한편 여자가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삼나무숲 그늘에서 그를 부른 이후, 여자는 어딘가 탁 트인 듯 서늘한 모습이었다.
가늘고 높은 코가 약간 쓸쓸해 보이긴 해도 그 아래 조그맣게 오므린 입술은 실로 아름다운 거머리가 움직이듯 매끄럽게 펴졌다 줄었다 했다. 다물고 있을 때조차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어 만약 주름이 있거나 색이 나쁘면 불결하게 보일 텐데 그렇진 않고, 촉촉하게 윤기가 돌았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지도 처지지도 않아 일부러 곧게 그린 듯한 눈은 뭔가 어색한 감이 있지만, 짧은 털이 가득 돋아난 흘러내리는 눈썹이 이를 알맞게 감싸주고 있었다. 다소 콧날이 오똑한 둥근 얼굴은 그저 평범한 윤곽이지만 마치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작 갖다 댄 듯한 살결에다, 목덜미도 아직 가냘퍼, 미인이라기보다는 우선 깨끗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