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포엠-달빛에 내 마음을 흠뻑 적시네
거기 초록의 웃음 하나가 하얀 미소에 스며드는 걸
본다, 내가 물들었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내 온몸을 다 그려도 아깝지 않았던 색, 당신
/색 中, 심강우
피어서는 안될 꽃이 피는 것은 눈물이요. 그대 의해 피워지는 꽃이라면 갈증이오.
모순을 증거할 수 없어 병들고 잠들다가 내가 나를 견뎌내 이제야 그대가 보이오.
목마른 내게 불만 주는데도 모순은 반짝임처럼 사랑이 되오.
땅은 땅밖에 모르듯이 다른형상의 모습말고
그대 내 시가 되어 남아 있어야 하오.
/19, 김초혜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이별의 노래, 정호승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낯설음이 기어 들어와 상처 입혀도
전혀 서두르지 않고 비로소 사랑하기 시작했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사랑 받지 못한 것을
/군도, 강경화
그대와 눈을 감고 입맞춤을 한다면그것은 내 안에서 일어난 수천 개의 바람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빛나는 계절 뒤에 떼로 몰려오는 너의 허전한 바람을 마중해주는 일이며 빈 가지에 단한 잎 남아 바르르 떠는 내 마른 울음에 그대가 귀를 대보는 일이다 서로의 늑골 사이에서 적막하게 웅성거리고 있던 외로움을 꼼꼼하게 만져주는 일이며 서로의 텅 빈 마음처럼 외골수로 남아있던 뭉근한 붉은 실점 한 덩이를 기꺼이 내밀어 보는 일이고 혀 밑에 감춰둔 다른 서러움을 기꺼이 맛보는 일이다 맑은 눈물이 스민 내가 발뒤꿈치를 들고 오래 흔들리고 있었던 그대 뜨거운 삶의 중심부를 가만히 들어 올려주는 일이다
/입맞춤, 이영옥
당신을 사랑한 나는
당신의 둥근 圓(원)을 반지 삼아 내 손가락에 꼈다.
어린 戀人(연인)들은 그것도 모르고
당신 둘레를 헛되이 맴돌고 있다.
/호수, 고진하
내 마음 저 달처럼 차오르는데
네가 쌓은 돌담을 넘지 못하고
새벽마다 유산되는 꿈을 찾아서
잡을 수 없는 손으로 너를 더듬고
말할 수 없는 혀로 너를 부른다
몰래 사랑을 키워 온 밤이 깊어가는데
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
/꿈의 페달을 밟고, 최영미
그냥 갈 거야?
네 손길에는 소름이 끼치도록 부드럽고도 질기고 단호한 힘이 들어 있었다.
그건 사랑에 빠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
/첫사랑 中, 성석제
왜 네 빛은 나만 비추지 않는 거야 왜 나만 사랑하지 않는 거야
왜 외간 것들에게도 웃어주는 거야 왜 따뜻한 거야 왜 모두에게 다정한 거야
/해괴한 달밤 中, 김선우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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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