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중 전 부산지검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에 파견됐던 검사들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수사와 재판 때 제출된 녹취록을 조작하는 데도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31일 드러났다. 파견 검사들이 수사·재판 방해 시나리오를 기획한 데 이어 직접 증거조작에 나선 것이다.
검찰과 국정원 등을 취재한 결과, 2013년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에 대비해 만들어진 ‘현안 티에프(TF)’는 그해 4월 원세훈 전 원장의 발언 녹취록을 검찰에 제출하기 전에 불법 대선·정치 개입과 관련한 내용을 삭제하는 데 깊숙히 관여했다. 이들은 검찰의 압수수색 때 원 전 원장의 녹취록 제출 요구를 예상하고 미리 ‘작업’을 했다고 한다.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 지원을 재검토”, “지자체 선거가 11개월 남았는데, 우리 지부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 후보들을 잘 검증해서 어떤 사람이 도움 될지…” 등 선거·정치개입이 명백한 글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빠졌다. 검찰은 압수수색 때 이런 내용이 빠진 녹취록을 제출받아 돌아갔다.
파견 검사들의 역할은 국정원장의 지시를 단순히 따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원 전 원장 녹취록 사본 2개를 펼쳐놓고, 감찰실 실무 직원이 문제가 될 만한 문장을 거르는 ‘1차 작업’을 했고, 장호중 감찰실장은 이를 바탕으로 현안 티에프에서 2차 검토를 한 뒤 검찰 수사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추가로 삭제하는 식이었다. 검찰은 최근 국정원 직원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련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원 전 원장은 1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무죄 판결을 받았고, 검찰은 4년이 지난 올해 녹취록 원문을 확보해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제출할 수 있었다. 원 전 원장은 지난 8월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이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상황 탓인지 2013~2014년 당시 국정원 내부에서는 파견 검사들의 ‘공’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검찰 수사와 재판 대응을 잘했다는 의미였다. 국정원은 장호중 감찰실장뿐 아니라 변창훈 당시 법률보좌관과 이제영 검사 등을 양지회 특별회원으로 가입시켜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양지회 회원은 국정원 골프장이나 국정원 지정 콘도 등을 싸게 이용하는 등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3년 이상 근무한 직원에 대해서 (양지회) 자격을 주는데, 내부에서 특별회원으로 해주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두 검사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확인결과, 실제 현직 검사 3명은 모두 양지회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무렵 국정원 직원이 아닌 파견검사들이 양지회에 가입한 건 이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