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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정치적' 드립 좀 깊이 생각해보고 합시다
게시물ID : sisa_5876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yx008
추천 : 4
조회수 : 29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4/19 01:20:55
그놈의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드립. 4월 혁명, 5월 광주, 6월 항쟁 모두 '정치'였습니다. 애당초 정치 운운하면서 집회는 집회로 끝나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더 생각이 없는겁니다. 정치 빼면 집회의 의미가 대체 뭐죠? 그냥 살풀이? 푸닥거리? 카타르시스나 느끼고 끝내는 연극?

정치적으로 보이는 걸 싫어하는 분들이 '그냥 어떤 이유로든 민노총에 안좋은 선입견이 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시선들 때문에 엉뚱한 논란거리가 생기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은 알겠으나 정치를 빼면 집회의 의미가 없는겁니다. 전문시위꾼이 끼어들어서 이상한 쪽으로 흐르든 특정 정당이 발을 걸치든 그건 그거대로 역할을 하는겁니다.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요. 그리고 목적만 같다면 같이 하고 무지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와 시위의 존재의의입니다.

전 2008년이 생각나네요. 2008년 광우병 때를 기억하시죠? 발단도 그렇고 언론이 몰아간 방향도 결국은 광우병과 미국산 소 수입 문제였지만 당시 시위의 본질은 '국민의 의사나 안위에 반하여 일방적으로 추진한 정책에 대한 항의'였습니다. '민주주의의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 때도 소위 정치꾼들, 시위꾼들 많았죠. 단적인 예로 살포시 숟가락 얹은 다함께. 당시 대부분의 시민들, 정치적인 갈등으로 번지는 걸 엄청나게 경계했습니다. 전문시위꾼, 정치단체, 경찰 프락치 다 비슷하게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뭐죠? 몇 달이나 이어진 시위는 그냥 해프닝으로 끝났고, 민주주의는 더 후퇴했고, 심하면 '좌파 세력의 준동', 아무리 좋게 묘사해도 '집단 히스테리'라는 식으로 평가가 굳어져버리고 있죠. 그게 다 다함께 같은 애들이 설쳐서 그런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당시 모인 사람들의 구성이나 숫자는 한 줌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떠들어댄다고해서 바뀔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다함께가 없었어도, 전문시위꾼들이 없었어도 정권과 '저쪽의 인간들'은 그걸 '정치적'으로 포장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했을 겁니다. 간첩도 만드는 나란데, 멀쩡한 사람들 그냥 별볼일 없는 불만덩어리 좌파로 만드는 일이야 우습죠. 그거, 일상에서도 조금만 '왼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경험하는 거 아닌가요? 난 정치색 띠고 싶은 생각 없고 그냥 상식선에서 얘기하는건데 쟤네들은 정치적이라며 몰아붙이는 거.

요약하자면, 정치적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마세요. 세월호를 비꼬고 유족들을 모욕하는 사람들은 상황이 어떻든 정치적으로 아주 잘 포장해서 써먹을 겁니다. 중간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은 언론에 영향받겠고, 결국은 언론을 장악한 세력의 주장을 따라가겠죠.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보이든 말든, 하나라도 더 우군을 만드는 게 맞는 겁니다. 그걸 6월항쟁에서 경험했기에 운동세력들이 80년대 내내 NL PD로 갈려서 지들끼리 치고박고했던 걸 조금이나마 극복하고 '연대'를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올린 겁니다.

하나 더. 그 정치적 백업이 없었다면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 태반은 불가능했습니다. 취업할 때 4대보험 기본으로 다 들지요? 만약 4대보험 없는 직장이 있다면 그 곳에서 일하시겠어요? 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4인 이하 사업장에는 4대보험따위 없었죠. 그래서 프레스에 손가락 잘려도 손가락 하나당 몇 만원씩 쳐준 게 보상의 전부였고요. 4인 이하 사업장에 4대보험 적용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스팔트에 피땀을 뿌렸습니다.

다른 예로 요즘 기업이 직원 하나 해고하려면 형식상으로나마 엄청 까다롭죠? 90년대 중반까지도 너 나가 하면 끝이었습니다. 그것 역시 쉽게 해고할 수 없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시위만 했다 하면 전경에 밀리고 기동대에 얻어터지고 퇴로도 없이 갇혀서 전원 연행되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 바뀐 건 '정치세력화'와 함께였습니다. 그게 민주노총이었고 민노당으로 이어진 겁니다.

오해하지는 마세요. 지금의 민노총이나 진보정당들을 딱히 비호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작은 것들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정치적이었는지 지적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때를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신경쓰는 지금의 모습이 걱정스러웠을 뿐입니다. 결국은 또 이루고자 하는 걸 이루지 못하고 한 때의 소동으로 끝날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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