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정직한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배꼽시계라고 답하리라
밤 12시가 되자 이놈의 배는 주인놈의 지갑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까까 사달라고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울어댄다
냉장고를 둘러보며 주린 배를 어르고 달래지만
어지간히 고팠나보다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늙은 코끼리처럼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낮에 허물처럼 벗어놓았던 옷들을 대충 주워 입고
휘적휘적 편의점으로 향한다
편의점 냉장고 안의 크림우동
사단장의 별도 부럽지 않았던
전역마크가 당당히 빛나는 전역모를 쓰고 위병소를 나오던 그때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으리라 다짐했던 냉동식품
20시쯤 됬을 것이다
울어대는 배처럼 찡얼대는 막내의 손을 붙잡고,
놀이동산에 가는 부자(父子)마냥 PX로 향했었을 것이다
PX안의 냉장고에 그득이 쌓여있는 크림우동을 보면서
현금으로 가득찬 금고를 보는 금고털이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전자렌지에 돌린,겉은 단단하고 속은 설익은,
그 식감을 보며
불평을 하며
그래도 맛있게 먹었으리라
라면이랑 섞으면 더 맛있더라는 후임놈의 말을듣고,
반신반의하면서도 섞어 먹었을 것이다
그래도 참 맛있었을 것이다
맛있게 먹다가,먹다가 문득 시계를 바라보았으리라
바라보고선 굼뜬 후임놈의 등짝을 재촉하며 허겁지겁 먹었으리라
그리고 밖으로 나가 식후연초불로장생을 뇌까리며 한대 나눠 붙였을 것이다
늙은 코끼리의 한숨처럼 담배를 토해내며
문득 밤하늘도 한번 바라보았겠지
칠흑보다 더 칠흑같은 밤하늘에
숨막힐정도로 많은 별이 피어났고
차가운 밤바람은 별을 스치며 이북땅으로 불어갔겠지
그 별을 보며 저별은 사단장의 별,
하며 시답잖은 농담도 했을것이다
네 남은 군생활은 저 별만큼 많단다
짗굳은 장난도 쳤을것이다
편의점 전자렌지에서 크림우동이 돌아간다
전자렌지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향이 느껴진다
느껴진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직도 내 코에 크림우동의 향이 들어와있는걸 보면
그때 그 크림우동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그때 그 후임놈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