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중매쟁이 서문표
게시물ID : history_203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키메라사격
추천 : 8
조회수 : 131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4/16 14:39:04
출처 :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4%9C%EB%AC%B8%ED%91%9C
 
서문표
서문표(西門豹)는 중국 전국시대 인물로 나라 정치가다.

2. 하백의 고사

위나라는 문후 때 크게 세를 떨쳤는데, 이때 뛰어난 정치가이자 행정가로서 서문표가 남긴 재미있는 일화가 전한다.

(鄴) 땅에 유수(留守) 자리가 비자 모사 적황은 문후에게 서문표를 적임자로 추천했다. 업은 , 나라와 이웃한 땅이라 위나라도 상당히 신경써서 다스려야 했다. 그런데 막상 서문표가 업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한마디로... 망했어요.

연유를 캐물으니 "매년 하백(河伯)[1]이 장가를 들어 그 뒷바라지 하느라 등골이 빠집니다"하는 답이 나왔다. 뭥미 싶어서 자세히 알아보니, 날이 가물지 않고 물길도 잔잔하도록 매년 처녀를 인신공양하는 풍습[2]이 있었다. 무당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하백에게 바칠 처녀를 물색하면, 관리들은 세금을 걷어 거하게 행사를 치르는 것.[3]

돈 있는 집은 딸을 살려야하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몸값을 바쳤고 가난한 집 딸들만 희생되는 상황도 연출되었다. 매년 이 짓을 했으니 백성들은 세금폭탄을 맞아 쪼들리고, 딸자식 가진 부모는 이웃 땅으로 도망가 인구가 감소해서 세수가 줄고...
서문표는 다음 번에 하백이 장가를 들면 자기도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다. 벼슬아치와 지역 유지를 비롯해 수천 명 구경꾼이 몰려들었고, 일흔 살 무당이 위풍당당하게 선두에 서고 젊은 무당 십여 명이 뒤를 따랐다.

서문표는 "하백의 신부 얼굴을 보자"고 요청했고, 산 제물로 뽑힌 처녀를 보더니 "이 오크는 뭐임? 이래서야 하백한테 체면이 서겠음? 아 시바... 무당님아 하백한테 가서 며칠만 유예기간을 얻어오삼. 내가 새끈한 처녀를 대령하겠삼."하더니 부하를 시켜 냅다 무당을 강물에 집어던졌다.

누구도 예상 못한 사태인지라 한동안 모두 벙쪄 있는데, 서문표는 태연자약 덧붙였다.

"할망구가 늙어서 동작이 굼뜨네. 거기 빠릿빠릿한 젊은 무당님아가 좀 가보삼."하고는 또 무당을 강물에 집어던졌다. 두 명 더.

젊은 무당도 감감무소식(...)이자 서문표는 또 덧붙였다.

"무당들은 계집이라 신 앞에서 말빨이 안섬? 번거롭지만 삼노(三老)[4]께서 후딱 다녀오삼."하더니 역시나 삼노를 강물에 집어던졌다.

사태가 이쯤 돌아가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지만 서문표는 뻔뻔할 정도로 태연했다. 의관을 정제하고, 허리도 굽히고, '나는 하백의 답신을 존내 정중하게 기다리고 있음'하는 분위기를 연출해 보였다. 물론 하백의 답신은 없었고, 서문표는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무당도 삼노도 안옴? 에라, 나머지 관리하고 유지들 강물로 고고씽."하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말했다.

일동 이마가 깨지도록 절을 하며 살려달라고 빌었고, 비로서 서문표는 "앞으로 하백을 장가 보내겠다는 새퀴가 나오면, 중매 서라고 내 친절히 강물에 던져주겠삼. 콜?"하고 선언했다. 이후로 업 땅에서 산제물을 바치는 풍습은 사라졌으며, 흩어졌던 사람들도 다시 모여들었다.

이후 서문표는 대규모 관개사업을 벌여 열두 개 보를 쌓았다. 만들 당시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은 불평했지만, "당장은 나를 원망해도 백년 뒤에는 고맙게 여길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과연 물길이 잡히며 수해가 줄었고 풍부한 수량을 바탕으로 농업 생산량이 증가했다.

한나라 때, 이미 서문표가 지은 수로가 오래되었다는 생각에 나라에서는 수로를 합치자고 건의했지만 백성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현군 서문표가 백성들을 이끌고 만든 방식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결국 계획은 취소되었다.

이때 서문표가 땅을 판 곳이란 유래가 있는 서문거(西門渠)란 지명이 실제 있다.

후에 조조골든간지전예가 크게 존경하고 통치에 있어서의 역할모델로 삼았다. 전예의 유언은 "서문표와 같은 길을 걸었으니 그와 같은 곳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였으며, 조조의 마지막 유언은 "업(鄴)의 서쪽 언덕 서문표(西門豹) 사당 부근에 묻어주어라." 라는 것이었다.
----
  • [1] 河水(황하의 옛 이름)의 신을 이름
  • [2] 처녀를 잘 먹인 후에 배에 태우는데, 미리 조그만 구멍을 뚫어 놓아 멀리 못가고 가라앉게 했다고.
  • [3] 당연히 남은 돈은 이놈들이 나눠가지고...
  • [4] 교화를 담당한 관리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