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이 쓴 역사 책 <사기>의 '흉노 열전'에는 흉노의 제2대 왕 묵돌(? ~ B.C. 174)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묵돌은 아시아에 최초의 유목 국가를 세운 후 온 세계에 걸쳐 대흉노국을 세운 강력한 통치자였다. 그는 한나라의 유방을 유명한 백등산 전투에서 완전히 제압한 후, 한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어 자신에게 공물과 공주를 바치도록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흉노 열전'의 묵돌에 관한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소리를 내는 화살을 뜻하는 '명적(鳴鏑)'에 얽힌 일화 대목이다.
동방 기마 국가의 원형인 흉노의 제1대 왕은 두만이었다. 그의 아들이 바로 태자 묵돌이었다. 그런데 두만은 후에 총애하던 연지(흉노 왕의 정실 부인을 부르는 말)로부터 아들 하나를 얻는다. 두만은 그 아들에게 자신의 왕위를 넘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 태자로 책봉되어 있던 묵돌을 적국인 월지국에 인질로 보낸 후 월지를 급습한다. 월지국으로 하여금 인질로 들어가 있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비정한 아버지의 흉계에 빠진 묵돌은 위기 상황에서 가까스로 본국으로 탈출한다.
그후 두만은 할 수 없이 태자 묵돌을 만인대(萬人隊)의 기병 군단을 거느리는 장군에 임명한다. 이때부터 묵돌은 자신의 기병 군단을 최정예 부대로 키우기 시작한다. 묵돌은 명적을 만들어 부하들에게 말 위에서 일제히 사격을 가하는 훈련을 시켰다. 그때 묵돌은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내가 명적을 쏘거든 다 같이 그곳을 쏘아라. 쏘지 않는 자는 죽인다."
묵돌은 부하들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묵돌은 자신의 애마를 향해 명적을 쏘았다. 몇몇 부하가 명적을 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묵돌은 이들을 가차없이 죽여 버렸다. 어느 날은 자신의 애처를 향해 명적을 날렸다. 이때에도 묵돌은 차마 화살을 날리지 못하는 부하들의 목을 모조리 베었다. 얼마 후 묵돌은 사냥을 나갔다가 부왕의 말을 향해 명적을 쏘았다. 이때에 이르러서는 좌우의 모든 부하가 묵돌과 함께 명적을 날렸다. 묵돌은 비로소 부하들이 자신의 명령을 철저하게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왕과 함께 사냥을 나간 어느 날, 묵돌은 바로 그 부왕 두만을 향해 명적을 날렸다. 그러자 만인대의 모든 부하가 두만을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두만의 온 몸은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되었다. 묵돌은 그 여세를 몰아 어머니와 동생, 자신을 따르지 않는 신하들을 모두 주살하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 기원 전 209년. 진나라의 시황제가 죽은 다음 해였다.
묵돌의 패륜, 결국 아버지 두만이 만들어준 것
▲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른바 일베 홈페이지 | |
ⓒ 일간베스트 저장소 홈페이지 갈무리 |
묵돌의 명적 일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주군을 향한 절대 충성, 공범 의식으로 형성되는 강력한 결속력 등이 그것이다. 즉위 이후 묵돌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한 지도력으로 온 세계에 걸쳐 대흉노 제국을 완성한다. 그가 용맹스러운 영웅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부왕을 포함한 혈족을 모조리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른 패륜적 지도자였다. 묵돌이 명적을 손에 쥔 후부터 내보이기 시작한 모습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모진 악행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영웅으로 묘사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결코 합당하지 않다. 그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제 아비와 가족들을 살해한 '패륜 괴물'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도대체 묵돌은 왜 그랬을까. 그의 내면의 어떤 것이 그를 그런 '괴물'로 만든 것일까. 그의 몸 안에 부왕을 시해하고 왕이 될 것을 배후 조종하는 패륜의 유전자라도 있었던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묵돌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그의 아버지 두만이었다. 그는 태자로 책봉된 아들 묵돌을 내치고 새로 얻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아들을 적국의 인질로 보낸 후 기습 공격을 감행한다. 이보다 더 패륜적인 짓이 어디에 있겠는가. 묵돌의 패륜은 결국 아버지 두만이 만들어준 것이다.
나는 이 묵돌에게서 최근 인터넷 세상의 뜨거운 주인공들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의 일부 극성 이용자인 '일베벌레(일베 회원들은 비하하는 표현이기는 하나, 극성 이용자들을 지칭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글 도입부에만 사용한다)'들의 모습을 본다. 통계적으로 확인되진 않았지만, 일베 주요 회원들은 대부분 10~30대의 젊은 세대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1997부터 2007년까지 이어진 민주정부 10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시기는 국제통화기금 구제 금융(IMF)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기간이었다. 그때 예민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들에게 부모들은 늘 먹고 사는 일에 치여 있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부모만큼이나 힘에 부쳤다.
그래도 그들의 나라 대한민국은 '민주 세상'이 되어 있었다.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0년 간의 민주 정부는 1980년대 이후 이루어진 민주화의 달콤한(?) 열매를 사람들에게 맘껏 자랑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이었을 뿐이다. 학교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게 야만적인 성적 경쟁이 펼쳐졌다. 수능과 논술, 내신이 만들어내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률은 꾸준히 증가하여 2008년에 이르러서는 80%를 훌쩍 넘어섰다. 그들에게 대학은 생존 그 자체를 위한 고비용의 보증 수표였다.
민주 정부 10년 사이에 우리 모두를 홀린 신자유주의의 광풍 때문이었을까. 그들의 머리에는 온통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의 이분법적인 논리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죽자사자 몸부림치며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손에 쥐어지는 돈은 달랑 '88만원'뿐이었다. 이때부터 그들의 머릿속에는 열패감과 무력감이 생겨났다. 그리고 서서히 이유 모를 분노심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자, 이제부터 우리의 패륜 놀음을 시작해 보자!"
그들은 인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특별한 개인들이 아니다
이때 핏발 선 그들의 눈에 민주 정부를 두 차례나 탄생시킨 민주화·진보 세력이 들어왔다. 1980년대 민주화의 주역이라며 거들먹거리던 386들도 눈의 한쪽 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은 '5·18'과 '6·10'이라는 숫자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이들 숫자는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절대 금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절대적인 금기는 없는 법. 사실 금기는 어찌 보면 깨트리라고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금기를 파괴할 때 얻게 되는 쾌감이나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강력하다. 그러니 금기 대상이 절대적이면 절대적일 수록 좋다. 마침 이른바 '486 세대'가 그들 '88만원 세대'의 (큰)아버지나 삼촌뻘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큰)아버지나 삼촌에게는 민주화의 '성지'가 된 광주에 대한 조롱과 비하가 금기 파괴의 쾌감을 충분히 가져다 줄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결코 인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특별한 개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일상에서는 야자에 성실히 참여하는 10대 학생이거나 열심히 레포트를 준비하는 20대 대학생, 기획 회의로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는 30대 회사원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우리가 그들의 행태를 '패륜'이라는 말로 비난할 때, 그들 각자의 개인적인 일탈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심한 욕설이나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 사회적인 약자들을 향한 조롱 등은 사실 그 얼마나 정치적인가. 그들의 패륜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그것은 대단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며 역사적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2013년 대한민국의 묵돌들'이라는 거창한(?) 비유적 표현을 안겨주고 싶다. 묵돌을 '영웅'처럼 섬기고, 그가 세운 거대한 흉노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런 내 생각에 반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의 묵돌이 그랬던 것처럼, 분명 역사적이고 사회 구조적인 상황 속에서 생겨난 '괴물들'이다.
그들에게 민주화나 진보는 '기득권'이나 '기성 세대'의 다른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도 자신들을 나락으로 밀어넣은 '못된' 기득권(기성 세대)으로서 말이다. 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이니 망자에 대한 예의니 하는 우리의 비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기득권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기성 세대에게 저항하는 중이다."
그러니 우리 시대의 또 다른 '투사'가 그들에게서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마침 광주 지역의 각계 단체로 구성된 '5·18 역사 왜곡 대책위원회'가 종편과 일베 등에서 5·18을 왜곡하고 폄훼한 11명을 검찰에 고소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제 우리는 조만간 앳된 모습의 한 고등학생(또는 여대생이나 20대 후반의 샐러리맨)이 법정에 서는 장면을 공중파 방송으로 보고 깜짝 놀라게 될지 모른다. 또 다른 일베 이용자들이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났다고 난리겠지만 말이다.
진정한 의미의 '역사 전쟁'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
▲ '일베' 초청 국정원 안보교육 강행 지난 5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역에서 국정원 안보 특강에 초청된 시민들이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국정원은 북한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 가입자 명단이 공개된 것과 관련해서 국정원 111콜센터에 신고한 제보자를 초청했다. | |
ⓒ 유성호 |
일베를 두둔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내게는 지난 몇 주간 그들이 내뱉은 그 '더러운' 말들에 '표현의 자유'라는 면죄부를 주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그들의 언행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나라에도 "재일조선인은 일본에서 사라져야 한다"며 거리로 나온 일본의 '넷 우익'과 같은 극우 집단이 생겨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들이 완전히 사라질까. '투사'가 된 그들이 모여 네오나치즘과 같은 극우적인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내게 되지나 않을까. 이런 의구심들 때문에 나는 명예훼손이나 이에 따른 법적 처벌 등을 핑계로 그들을 여론의 최전선에 내세우고 있는 최근의 흐름이 영 마땅치가 않다. '5월'이라는 시기의 상징성이, 그저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그들을 진짜 '별것'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그들은 그 선정성 덕분에 정말 심하게 부풀려져 있다.
나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 전쟁'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펼쳐질 그 진짜 싸움의 대상은 수준 이하인 일베의 일부 극성 이용자들 따위가 결코 아니다. 일제시대 이화여전과 연희전문의 예를 들면서 학교 운영은 일제에 협력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이들, 그런 말을 하면서 신사참배에 거부하고 학교 문을 닫은 숭실전문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함께 들먹거리는 감각으로 "일제치하의 신사참배와 같은 친일 행적은 선택의 하나"였다는 궤변을 늘어놓는(이상의 내용은, 교학사의 새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공주대 이명희 교수가 6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 쇼>에 나와 한 인터뷰의 일부임) 극우 역사학자들이다.
그들과의 진짜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말과 글을 우리 모두 결코 듣거나 읽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는 아주 확실하게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주자. 일본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후쇼사와 함께 만든 역사 교과서는 채택률 1%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그 새역모 역사 교과서처럼 그들의 교과서가 그들의 서재 책꽂이에만 꽂혀 있도록 하자.
대한민국은 일본의 역사 왜곡을 이만저만 비판하는 나라가 아니다. 이런 나라에서, "신사 참배와 같은 친일 행적은 선택의 하나"라는 말을 당당하게 늘어놓는 필자가 포함된 역사 교과서가 전체의 1%, 아니 0.1%를 넘는 학교에서 채택된다는 것은 절대 말이 되지 않는다. 교학사의 역사 교과서 채택률이 0.01%나 0% 정도는 돼야 상해 임시 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위신이 설 것이다. 최종 검정 결과가 발표되는 8월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일베들의 숙주가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임을 결코 잊지 말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73130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뉴라이트엔 역사전공 학자분들이 없습니다
비역사학자들이며 친일매국노 성향이 강한 부류들입니다
기사에 언급된 역사학자란 말은 뉴라이트에 속한 일부 비역사학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