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미 벚꽃은 다 져버린 밤이었다.
그러나 따뜻한 봄 바람이 부는 밤이었다.
꽃잎을 다 떨구어낸 벚꽃나무들이 팔 벌려
늘어선 조용한 길을 우리는 걷고 있었다.
너와 나 사이에는
오렌지 색 전구의 가느다란 필라멘트 선 처럼
미묘하고 가느다란 무엇인가가 흐르고 있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을 듯 시작되었던 그 감정이
사랑이었다 라고 하면 너무 이른 표현이었을까.
2.
꼭 그 때와 같이 벚꽃이 피는 계절이 왔다.
다만 비가 내릴 뿐이다.
다만
너무 이르게 떨어져버렸던 그 때의 벚꽃잎들처럼
너는 네 속에서 나를 떨구어낸 그런 밤일 뿐이다.
다시 오늘을 지나 또 다른 봄이 올 것이고,
벚꽃이 필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날 그 밤 어디가쯤에서 난 여전히
벚꽃이 다 떨어진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그러나 어쩌면 이젠 너무 늦거나 필요없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혼자 조용히 소리내어 말해볼지도 모를 일이다.